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24화 (124/236)

#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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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박감독과 장시간 영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며 통음을 한 뒤 밤 10시 가까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살짝 알딸딸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박실장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실장님."

전화기 너머로 다급한 박실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빈군. 지금 어딘가?]

"전 지금 집입니다."

[잘 됐군. 난 지금 정회장 자택에 와있네. 장례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르기로 해서 시신을 이리 옮겼다고 하더군.]

"그러시군요. 늦은 시간이지만 저도 갈까요?"

[힘들걸세. 이쪽에서 연예인들 출입을 전면적으로 막고 있어. 번거롭다고 말이야. 뭐 이해 못할 바도 아니지. 안 그랬다가는 대한민국 모든 연예인이 문상을 올 판이니..]

"그렇군요. 실장님이 저 대신 고인의 명복을 빌어주세요."

[알겠네. 그리고 수빈군이 해줘야 할 일이 있네.]

"제가요?"

[그래. 지금 집이라니 사람을 그리 보내겠네. 고인이 된 정회장이 일선에서 한발 물러나 있는 상태였고, 장남이 BJ 회장으로 앉아 있다는 건 알고 있지? 그 이태우 회장이 직접 부탁하는 거니까 자네가 신경 좀 써주게. 이회장이 자세히 말은 안 해주는데 아마 고인의 부탁인 거 같아.]

"제가 뭘 해드리면 됩니까?"

잠시 후 박실장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수빈이 대답을 하였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수빈은 전화를 끊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잠시 후 초인종이 울렸다. 현관으로 나간 수빈은, BJ에서 심부름 왔다는 남자가 건네준 커다란 박스를 두 손으로 받아 들고 거실로 돌아왔다. 박스를 거실에 내려놓고 수빈은 고인이 된 정회장을 생각하며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이름 석자로 족하다라. 그러기엔 나에게 보여준 호의가 사뭇 두터웠지. 인간은 언젠가 다 죽기 마련이니, 나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명복을 빌면 족할 뿐.'

수빈은 마음을 정리하고 천천히 박스를 개봉했다.

다음날 아침 10시가 좀 지나서 수빈은 피자박스처럼 네모난 하얀 박스를 품에 안고 매니저가 기다리고 있는 밴에 올라탔다.

"수빈아. 크리스마스 때 뭐 할 거냐?"

운전을 하며 묻는 백성철 매니저의 말에 수빈이 가볍게 대답했다.

"스케줄 마치고 집에 와서 쉬겠죠. 제가 애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 그럼 스케줄 끝나고 형 집에 가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을래?"

"형수가 나 보고 싶다고 그러는 모양이구나?"

"그래. 얼만 전 그 때려죽여도 시원찮을 그놈 일로 네 걱정이 태산이다. 너 밥 굶고 다닐까 봐 그렇게 걱정을 하네. 자기 남편을 그렇게 챙겨주면 얼마나 좋아."

"그날 상황봐서 놀러 가던지 할께요."

"그래.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형 집에서 밥이나 한 그릇 먹고 간다고 생각해. 그런 날 혼자 밥 먹고 그러면 괜히 사람이 더 다운되잖아."

"알았어요. 크리스마스도 이제 일주일 밖에 안 남았네요."

"올 한 해는 정말로 정신없이 지나간 거 같아."

"저도 그래요. 형. 많은 일들이 있었죠."

이윽고 YK 사옥에 도착한 수빈은 박스를 들고 박실장의 방으로 찾아갔다. 방안에는 박실장과 홍보부 김대리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김대리님은 무슨 일로?"

"보고 드릴게 있어서요. 오늘 아침 비행기 편으로 뮤란의 스페셜 앨범 초도 물량 10만 장이 일본으로 넘어갔습니다. 앨범 재킷에 수빈씨의 낙관을 찍어서 말입니다."

"그랬군요. 잘하셨습니다."

"그리고 디젤사와 약속이 잡혔습니다."

"언젠가요?"

"다음 주 월요일 점심 때로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제가 매니저에게 따로 연락을 해 놓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얼굴이 좋은 거 보니 그쪽이랑 나름 협상이 잘 됐나 봐요?"

"네. 수빈씨라면 이럴 때 어떻게 할까라고 고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해 협상을 했습니다."

"그래요? 이거 어떻게 협상을 하셨는지 기대가 아주 큽니다. 그럼 월요일에 다시 보도록 하죠."

"네. 그럼 가보겠습니다."

김대리가 정중히 인사를 올리고 떠나자 수빈이 의자에 앉으며 박실장에게 물었다.

"정회장님이 쓰러지고 나서 그래도 잠깐씩 정신이 돌아왔었나 보죠?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할 정도면.."

"얼핏 듣기로는 뇌압 강하제를 투여받고 3번 정도 정신을 차렸다고 들었네. 수술을 하기에는 상태가 너무 안 좋고 체력도 안돼서 결국 고인이 원하는 대로 칼 대지 않고 고이 보내드렸다고 하더군. 정신을 차렸을 때 유언을 이미 다 남긴 상태여서 그랬을 수도 있겠지. 뭐 내가 의사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라서 자세히는 모르지."

수빈은 박스를 박실장 쪽으로 밀며 말했다.

"그랬군요. 제가 말씀드린 SAT 영화와 관련된 각본과 서류를 받아오는 일은 아직 말을 못 꺼내셨죠?"

박실장이 박스를 집으며 대답했다.

"그랬지. 아직 영화가 엎어진다는 말도 없는 상태니 꺼낼 수가 없지. 상중이라 그런 이야기를 할 분위기도 아니었고."

"잘 알겠습니다. 급한 건 아니니 그 일은 상황을 봐서 천천히 처리하시죠. 괜한 오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잘못하면 우리 쪽만 피곤해집니다."

"그런 건 걱정 말게나. 후. 그건 그렇고.. 수빈군 예측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네. 자네가 말을 꺼낸 지 채 하루를 못 버티고 돌아가셨으니.."

"일전에 진맥을 했을 때 이미 기력이 많이 쇠한 상태였습니다. 쓰러지면 오래 버티기가 힘든 상태였죠. 본인도 어느 정도는 예감하셨을 겁니다. 그래서 본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영화에 더욱 매달렸을 수도 있겠죠."

"내가 이건 그쪽에 직접 전달하겠네. 그리고 고인이 꿈꾸던 마지막 영화는 언젠가 우리 손으로 찍어서 영화관에 꼭 걸도록 하자고."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늘 대예종에서 오디션을 보기로 약속을 해놔서요. 점심 좀 챙겨 먹고 출발할까 합니다."

"알겠네. 이따 저녁때 괜찮으면 나랑 술이나 한잔 하세."

"그러시죠. 연말은 연말인가 봅니다. 자꾸 술자리가 생기는 거 보니.."

"가볍게 한잔하자고."

수빈은 방을 나서자 박실장도 박스를 집어 들고 방을 나섰다. 잠시 후 박실장의 고 정미영 회장의 자택에 발을 들여놓고 있었다. 가족장이고 전날 밤 이미 많은 문상객이 왔다 가고 친척들만 남아 있는지 저택 분위기는 비교적 차분하였다.

거실에서 정미영 회장의 장남인 이태우 회장과 차남인 이성우와 같이 자리한 박실장이 인사를 한 후 들고 온 박스를 내밀었다.

"이게 그 어린, 지금 연예인을 하고 있다는 그놈이 해온 거라는 말이죠?"

뭔가가 못마땅한지 인상을 잔뜩 찌푸린 이성우의 발언에 이태우가 역정을 내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어머니가 죽기 전에 유언으로 부탁하신 일이다."

현재 BJ 그룹에서 음식 사업을 맡고 있고, 평상시에 말을 함에 있어 신중하지 못한 성격의 이성우가 큰형의 호통에 꼬리를 슬며시 말며 대답했다.

"아니 내 말은 꼭 그래야 했냐는 거죠."

"그럼? 어머니의 유언을 무시하고 우리 마음대로 처리할까? 네가 원하는 게 그런 거야?"

"아닙니다. 형님. 그냥 한 소리에요."

그때 옆에서 진중한 목소리로 꾸중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형제끼리 싸우고 있는 거냐? 지금 형수님 상중이라는 걸 까먹은 게야? 벌써부터 재산 다툼이라도 하고 있는 거냐?"

두 형제가 일어나며 대답했다.

"작은아버지 오셨습니까. 싸운 거 아닙니다."

"안 싸웠습니다."

BJ 그룹의 지분을 적지 않게 소유하고 있고, 사업에는 관심이 없고 풍류를 즐기는 걸 좋아해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현재 BJ 그룹 소유의 미술관 관장을 하고 있는 이정기의 등장에 두 사람이 잔뜩 긴장을 하였다.

"내가 분명히 말했지? 난 자식이 없어서 죽을 때 내가 맘에 드는 놈한테 주식을 몽땅 다 넘겨줄 거라고."

"잘 알고 있습니다."

장남인 이태우의 대답에 이정기가 큰소리로 화를 내었다.

"그걸 아는 놈들이 그래?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하루도 채 안돼서 재산 때문에 싸움을 하는 꼴을 보여? 감히 내 앞에서?"

거실에서 계속해서 큰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이 조금씩 모여들었다. 그중에는 BJ Ent.에서 일하고 있는 김성희도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당황한 박실장이 평상시 약간의 안면이 있는 이정기 미술관 관장에게 서둘러 설명을 하였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가 봅니다. 이정기 관장님. 재산 싸움 같은 그런 일이 아닙니다. 단지 제가 부탁을 받고 장례에 쓰일 물건을 들고 왔을 뿐입니다."

박실장의 설명에 이관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장례에 쓰일 물품이라고? 그걸 왜 박실장이 들고 와? 자네가 언제부터 장의사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건가?"

"업종을 변경한 건 아니고요. 부탁을 받고 관상명정(棺上銘旌)을 제작 해왔을 뿐입니다."

"관상명정이면 관을 싸는 붉은색 비단을 말하는 게 아닌가. 거기에 사망자의 이름과 간략한 설명을 기재하고.. 그걸 왜 자네가?"

옆에 있던 이태우가 대신 설명을 하였다.

"어머니가 살아생전에 박실장 회사에서 일하는 친구의 글씨를 좋아했었나 봅니다. 그래서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을 감싸는 글은 꼭 그 친구에게  부탁을 해달라고 유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박실장에게 부탁을 드린 겁니다."

"허어. 정말인가?"

자신을 쳐다보며 묻는 이관장의 질문에 박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회사에 수빈이라는 젊은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작품을 정회장님이 많이 좋아하셨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여기 거실에도 그 친구 작품이 두 작품 전시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 눈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형수가 작품을 2개나 소지하고 있고, 자신의 관상명정을 써달라고 할 정도로 좋아했단 말이지? 어떤 작품인지 이따가 한번 찾아서 봐야겠군.. 그럼 이게 그 친구가 적은 관상명정인가?"

박스를 가리키며 묻는 이관장의 말에 박실장이 정중히 대답을 했다.

"네. 그렇습니다. 저도 아직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럼 열어서 어디 한번 보자고."

박실장이 박스를 열자 피처럼 붉은색 비단이 드러났다. 조심스럽게 꺼내자 붉은 비단 위에 하얀색 글씨가 적혀 있는 게 보였다. 거실 탁자 위에 비단을 넓게 펼치자 머리통만 한 크기의 글자들이 날아갈 듯한 필치로 세로 방향으로 한 줄 적혀 있었다.

- 人中虎 鄭美英之棺(인중호 정미영지관)

글을 본 이관장이 눈이 커지며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리고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허. 대단한 명필이로군. 멋진 솜씨야.. 내가 알기론 요즘 관상명정을 흰색 페인트로 적는 걸로 아는데, 이건 마치 화선지 위에 먹으로 붓글씨를 써 내려간 것처럼 유려하군. 어느 획 하나 삐뚤어짐이 없어. 그러면서도 힘이 있고 정갈한 게 마치 종이에 인쇄를 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관장이 떨리는 손을 조심스럽게 앞으로 뻗어 글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글 하나 덧칠한 흔적이 없어. 이건 일필에 써 내려갔다는 건데.. 이런 뛰어난 서예가를 내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근데.. 명정 글귀가 일반적인 명정과 다르군. 유생도 없고 본관도 빠져있는데?"

이관장의 물음에 박실장이 대답했다.

"정회장님이 이름 석자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저도 그렇게 전달했는데.. 아마 그 친구가 자신의 뜻으로 이렇게 적은 것 같습니다."

"인중호라.. 형수님이 살아생전에 호랑이 같은 분이시긴 했지."

이관장이 이태우, 이성우 형제를 쳐다보며 치사를 했다.

"맨날 속만 썩이는 줄 알았는데.. 너희 형제들이 잘하는 짓도 있구나. 이런 훌륭한 명정으로 관을 품으면 돌아가신 형수가 아주 흡족해하실게다. 잘했다."

이성우가 쭈뼛거리며 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글씨입니까? 보기에 잘 쓴 거 같기는 한데.."

이성우의 질문에 이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보고도 가치를 모르는 네 눈을 탓해야지. 이런 글씨는.."

그때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김성희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뒤에도 뭐가 적혀 있는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이관장이 하던 말을 급히 멈췄다. 그리고 다시 관상명정을 쳐다보았다. 그런 다음 조심스럽게 관상명정을 붙잡고 천천히 뒤집었다. 그러자 모여있던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 멋지다..

- 호오. 대단한데..

- 어머. 어머. 그림이..

- 어머니신가..

관상명정 뒤쪽의 붉은색 비단 위에는 하얀색으로 그려진 큼지막한 크기의 그림이 있었다. 바닥엔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는 구름들이 노닐고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아름다운 젊은 여자가 호랑이 등위에 걸터앉아 사람들을 향해 환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양옆에는 마치 젊은 여자를 호위하듯 사나운 기세의 호랑이 두 마리가 사람들을 향해 화등잔만 한 눈으로 매섭게 노려보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림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이관장이 신음성을 흘렸다.

"으음. 대단한 그림이군.. 이건 대가 중에서도 대가의 솜씨야. 형수가 왜 그런 유언을 남겼는지 알만하군. 죽어가는 와중에서도 욕심을 부릴만해. 나라도 그럴 거 같아. 허어."

그때 김성희가 다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래쪽에 조그맣게 뭐라고 글이 적혀 있는 거 같은데요."

그 말에 이관장이 황급히 아래쪽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적혀있는 글귀를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생자필멸(生者必滅) 하니 생기사귀(生寄死歸) 하고, 와석종신(臥席終身)이니 상선지복(上仙之福)이라.."

장남인 이태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작은아버지. 적혀 있는 글귀가 무슨 뜻입니까?"

"산자는 반드시 죽기 마련이니, 삶이란 잠깐 머무는 것에 불과하고 결국 죽음으로 돌아간다. 천수를 누리고 편안히 돌아가셨으니, 하늘나라에 신선이 되는 복을 누리리라..는 뜻이다."

잠시 후 이관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구양 강수빈이 돌아가신 정미영 회장을 추모하며 그린다.."

이관장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박실장에게 물었다.

"박실장. 도대체 누군가? 이런 엄청난 글과 그림을 그린 구양 강수빈이라는 사람이?"

박실장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희 회사 소속 연예인입니다."

"..정말로 연예인이라고?"

"네. 이제 23 되는 남자 연예인입니다."

"..23이라고? 자네 지금 나랑 농담하나?"

한편 그 시각. 수빈은 대예종에서 이소희 교수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빈씨. 미안해요. 제가 맘대로 테스트를 해서.."

"괜찮습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테스트해보려고 해요. 이것만 통과하면 이제 수빈씨에 대해서 그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 않을 생각이에요."

'성격도 참 지랄 맞네.'

수빈은 속으로 짜증을 내면서도 겉으로는 편안한 얼굴로 웃으면서 대답했다.

"교수님.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어떤 테스트입니까?"

"어제 연주를 하면서 악보를 많이 틀린 여학생이 있었죠?"

"네. 마지막으로 오디션을 본 분이었죠."

"몇 번이나 틀렸는지 혹시 기억하시나요?"

수빈이 고민도 없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14번 틀렸습니다."

수빈의 대답에 이교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14번이라고요? 제가 어제 학생에게 들은 거랑은 다르네요."

"학생이야 교수님께 말하기를 12번이라고 말했겠죠. 고의로 틀린 것처럼 보이는 게 12번이니깐요. 하지만 실수로 틀린 게 2번 더 있었습니다. 그러니 총 14번이 맞는 거죠."

수빈의 대답에 이교수가 멍한 얼굴로 수빈을 쳐다보았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린 이교수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빈씨. 저랑 같이 연주실로 가시죠. 지금 연주실에 애들 다 모아놨으니까요. 가셔서 수빈씨 마음대로 오디션을 보셔도 됩니다. 애들이 뭐라 하던 제가 다 책임질게요."

수빈은 이교수를 따라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잠시 후 연주실에 도착하니 30여 명에 가까운 바이올리니스트가 모여 있었다. 수빈은 학생들을 둘러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 중에 쓸만한 애들이 과연 몇이나 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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