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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133화 (133/236)

# 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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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눈을 뜬 수빈은 서둘러 거실로 나갔다. 그리고선 3줄로 되어있는 수기집결진을 밖에서부터 한 줄씩 한 줄씩 조심스럽게 해체한 후 가운데 놓여 있던 사기그릇을 집어 들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이며 찰랑거리는 액체를 쳐다보며, 수빈은 긴장감과 기대감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어느 정도 효과를 보려나. 여기에 군 복무를 전방 철책 쪽으로 지원하느냐 마느냐가 달려 있는데..'

거실 바닥에 정좌를 한 수빈은 숙연한 얼굴로 황금색 액체에 입을 대고 마시기 시작했다.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모두 삼킨 수빈은 사기그릇을 옆에 내려놓고 차분히 자신의 몸을 관조하기 시작하였다.

잠시 후 단전 부근이 마치 불을 지핀 듯 따뜻해지며 열기가 천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수빈은 세가 비전의 소천성심법(小天星心法)으로 운기를 하여, 열기를 정해진 혈맥으로 조심스럽게 인도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운기조식을 모두 끝마친 수빈은 눈을 떴다. 정광이 번쩍이는 눈빛으로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은 수빈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이 정도 효과면 넉넉잡아 1년, 빠르면 6개월이면 대주천에 도달할 수 있겠는걸.. 굳이 휴전선 근무를 지원하지 않아도 되겠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수빈이 중얼거렸다.

"너무 급한 것도 좋지 않지. 서두르면 탈이 나는 법. 이삼일에 한번 정도 복용하면 적당할 거 같군."

콧노래를 부르며 부엌에서 새로운 동충하초를 꺼내온 수빈은 수기집결진을 새롭게 다시 완성한 후 상쾌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러 갔다.

매니저가 모는 밴에 올라탄 수빈은 [벨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잠시 후 자신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박감독을 보며 수빈은 방긋 웃었다.

"감독님. 그러다 제가 감독님 눈빛에 찔려버리겠습니다."

수빈의 능청에 박감독이 안타깝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강감독. 알고나 있나? 소라가 강감독이 다시 돈을 부쳐주자마자 백화점으로 바로 또 달려갔다는 사실을.. 큰누나 말로는 백화점에 가서 딱 2개만 쇼핑했다고 하더군. 650짜리 명품 시계랑 150짜리 명품 귀걸이를 샀다고 들었네."

박감독의 말에 수빈이 잘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랬군요. 그럼 400이 남았겠군요. 4일 남았으니 하루에 100씩 쓰면 딱 맞겠군요."

"아무리 내 조카라지만.. 후우. 소라 쇼핑시켜주느라 애먼 자네 돈만 2천 가까이 훌러덩 날아갔지 않은가. 이걸 어떻게 처리할 건가?"

"뭘 처리합니까. 그냥 놔두세요. 박감독님. 앞으로도 돈 문제에 관련해서는 관심 안 가지셔도 됩니다."

수빈의 무덤덤한 대답에 박감독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돈 준다고 옳다고나 하고 쇼핑하러 가는 애나, 그 소식을 듣고도 태연한 강감독이나.. 난 둘 다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

"그런 사소한 문제는 신경 끄시고, 이거나 한번 살펴봐주시죠."

수빈이 테이블 위로 서류를 한 장 내밀었다. 박감독이 서류를 집어 들며 물었다.

"이게 뭔가?"

"어젯밤에 제가 저희 영화사 직원들 계약 조건에 대해서 정리한 내용들입니다. 크게 행정 직원과 기술 직원으로 이분화해서 나눴습니다."

잠시 서류를 읽어보던 박감독은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음성을 내뱉었다.

"음. 이건 너무 심한데.."

"심하다니요. 그 정도는 줘야죠. 안정적인 생활을 하려면 그 정도는 필수입니다."

수빈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이쪽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활이 너무 불안정해요. 일이 있을 때는 좀 벌고 없을 때는 거의 돈을 못 벌어요. 그러다 보니 기본적으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기에도 벅찬 경우가 많습니다. 최소한의 생활비는 회사 차원에서 반드시 보장을 해줘야 합니다."

"그럼 직급별로 크게 3단계로 나뉘는 건가?"

"네. 말단은 월 200, 그 위에 간부급이 250, 마지막 책임자급이 300입니다. 복잡하게 나눠봐야 머리만 아프고 해서 심플하게 나눴습니다."

"이게 매달 나가는 기본급이라는 거지?"

"그렇죠. 수당이 포함되어 있지 않은 기본급입니다. 거기에 일 년에 5번 보너스를 지급할 겁니다. 구정, 가정의 달인 5월, 여름휴가, 추석, 크리스마스 때 100프로씩 보너스가 지급될 겁니다."

"그럼 말단이 수당 빼고 일 년에 받는 돈이.."

"2,400에 보너스 1,000을 더하면 3,400이죠. 간부는 4,250, 책임자는 5,100을 받게 되는 거죠. 수당은 빼고요."

박감독이 말도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말했다.

"너무 많아. 이런 식으로 막 퍼주다가는 영화사가 금방 망할걸세. 이 나라 어느 영화사에서도 이렇게 많이 주지는 않는다고."

박감독이 맘에 안 든다는 듯 서류를 손으로 탁탁 치며 말을 이었다.

"거기에 직원들 4대 보험도 회사에서 책임지겠다고 적어 놨지 않은가. 실제 영화를 찍게 되면 현장 요원들은 현장 수당을 받고, 행정 요원들은 회사에서 적정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준다? 그리고 연말 결산에서 수익이 많이 남으면 특별 보너스 형태로 지급한다.. 이건 같이 망하자는 소리랑 다를 바 없다고."

"설사 망해도 상관없습니다. 투자 없이 이익을 바라는 건 도둑놈 심보죠. 그리고 몇 년간은 충분히 버틸만한 자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허 참.. 아무리 돈이 있어도 이건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야. 1년에 영화 한편 제작해서 얼마나 번다고 인건비를 이렇게 많이 지급한다는 건가? 강감독 계획대로 라면 행정에 기술직까지 합치면 20명은 족히 넘을 건데.. 그럼 1년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인건비만 해도 10억은 훌쩍 넘어갈 거라고. 10억이 뭐야? 수당까지 합치면 20억 가까이 되겠는걸."

박감독의 걱정 어린 말에도 수빈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감독님. 망해도 제가 망하고, 나가도 제 돈이 나가는 겁니다. 박감독님은 거기 적혀 있는 분들하고 우선적으로 계약을 추진해 주세요. 영화사 설립하면 바로 직원들과 계약을 마무리하고 촬영 준비에 들어갈 수 있도록요. 영화 안 찍으실 겁니까? 소원이시라면서요?"

"소원이기야 하지만.."

"그럼 박감독님은 제가 시키는 대로 계약이나 신경 쓰세요. 모든 책임은 제가 다 집니다."

수빈의 단정적인 대답에 박감독이 마음을 비운 듯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후. 알겠네."

"계약은 잘 될 거 같습니까?"

"농담하나? 이 조건이면 다들 불을 켜고 달려들걸세. 이 정도면 대기업 직원들이 받는 연봉이랑 별다를 것도 없어. 이걸 누가 싫다고 하겠나?"

"그래야죠. 감독님. 옛말에 사마골오백금(死馬骨五百金)이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려면, 먼저 아낌없이 베풀어야 하는 법입니다. 경영이나 자금 같은 문제는 걱정 마시고, 감독님은 인재 영입에 최선을 다해 주세요. 그래야 나중에 영화를 찍을 때 감독님이나 저나 현장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수빈의 말에 박감독이 마음을 굳힌 듯 결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내가 이 바닥에서 인재라고 소문난 사람들은 모조리 다 끌어모아서 계약을 진행하겠네. 그 대신 책임은 강감독이 지게나."

수빈은 환하게 웃으며 박감독에게 손을 내밀며 말했다.

"이제야 비로소 말이 통하는군요. 책임은 제가 집니다. 걱정 마세요."

박감독이 수빈이 내민 손을 힘차게 맞잡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제가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움켜잡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이 순간이었다. 장차 충분한 급여와 안정된 직장 생활로 인해, 입사하는 직원들마다 그동안 미뤄 뒀던 혹은 마음속으로 반쯤은 포기했던 결혼식을 서둘러 올리는 바람에 '영화인들의 예식장'이라고까지 불리게 될 영화인의 꿈의 직장인 [빈 스튜디오]의 출발점이 되는 순간이었다.

바로 이 순간이었다. 혜성처럼 등장하여 한국 영화판에서 오랜 세월 지속되어 왔던 구태와 악습을 단숨에 혁파하고, 짧은 시간 내에 한국 영화계의 헤게모니를 한 손에 거머쥐게 될 [빈 스튜디오]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수빈은 박감독과 세세한 사항까지 협의를 마친 후 '벨 스튜디오'를 나섰다. 매니저와 함께 간단하게 점심을 챙겨 먹은 수빈은, 연예대상 MC 관련해서 의논을 하려고 김해수를 만나러 SN 사옥으로 이동하였다.

잠시 후 SN 사옥의 주차장에 도착한 수빈은 밴 안에서 매니저에게 말했다.

"형. 전 해수 누나랑 회의를 해야 하니까 그동안 서점에 가셔서 책 좀 사주세요."

"책? 어떤 책을?"

"아무래도 경영이나 상법 쪽 관련 책들을 좀 봐야 할거 같아요. 적당히 형이 골라서 사주세요."

"그래. 알았다. 그럼 몇 시쯤 데리러 올까?"

"글쎄요. 해수 누나가 샛별이랑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으니까.. 형은 서점에 들렀다가 회사로 돌아가세요. 제가 필요하면 호출할게요."

"회사에서 대기하고 있을 테니까 늦더라고 꼭 연락해라. 괜히 혼자서 택시 타고 집에 가지 말고. 알았지?"

"네. 알았어요. 연락드릴게요."

잠시 후 밴에서 내린 수빈은 고개를 한 바퀴 돌려 주차장을 훑어본 후 사옥 정문이 위치한 쪽으로 이동했다. 정문 안내소에서 김해수와 약속이 되어 있다고 말한 수빈은 3층 회의실로 올라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들었다. 회사 안으로 들어간 수빈은 3층으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엘리베이터 앞에선 수빈은 지금 자신이 뭔가를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일순간 강렬하게 들었다. 고개를 갸웃거린 수빈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이 알 수 없는 묘한 기분은? 내가 지금 뭘 놓치고 있는 거지.'

잠시 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린 수빈은, 회의실로 가기 위해 복도를 천천히 걸어가면서도 위화감을 떨치지 못했다. 회의실로 입장한 수빈은 의자에 앉아 김해수를 기다리면서도 계속해서 고민에 휩싸였다.

'분명히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어. 근데 머릿속에서 당최 떠오르지가 않는군. 나 스스로 무언가를 떠올리는 걸 거부하고 있는 기분이야. 지금까지 아런 경우는 일상생활에서 한 번도 없었는데.. 지금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김해수의 씩씩한 목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수빈이 왔니?"

김해수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리고 그 뒤에 짧은 머리를 한 또 한 명의 여자가 회의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을 확인 한 수빈은 그제서야 자신이 무얼 놓치고 있었는지 불현듯 깨달았다.

'빌어먹을.. 이제야 알겠군. 푸른색 마세라티 기블리. 맞아. 틀림없어. 아까 주차장에 그 차가 서있었어. 무의식적으로 보고도 못 본척 하고 있었던 거야.'

수빈은 김해수의 뒤를 따라 들어오다 자신을 발견하고선 장승처럼 우뚝 서있는 여성에게 말을 건넸다.

"잘 지냈니? 최아림. 오랜만에 본다."

수빈의 말에 최아림이 충격에서 벗어난 듯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선 이를 뿌드득 갈았다. 최아림이 수빈을 산 채로 갈가리 찢어놓을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개 같은 새끼.. 양아치 같은 새끼가 여기에 왜 있는 거야?"

최아림을 만나자마자 욕을 얻어먹은 수빈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

"그때는 내가 정말 미안했다. 철이 없었어. 내가 정식으로 사과하마."

그 순간 중간에 낀 김해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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