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27화 (127/236)

#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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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장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 BJ 그룹에서 엔터테인먼트 관련 주가 7~10프로 정도 떨어졌다네. 그것도 오늘 오전장에서만 말이지."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의문 어린 눈동자로 박실장을 쳐다보며 물었다.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우리가 공매도를 신청한 날이 목요일이었죠. 그리고 정회장님이 돌아가신 것도 목요일 아닙니까?"

"그렇지. 목요일 오후 6시가 좀 넘어서 돌아가셨지."

"그래서 저도 정회장님이 돌아가신 다음 날, 그러니까 금요일이죠. 저도 시간 날 때마다 주가를 들여다봤습니다만 그날은 주가가 거의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나도 그날 열심히 지켜봤다네. 2~3프로 정도밖에 안 떨어졌지."

"그래서 정회장님 사망 소식이 주가에 별 영향을 못 미치는구나 하고 마음을 비웠습니다. 수수료 빼고 나면 남는 것도 없겠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둘 다 맞네. 정회장님이 후계 구도를 일찍 완성시켜 놨고, 본인도 일선에서 물러선지 좀 되다 보니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의외로 적었지. 그리고 3프로 수익이면 고정 수수료를 빼고 나면 크게 남는 것도 없네."

"근데 오늘 오전장에서만 10프로 가까이 떨어졌다고요? 갑자기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오늘 오전에 영화계 쪽에서 대형 악재가 터졌지."

"악재요?"

"악재지. 봉순호 감독이 [SAT]에서 하차하고 차기작으로 [기생충]을 찍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사람들에게 알려졌다네. 눈치 빠른 사람들은 다 알아챘지. SAT가 완전히 엎어졌구나라고 말이야."

수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제작한 영화가 흥행에 참패한 것도 아니고 단지 엎어졌다는 사실 하나로 주가에 그 정도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입니까?"

"자네가 그동안 주식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 보니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어. 지금 BJ 관련 주식, 특히 엔터테인먼트 쪽 주식은 몇 달 전에 비해 주가가 상당히 올라가 있는 상태야. 생각을 해보게. 국내 영화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로, 정미영 회장이 직접 제작을 하고, 봉순호 감독이 연출을 한다. 이 정도면 전 세계 개봉을 목표로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소리와 똑같은 거야."

박실장이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잘만 하면 대박을 노려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지. 거기에 비록 조연이긴 하지만 자네의 폭행 소동과 관련된 인터뷰가 전국에 생중계로 나갔네. 지금 국민들 중에서 봉감독이 SAT 영화를 찍는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주목하다 보니 영화에 대한 기대 심리가 하늘 끝까지 올라갔지. BJ 주가가 몇 달 전에 비하면 거의 20프로 가까이 상승해 있는 상태였다네."

무슨 말인지 알아 들었다는 듯 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상황에서 영화가 엎어진 거군요."

"그렇지.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법. 내 생각엔 오늘내일해서 그동안 야금야금 올라갔던 20프로는 무조건 빠질 거야. 20프로면 돈이 얼만지 아나? 그 바람에 이번에도 제대로 벌수 있게 됐다고."

박실장이 흥분하여 떠들고 있을 때 수빈은 얼핏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이제 보니 실장님이 터뜨렸군요."

박실장이 흠칫 놀라더니 대답했다.

"무슨 소리야? 내가 터뜨리다니? 난 관여하지 않았네. 아까 말했지 않은가. 봉감독이 터뜨렸다고. 설사 내가 부탁한다고 해서 봉감독이 순순히 들어줄 사람으로 보이나?"

수빈은 발뺌을 하는 박실장을 차분하게 관찰하더니 입을 열였다.

"돌려서 작업을 하셨겠죠.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동공이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박실장님 같은 좌뇌형 인간들은 오른쪽 동공이 왼쪽보다 더 떨리게 되죠. 변명을 궁리하느라 머리를 열심히 쓰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수빈의 단정적인 말에 박실장이 머뭇머뭇하더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가 불법을 저지른 건 아니지 않은가?"

"불법은 아니죠. 없는 사실을 있는 것처럼 호도한 것도 아니고, 있는 걸 없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나중에 사실이 드러나면 도덕적으로 비난을 받을 위험성도 있습니다. 왜 그런 모험을 하셨습니까?"

박실장이 한숨을 쉬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자네 때문이지. 300억짜리 건물을 사기로 했다면서?"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그 소식을 벌써 들으셨습니까?"

"이 바닥이 어떤 바닥인지 알면서 그러나. 자네 자금에서 건물을 매입할 돈을 빼고 나면 김사장 주식을 인수할 자금이 모자랄 거 아닌가? 아무리 계산을 해봐도 돈은 모자라고, 주말에 김사장은 전화로 자신의 주식을 빨리 인수해가라고 닦달을 하고. 진퇴양난이었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욕심을 좀 부렸어. 미안하게 됐네."

사과를 하는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웃으며 대답했다.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죠. 제가 뮤비 때문에 바빠서 거기까지 신경을 못썼는데 아주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혹시 오해를 하고 계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전 도덕적으로 그렇게까지 깨끗한 놈은 아닙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듯 박실장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잘했지? 내 나름대로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고. 자네라면 어떤 방법을 쓸까 고민을 하면서 말이지. 그러다 어젯밤에 생각이 떠올랐지. 이거다. 이거면 주가를 떨어뜨릴 수 있겠다고 말이지."

"아주 잘하셨습니다. 작업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그냥 잘 아는 기자에게 넌지시 흘렸지. 봉감독이 새로운 영화를 찍는 거 같다고. 그 기자가 봉감독에게 쫓아가 인터뷰를 했나 봐. 그리고선 특종이라고 터뜨린 거야. 난 봉감독에게 전화 한통 한적 없다네."

수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대답했다.

"뒤탈 없이 잘 처리하셨네요. 역시, 실장님에게는 전문 투기꾼의 스멜이 물씬 납니다."

"농담 말게나. 자네가 아니었다면 난 주식 쪽으로는 쳐다도 안 보는 사람이야."

"어차피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꼬리가 길면 밟히게 되어 있고, 편법을 계속 쓰다 보면 언젠가 탈이 납니다. 이 정도에서 완전히 손털고 정리하는 게 딱 좋습니다. 앞으로는 정공법으로 돈을 벌어야겠죠. 그럼 김사장님 주식을 바로 인수하실 겁니까?"

"그래야지. 오늘 저녁 비행기로 법무팀 조대리를 미국으로 보낼 거야. 내일 주식장이 끝나고 자금이 확보되면 바로 인수 작업을 할걸세. 그리고 나면 이사회를 열어서 사장 교체를 해야지. 자네도 이사로 등재해야 하고. 이삼일 정도면 모든 작업이 다 끝날 거야. 50프로가 넘는 지분이니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수가 없어. 며칠만 지나면 YK는 이제 나랑 강이사의 것이 되는 거야."

"강이사라.. 좋군요. 듣기에 아주 좋습니다. 박사장님."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강이사. 사장인 나랑 같이 점심이나 하세나. 내 차 트렁크에 지금 네팔에서 온 동충하초가 실려 있다네. 그것도 좀 받아 가고."

"알겠습니다. 박사장님."

잠시 후 두 사람은 YK 근처에 위치한 유명한 중식당의 룸 안으로 들어갔다. 룸 한가운데에는 둥그런 회전식 상판이 올려져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TV가 설치되어 있었다. TV에서는 이제 막 12시가 되었는지 정오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간단하게 주문을 마친 후 박실장이 수빈에게 말했다.

"주말에 올린 뮤비는 아주 잘 빠졌던데. 반응이 벌써부터 뜨거워."

"이제 올린지 하루 지났는데요."

"샛별이라고 그랬나? 뮤비에 나오는 그 여자 주인공 미모가 장난 아니더구먼. 그래서 그런지 제법 댓글도 많이 달리고 조회 수도 계속 올라가고 있어. 외국인들 사이에서 별명도 생겼더라고."

"벌써 샛별이에게 별명이 생겼어요?"

"프린세스 오브 아시아. 아시아의 공주라고 별명을 붙여 놨던데."

"그럴만한 외모긴 하죠. 국적이 다르다고 남자들 보는 눈이 어디 가겠어요. 거기서 거기죠. 아무튼 반응을 계속 좀 지켜봐야죠."

"내가 보기엔 전망이 나쁘지 않아. 이러다 조만간 BBG랑 샛별이가 외국에서 동시에 이름을 날리는 날이 오겠어. 그건 그렇고, 앞으로 강이사의 계획은 뭔가?"

"지금 한국의 영화 산업이 크게 3가지로 분류되지 않습니까? 영화 제작, 배급, 상영 이렇게 말입니다."

"그렇지."

"상영 쪽은 현재 [BGV]랑 [기가 박스]가 박 터지게 싸우고 있어서 틈이 없죠. 진출하려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요. 배급은 제가 아직 그럴만한 경험도 없고 외국 영화계 쪽에 전혀 아는 사람이 없어서 무리죠. 그나마 제가 경쟁력이 있는 건 역시 영화 제작 부분이죠. 제작사가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올라가고 나면 그때 배급 쪽으로 신경을 한번 써볼까 하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그러려면 일단 영화 제작사부터 설립한 다음 영화부터 빨리 찍어야겠죠. 박감독에게 알아봐 달라고 해놨으니 며칠 내로 설립할 수 있을 겁니다."

"영화 제작사 설립할 때 나도 끼워줄 거지?"

"사장님이야 당연히 끼워드려야죠. 얼마 정도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최대한 많이 지분을 확보해야지. 맘 같아선 5:5로 하고 싶지만 6:4나 7:3으로 하세. 자네가 하는 일인데 망할 리가 없을 거 아닌가."

"그런 게 어디 있습니까. 저라도 잘못하면 망하는 거죠."

"글쎄. 내 생각에 자네가 차리는 회사는 절대 안 망할 거 같아."

그때 TV의 정오 뉴스에서 여성 앵커의 고운 목소리로 문화계 관련 소식을 들려주고 있었다.

- 문화계 소식입니다. 클래식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아주 반가운 소식이 되겠습니다. 금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 최아림양이 1년여에 가까운 월드 투어를 성공적으로 끝마치고 마침내 귀국했습니다. 세계적으로 명성이 높은 쇼팽 피아노 콩쿠르 1위와 퀸 엘리자베스 피아노 콩쿠르 1위 등 화려한 수상 경력의 소유자인 최아림양은 당분간 국내에서 휴식을 취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휴식 기간 동안 다방면의 활동을 통해 자신을 아껴주는 국내 팬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릴 계획이라고 입국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럼 오늘 오전 인천공항으로 최아림양이 입국하는 장면과 간단한 인터뷰 장면을 보시겠...

최아림 피아니스트 관련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오자, 수빈은 고개를 TV 쪽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리고 핏기가 가신 창백한 얼굴로 TV를 뚫어질 듯 쳐다보았다.

TV 화면에서는 단발머리에 늘씬한 체형의 여성이 차갑고 도도한 표정을 지은 채 캐리어를 끌며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걸어 나오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다.

수빈은 입술을 깨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빌어먹을, 이제 좀 잊을만하니까 예전에 싸질러 놨던 똥 덩어리가 새롭게 튀어나오네. 그것도 빅똥이..'

수빈의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무의식적으로 한구석에 강제로 몰아넣고 봉인하였던 잊고 싶은 기억들이, 마치 이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봉인을 풀고 의식의 수면 위로 급부상하였다.

그 일의 발단이 되는 사건은 올해 4월 5일에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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