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23화 (123/236)

#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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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한 감독이 어리둥절해 하는 수빈에게 웃으며 물었다.

"어제 이교수를 만났을때 강감독은 어떤 인상을 받았나?"

"굉장히 날카롭고 자신의 일에 자부심이 강하신 분이시더군요."

수빈의 대답에 의외라는 듯 서감독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교수가 잘 웃고 순둥이에 양처럼 부드러운 인상 아니었나?"

"겉으로 보이는 인상이야 그렇겠죠. 하지만 눈빛은 전혀 그게 아니던데요."

"허. 어제 10분도 안 만났다는데 그게 보여?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이교수의 성격을 잘 파악을 못하는데.. 그래서 보통 실수를 자주 하곤 하는데.. 혹시 이전에 이교수에 대해서 들은 게 있었나?"

"어제 첨 봤습니다."

"강감독이 나이에 비해서 사람 보는 눈이 좋구먼. 아무튼, 이교수가 성격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편이라 대중음악 쪽에서 인기 좀 있다고 클래식계에 들어와서 설치는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솔직히 표현하면 깝친다고 굉장히 싫어하지. 그래서 어제 자네를 테스트해봤다고 하더군."

"테스트요?"

"그래. 음색, 박자. 화음 마지막 악보까지.. 제대로 듣고 제대로 볼 수 있는지 시험해 봤다고 하더군. 강감독이 혹시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었나봐. 내가 강감독을 좋게 소개를 해놨는데도 그 지랄 맞은 성격이 어디 안 가지."

"그랬군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대예종]이면 예술 쪽으로는 나름 이름이 높은 학굔데, 에이스라고 밀어 넣은 친구들이 영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테스트 결과는 잘 나왔나 봐요?"

"좀 전에 자네가 나에게 말한 고대로 이교수에게 전해줬지. 그랬더니 합격이라고 하더군. 내일 오후 1시까지 다시 와달래. 자기 밑에 학생들을 전원 소집시켜 놓겠다고 말이지."

"꼭 가야만 하는 겁니까? 그런 테스트를 받으면서까지 제가 굳이 거길 다시 가야 할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요."

"이런.. 강감독이 기분이 상한 모양인데. 한 번만 봐주게나. 이교수가 내 제자야.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아주 혼쭐을 내겠네. 그러니 날 봐서라도 한 번만 더 가주면 안 될까?"

"알겠습니다. 그 대신 그럼 이번에는 제가 한번 테스트를 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자네 맘대로 하게. 그 친구는 성격 좀 고쳐야 해."

"좋습니다. 그럼 제가 내일 1시까지 찾아뵙겠다고 전해주세요."

"알겠네."

시간이 흘러 편집 작업을 하던 수빈은 오후 3시경 드림픽처스를 나와서 충무로에 있는 [벨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스튜디오 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는 박감독이 눈에 들어왔다.

"박감독님."

수빈이 부르는 소리에 박감독의 목이 부러질까 겁이 날 정도로 순간적으로 홱 꺾였다.

"강감독!"

박감독이 마치 우사인 볼트처럼 빠르게 뛰어왔다. 그리고 수빈을 힘차게 끌어앉았다.

"아까 전화로 말한 게 사실이죠?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면 이 자리에서 강감독을 죽여버릴지도 모릅니다."

수빈이 웃으며 박감독의 팔을 탁탁 두드리면서 말했다.

"이거 안 푸시면 거짓이 될 겁니다."

박감독이 황급히 팔을 풀자 수빈이 물었다.

"편집은 다 끝나셨나 봐요? 밖에서 이러고 계신 거 보니.."

수빈의 말에 박감독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대답했다.

"물론이죠. 아까 전화받고 미친 듯이 작업을 해서 편집을 다 마무리했습니다."

"좋습니다. 박감독님이 많이 궁금해하시는 거 충분히 압니다만, 일단 완성된 편집본부터 보자고요. 그걸 보고 제가 다시 손질을 한 다음에 수정 사항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하루 더 작업을 하셔서.. 오늘이 목요일이니까 주말에는 공개할 수 있도록 작업을 해주시면 되겠네요."

"네. 잘 알겠습니다."

박감독의 공손한 대답에 수빈이 살짝 인상을 쓰며 협박을 하듯 말했다.

"말 좀 편하게 하시고요. 제가 불편해서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적당히 하오체 정도로 하세요. 박감독님이 절 존중해 주시는 건 좋지만, 그날 뮤비 촬영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뒤에서 절 보고 싸가지없는 놈이라고 욕하더군요. 제가 귀가 밝아서 다 들려요. 제 말을 안 들으시면 다른 촬영 감독을 구하든지 하겠습니다."

수빈의 말에 박감독이 급히 대답했다.

"그러겠습 아니 그러겠네."

"그 정도가 딱 좋습니다. 자. 그럼 완성된 편집본을 보러 가볼까요?"

잠시 후 편집실에 앉아서 편집본을 감상한 수빈이 입을 열었다.

"그날 제가 편집하면서도 느꼈지만 완성본을 보니 느낌이 확 오네요. 박감독님은 아름다운 영상은 정말 잘 찍으시는군요."

"그렇지?"

"여주인공 하나는 아주 기가 막히게 찍혔네요. 샛별이가 반짝반짝 빛이 나는군요."

"맘에 안 드는가?"

"아뇨. 어차피 조회 수 올리려면 차라리 이게 낫습니다. 이게 국내용이면 몰라도, 외국 애들은 BBG가 뭐 하는 그룹인지도 모르는데 우중충한 남자애들 튀어봐야 뭐 하겠습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주 그쪽으로 가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제가 다시 손을 좀 보겠습니다."

시간이 흘러 오후 5시경 수빈은 편집을 마치고 박감독에게 메모지를 건넸다.

"여기 적어 놓은 대로만 수정 작업을 해주시면 될 거 같습니다. 이 정도면 주말까지 충분하겠죠?"

메모지를 들여다보며 박감독이 대답했다.

"가능할 거 같네. 그럼 주말에 다시 들릴 건가?"

"네. 연락을 주시면 다시 오겠습니다. 그럼 이제 영화 이야기를 해야 할 텐데.. 어디 가까운 식당에 가서 저녁이라도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잠시 후 스튜디오 근처 중국집 방 하나를 빌려서 수빈과 박감독이 마주 앉아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수육과 팔보채를 앞에 두고서, 수빈이 고량주가 담긴 조그만 사기병을 집어 들어 박감독에게 따르며 말했다.

"제가 먼저 설명을 할까요? 아니면 박감독님이 궁금해하시는 걸 먼저 물어보시겠습니까?"

박감독이 수빈에게 술을 따르며 말했다.

"내가 몇 가지 좀 궁금한 걸 먼저 물어보겠네. 그런 후 설명을 듣는 게 낫겠어."

"그럼 그렇게 하시죠."

"무슨 일로 [난 아름답게 떠나고 싶었다]라는 영화를 먼저 찍게 된 건가? 봉감독이랑 같이 찍는 영화는 어떻게 하고?"

"그 영화는 거의 100 프로 엎어질 겁니다."

"허. 촬영이 며칠 남지도 않은 영화가 왜? 재벌이 제작하는데 자금이 모자랄 리도 없을 텐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습니다. 그 바람에 제가 쓴 각본으로 먼저 영화를 찍게 됐습니다."

"알겠네. 말 못할 사정이 있나 보군. 그럼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겠네."

박감독이 침을 삼킨후 입을 열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요즘 잠도 못 잘 지경이야. 강감독. 각본에 나온 것처럼 연기가 가능한 건가? 각본에 따르면 남자 주인공이 후두암에 걸려서 목소리가 점점 변해가지. 그러면서 덩달아 성격도 변해가는 연기가 핵심 중에 핵심인데, 실제로 그런 연기가 정말로 가능해? 아니면 나중에 목소리 별로 성우를 여러 명 구해서 더빙 작업을 할 생각으로 각본을 쓴 건가?"

수빈이 빙긋 웃으면서 내공을 끌어올려 성대를 살짝 조으며 말했다.

"왜요? 제가 그런 목소리 연기를 못 할거 같습니까?"

순간적으로 마치 로커처럼 거칠게 갈린 목소리에 박감독이 놀란 토끼눈이 되었다. 수빈이 내공으로 성대를 더욱 조으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동시 녹음으로 진행할 테니까요. 더빙을 하면 어색해서 감동이 제대로 전달이 안됩니다."

꽉 찬 공기가 바늘구멍으로 힘겹게 삐져나오듯,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듯한 수빈의 목소리에 박감독의 목소리가 떨렸다.

"대..박이로군. 이게.. 정말로 가능한 연기였군."

수빈이 다시 본래의 목소리로 말했다.

"성대모사를 아무리 비슷하게 해도 사람들은 몇 번 들어보면 진짠지 가짠지 다 구별해 냅니다. 남극에 사는 펭귄 아시죠? 길 잃은 새끼 펭귄이 수만 마리의 어미 펭귄이 똑같이 울어대도 어미의 목소리를 정확히 구별해서 찾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건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생존본능 같은 겁니다. 성우를 쓸 바에는 차라리 안 하느니 못해요. 오히려 관객들에게 자신들을 속이려 든다는 생각을 들게 해서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죠."

수빈이 잔을 들어 박감독과 건배를 한 후 시원하게 들이켰다.

"제가 할 수도 없는 연기 내용을 집어넣어서 각본을 쓸 만큼 멍청하지 않습니다. 또 질문 있으십니까?"

"하나 더 궁금한 게 있네. 자네는 액션 연기가 장기 아닌가? 얼마 전 찍은 영화도 그렇고 지금 찍을 아니지 곧 엎어진다는 영화도 그렇고.. 이번 영화는 액션 연기가 장점인 자네가 찍기에는 적당하지 않는 걸로 보이는데, 굳이 각본을 이런 쪽으로 쓴 이유가 뭔가?"

"그렇게 보실 수도 있죠. 이번 영화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는 남자의 애절한 감정선 연기가 중요하니까요. 박감독님이 보시기에는 저랑 안 어울리는 캐릭터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장담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죽어가는 연기를 저보다 잘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자신 있으니깐 지켜봐 주시죠. 실망시키지 않을 겁니다."

"알겠네. 강감독이 자신 있다고 말할 정도면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지. 그럼 캐스팅에 관련해서 물어보겠네. 여자 주인공 중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여자는 샛별일 거고 다른 한 명은 누군가? 남자 주인공의 뮤즈이며 각본대로라면 음색이 아주 뛰어나야 할 텐데 생각해놓은 사람이 있나?"

"제가 생각해 놓은 사람은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의견을 물어보지 못한 상태라서 뭐라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일이 너무 급하게 진행되어서요."

"그럼 남자 주인공의 아버지는 누구를 생각하고 있는 건가? 등장하는 신은 적지만 감정 연기가 쩔어야 할거 같은데.."

"성강호 선배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찍고 있는 영화가 없어서 제가 부탁하면 거의 들어주실 겁니다."

수빈의 말에 박감독이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굿! 나이스 캐스팅이야. 그런 대배우가 한 명 정도는 있어야 영화가 중심을 잡고 흔들리지 않지. 이거 강감독이랑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가슴이 점점 더 거세게 뛰는걸. 오늘도 잠은 다 잤군. 이 정도면 충분하네. 이제 강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수빈이 다시 술로 목을 축인 후 입을 열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영화제작사를 설립하는 겁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 문화관광부 그러니까 지금은 문화체육관광부지. 거기에 신청만 하면 바로 설립이 가능하네."

"이름은 간명하게 [빈 프로덕션]으로 해서 설립을 할 겁니다. 그런 다음 [벨 프로덕션]을 흡수할 겁니다. 박감독님 밑에 직원이 몇 명이죠?"

"나 빼고 6명이네."

"전원 제가 고용 승계를 하고 장비들도 인수하겠습니다. 지금부터 박감독님은 충무로 쪽에 빈 프로덕션이 들어갈 건물을 하나 알아봐 주세요. 5층 정도면 될 거 같습니다."

수빈의 말에 박감독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쪽을 인수하는 건 큰 문제가 없네. 하지만 영화제작사가 임대를 5층씩이나 할 필요가 있을까?"

"임대라니요. 당연히 건물을 사야죠."

박감독이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수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강감독. 충무로에 5층짜리 건물이면 가격이 얼마 정도 나가는지 알고나 하는 소린가?"

수빈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200억이면 대지 80평에 건평 300평 정도 되는 건물로 살수 있을 겁니다. 위치가 좋고 신축 건물이라면 300억까지 투자할 용의가 있습니다."

벙찐 얼굴의 박감독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감독. 혹시 금수저 출신인가?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던지.."

"전 흙수저 출신입니다. 그리고 자수성가 했죠. 올 한해 제법 많이 벌어서 자금은 충분합니다."

"한 해에 300억이라.. 인기 아이돌이 되면 일 년에 그정도는 충분히 번단 말이지. 우리 아들도 아이돌을 시켜봐야겠군."

박감독이 충격에 혼이 나간 듯 중얼거리고 있을 때 수빈의 핸드폰으로 박실장이 보낸 문자가 도착했다.

- 6시 10분경 정미영 회장 사망. 일이 끝나면 회사로 들어올 것.

"정말로 300억짜리 건물을 살 수가 있다면..."

수빈은 귓가에 어른거리는 박감독의 말을 흘리면서 잠시간 자신만의 방식으로 추도를 하였다.

'암호랑이 같은 분이었고 국내 영화계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분이었는데.. 부디 좋은 곳으로 가셨길 바랍니다. 아니면 저처럼 어디선가 다시 새로운 인생을 사시길 간절히 빌어드리겠습니다.'

수빈은 짧은 추모를 끝내고 다시 박감독과의 대화에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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