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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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10시에 수빈은 박실장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수빈군. 어제 9시 뉴스를 봤는가?"
"네. 봤습니다. 집에 도착하니 때마침 하더군요."
"이제 화랑 쪽이랑 부딪칠 일은 없겠어. 한시름 덜었네."
걱정 없다는 듯 밝은 표정의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양자 간에 원한 관계는 이미 생성되었으니까요. 옛말에 제 버릇 개 못 주고,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고 했습니다. 당분간이야 김강식 회장의 억지력 때문에 저에게 시비를 걸지는 않겠지만, 김회장도 나이가 이미 70이 훌쩍 넘었습니다. 정회장님처럼 김회장이 쓰러지는 날에는 밑에 자식들이 바로 또 이빨을 드러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어떡하지?"
"김회장이 버티고 있는 동안에 우리가 덩치를 키워야죠. 누가 보더라도 함부로 건드리기에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우리가 성장하는 게 최선입니다. 이번 일도 이쪽이 만만하게 보여서 일어난 일이니까요. 그리고 한가지 의문스러운 게 있습니다."
"뭔가?"
"제 예상보다 김회장이 너무 쉽게 물러났어요. 물론 어제 저의 각오를 제대로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순순히 화해를 요청하는 게 아무래도 수상해요."
"그 말의 뜻은?"
"제가 알지 못하는 뭔가가 더 있는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저도 정확히 파악을 못하겠네요. 일단은 그냥 지켜보는 수밖에요. 자금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1,200억 정도 남았네. 1,243억에서 위임장에 도장을 받고 여기저기 로비를 하느라 40억 가까이 소모했어."
"그 정도면 나름 선방했네요. 일단 그럼 정확히 나눠보죠. 제가 원금이.."
그때 박실장이 손을 들어 수빈의 말을 잘랐다.
"내가 이미 계산을 해놨네. 깔끔하게 자네 700억, 나 500억으로 나누세."
박실장의 대담한 발언에 잠시 수빈의 말문이 막혔다.
"...그런 식으로 나누면 실장님이 너무 손해를 많이 보시는데요."
박실장이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다는 듯 경쾌한 톤으로 대답했다.
"뭔 소리야? 자네 덕분에 300프로가 넘는 수익을 올렸네. 그것도 한 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말이지. 어차피 저 많은 돈 특별히 쓸데도 없어. 그래서 말이지. 내가 계획을 좀 세워봤는데.."
"어떤 계획을 말입니까?"
박실장이 허리를 앞으로 숙이며 열정이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
"자네 꿈이 기획사를 설립하는 거 아닌가. 새롭게 회사를 설립하려면 귀찮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 그럴 바에는 차라리.. YK를 통째로 인수하는 게 어떻겠나?"
"YK를 인수한다고요? 시가총액이 5천억이 넘어서 지금은 거의 6천억 가까이 될 텐데요. 1,200억으로 인수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그래. 지금 당장은 무리지. 하지만 방법이 있지. 내 말을 잘 들어보게나. 지금 미국에 있는 김사장이 YK의 40프로 지분을 가지고 있고, 내가 10프로가 약간 넘는 지분을 가지고 있는 상태네. 어차피 김사장은 YK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 건강 문제도 그렇고 자식 문제도 그렇고.."
"그래서요?"
"지금 자금으로 김사장의 주식을 자네가 인수하게. 내가 잘 이야기하면 15프로 정도는 인수할 수 있을 거야. 그럼 내가 김사장에게 10프로 정도를 더 인수하겠네. 그렇게 되면 자네가 15프로, 내가 20프로, 김사장이 15프로가 되지. 자네랑 나랑 합치면 35프로가 넘는다고."
"그렇게 되면 김사장님이 협조만 해준다면 지배 구조를 확실히 구축할 수 있겠군요."
"그렇지. 자네랑 나랑 합치면 제1 주주가 되는 거야. 수빈군은 앞으로도 계속 많은 돈을 벌어들일 거 아닌가? 아마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든 떼돈을 벌겠지. 그 돈으로 김사장의 주식을 계속해서 조금씩 인수하게나. 오 년? 십 년? 내 계산으로 넉넉잡아 십 년이면 전부 다 인수할 수 있을 거야. 그 십 년 동안 김사장 대신 내가 사장 자리에 앉아서 자네를 도와주겠네. 전에도 말했듯이, 자네가 그 자리에 앉아서 서류 결재나 하고 있을 건 아니지 않은가?"
"그렇긴 하죠."
"십 년이 지나봐야 자네는 삼십 대 초반이야. 이제 한창때지. 난 이미 60대 중반이라 은퇴를 생각해야 할 나이고.. 그때쯤이면 자네가 보유한 주식이 30프로고 내가 20프로가 될걸세. 지배 구조는 여전히 확고하지. 십 년 뒤에 내가 사장 자리를 물러나고 주식은 보유만 하고 있겠네. 그러면 자네가 돈이 되는대로 내가 가진 주식을 인수해 나가게. 그렇게 몇 년만 더지나면 YK 전체가 온전히 자네 회사가 될 거야. 어떤가? 내 계획이?"
수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쁘지 않은 생각입니다. 실장님이라 저랑 둘이서 함께 회사를 운영하면 수익도 더 많이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렇지? 내가 어제저녁에 이거 생각하면서 피가 끓더군. 십 년 동안은 자네랑 같이 맘 편하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란 말이지. 그리고 내가 사장에 취임하게 되면 이번처럼 다른 곳에서 함부로 자네에게 시비를 거는 일도 없어질 거야."
"하지만 당장 시행하기에는 조금 그렇습니다. 제가 아직 군대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고, 영화 배우로서의 앞날도 불투명한 상태니까요. 그리고 전 자금을 당장은 조금 더 굴릴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자금을 더 굴린다고? 좋은 건수가 또 있나?"
"정회장님 말입니다."
"정미영 회장? 쓰러져 병원에 누워 있는 그 양반이 왜?"
"제가 한의학에 나름 조예가 있지 않습니까? 제 판단으로는 정회장님의 체질상 안타깝지만 오래 못 버티실 겁니다. 지금 벌써 이틀이 지났으니.. 아마 오늘 내일 하실 겁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세상이었다면 벌써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죠."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안타까운지 신음성을 흘렸다.
"흐음.."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해야죠. 저희가 불법을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정회장님이 돌아가시길 바라는 것도 아니지만요."
"BJ 주식을 공매도 하자는 소리지?"
"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누가 뭐래도 BJ의 기둥은 정회장님 입니다. 그리고 권력자가 세상을 떠나면 소동(騷動)이 발생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죠."
"알겠네. 내가 작업을 하도록 하지. 이거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하겠는데?"
"지금이 타이밍입니다. 제 예상으로는 길어봐야 내일을 못 버텨요. 체질상 오래 버틸만한 체력이 안됩니다. 물론 제 예상이 틀려서 훨씬 더 오래 사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봐야 주가 변동이 크게 없으면 수수료 정도만 손해를 볼 겁니다."
"맞으면 나름 대박이고 틀리면 수수료만 날아간다 이거지? 좋아. 그 정도 위험부담이라면 당연히 질러봐야지. 자네가 가고 나면 바로 내가 작업을 하겠네. 그건 그거고.. 그럼 정회장이 회생 가능성이 없다면 진행하고 있던 영화는 어떻게 될 거 같은가?"
"엎어지겠죠."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방에 걸려 있는 달력을 힐끗 보았다.
"1월 8일에 대본 리딩이 잡혀 있고 1월 12일에 제작발표회가 잡혀 있네. 그리고 1월 15일에 크랭크인이야. 감독부터 시작해서, 콘티, 배우 캐스팅, 촬영 장소까지 이미 모든 세팅이 다 되어 있는데도 엎어진다는 소린가?"
"새로운 권력자가 들어서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뭔지 모르십니까?"
"그걸 내가 왜 모르겠나. 보통 전임 권력자의 그림자를 지우는 작업부터 시작하지."
"아시면서 그런 소리를 하십니까."
"그래도.. 너무 아깝잖은가. 국내 기준으로는 찾아보기 힘든 초대형 블록버스터 영화이고 이미 준비가 다 끝난 영환데.."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실장님. 그래서 더 엎어지는 겁니다. 아마 100억 이하의 저예산 영화라면 이 정도까지 왔으니 굳이 엎으려 들지 않을 겁니다. 영향력이 별로 없고 엎어봐야 남는 것도 크게 없으니까요. 하지만 제작비가 800억 가까이 들어가는 영화니 당연히 더 엎으려 들겠죠. 그 제작비를 돌려서 자신을 추종하는 가신들에게 밀어줘야 하니까요. 그래야 자신의 지배력이 강화될 테니 당연한 선택이고 수순입니다."
"이것 참.. 안타깝구먼."
"그때 실장님이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
"각본이랑 그동한 작업해온 관련 문건 일체를 받아오세요. 웃돈을 좀 넉넉하게 주고 영화가 엎어진 거에 대한 부정적인 코멘트를 일절 하지 않겠다고 하면 선선히 넘겨줄 겁니다. 만약 그래도 못 넘기겠다고 하면, 각본에 제가 직접 수정한 부분들이 있는데 저작권에 걸려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고 슬쩍 협박을 하세요. 어차피 제가 주연이 아니면 그 각본으로는 영화를 못 찍는다고 하시면서요. 그럼 결국에는 넘겨줄 겁니다."
"자네가 직접 만들 생각인가 보지?"
"네.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바로는 무리겠지만 언젠가 제가 직접 찍을 겁니다. 각본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그쪽에서 촬영지 선정이나 배우들 캐스팅 같은 것들도 이미 작업을 다 해놨을 거니까 제작할 때 시간을 단축할 수 있을 겁니다."
"알겠네. 내가 저쪽과 접촉을 해보지. 그럼 자네는 이제 뭐 할 건가?"
"영화를 찍어야죠."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의문스러운 시선으로 물었다.
"자네 말로는 영화가 반드시 엎어진다면서?"
"제가 써놓은 각본이 있습니다. 그걸로 제가 직접 감독을 해서 영화를 찍을 겁니다. 스태프도 나름 미리 꾸려놨어요. 생각해둔 배우들도 있고요."
박실장이 황당한 표정으로 물었다.
"언제 그런 준비를 해놨나? 이번 영화가 엎어질걸 미리 예상했었나?"
"제가 점쟁이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예상했겠습니까?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었던 겁니다. 영화가 엎어지면 바로 제작에 들어갈 겁니다. 저예산이라 제작비를 100프로 제가 다 부담할 거니까 질질 끌 필요도 없죠."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도 좀 보태면 안 되겠나?"
"뭘요?"
"제작비 말이야."
"제작비를요?"
"그래. 자네도 자금이 충분하니까 어차피 제작비가 모자라는 일은 없겠지. 하지만 스크린에 내 이름 석자도 같이 좀 올려주게나. 그래야 나도 자네를 도우면서 같이 작업을 하는 재미를 누리지. 영화 수익을 많이 나눠달라는 소리는 안 할 테니 나도 좀 끼워주게나."
애타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박실장을 바라보면 수빈이 환하게 웃었다.
"좋습니다. 끼워드리죠."
- 짝짝짝.
수빈의 허락에 박실장이 기분이 좋은지 박수를 쳤다.
"고마우이. 이거 자네가 직접 찍는다니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군. 피가 또 끓어오르는 기분이야. 자네 덕분에 나도 청룡영화제에서 영화 제작자로 상 한번 받아보자고."
"시작도 안 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거 아닙니까? 꿈이 너무 크십니다."
"뭐 어때? 누가 뭐라 할 것도 아니고.. 언제쯤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은가?"
"내일 [뮤란]의 스페셜 앨범이 일본에 풀린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제 손을 떠난 상태죠. 그럼 이번 주말에 [디스패치] 뮤비가 발표되고 나면, 이제 당장 해야 할 일은 영화 음악 작업밖에 없습니다. 만약 디젤사랑 이야기가 잘되면 CF를 한편 정도 더 찍을 가능성이 있긴 한데, 그건 이삼일 이면 다 끝나는 일이죠. 연말연시에 잡혀있는 행사를 소화하면서 차분히 준비를 해나가면 1월 중순이면 바로 제작에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좋아. 아주 좋아. 돈은 걱정 말고 찍게. 팍팍 대주겠네."
수빈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각본을 쓸 때부터 저예산용으로 작업을 해서 크게 돈 들어갈 일이 없습니다."
"각본! 맞아. 나도 제작잔데 각본을 주게나. 한번 읽어봐야지."
"지금 따로 뽑아 논 건 없고, 이따가 메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벌써부터 궁금해서 좀이 다 쑤시는군. 대충 어떤 내용인가?"
"대충 설명드리면 제가 나름 잘 나가는 작곡자로 나오죠. 직업을 그렇게 정해놔야 제가 리얼한 연기도 가능하고, 녹음실 장면들을 BBG 전용 녹음실에서 찍으면 저렴하게 찍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그렇게 정했죠. 거기에 여자 주인공이 2명 나온다고 보시면 됩니다. 전형적인 신파에요. 제가 후두암을 앓으면서 목소리를 점점 잃어가죠. 결국에는.. 나머지는 직접 읽어보세요. 대위법을 많이 적용하기 위해서 쓴 각본입니다."
"이 친구가 말을 하다가 말아. 사람 궁금하게.. 알았으니 빨리 보내주게나."
"알았어요."
수빈은 박실장의 방을 나와 밴을 타고 드림픽처스로 이동했다. 밴 안에서 수빈은 KBC 방송국에서 [유니언]이라는 프로를 연출하고 있는 박지연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박피디님, 저 수빈입니다."
[어머. 수빈씨. 반가워요.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어요?]
"다름이 아니라 고소영 문제 때문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그 순간 박피디의 목소리에 찬 바람이 불었다.
[그 일 때문에 전화하셨구나. 편집 못 해요. 이제 정식 방송 일자가 2주도 채 안 남았는데 절대 못 뺍니다. 피디 입장에서 그렇게 재미있는 장면을 어떻게 뺄 수 있겠어요?]
"굳이 그렇게까지 무리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잘못하다간 SN이랑 YK에 척을 지시게 될 겁니다."
박피디가 얼음장같이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빈씨.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협박을 하려면 앞으로 박피디님이 만드는 그 어떤 프로에도 SN과 YK 소속의 연예인은 절대 출연하지 않겠다 정도는 말해야 협박이 되는 거죠. 저에게 그럴만한 힘이 있을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협박은 아니지만 묘하게 협박처럼 들리는 수빈의 발언에 박피디가 잠시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수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
"피디님. 도와주시면 저도 힘닿는 데까지 피디님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제가 유니언에 앞으로 2번 정도 출연하는 걸로 갈음하면 어떻겠습니까?"
[정 그러면.. 그러지 말고 수빈씨.]
"네. 말씀하시죠,"
[오디션 예선을 통과한 친구들이 나중에 본선에서 조별 과제를 할 거예요. 그때 사용할 신곡을 수빈씨가 하나 만들어 주세요. 그럼 제가 편집을 해드릴게요.]
박피디의 제안을 수빈이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건 못 해드립니다. 일단 만들어 놓은 곡이 없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금 신곡 작업을 할만한 시간이 없어요. 설혹 만들더라도 회사 후배들에게 먼저 기회를 줘야 하는 게 맞습니다. 차라리.. 3번으로 하시죠. 제 이름값도 나름 만만치 않잖습니까?"
단호한 수빈의 거절에 박피디가 잠시 고민을 하더니 되물었다.
[3번이라.. 이번 프로에만 해당하는 건가요?]
"어떤 프로라도 상관없습니다. 박피디가 요청하시면 제가 스케줄을 조정해서라도 출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알았어요. 제가 좀 고민을 해볼게요.]
"감사합니다. 피디님. 좋은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드림픽처스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박실장에게 문자가 날아왔다.
- 1,200 X 3 = 3,600 자금이 너무 고액이라 3배밖에 안된다고 함.
문자를 읽으며 수빈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기야 4배면 거의 5천억이니.. 말이 5천억이지. 어지간한 기업을 통째로 살 수 있는 거액의 돈이야. 이 정도만 해도 충분하지.'
드림픽처스에 도착해서 편집실 안으로 들어가니 서기한 음악 감독이 혼자 있었다.
"안녕하세요. 서감독님."
"어서 오게. 강감독. 어제 오디션은 잘 봤나? 마음에 드는 연주자들을 좀 뽑았는가?"
" 그게.. 제가 원하는 분들이 아니라서 한 명도 못 뽑았습니다. 감독님이 신경 써서 소개까지 시켜줬는데 죄송합니다."
"그래? 어떤 친구들이 나왔길래 그런 건가?"
"말씀 드리기에는 좀 그런데요."
"괜찮네. 나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알려주게나."
수빈이 차분하게 어제 [대예종]에서 있었던 오디션에 관해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이야기를 다 들은 서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무 심했군. 그런 친구들을 보내다니.. 잘 알겠네."
말을 끝마친 서감독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버렸다.
'설마 이소희 교수랑 싸우러 나간 건 아니겠지?'
살짝 걱정을 하며 수빈은 품에서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생각난 김에 박감독님에게 오늘 오후에 보자고 미리 연락을 해놔야겠다.'
잠시 후 신호가 가더니 박감독이 전화를 받았다.
"박감독님?"
[오. 강감독. 뮤비 편집은 잘돼고 있습니다. 오늘이면 다 끝날 거 같습니다.]
박감독의 말에 수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감독님. 이따가 제가 거기로 가겠습니다. 좋은 소식이 있어서요."
[좋은 소식이라고요?]
"네. 감독님. 다음 달 중순에 영화를 들어갈 거 같습니다. 제가 쓴 각본으로 말입니다."
수빈의 말에 박감독이 살짝 떨림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오늘 만나서 이야기를 좀 해보자고요."
박감독이 흥분하여 큰 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꼭 오셔야 됩니다.]
"어디 가지 말고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찾아뵈러 가겠습니다."
수빈이 전화를 끊자 서감독이 활짝 웃으며 편집실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강감독. 패스네."
서감독의 말에 수빈이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패스라니요?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립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