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08화 (108/236)

# 108

35 - 3

수빈의 작전 계획을 다 듣고 난 박실장이 감탄 어린 표정으로 수빈을 쳐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말이야. 정말 무서운.. 사람일세.. 난 자네랑 절대 척은 안질 걸세. 행여나 꿈에라도 두렵네."

수빈이 서릿발 같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실장님. 원래 말입니다. 밟을 때는 상대방의 명줄을 끊겠다는 각오를 하고 밟아야 되는 법입니다. 어설프게 했다가는 오히려 적만 만들고 꿈자리만 사나워지는 법이죠. 이번 일만 작전대로 잘 풀리면, 앞으로 저를 타깃으로 작업하는 인간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박실장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거의가 아니라 아예 없을걸세. 만약에 나라면 수빈군을 상대로는 작업 안 해. 절대 안 할 거야. 후.. 그럼 이번에는 수익률은 얼마 정도 될 거 같은가?"

"글쎄요. 이번에는 저번처럼 그렇게 많이 벌지는 못할 거 같은데요. 오늘이 목요일이니 다음 주 수요일 정도를 생각하면.. 10프로? 많으면 20프로? 대충 그 정도는 벌수 있을 거 같습니다."

"주말 끼고 5일이군. 5일에 20프로라.. 자네는 전부 다 베팅할 거지?"

"당연히 그래야겠죠. 95억에 40억을 더하면 135억이네요."

"내가 가진 게 원금 140억에 40억을 더하면 180억이로군. 둘이 합쳐서.."

"315억이 되네요. 20프로 수익률이면 60억 정도는 벌수 있겠군요. 나쁘지 않은 거 같은데요."

"자네 지금 농담하는 거지? 5일에 60억이야. 하루에 10억이 넘게 버는 거라고. 나쁜 게 아니라 좋아서 방방 뛰어야 되는 금액이야. 언제 작업할 건가?"

"쇠뿔도 단김에 빼야죠. 어차피 화랑 백화점 주가도 회복됐다고 하니.. 오늘 오후에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한 게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거지. 걱정 말게나. 바로 작업을 시작할 테니. 그리고 말이야.. 이왕 벌려면 최대한 많이 버는 게 좋겠지?"

"그러면 좋겠지만.. 돈이 315억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전 거기에 들어간 135억이 제 전재산입니다. 탈탈 털은 거예요. 실장님은 더 가능하십니까?"

"나도 더 이상 현금을 동원하기에는 무리야. 가지고 있는 YK 주식을 팔면 몰라도.."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을 거 같은데요."

"나도 YK 주식을 팔 생각은 전혀 없다네. 흠. 수빈군이 주식에 대해서 잘 모르니 내가 알아서 작업을 하겠네."

"알겠습니다. 제가 주식 쪽은 초보라.. 박실장님만 믿겠습니다. 알아서 잘 해주세요."

"그러겠네. 날 믿어보게."

이때만 해도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계산이 완전히 빗나갈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수빈은 박실장의 방을 나와 [엔카운트다운] 라이브 방송을 위해 밴을 타고 이동했다. 리허설 무대를 모두 마치고 BBG 멤버들과 함께 대기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수빈에게 짧은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 준비 완료 X 2

수빈은 문자를 보며 준비 완료라는 문구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뒤쪽의 X 2를 보며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수빈은 멤버들을 불러 모았다. 모인 멤버들을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나 때문에 다들 고생 많았어. 너희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다들 고맙고.. 아무튼 오늘은 우리가 [Dispatch]라는 곡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는 영광스러운 날이야. 당연히 수상 소감을 발표하겠지. 그래서 말이야. 내가 너희들에게 부탁할게 있다."

부탁할게 있다는 수빈의 말을 듣고 경빈이 뜨악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서운 형아가 또 뭔가 무서운 일을 꾸미나 보다.."

수빈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희들에게 힘든 일을 시키지는 않잖아. 그냥 간단한 부탁이라고.."

수빈의 말에 케빈이 구시렁거렸다.

"힘든 일을 시키지는 않지만 항상 걱정을 하게 만들지. 오늘은 뭘 어떻게 해주면 되는 건데?"

"간단해. 오늘 수상소감은 내가 하고 싶어."

듣고 있던 로빈이 대꾸했다.

"그걸 부탁이라고 말할게 있나? 당연히 리더인 네가 하는 게 맞는 거지."

수빈이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그리고 조금 있다 내가 수상소감을 말할 때 울 계획이야. 내가 울기 시작하면 그냥 너희들은 뒤에서 날 부드럽게 껴안아 주면 돼. 안타까운 눈빛을 하면 더 좋고.. 그게 전부야."

경빈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대꾸했다.

"형이 운다고요? 겨우 3주 1등 한걸 가지고요?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경빈이 수빈의 매서운 눈빛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네. 그렇죠. 맞습니다. 형처럼 마음이 여린 사람은 울 수도 있죠. 감동스러운 순간 아닙니까. 그럼 저희는 뒤에서 안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그래. 그거면 된다."

이윽고 엔카운트다운 방송이 시작되었다. BBG는 관객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으며 디스패치 무대를 무사히 마친 뒤 대기실로 돌아갔다. 잠시 후 모든 순서가 끝나고 최종 1위 발표를 듣기 위해 다른 가수들과 함께 무대로 다시 올라갔다.

- 이번 주 1위는.. BBG의 디스패치! 디스패치가 1위를 차지했습니다. 3주 연속 1위를 차지한 디스패치는 영광스러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네요. 축하드립니다!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자 팡파르가 울리며 불꽃이 터지고 잘게 잘린 색종이가 공중에서 쏟아졌다.  BBG 멤버들은 동료 가수들의 축하를 받으며 많은 꽃다발을 받았고, 수빈이 대표로 트로피를 받았다.

-  BBG 여러분들. 축하드립니다. 그럼 수상 소감을 들어볼까요?

진행자의 멘트가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 BBG 모든 멤버들이 수빈의 팔을 잡아끌고 등을 떠밀어 무대 중앙에 있는 마이크 앞에 세웠다. 마이크 앞에 선 수빈이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수상 소감을 말하기 시작했다.

"감사합니다. 저희 BBG가 디스패치란 곡으로 이렇게 3주간 1위를 한건 모두 다 팬 여러분들 덕분입니다. BBG를 아껴주시고 사랑해주신 팬분들 덕분에.."

수빈이 수상 소감을 말하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복받쳤는지 말을 잊지 못했다. 수빈의 눈동자가 격하게 떨리기 시작하더니 눈가가 빨갛게 충혈되었다. 마침내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이기 시작했다.

"아.. 이런.. 흑. 이렇게.. 좋은 날에 주책이네요. 흑흑."

수빈이 울기 시작하자 뒤에 도열해 있던 BBG 멤버들이 뒤에서 수빈을 부드럽게 끌어안기 시작했다. 하나둘 끌어안더니 멤버 다섯 명 모두가 똘똘 뭉쳐 수빈을 안아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관객들도 울컥했는지 몇 사람이 따라 울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관객석이 눈물바다가 되고 구호가 울려 퍼졌다.

-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하아. 감사합니다. 훌쩍. 요 근래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흑. 원래 제가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고 그러면 주로 쇼핑을 하며 푸는 편인데.. 아. 흑. 남자 놈이 보기 흉하게 자꾸 눈물이 나네요. 제가.. 최근 개인적으로 트라우마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백화점으로는 쇼핑하러 안 갑니다. 왜 그런지는 다들 아시죠?"

- 네! 알아요!

그 순간 수빈의 눈에서 눈물이 방울지어 또르르 빰으로 흘러내렸다. 그와 동시에 수빈은 슬프도록 아름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문장을 또박또박 끊어서 강한 어조로 말했다.

"모 백화점은! 때려죽여도! 절대! 안 갈 겁니다!"

수빈이 환하게 웃으며 트로피를 공중으로 높이 치켜들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

수빈이 수상소감을 마치고 뒤를 돌아보니 다른 멤버들도 다 같이 눈시울이 붉어져 울먹울먹하고 있었다.

'얘들은 왜 이러냐..'

방송을 마치고 대기실로 가는 복도에서 수빈이 멤버들에게 물었다.

"야. 네네들은 왜 우는 거야?"

요 근래 걱정이 있는지 말수가 많이 줄어든 마빈이 담담하게 대꾸했다.

"리더가 울면 다른 멤버들도 울어야지. 그게 의리 아니냐? 당연한 걸 물어 보고 있네."

"후우. 그런 거냐? 암튼 다들 너무 고맙다. 내가 주말에 한턱 쏠게."

경빈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며 말했다.

"형님. 그렇다면.."

수빈이 경빈의 말을 잘랐다.

"말 안 해도 알아. 인마. 쇠고기로 사줄게. 주말에 촬영 끝나고 다 같이 회식하자. 내가 쏜다."

스케줄을 모두 소화한 수빈은 집으로 돌아갔다.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컴퓨터 앞에 앉은 수빈은 인터넷으로 연예계 뉴스를 검색하였다.

- BBG 트리플 크라운 달성, 리더 수빈의 아름다운 눈물.

- 아이돌 그룹 BBG의 디스패치, 3주 연속 1위를 차지하다.

-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는 BBG. 남자들 간의 뜨거운 포옹을 보여줘.

- 수빈, 3주 연속 엔카운트다운 1위 달성, 통곡의 수상 소감.

- BBG의 리더 수빈, 1위는 팬들의 사랑과 관심 덕분이라고 말해.

수빈은 뉴스 내용들을 꼼꼼히 읽어보았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3가지로 요약되고 있었다. 요 근래 힘들었던 자신의 이야기와 디스패치가 3주 연속 1위를 달성한 것 그리고 BBG 멤버들 간의 의리와 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기사를 읽던 수빈이 실망 어린 말투로 중얼거렸다.

"이것 참.. 내가 수상 소감에서 화랑 백화점을 디스 했다는 걸 언급하는 기사가 단 한 개도 보이질 않네.. 역시 상대방이 재벌이라는 게 문제인 건가. 하기야 기자들도 몸을 사릴 수밖에 없겠지. 자기들 밥줄이 걸린 일이니.."

수빈은 손가락으로 컴퓨터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수상 소감에 대한 반응이 너무 미약해. 이러다 작전이 실패할 수도 있겠는걸. 차라리 내가 직접 팬카페에 글을 올려서 다시 한번 언급을 해볼까?'

고민하던 수빈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야. 한 번은 격앙된 감정으로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또다시 비슷한 내용의 글을 팬카페에 썼다가는 내가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어. 팬들에게 특정 업체의 불매 운동을 조장한다고 상대방에서 나에게 덤터기를 씌우겠지. 명색이 재벌인데 김호진 같은 바보 멍청이들만 모여 있는 건 아닐 테니..'

생각을 정리한 수빈은 중얼거렸다.

"물 흐르듯 흘러가게 놔두는 게 좋겠군. 뭐 적으면 적은 대로 벌면 되는 거지. 잠이나 자러 가자."

수빈은 마음을 비우고 의자에서 일어나 침실로 걸어갔다.

하지만 수빈의 실망과 달리, 수빈이 잠자리에 든 이후 수빈의 수상 소감 동영상이 SNS 상에서 공유에 공유를 거듭하며 사람들 사이에서 슬금슬금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수빈이 지핀 화랑 백화점 불매 운동의 불씨가 조금씩 힘을 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불씨에서 튄 불똥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산불처럼 활활 타오르리라는 걸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사무실로 나간 수빈은 박실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제 준비가 끝났다는 문자는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작전대로 수상 소감을 발표할 때 화랑 백화점 저격 멘트를 날리고 왔습니다."

"나도 어제 방송으로 직접 봤다네. 미리 알고 시청하는 나까지도 울컥하더군. 수빈군이 이제 대배우가 다 됐어. 어찌나 연기를 잘하던지.. 자유자재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경지에까지 도달한 모양이야."

자신의 눈물 연기를 폭풍 칭찬하는 박실장의 말에 수빈은 쓴웃음을 지었다.

'군간혈과 안압혈에 내공을 주입해서 눈물을 흘린다는 거까지는 말할 필요가 없겠지.'

"그럼 315억 전부 별 탈 없이 공매도로 들어간 거죠?"

"응? 아니지. 어제 문자 보낼 때 같이 적어서 보냈지 않은가. 곱하기 2라고.. 630억이지."

박실장의 말에 깜짝 놀란 수빈의 목소리가 커졌다.

"네? 630억이라고요?"

깜짝 놀란 수빈의 반문에 박실장이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네. 630억. 우리가 넣은 돈의 두 배까지 거래를 해달라고 부탁을 했네. 자네랑 헤어지고 내가 거래하는 회사에 찾아갔을 때, 자네랑 의논할 수가 없어서 내가 독단적으로 결정을 했다네. 어제 우리 둘이 이야기했지 않은가? 이왕 버는 거 최대한 많이 벌기로.."

"그럼 우리가 넣은 돈 315억에.. 그쪽 회사에서 대출 형식으로 315억을 빌려서 총 630억을 만든 다음에 공매도를 들어간 게 되는 건가요?"

"응? 315억을 빌리다니? 이런.. 이제 보니 자네는 공매도란 게 어떤 건지 아직 잘 모르고 있군."

"네. 전 주식회사가 어떤 회사를 말하는 건지 주식이란 게 과연 어떤 건지.. 그런 기본적인 것들부터 공부를 했거든요. 이거 제가 날 잡아서 주식거래에 대해서 제대로 공부를 좀 해야 할 거 같은데요."

"그 뛰어난 머리로 아직 잘 모른다는 건 자네가 주식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다는 뜻이야. 그만큼 자네가 물욕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지."

"그런가요? 주식은 도박이라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요. 제가 도박에는 별 관심이 없다 보니.."

"내가 간단하게 설명해 주지. 자네 머리면 금방 이해가 될걸세. 공매도(空賣渡)는 말 그대로 없는 걸 파는 거야. 자신의 돈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고. 신용으로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임시로 빌려서 파는 거지. 쉽게 설명하면.. 오늘 우리가 600억어치 주식을 먼저 팔았다고 계산을 해보자고. 주가는 6만원이라 가정하고.. 그럼 주식이 몇 준가?"

"100만 주죠."

"그럼 오늘 우리가 공매도를 600억 했다는 말은,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식 100만 주를 빌려서 주식 시장에다 오늘 내다 팔았다는 걸 뜻하네. 그래서 주식 판매 대금으로 우리 수중에 600억이 들어와 있는 거지. 우리 돈은 아직 한 푼도 안 들어간 상태라네. 그리고 주식을 빌릴 때 갚기로 약속한 3일 후에, 우리가 100만 주를 주식 시장에서 다시 구매해서 주식을 빌려줬던 그 사람들에게 고대로 돌려줘야 하는 거라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나?"

"네. 이해가 됩니다."

"약속대로 주식을 다시 돌려주기로 한 날, 그날 만약에 주가가 50 프로 하락해서 3만원이라면, 우리 수중에 있는 판매 대금 600억 중에서 300억만으로도 주식 100만 주를 살수 있겠지? 그럼 우리는 300억으로 주식 100만 주를 사서 주식을 빌려준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주고 나머지 300억을 우리가 꿀꺽하는 거야."

박실장이 수빈을 쳐다보자 수빈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로 말이야. 그날 주가가 50프로 올라서 9만원이라면, 100만 주에 900억이 되겠지? 그럼 우리가 수중에 가지고 있던 판매대금 600억으로는 돈이 부족할 거 아닌가? 그렇게 되면 우리가 300억을 보태서 900억을 만들어 주식 100만 주를 사야만 되는 거야. 그래야 주식을 빌려줬던 사람들에게 다시 돌려줄 수 있으니까. 우리가 300억을 고스란히 날리게 되는 거지. 즉, 손해만 안 본다면 우리 돈이 들어가는 일은 발생 안 해. 이해가 가나?"

"공매도가 어떤 건지 이제야 파악이 되는군요. 그럼 처음에 사람들에게 주식을 빌려서 먼저 내다 파는 거라면.. 굳이 우리 돈을 먼저 집어넣을 필요가 없는 거 아닙니까? 손해를 봤을 때만 돈을 넣으면 되지 않나요?"

"그거야 신용이 있는 기관투자가들이나 그런 거지. 우리는 그런 신용이 없지 않은가? 막말로 손해를 봤는데 돈이 없거나 아니면 돈내기 싫다고 도망쳐 버리면 어떡할 건가? 그래서 우리 같은 일반인들에게는 아무도 주식을 빌려주지 않아. 그러니 공매도라는 시스템을 이용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거야."

"아. 그럼 315억을 먼저 집어넣는다는건.."

"내가 거래를 부탁한 회사에 맡겨 놓은 일종의 보험금이나 담보 같은 거지. 그쪽에서 내가 원하는 대로 공매도를 해주고, 3일 후 만약 손해를 보게 되면 손해 본 만큼 내가 맡긴 돈에서 빼가는 거지. 그냥 말로만 부탁하면 아무도 우리 대신 거래를 해주지 않는다네."

"그렇군요. 근데.. 저번에는 200억을 맡기고 200억어치 공매도를 했잖습니까? 이번에는 315억을 맡겼는데.. 어떻게 맡긴 돈의 두 배까지 공매도를 하게 된 거죠?"

수빈의 질문에 박실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후. 내가 담보의 두 배까지 해달라고 특별히 부탁했네. 그쪽에서도 설사 손해를 보더라도 그 정도면 충분히 커버가 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선선히 부탁을 들어주더군."

"그랬군요. 630억이라.. 너무 무리하신 거 아닙니까?"

"맞아. 일전에 비하면 엄청 무리했지. 하지만 이번에는 나름 믿는 구석이 있지 않은가."

"믿는 구석이 있다고요?"

수빈의 질문에 박실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번에는 자네 계획이 어떤 건지 내가 전혀 몰랐지 않은가. 그러니 나도 불안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냥 200억만 채우고 눈 딱 감고 묻지마 투자를 했지만..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어제 자네의 계획이 어떤 건지 미리 상세하게 다 들었지 않은가. 그래서 결심했지."

박실장이 욕망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

"벌려면 아주 제대로 벌어보기로 말이야.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박동주 인생에서 일생일대,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지."

수빈은 뜨겁게 불타오르는 박실장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이거 왠지.. 실장님에게서 전문 투기꾼의 스멜이 물씬 풍기는거 같은데요."

"허어. 애꿎은 사람을 모함하지 말게나. 회사를 설립할 때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다다익선이니 뭐니 그러면서 나를 부추긴 건 자네야. 난 미래의 상사인 수빈군의 오더를 충실히 따른거 밖에는 죄가 없다고."

박실장의 농섞인 발언에 수빈이 웃으며 대답했다.

"실장님. 이러다 제 예측이 빗나가면 어떡하죠?"

"뭘 어떡해. 둘 다 깡통 차는 거지. 자네는 아직 젊으니 다시 열심히 벌면 되는 거고, 난 시골에 내려가서 농사나 지으면 되는 거지. 설마 굶어 죽기야 하겠어?"

박실장의 말이 끝나자 두 사람이 눈을 마주쳤다. 아무런 신호 없이 두 사람이 동시에 상대방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염화시중의 미소였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오른손을 높이 올린 두 사람이 손바닥을 힘차게 마주쳤다.

- 짜악!

"좋습니다. 실장님. 아주 좋아요.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습니까? 거하게 한번 벌어보자고요."

"그러자고. 어제 수상 소감 발표한 이후로 분위기는 좀 어떤가? 작전이 제대로 먹힐 거 같은가?"

박실장의 질문에 수빈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게 아직까지는 사람들의 반응이 뜨뜻미지근한 편입니다. 일단 기자들이 제 기사를 제대로 써주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상했던 것만큼 반응이 오지 않네요. 그렇다고 똑같은 퍼포먼스를 계속하기에는 부담이 너무 큽니다. 그랬다가는 오히려 역공을 당할 공산이 큽니다."

"흠. 어쩔 수 없겠지. 괜히 무리할 필요는 없어. 아직까지는 시간이 충분히 있으니까 인내심을 가지고 느긋하게 지켜보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때 박실장의 방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 쾅.

누군가 방안으로 뛰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 큰일 났습니다.

홍보부 김대리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