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19화 (119/236)

#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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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실장의 방에서 전화로 부탁했던 사람이 도착하길 기다리고 있을 때, 갑자기 수빈이 피식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그걸 본 박실장이 물었다.

"갑자기 왜 웃나?"

"그냥 현재 상황이 웃겨서요. 전 평범한 연예인에 불과한데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갑자기 드네요. 영화 편집도 해야 되고, 뮤비도 손봐야 되고, 연주자들도 알아봐야 되고.. 해야 할 일이 태산인데 지금 국내 유수의 재벌과 전쟁을 치를 작전을 짜고 있지 않습니까?"

"그냥 평범한 연예인은 아니지. 입을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지. 자네는 성깔 있고, 뒤끝 심하고, 특히 맘에 안 드는 사람에게 굽히는 건 절대로 못 참는 특별한 연예인이지. 일반 연예인 같았으면 일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어. 상대방이 재벌이란 걸 알면 애저녁에 굽히고 들어갔을 테니까.."

"그렇습니까?"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연예인이 재벌이랑 끝까지 싸우겠다고 마음을 먹는단 말인가? 내가 여태껏 이 바닥에 있으면서 그런 연예인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어."

그때 문이 열리며 누군가 방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의 시선이 한순간에 몰렸다. 홍보부 김대리였다. 자리에 앉은 김대리가 다급하게 입을 놀렸다.

"알아냈습니다. 수빈씨 말처럼 정회장님이 오늘 오전에 쓰러진 게 맞답니다. 자택에서 급성 뇌출혈로 쓰러져 앰뷸런스로 긴급 후송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강남 성모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다고 합니다."

걱정 어린 목소리로 박실장이 물었다.

"아니길 바랐는데.. 상태는 어떻다고 하던가?"

"의식불명이랍니다. 중태라 생명이 위독한 상태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설혹 깨어나더라도 뇌손상을 입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박실장이 안타까움에 주먹을 세게 움켜쥘 때 수빈이 차분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럴 거 같았습니다. 그러니 맘 놓고 그따위 찌라시를 돌린 거겠죠. 무사히 깨어나시면 다행이겠지만.. 어차피 그쪽으로는 우리가 손쓸 방법이 없습니다. 지켜보며 기다리는 수밖에요. 김대리님은 그런 사실들을 어떻게 알아내신 겁니까? 나름 보안이 철저했을 텐데요?"

"제 이종사촌 형님이 거기 병원에서 신경외과 과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들었습니다. 제가 아는 서울 시내의 모든 종합병원 의사들에게 전화를 다 돌리는 중이었는데, 운 좋게 얻어걸렸습니다."

- 똑. 똑. 똑.

그 순간 수빈이 기다렸던 사람이 방문을 두들겼다. 이윽고 재무회계팀 강성호 과장이 옆구리에 두터운 서류를 끼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후 자리에 착석한 강과장이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수빈씨가 부탁한 사항들을 알아보았습니다. 관련 자료도 챙겨왔고요."

강과장의 말에 수빈이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제가 여유를 가지고 직접 공부를 하면서 살펴보겠지만.. 지금은 그럴만한 상황이 못돼서 부탁드렸습니다. 일단 화랑 그룹 지배 구조부터 설명해 주시죠."

"알겠습니다. 화랑 그룹이 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지만 핵심적인 회사는 5개 회사로 압축됩니다. 화랑 통신, 화랑 항공, 화랑 백화점, 화랑 유통, 화랑 택배까지 5개 회사입니다."

"그 중에 지배회사가 어디죠?"

"화랑 통신입니다. 나머지는 종속회사로 보시면 될 겁니다."

"화랑 통신의 시가총액이 얼만가요?"

"오늘 시세로 15조 정도 나가고 있습니다."

"제법 되는군요. 그럼 자본금은요?"

"900억 정도 됩니다."

강과장의 대답에 수빈이 피식 웃었다.

"시가총액이 15조가 넘는 회사가 자본금이 천억이 안 넘는다니.. 노린 거군요."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박실장이 물었다.

"자본금이 천억이 넘고 안 넘고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건가? 난 지금 두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도통 이해를 못하겠네."

"제가 일전에 말씀드렸죠? 주식 거래에 대해서는 잘 몰라도 주식회사와 주식이 뭔지에 대해서는 공부를 했다고 말입니다. 주식회사의 주주들에게는 경영감시를 위한 수단들이 존재합니다. 그중에 회계장부 열람권이라고 있죠. 거의 국세청에서 행하는 세무감사에 준할 정도로 회계장부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막강한 권한입니다. 재무제표 원장부터 기밀비, 접대비까지 다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행사하려면 일정 이상의 주식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비상장사는 3프로, 화랑 같은 대기업 상장사들은 0.05프로를 보유하고 있으면 가능합니다. 단, 자본금이 천억이 안되는 회사는 0.1프로를 소유하고 있어야만 신청이 가능하죠. 그래서 노린 거라고 말한 겁니다. 저건 개미들 그러니까 소주주들이 열람권을 신청하기 힘들게 만들려고 일부로 천억을 안 채운 겁니다."

그때 강과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수빈씨. 0.1프로라고 해도 150억이 넘는 금액입니다. 이건 말이 안돼요. 이 많은 돈을 대체 어디서 구한다는 말입니까?"

"그건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과장님. 나머지 4개 회사들도 알려주시죠"

"..알겠습니다. 화랑 항공 7조 5천억, 화랑 백화점 1조 2천억, 화랑 유통 1조 1천억, 화랑 택배 9천억입니다."

"다 합치면 10조 7백억이네요. 이 중에서 자본금 천억인 회사가 있나요?"

"한 곳도 없습니다."

"하는 짓이 할애비나 손자나 어쩜 그리 똑같은지.. 그럼 0.1프로면 100억이군요. 화랑 통신이랑 합치면 250억이네요. 저들 회사 모두 김강식 회장 직계들이 경영을 맡고 있겠죠? 혹시 전문 경영인이 맡고 있는 회사가 있나요?"

"전문 경영인이 맡고 있는 회사는 없습니다. 통신은 김회장의 장남이 맡고 있고, 나머지 회사들은 아들과 딸들이 경영권을 쥐고 있습니다. 최근에 화랑 백화점 김병호 사장이 물러나서 그쪽은 지금 공석 상태입니다."

수빈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후 좌우를 둘러보았다.

"제가 세운 계획은 아주 간단합니다. 화랑 그룹 핵심 회사들의 주식을 확보해서 회계장부 열람권을 사용할 겁니다. 그런 다음 능력 있는 세무사분들을 20여 명 정도 고용해서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횡령, 업무상 배임행위가 있는지 철저히 조사할 겁니다. 화랑 그룹이 하는 꼬락서니를 봐서는 장부를 뒤지면 100프로 범죄 사실이 드러날 겁니다. 그런 후 검찰에 고발을 해서 김회장 직계들을 줄줄이 감방에 보낼 생각입니다. 그 정도는 해줘야 저쪽도 깨닫지 않겠습니까? 잘못 건드렸구나.. 라고 말입니다."

강과장이 조심스럽게 반론을 제기했다.

"수빈씨. 수빈씨가 계획한 일을 진행하려면 일단 기본적으로 자금이 최소한 300억 정도는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주식을 소유하더라도 6개월이 넘지 않으면 열람 신청 자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설사 한다고 해도, 저쪽에서 거부할게 뻔하고요. 아무리 봐도 너무 무모한 계획 같아 보입니다."

강과장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과장님. 처음부터 안된다고 포기하면 있는 길도 안 보이는 법입니다. 제가 하나씩 방법을 알려 드리죠. 먼저 각 회사의 0.1프로 정도 되는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사람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회계장부 열람권에 대한 위임장을 써달라고 말하세요. 그 대신 수수료로 주식의 10프로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불하겠다고 하세요."

수빈의 말에 강과장이 기겁을 하며 말했다.

"수빈씨. 그런 식이면 수수료만 25억입니다. 위임장에 도장 하나 받자고 25억을 허공에 던지겠다는 말입니까?"

"상관없습니다.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재벌이랑 어떻게 전쟁을 치릅니까? 지금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모인 게 아니에요. 자존심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고 전쟁을 치르는 겁니다. 그렇게 제시를 하면 주식 보유자들이 혹할 겁니다. 하지만 동시에 행여나 주가가 떨어져서 자신들이 손해를 볼까봐 걱정도 할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럼 현 시세대로 법원에 공탁금을 걸겠다고 말하세요. 다 합쳐서 250억을 공탁하면 되겠죠. 손해가 발생하면 공탁금에서 전액 배상하겠다고 공증까지 해주면 더 이상 군말이 없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겠습니다만.. 정말로 250억이라는 거액을 수빈씨가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만 합니까? 손해액이 장난이 아닐 텐데요."

"그건 저나 박실장님이 감당할 몫입니다. 250억 정도는 충분히 있으니 걱정 마시고요. 강과장님은 제가 부탁드린 일만 잘 처리해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능력이 출중한 회계사분들도 알아봐 주시고요. 그분들에게 수임료는 두 배를 준다고 하세요. 범죄사실을 밝혀내는 사람에게는 1억 정도 보너스도 준다고 하시고요. 그럼 구하기 쉬울 겁니다."

"하아. 완전 작정을 하셨군요. 잘 알겠습니다."

수빈은 법무팀 조대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조대리님이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어떤 일입니까? 말씀만 하시죠."

"화랑 쪽에 회계장부 열람 신청을 하면 100프로 거부할 겁니다. 그러면 회계장부 열람 가처분 신청을 바로 들어가야만 합니다. 가처분 신청건은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얼마 안 걸려요. 법리적으로 크게 어려운 것도 없고요. 그러니 서초동 쪽에 알아보세요. 요즘 가장 힘 있는 전관 변호사들이 누군지를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수임료 1억, 성공 수수료 3억 정도를 제시하면 자기가 맡겠다고 전관들이 벌떼처럼 달려들 겁니다. 판사 출신, 검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들을 반반 섞어서 각 건당 2명씩 배당해야 하니까 10명 정도를 구하세요."

"제가 아는 최고의 변호사들로 꾸며보겠습니다."

그때 박실장의 핸드폰으로 까톡이 날라왔다. 내용을 확인한 박실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수빈에게 짧게 말했다.

"수수료 다 제하고 32프로."

박실장의 말에 수빈은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하였다.

'주식장이 마감한 모양이야. 2,260억에 수익률이 32프로면 678억. 거기에 원금이 565억이었지. 합치면 1,243억. 이거 실탄이 아주 넘쳐 흐르는군.'

수빈은 배시시 웃으며 박실장을 바라보았다.

"실장님.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그 돈이면 평생 세계 일주나 하면서 느긋하게 사실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뭘 어떡해? 못 먹어도 고지."

뭐 그딴 걸 물어보냐는 듯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박실장을 쳐다보며 수빈이 환하게 웃었다.

"오래 사시겠습니다. 실장님. 아직도 청춘이십니다. 피가 끓나 봐요."

"그럼. 펄펄 끓다 못해 혈관을 뚫고 나올 지경이야. 우리 마누라가 아주 좋아하겠어,"

시답잖은 소리를 하는 박실장을 외면하고 수빈은 홍보부 김대리를 쳐다보았다.

"김대리님."

수빈의 호명에 기합이 잔뜩 들어간 김대리가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수빈씨. 말씀하시죠."

"김대리님은 화랑 쪽을 공략하는 찌라시를 돌리세요. 우리만 당하고 있으면 바보죠."

"내용을 뭐라고 하면서 돌릴까요?"

"김대리님은 재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돈을 잃는 거? 아니면 성추행으로 고소 당하는 거? 뭐 그런 종류 아니겠습니까?"

"권력의 속성이나 권력이 주는 쾌락이 뭔지 아직 잘 모르시는군요. 다른 사람의 생살여탈권을 손에 거머쥐고, 자신의 맘대로 흔들어 대는 게 권력의 본질입니다. 쥔 자에게 엄청난 쾌락을 주죠. 마약보다 중독성이 더 심합니다. 그래서 재벌들이 가장 싫어하는 건 회사의 경영권을 상실하는 겁니다. 그건 부자지간이나 형제지간이라도 절대 나눌 수 없어요. 그걸 찔러야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김강식 회장에게 혼외자가 두 명 있다고 터뜨리세요. 현재 북미 쪽에 한 명, 유럽 쪽에 한 명 있는데 조만간 귀국할 예정이라고 하시고요. 귀국하면 못 받은 재산을 분배 받기 위해 소(訴)를 제기할 계획이라고 퍼뜨리세요. 물론 법에 저촉되지 않게 적당히 손질을 하셔야 할 겁니다."

"카더라 통신 말이죠? 잘 알겠습니다."

수빈은 박실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박실장님이 해주실 일이 있습니다."

"뭔가?"

"로비를 해주셔야 합니다. 금감원, 국세청, 공정위, 검찰 등등 가능하면 유력 정당, 국회, 청와대까지도 로비를 해주세요. 실탄은 충분합니다."

수빈의 발언에 박실장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로비는 불법인데.. 잘못하면 이쪽이 다칠 수도 있어."

"우리 쪽에서 이득을 얻기 위해 로비를 하는 거면 당연히 불법으로 걸리겠죠. 하지만 실장님이 하실 로비는 그런 불법 로비가 아닙니다. 적당히 기부금을 내시고 기름칠을 하시면서 우리 쪽 입장을 전달하세요. 우리가 피해자다. 화랑에서 먼저 시작한 전쟁이다. 우리는 다른 회사의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 단지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거다.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정의를 원한다. 그런 식으로 누구나 말할 수 있는 원칙적인 발언들만 하시면 됩니다."

"그 정도야 어렵지 않지. 근데 그런 식이라면 화랑 쪽에서도 금방 알게 될 건데?"

"그쪽에서 알라고 하는 겁니다. 자신 있으면 어디 한번 밟아보라고 말입니다. 우리가 그쪽이랑 같이 죽기로 결심했다는 걸 명명백백하게 알려줘야죠. 이건 화랑에 대한 선전포고이자 우리의 출사표인 겁니다."

수빈은 잠시 짬을 가지고 좌중을 둘러본 뒤 위엄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디 한번 다 같이 지켜봅시다. 김강식 회장이 얼마나 강단이 있는지를 말입니다. 다들 명심하세요. 얕보이면 절대 안 됩니다. 이번 전쟁에서 밀리면 다 같이 죽는다는 생각으로 한치도 물러서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수빈의 말에 다들 흥분한 듯 호기롭게 대답하였다.

- 걱정 말게나.

-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책임지고 추진하겠습니다.

- 믿고 맡겨 주시죠.

회의에 참석했던 사람들이 각자 자신이 맡은 일을 진행하기 위해 서둘러 방을 나섰다. 수빈도 못다 한 편집을 마무리하기 위해 드림픽처스로 출발하였다.

다음날 오후 2시경 수빈은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 음악을 녹음하기 위해, 연주자를 구하기 위해서 서감독이 소개해준 [대한 예술 종합대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한편 그 시각.

한남동에 위치한 대저택에서는 고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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