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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118화 (118/236)

#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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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 급하게 회사로 돌아가 막상 박실장 방에 도착하니 박실장은 보이지 않았다. 홍보팀 김대리와 법무팀 조대리가 긴장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실장님은 어디 가셨나요?"

자신을 보고 일어서는 두 사람을 보고 묻는 질문에 김대리가 대꾸했다.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

"그러셨군요."

'오늘이 정산 날이라 투자사에 알아보러 잠시 나가신 건가.'

수빈이 착석하자 조대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그날 제가 손해배상액을 잘못 받는 바람에.."

수빈이 단호하게 조대리의 말을 잘랐다.

"아뇨. 그러지 마세요. 회사 소속의 연예인을 위해 손해배상액을 많이 받는다는 건 언제나 좋은 겁니다. 당연한 상식 아니겠습니까? 이번이 아주 특이한 케이스일 뿐이죠. 그리고 제가 사인을 하기 전이었으니, 어찌 보면 나중에라도 충분히 수습이 가능한 평범한 일이었을 겁니다. 단지 뉴스가 먼저 나갔기 때문에 손을 쓸 수 없게 된, 평상시라면 발생하지 없는 비정상적인 형태의 일이 발생한 거뿐이죠."

수빈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사실 잘잘못을 따지고 들자면, 이번 일은 협상을 급하게 서두른 박실장님이나 저의 잘못이 큽니다. 그러니 조대리님이 계속해서 맘에 두실 필요 없습니다."

조대리가 마음이 좀 풀어졌는지 얼굴이 풀렸다.

"알겠습니다. 다음부터는 제가 좀 더 신중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그 이야기는 그만 넘어가죠. 이미 다 지나간 일이니까요. 그럼 무슨 일이 터졌길래 저보고 급히 들어오라고 하신 건지 들어 볼까요?"

그때 홍보부 김대리가 끼어들었다.

"수빈씨.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 오전부터 순차적으로 찌라시 3개가 연속해서 터졌습니다."

"저에 관련돼서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일 먼저 오전 9시경 수빈씨가 호스트바 출신이라는 정체불명의 찌라시가 돌았습니다."

"그런 근거 없는 음해성 찌라시가 도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잖습니까. 큰 문제가 안될 거 같은데요. 아니라는 증거는 차고 넘칠 테니 적당히 대응하시면 되지 않나요?"

"그래서 가볍게 생각했었습니다. 큰 이슈가 될 거 같지도 않았고요. 그런데.."

그때 박실장이 황급히 방안으로 들어왔다. 잠시 후 자리에 앉은 박실장이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김대리 말처럼 오전에 터진 찌라시는 그냥 무시했었네. 근데 11시쯤 두 번째 찌라시가 돌았어."

"어떠 내용입니까?"

"자네랑 정미영 회장이랑 내연의 관계라는 찌라시가 터졌지."

박실장의 말을 듣는 순간 수빈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리고 머리가 급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분석을 끝마친 수빈이 확인을 하기 위해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정말이네. 정회장과 자네가 올봄에 강남에 있는 모 호스트바에서 처음 만났고, 그 뒤로 내연의 관계로 발전했다는 설명까지 친절하게 곁들어 있었지."

박실장의 말이 끝나자 수빈이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 번째 찌라시는 안 들어도 알겠군요. 그런 내연의 관계 덕분에, 영화 경험이 전무한 제가 정회장님의 백으로 이번 대작 영화의 주인공으로 발탁되었다는 내용이겠군요."

"어떻게 알았나?"

수빈이 이전의 군사 시절처럼 지혜가 번뜩이는 눈빛으로 박실장을 바라보았다.

"실장님.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BJ의 정미영 회장님이 사망한 게 확실한지부터 확인하는 겁니다."

수빈의 느닷없는 발언에 사람들의 얼굴에 경악과 황망함이 번져갔다.

"..대체 그게 무슨 소린가? 정회장이 사망했다니?"

수빈이 찬바람이 감도는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도는 찌라시 내용을 분석해 봤을 때, 정회장님이 오늘 오전에 급사했던지 아니면 쓰러져 병원에 실려갔던지 둘 중에 하나일 겁니다."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침을 꿀꺽 삼키며 되물었다.

"정말인가?"

"제 판단이 정확할 겁니다. 지금 도는 찌라시들은 정회장님이 건재하다면 절대로 나올 수가 없는 내용들입니다. 저하나 때려잡자고 정회장님을 모욕하는 저런 저급한 찌라시를 돌린다? 그런 건 화랑이 제아무리 재벌이라도 무리죠. 벼룩 하나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니까요. 같은 재벌들 사이에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습니다."

수빈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좌중을 훑어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찌라시가 연속으로 터진다는 건 정회장님의 견제력이 완전히 상실된 상태란 걸 의미합니다. 아마도 이미 죽었던지 죽기 일보직전이던지 둘 중 하나겠죠."

박실장이 마치 신음을 흘리듯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래서 통화가 안 되는 건가.."

수빈이 빠르게 물었다.

"이미 전화를 여러 번 해보셨나 보죠? 혹시 다른 사람이 받지 않던가요?"

"신호는 가는데 아무도 받지를 않아."

수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아직 돌아가시지는 않은것  같군요. 그랬다면 다른 사람이라도 대신 받았을 겁니다. 그럼 병원에 실려 갔을 가능성이 높은데.. 김대리님."

"네. 수빈씨."

"정미영 회장님이 지금 어디 종합병원에 계신지 조사를 해주세요. 만약 확인이 된다면 상태가 어떤지도 알아봐 주시고요."

"알겠습니다."

김대리가 황급히 방을 나섰다.

수빈이 박실장을 바라보며 차분히 입을 열었다.

"어떡하실 겁니까?"

"뭐가 말인가?"

"무기도 없고 방패도 날아간 상태에서, 그나마 비빌 언덕이 되어주던 정회장님마저도 무너져 버렸습니다. 결정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떤 결정 말인가?"

수빈이 피식 웃었다.

"왜 이러십니까? 갑자기 바보가 되신 겁니까? 이 싸움은 이제 절대로 이길수 없는 싸움이 되어 버렸습니다. 백기를 들고 투항을 할지 결정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백기를 들고 투항을 하자고?"

자신의 질문에 계속해서 되묻는 박실장을 보며, 수빈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런.. 제가 실수를 했네요. 저야 정회장님과 만난지 얼마 안 돼서 별 충격이 없지만, 실장님은 젊었을 때부터 오랜 시간 알고 지낸 분이시라 충격이 크시겠네요. 제가 너무 마음이 급했던 거 같습니다. 지금 경황이 없으실 텐데.."

그때 법무팀 조대리가 대신 나서서 질문했다.

"수빈씨. 백기를 들고 투항을 하자는 게 무슨 말입니까?"

수빈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지금 우리 앞에는 지는 방법과 비기는 방법, 그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이기는 방법 따위는 보이지 않아요. 어쩔 수 없습니다. 양쪽의 전력 차이가 너무 심해요. 이 상태로 링에 올라가서 맞붙으면 필패(必敗)입니다. 명분도 없고 정회장님의 조력도 못 받는다면 이길 가능성이 전무하죠. 지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화랑 쪽에 잘못했다고 빌고, 그쪽의 기분이 풀릴 때까지 샌드백이 되어서 실컷 두들겨 맞아 주는 겁니다"

수빈이 생각을 정리하며 말을 이었다.

"지금은 찌라시가 돌은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건 저쪽에서 사전 작업을 하는 거고 전초전에 불과할 뿐입니다. 조만간 이쪽을 상대로 전면적으로 치고 들어올 겁니다. 아마 저나 어쩌면 박실장님까지 붙잡아서 난도질을 하려고 들겠죠. 난도질을 당해서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기 전에, 어떡하던 저쪽을 달래야 합니다. 당분간 힘들겠지만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하면서 숙이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싹싹 빌어야겠죠. 그래야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럼.. 비기는 방법은 뭔가요?"

조대리의 말에 수빈이 살기 어린 눈빛으로 대답했다.

"같이 죽자고 해야죠. 링에서 맞붙어서 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전장을 바꿔야만 하는 겁니다. 절벽으로 데리고 가야겠죠. 상대방의 허리춤을 움켜잡은 후 질질질 끌고 가는 겁니다. 가는 도중 무지하게 두들겨 맞겠죠. 괴롭겠죠. 고통스럽겠죠. 하지만 참고 견디면서 절벽으로 끌고 가는 방법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아마 많이 힘들고 피해도 극심할 겁니다. 상대가 덩치도 크고 힘도 좋아서 끌고 가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때 정신을 수습했는지 박실장이 물었다.

"그럼 지지 않을 수 있나?"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실장님. 이건 치킨 게임입니다. 천 길 낭떠러지 위에서 같이 죽자고 덤벼들면 죽기 싫은 놈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수밖에 없습니다. 이긴다고 장담은 못해도 절대로 지지는 않습니다."

"피해는 각각 어느 정도 될거 같은가?"

"지려고 들면 피해를 십억? 이십억? 그 정도 수준에서 막을수 있을 겁니다. 저랑 실장님의 자존심이 상하고, 명예가 바닥으로 추락하겠지만요."

"비기려고 들면?"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백억? 이백억? 그 정도는 족히 넘게 깨질 겁니다. 실장님. 비기는 방법으로 자존심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상처뿐인 영광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네는 어떤 방법이 좋은가?"

수빈이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다행히 지금 우리에게 유리한 점도 있습니다. 상대방 덕분에 실탄이 충분하다는 점입니다. 저쪽이 돈이 썩어 나갈 정도로 많은 재벌이라지만, 우리 쪽도 만만치 않습니다. 제대로 꿈틀거릴 정도의 자금은 충분하죠. 만약 돈을 날리는 게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붙어 볼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불꽃처럼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물었다.

"그 말은 화랑이랑 한판 붙겠다는 소리겠지?"

"실장님. 돈이 아깝지 않습니까? 백억을 손해 볼지, 이백억을 손해 볼지, 과연 얼마를 손해 볼지 짐작조차 하기 힘든 싸움입니다. 그 돈이면 서울 시내에 아파트를 사도 몇 십 채를 살수 있고 평생을 떵떵거리며 살수 있습니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습니까? 어설프게 덤벼들 바에는 차라리 지는 게 더 낫습니다. 다 날려도 좋다는 각오를 하셔야만 시작할 수 있는 싸움입니다."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결의에 찬 얼굴로 대답했다.

"이보게 수빈군. 달포 전만 해도 내 수중에 없었던 돈이야. 그리고 전부 자네 덕분에 벌은 돈이지. 그 돈을 자네가 쓰겠다는데 내가 아까워 할리가 있겠나? 난 지금 화가 많이 났다네. 정회장이 평소에 지병이 있긴 했지만, 쓰러지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수작을 부리는 게 정말로 맘에 들지 않아. 그래도 명색이 사돈지간 아닌가? 사람이라면 그러면 안 되는 거지."

박실장이 잠시 호흡을 고른 뒤 다시 말을 이었다.

"깨놓고 말해서 그 인간들이 눈앞에 있으면 몽둥이로 두들겨 패고 싶은 심정이야. 그런 상황에서 화랑 쪽에게 무릎을 꿇고 빌자고? 난 죽어도 그렇게 못하겠네. 솔직히 말해서, 나 혼자라면 못 싸울 거야. 자네가 있으니까 싸우자고 하는 거지. 그만큰 자네를 믿으니까.. 오늘 정산을 받으면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원금 포함해서 그 돈 전부 자네가 알아서 사용하게나. 다 날려도 상관없네. 그 돈 없다고 이 박동주 굶어 죽지 않아."

수빈이 다짐을 받듯 박실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정말로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네. 자네는 어떤가?"

"일전에 실장님이 저에게 말씀하셨죠? 전 물욕이 크게 없어 보인다고요."

"그럼 뭘 망설이나?"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그리고 아무 말없이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자연스럽게 하이파이브를 하였다.

- 짝.

"역시 자네랑 같이 있으면 피가 끓어. 어디 누가 먼저 뒈지나 끝까지 달려 보자고.."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입을 열었다.

"실장님. 명심하세요. 지금 이 순간부터는 저랑 실장님은 화랑 그룹과의 전쟁에 돌입하는 겁니다. 한순간이라도 얕보이면 죽는 겁니다. 화랑 그룹이 화랑도랑 무슨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화랑도에 좋은 말이 있더군요. 임전무퇴. 우리가 올라탄 차에는 처음부터 백기어가 존재하지 않는 겁니다."

"각오했다네."

"좋습니다. 제 생각에 지금 저쪽에 나름 머리를 쓰는 인간이 있습니다. 어제 명분을 자르고 들어오는 것도 그렇고 오늘 찌라시를 뿌려서 미리 작업을 하는 것도 그렇고.. 제법 머리를 쓸 줄 아는 작자로 보입니다."

"김회장이겠지?"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수빈은 자신감이 그득한 얼굴을 하고선,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들겼다.

"전 여태껏 살면서 다른 사람과의 머리싸움에서 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이번도 다를 바 없을 겁니다. 지켜보시죠."

"믿고 있네. 자네라면 좋은 작전이 있겠지?"

"작전은 있습니다. 제가 이전부터 즐겨 쓰는 양동 작전 그러니까 투 트랙 작전이죠."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무릎을 치면서 호기 있게 말했다.

"좋아. 아주 좋아. 그럼 지금 우리는 뭐부터 해야 하는 건가?"

"사람을 불러야죠."

수빈은 핸드폰을 꺼내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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