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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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보부 김대리가 급하게 뛰어왔는지 얼굴이 상기된 채 숨을 헐떡거리며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난리가 났습니다."
수빈이 황급히 되물었다.
"뭐가 큰일이 났다는 겁니까?"
"지금 일본에서 뮤란이 방송국 촬영을 거부하고 있답니다."
박실장이 의혹어린 얼굴로 물었다.
"뜬금없이 갑자기 그게 뭔 소린가? 앉아서 차분하게 설명해보게."
소파에 앉은 김대리가 설명을 시작했다.
"약 30분 전에 일본에 있는 오타쿠 전용 게시판에 방송국 스태프로 보이는 사람이 한 줄의 짤막한 글을 올렸습니다."
"뭐라고 말입니까?"
수빈의 질문에 김대리가 수첩에 적힌 글을 보여 주었다.
- 拳王の弟子. 鉄拳ちゃん撮影拒否突入.
글을 읽어본 수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권왕의 제자 철권짱 촬영 거부 돌입.. 이게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권왕은 수빈씨고 철권은 뮤란의 에리카를 뜻하는 겁니다."
김대리의 대답에 잠시 벙찐 얼굴을 한 수빈이 물었다.
"..도대체 그게 뭔 소립니까?"
"일전에 뮤란 팬사인회에서 에리카가 멋진 라이트 훅을 선보였잖습니까? 일본 오타쿠 애들이 그때 에리카가 날린 펀치를 보고 코크 스크류 라이트닝 펀치라고 부르는데, 그때부터 에리카 별명이 철권이 되었거든요."
김대리의 말에 박실장이 대꾸했다.
"하여간 그쪽 애들은.. 근데 권왕은 뭐야? 특수본 드라마에서 주먹이라는 극중 별명 때문에 붙은 거야? 중국 애들은 권아(拳兒)라고 부른다던데.."
"특수본 영향도 물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에리카가 일본 방송에 나가서 수빈씨는 권법의 고수이고 자신은 그런 수빈씨의 제자라고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그때부터 수빈씨 별명이 권왕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황당한 얼굴로 수빈이 되물었다.
"걔가 내 제자라고 그랬다고요?"
"네. 뮤란의 멤버들 중 자신만이 정식으로 사사했다면서.. 현재 바르게 서는 법, 걷는 법, 뛰는 법까지 가르침을 받았다고.. 지금은 수빈씨가 자신의 눈앞에서 직접 시범을 보여줬던 발경을 연습 중이라고.."
수빈이 입을 '헤' 하고 벌린 상태로 아무 말도 못하고 가만히 있자 박실장이 물었다.
"그거야 뭐 재미로 그랬을 수도 있지. 그런데 뭘 거부하고 있다는 건가?"
김대리가 수첩을 보며 말했다.
"제가 그 게시물을 보고 급히 일본에 연락을 해봤습니다. 그랬더니 뮤란이 오늘 [暴走小女]라는 프로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답니다. 이 프로가 [질주맨]과 유사한 프로인데.. 어린 여자애들이 나와서 방송국이 주는 돈으로 쇼핑을 하는 프로입니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 내에 쇼핑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여자애들이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고 해서 [폭주소녀]라는 타이틀이 붙은 프로입니다. 나중에 쇼핑한 옷들이나 액세서리로 갈아입고 본인의 패션 센스나 패션 취향 같은 걸 보여주는 프로인데.."
"그런데?"
"원래 이 프로가 촬영 장소가 비밀이거던요. 미리 알려주면 사전에 예행연습을 할 수 있고 미리 상품을 점찍을 수 있기 때문에, 촬영 당일 밖이 안 보이는 방송국 차량으로 이동해서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방송국에서 뮤란이 한국에서 왔다는 걸 감안해서.."
김대리가 수빈을 힐끗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번 촬영 장소를 시부야에 있는 화랑 백화점 동경 지점으로 정했답니다. 근데.. 막상 차를 타고 화랑 백화점 앞에 내려주니까, 에리카가 여기서는 절대로 안 찍는다고 불같이 화를 내며 촬영 거부를 선언했다고 합니다. 다른 뮤란 멤버들도 다 같이 동참해서 촬영 거부에 돌입하는 바람에 지금 그쪽 방송사에서 난리가 났다고 합니다. 힘들게 잡아 놓은 촬영 장소를 거부하는 바람에.."
정신을 차린 수빈이 물었다.
"지금 유실장님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걔네들 옆에 있는 걸로 아는데요. 유실장님 성격에 절대 그냥 가만히 놔둘 리가 없을 건데요."
김대리가 긴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게.. 유실장님도 여기서는 절대 못 찍는다고, 일본 방송국 스태프랑 지금 대판 싸우고 있답니다."
"그래서요? 지금 저보고 어떡하라고 달려오신 겁니까?"
김대리가 수빈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수빈씨 의견을 물어보기 위해 왔습니다. 아직은 SNS 상으로만 올라오고 있지만, 조만간 일본에서 정식으로 기사가 터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렇게 되면 뮤란이 일본 방송계에 찍혀서 활동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흠.."
수빈이 신음성을 흘리자 김대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생각에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수빈씨뿐입니다. 뮤란 애들을 설득하고 유실장님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은 수빈씨 밖에 없어요. 하지만.. 제 생각에는 굳이 하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그 순간 김대리의 핸드폰이 깨톡거리며 계속해서 울었다. 하던 말을 멈추고 김대리가 황급히 핸드폰을 확인하였다. 그런 후 굳은 얼굴이 밝게 펴지고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지어졌다.
"방송국이랑 합의가 끝났답니다. 이제 곧 촬영에 들어갈 거라네요."
박실장이 말했다.
"김대리 얼굴이 확 풀린 걸 보니 잘 해결된 모양이군."
"네. 화랑에서 철수해서 돗대 백화점 신주쿠 지점에서 촬영하기로 결정했다네요. 방송국에서 급히 다른 백화점을 섭외한 모양입니다. 돗대도 한국과 관련된 백화점이니까 모양새도 나쁘지 않고.. 이제 걱정 없습니다."
김대리가 수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수빈씨."
"네. 김대리님."
"비록 제가 맡은 업무가 있어서 달려오긴 했지만.. 그런 개 같은 화랑 백화점에서 우리 애들 촬영시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유실장님이나 저나 다 똑같은 마음입니다. 촬영지가 화랑 백화점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저나 유실장님이나 때려죽여도 방송에 응하지 않았을 겁니다. 오늘 일은 정말 죄송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도록 더욱 신중하게 결정하겠습니다."
"굳이 저 때문에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죠. 아닙니다. 화랑 백화점은 우리의 적입니다. 감히.. 자기들이 뭐라고 감히.. 수빈씨를 모함하고 겁박합니까? 앞으로.."
흥분하여 목소리가 점점 올라가는 김대리를 박실장이 말렸다.
"거기까지만 하게. 자네 마음이 어떤지 잘 알아. 말 안 해도 충분히 아니까 그만하고 돌아가게나."
"제가 흥분을 해서.. 알겠습니다. 실장님."
김대리가 돌아가자 박실장이 수빈을 보며 말했다.
"권왕군. 뮤란 애들이 그래도 의리가 있네. 철권 에리카가 자네 제자라고? 제자가 똘똘하네. 자기 사부 생각할 줄도 알고.."
박실장의 농이 섞인 말에 수빈이 한숨을 길게 쉬었다.
"하아. 제자 아닙니다. 그냥 걔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나 봐요."
"그런가? 뭐 그런 게 중요하겠나. 아무튼 우리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
"그러게요. 저 정도 사건 이면 아마 한국에서도 뉴스가 곧 터질 거 같은데.. 불매 운동에 제법 도움이 될 거 같기는 합니다."
"오늘 스케줄은 어떻게 되는 건가?"
"오늘은 뮤뱅에 나가야 됩니다."
"거기에서는 언급 안 할 거지?"
"네. 더 하면 안 좋을 거 같습니다. 어제 엔카에서 한번 한걸로 어떻게든 비벼봐야죠."
"알겠네. 너무 욕심낼 필요 없으니까 무리하지 말게나. 불매 운동이 약하더라도 주가가 최소한 몇 프로라도 떨어지겠지. 어차피 손해만 안 보면 남는 장사 아닌가."
"알겠습니다."
"아. 다음 주 화요일에 변검녀를 빌려달라고?"
"네. 이번 주 토, 일에 음중이랑 인기가요 나가고 나면 디스패치 활동이 일단락될 겁니다. 요 근래 시간도 없고 정신도 없고 해서 디스패치 뮤비를 아직 못 찍었는데, 다음 주 화요일 저녁부터 찍을 생각입니다. 그때 분장을 좀 부탁드리려고요."
"알겠네. 내가 미리 언질을 해두지. 이따가 다시 사무실로 올 건가?"
"바로 집으로 갈려고요. 내일부터 주말이라 주식시장도 쉬지 않습니까. 저도 좀 쉬어야죠."
"그러게나. 이제 연말이라 행사도 많고 시상식도 많고 해서 정신없이 바빠질 텐데 미리미리 좀 쉬어둬야지."
박실장의 방에서 나온 수빈은 뮤직 뱅크 촬영을 위해 밴을 타고 KBC로 이동했다.
하루가 지난 다음 날 토요일 6시경, 수빈은 MBS 음악 중심 촬영을 무사히 끝마치고 행사를 하기 위해 인천으로 가고 있었다. 수빈은 밴을 타고 이동하면서 뉴스를 살펴보고 있었다.
'드디어 텨졌군.'
넷상에서 어제 일본에서 있었던 뮤란의 촬영 거부 사건에 관련된 뉴스들이 속속 올라오고 있었다. 수빈은 그중에서 비교적 공신력이 높은 신문사의 뉴스를 클릭하였다.
- 일본에서 인기 절정인 아이돌 그룹 [뮤란], 방송 촬영 거부! 그 이유는?
기사 내용을 꼼꼼히 읽어본 수빈은 댓글들을 살펴보았다.
ㄴ 기사 내용 중 모 백화점은 어디 말하는 거임? 화랑 말하는 거임?
ㄴㄴ 시부야에 있는 거면 화랑 백화점 맞스모니다. 나 니혼진임니다.
ㄴㄴㄴ 니혼진이 여기서 놀리가 있겠냐? 그래도 화랑은 맞음.
ㄴ 이야. 뮤란이 그래도 의리가 있네. 이거 수빈이 때문에 그런 거 맞지?
ㄴㄴ 맞음. 뮤란이 지금 완전 빡쳐서 촬영 거부한 거임
ㄴ 진흙탕같이 더러운 연예계에도 연꽃이 피는구나! 뮤란 애들은 인정!
ㄴ 수빈이가 밀어주는 걸그룹이라더니. 나름 의리를 지킬 줄 아는구나.
ㄴㄴ 밀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수빈이 다 만든 거다.
ㄴㄴ 멤버들 뽑고 곡 만들어 주고 녹음하고 재킷 그림 그려주고 수빈이 다했음.
ㄴ 얘네들은 국민 걸그룹이나 국민 여동생이 아니라 국민 의리녀다.
ㄴ 요즘 불매 운동이라는데 나도 동참해야겠다. 여자애들도 의리를 지키는데.
ㄴㄴ 나도 동참 중임. 설에 널린 게 백화점임. 이것들은 완전 개쓰레기.
댓글들을 보며 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군. 분위기가 나름 달아오르는데.. 이러면 담 주에 제법 주가가 떨어지겠어.'
그때 수빈의 핸드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수빈이냐?]
"어. 강호 형님. 수빈입니다.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어요?"
[너 지금 어디냐?]
"저 행사가 있어서 인천 가는 중입니다."
[그래? 요즘 다들 니 얘기하더라. 별일 없고?]
"네. 괜찮습니다. 걱정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나야 별 걱정 안 했지. 니가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네. 형님. 알아서 잘 하고 있습니다. 근데.. 무슨 일로 전화를?"
[아. 나 좀 있다가 뉴스룸에 출연한다.]
성강호의 말에 깜짝 놀란 수빈이 놀란 목소리로 되물었다.
"송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뉴스룸 말입니까? 무슨 사고를 치셨길래?"
[사고라니! 이놈이.. 거기 토요 문화 초대석이라고 가끔 나 같은 거물들을 초대하는 코너가 있어. 거기 나간다.]
"그러시군요. 축하드립니다. 형님."
[그래. 고맙다. 이따가.. 시간 되면 한번 봐라.]
"네. 형님. 알겠습니다."
[그래. 끊으마.]
"들어가세요. 형님."
전화를 끊고 수빈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왜 전화까지 직접 하시면서 보라고 하는 거지? 영화 선전 때문에 그러는 건가? 이따 시간 되면 한번 봐야겠다.'
잠시 후 인천에 있는 한 대학교에 도착한 수빈은 사람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행사를 치렀다. 무사히 행사를 마친 수빈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밴에 올라탔다.
수빈은 집으로 가는 밴에서 핸드폰으로 뉴스룸을 시청하였다. 다행히 늦지 않아서, 잠시 후 문화 초대석 코너가 시작되고 성강호가 등장하였다. 성강호와 송석희 앵커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인사를 하고 한참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송석희 앵커가 질문을 던졌다.
"요 근래 새롭게 찍으신 영화가 있다면서요?"
"네. [달빛 속의 호위무사]라고 저랑 정세경씨, 장태호군, 수빈군이 같이 출연한 영화입니다. 지금 촬영이 다 끝나고 편집 작업 중인데, 이번에 다들 연기를 잘해줘서 흥행이 잘 될 거라고 잔뜩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 작품에 수빈씨도 출연하는군요. 수빈씨가 요즘 안 좋은 사건에 휘말려서 곤욕을 치렀는데 알고 계시는지요?"
"네.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얼마 전 기자회견까지 열었는데.. 처음 그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제가 아는 수빈군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영화가 개봉되면 다들 아시게 되겠지만.. 그 친구는 정말로 펄펄 날아다니거든요. 가끔씩 사람으로 안 보일 때가 있어요."
"과장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닙니까?"
"아뇨. 정말로 영화가 개봉하면 꼭 보세요. 정말로 날아다녀요.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선전을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제가 시간 되면 꼭 보겠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을 하셨다고요?"
"네. 제가 아는 수빈군이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빈군 같은 권법 고수가 함부로 폭력을 휘두를 리가 절대 없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부터 거짓된 소문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뉴스룸을 지켜보던 수빈은 자신을 믿어주는 성강호의 말에 나름 감동을 받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형님한테 언제 식사라도 한번 대접해 드려야 하겠는데.. 이것 때문에 보라고 한 건가?'
"수빈씨에 대한 믿음이 아주 강하시네요. 그럼 지금 그 사건 때문에 특정 백화점에 대한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시는지요?"
"저도 들어서 알고는 있습니다만.. 하지만 나름 공인인 제가 방송에 나와 그런 문제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성강호의 대답에 수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형님 입장도 있는데 뭐라 말하기가 힘드시겠지. 당연한 거지.'
성강호의 발을 빼는듯한 발언에 송석희가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선뜻 뭐라 말씀하시기에는 예민한 문제죠. 워낙 대중들에게 알려져 있는 스타분이시라서 더 조심하실 수밖에 없으시겠죠. 그럼.. 영화 촬영하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 같은 건 있으신가요?"
"영화 찍을 때는 다들 영화에 집중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다지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었는데요. 영화 끝나고 쌍욕을 얻어먹은 건 기억이 나네요."
"성강호씨가 다른 사람에게 욕을 얻어먹었다고요?"
"네."
"누구한테 말입니까?"
"제 아내에게서 들었습니다. 결혼한 지 3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쌍욕을 얻어먹었죠."
성강호의 말에 호기심이 동한지 송석희 앵커가 눈을 반짝이며 파고들었다.
"호오.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무슨 일 때문에 그런 건지 혹시 여쭤봐도 괜찮을는지요?"
"제가 영화 촬영에 들어가면 다른 배우분들도 다 마찬가지겠지만.. 집에 신경을 잘 못쓰거든요."
"보통 다들 그러시더군요. 아무래도 촬영지가 지방에 있으니까요. 그런데요?"
"그래서 보통 촬영이 끝나면, 미안한 마음에 아내에게 백이나 아니면 다른 선물 같은 걸 사주는데.. 이번에도 촬영 끝나고 며칠 전에 쇼핑을 시켜주려고 집에서 같이 나왔어요."
"그러셨군요."
"그래서 와이프를 옆에 태우고 차를 운전해 가는데.. 저희 집 바로 옆에 백화점이 있어서 거길 자주 이용하거든요."
이야기의 분위기가 묘해지는 걸 직감한 송석희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자주 가는 백화점이 집 옆에 있었군요. 무슨 백화점인지는 묻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요?"
"그쪽 백화점 쪽으로 차를 몰고 가는데 옆에 앉은 제 아내가 묻더라고요. 당신 지금 어디 가냐고.."
"그래서요?"
"그래서 평상시처럼 거기 백화점으로 간다고 대답을 했더니, 갑자기 제 어깨를 때리는 겁니다. 엄청 세게 때렸어요."
"이런, 성강호씨 정도 되는 분도 부인 분한테 맞으시는군요."
"네. 30년 만에 처음 맞아봤습니다. 이 사람이 의외로 손이 맵더라고요. 그래서 깜짝 놀라서 왜 때리냐고 제가 물어봤죠."
이야기가 절정으로 치닫자 송석희가 옆에서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뭐라고 하시던지요?"
여태껏 송석희를 쳐다보며 대화를 나누던 성강호가 고개를 획 돌려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성난 표정으로 거칠게 내뱉었다.
"야 이 새끼야! 넌 배알도 없냐? 아무 죄 없는 후배를 폭행범으로 음해하고 매장시키려는 그런 썩어빠진 백화점에 마누라 쳐데리고 가서 쇼핑하고 싶냐? 차라리 나가 뒤져라. 존심도 없는 새끼.."
잠시 아무 말없이 카메라를 응시하던 성강호가 다시 송석희를 쳐다보며 말했다.
"라고 마누라가 저에게 쌍욕을 퍼붓더라고요."
생각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발언에 살짝 당황한 송석희가 한 템포 늦게 반응을 했다.
"..그러셨군요. 잘 알겠습니다.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수빈은 방송을 보다 순간 속에서 울컥하고 치밀어 오르는 뜨거운 걸 느꼈다. 그리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동시에 느꼈다. 금방이라도 왈칵 쏟아질 거 같은 눈물을 간신히 삼키며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후우. 뮤란도 그렇고 성강호 선배도 그렇고..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잘못 살지는 않은 것 같구나. 앞으로도 치열하게 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수빈은 성강호에게 짧은 문자 한 통을 보냈다.
- 감사합니다. 형님.
그날 밤. 슬금슬금 번져가던 불매 운동의 불길이 마침내 사람들 사이에서 기세를 드높이며 들불처럼 거세게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일요일 점심 경, 이 모든 일의 종지부를 찍는 짧은 단문의 뉴스 속보 하나가 한 장의 사진과 함께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