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07화 (107/236)

#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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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노크를 한 후 박실장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수빈을 발견한 박실장이 춘삼월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웃으며 손짓을 하였다. 수빈도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였다.

'이 양반이 기분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내가 모르는 다른 일이 있는 건가?'

수빈은 속으로 의문을 가지며 소파에 앉았다. 박실장이 입을 열었다.

"방송을 보니까 홍콩에서 난리도 아니던데.. 수빈군 인기가 이제 아시아를 휩쓰는 거 같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알아봐 주시고 반겨주시더군요. 덕분에 무대도 성황리에 잘 마치고, 상도 좀 받고, 나름 뜻깊은 시간들을 보내고 온 거 같습니다."

"난 [달나이]가 그렇게 바뀔 줄은 상상도 못해봤네."

"그만큼 편곡의 힘이 커죠. 분위기 자체를 180도 뒤바꿀 수 있으니까요."

"싸이랑은 소속사도 다른데 언제 이야기를 한 건가?"

"네? 월드 가수 싸이 선배 말입니까? 전 아직 한 번도 못 만나봤습니다만.."

"그래? 그럼 전화 통화를 해서 허락을 받은 건가? 달나이 앞부분에 나온 전주가 싸이의 [챔피언] 전주를 카피한 거 아닌가. 딴 따 따다다다 하는 부분 말일세. 엄청 신나던데.."

"아. 그 부분은 싸이 선배가 직접 작곡한 게 아닙니다. [Axel F]라는 외국곡에서 따온 거죠. 챔피언 음반을 제작할 때 해롤드 펄터마이어라는 가수에게 정식으로 저작권료를 지불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처럼 음반을 내는 게 아니라 무대 위에서 한번 연주하는 정도로는 굳이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일종의 오마주 같은 개념이니까요. 그리고 편곡할 때 안전장치도 충분히 해놨고요."

"아. 그런가? 내가 영화 쪽이다 보니 음악은 잘 몰라서.."

수빈은 짧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후. 박실장님.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오래 뜸을 들이십니까? 안 하던 음악 얘기까지 하시고.. 혹시 제가 부탁드린 게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요?"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잇몸이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었다. 그런 후 오른손을 쫙 펴서 앞으로 쭉 내밀며 말했다.

"수빈군. 우리 하이 파이브나 함 하세."

- 쫙!

오른손을 뻗어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 뭔 일이 있나 본데. 뭐지?'

박실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 두 개의 서류 봉투를 들고온 박실장이 테이블 위에 올린 다음 하나를 수빈 쪽으로 밀었다.

"수빈군이 나에게 부탁했던 걸세."

수빈은 조심스럽게 봉투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을 살펴보았다.

"이건.."

"CD야. 양도성 예금증서. 뭘로 줄까 생각해봤는데 자네가 쓰기에는 CD가 가장 편할 거 같아서 그걸로 준비했네."

"얼마입니까?"

"1억 짜리 95장, 95억일세."

수빈은 자신도 모르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엄청 많이 벌었네요."

"3일 만에 수익률이 무려 60프로야. 수빈군 부탁대로 자네가 건네준 60억 전부를 화랑 백화점 공매도에 올인했지. 행여나 문제가 생길까 봐 내가 잘 아는 검은 머리 외국인에게 부탁해서 투자했다네. 세금도 깔끔하게 처리한 깨끗한 돈일세. 그쪽이 수수료는 세지만 뒤탈이 없어."

"수고 많으셨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3일 만에 35억이라니.. 대박인데요. 이거 고생하신 실장님에게 제가 수수료라도 좀 챙겨드려야겠습니다."

"필요 없네."

"괜찮습니다. 받으세요. 실장님 덕분에 많이 벌었잖습니까."

수빈이 서류 봉투 안에서 CD를 몇 장 꺼내려고 하자 박실장이 또 하나의 서류 봉투를 수빈 앞으로 밀었다.

"이건.. 뭡니까?"

"내가 자네에게 주는 감사의 선물일세."

"네? 저에게 주는 선물이라고요?"

수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봉투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후 의혹 어린 눈길로 물었다.

"이거.. CD 아닙니까?"

"맞네. 똑같은 CD야. 1억짜리 40장, 40억일세."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선물에 수빈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40억.. 이걸 왜 저에게?"

"수빈군이 주식을 잘 모른다고 했지?"

"네. 기본적인 개념은 공부를 좀 했지만, 직접 거래를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계좌를 개설한 적도 없고요."

"공매도는 기관투자자나 외국계 큰 손들이 주로 하는 걸세. 그런 사람들에게 60억은 큰 돈이 아니야. 그냥 푼돈이지. 내가 이번에 공매도를 부탁한 곳은 최하 투자금액이 200억일세."

박실장의 설명에 수빈은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실장님이?"

박실장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맞네. 자네가 준 60억에 내 돈 140억을 보탰지. 그래서 200억을 만들어 맡겼다네. 50년 넘게 살면서 내가 해본 베팅 중에 가장 액수가 큰 베팅이었어."

수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다 날리시면 어떡하려고.. 저야 녹음 파일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지만, 실장님은 그걸 모르는 상태였잖습니까. 도대체 뭘 믿고 그런 무리수를.."

"뭘 믿긴. 자네를 믿었지."

"허어.."

수빈이 황당함에 말을 이어가지 못할 때 박실장이 신이 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140억에 수익률이 60프로니까 84억 아닌가. 이것저것 다 때고 80억에서 반 잘랐네. 자네랑 나랑 40억씩 반땅 하자고.. 이 돈은 자네가 아니었으면 냄새도 못 맡았을 돈이야. 꽁으로 번 돈이라고. 그러니 부담 가지지 말고 받도록 하게나. 그래야 나도 맘이 편할 거 같아."

수빈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봉투를 다시 박실장 쪽으로 밀었다.

"못 받습니다. 4억도 아니고 40억을.. 저 때문에 벌었다고 말을 하시지만 이건 실장님이 버신 게 맞습니다. 위험을 감수하고 베팅을 한건 제가 아니라 실장님이시니까요."

박실장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자네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네. 둘이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게 4월이었지? 그때 자네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네. 내가 물욕이 별로 없어 보인다고.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보게. 수빈군. 내가 보기엔 자네도 별로 물욕이 없는 사람이야."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저었다.

"실장님이 잘못 알고 계시는군요. 저 물욕 많습니다. 그러니 이번에 전 재산을 털어서 베팅을 한 거죠."

이번엔 박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아닐세. 그건 다른 이야기야. 물욕이 있어서 베팅을 한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돈이 필요해서 베팅을 한 거지. 비슷하게 들리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른 거라네. 그럼.. 물욕이 없는 자네가 왜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

박실장이 열정이 넘쳐흐르는 뜨거운 눈빛으로 수빈을 바라보았다.

"자신만의 회사를 차리고 싶은 거겠지. 기획사 아니면 영화제작사. 그 둘 중에 하나를 설립하고 싶어서 이번에 베팅을 한 거라고 생각하네. 내 말이 틀렸나?"

"흠.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제가 40억을 받을 순.."

박실장이 수빈의 말을 잘랐다.

"조건부로 받는 건 어떤가?"

"조건부요?"

"자네가 회사를 설립하게 되면 그 회사에 나를 채용해주게나. 어차피 수빈군이 하루 종일 사장실에 앉아서 펜대만 굴릴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수빈군은 한국을 벗어나 세계를 상대로 활약할 사람이야. 하지만 누군가 한 명은 회사를 지켜야지. 날 데려가서 써먹게. 날 부사장이나 전무 정도로 앉혀주면 내가 열심히 일하도록 하지."

"실장님 꿈이 시골 내려가서 농사짓는 거라고 하시지 않았나요?"

"맞아. 언젠가는 내려갈걸세. 하지만 지금은 아냐. 수빈군. 전에도 말했지만 난 자네랑 같이 일하는 하루하루가 너무나 즐겁고 행복하다네."

박실장이 흥분한 듯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갔다.

"피가 끓어. 알겠나? 몸속에서 피가 들끓어 오른다고. 젊었을 때처럼 아드레날린이 미친 듯이 솟구치는 걸 느낀다고. 마치 20대로 돌아간 기분이야. 오늘 아침엔 말이야. 마누라가 내가 좋아하는 쇠고기 국을 끓여서 손수 아침밥을 차려주면서 그러더군. 어젯밤에 옛날처럼 터프해서 좋았다고. 그래서 내가.."

수빈은 박실장의 말을 듣고 있다 짜증이 나서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

'이 양반이 지금 누구 염장 지를 일이 있나.. 애인도 없는 사람 앞에서 별소리를 다하고 있네.'

"그럼 이건 투자금입니까?"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고개를 저었다.

"난 그렇게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 아닐세. 그 돈은 자네에게 주는 나의 선물이야. 아니 청탁이라고 해두지. 취업 청탁. 어떤가? 내 제안이? 날 고용해 주겠나?"

박실장의 제안에 수빈은 잠시 머릿속으로 진지하게 고민을 하였다.

'박실장님 정도면 나쁘지 않지. 이쪽 계통에서 경험도 많고 가지고 있는 인맥도 풍부한 편이고. 나에게 부족한 점들을 채워줄 수 있을 거야. 기본적으로 좋은 사람이기도 하니..'

수빈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흠.. 청탁은 말이 안 되는 거 같습니다. 뜻도 안 좋고요. 그리고 세상에 40억짜리 취업 청탁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돈은 제가 임시로 빌리는 걸로 하죠. 무이자로요. 그 대신! 나중에 제가 회사를 차리면 그때 박실장님을 고용하고, 실장님 연봉을 아주 많이 쳐주는 걸로 해서 조금씩 상환하는 걸로 약속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좋네. 아주 좋아. 역시 수빈군은 내 복덩어리야. 이거 말년에 연봉을 아주 빵빵하게 받아보겠군. 아무튼 수빈군. 난 은퇴하기 전까지 자네 뒤만 따라다닐 생각이야.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40억이나 무이자로 빌려주시는 분인데.. 재벌 회장들도 그렇게는 못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장님?"

"말하게나."

"뻥튀기나 한번 하시죠."

"뻥튀기?"

"네. 뻥튀기. 나중에 회사를 차릴 때 자금이 두둑하면 두둑할수록 좋은 거 아니겠습니까. 다다익선이죠. 그런 의미에서 한번 더 베팅하시죠."

"호오. 여기서 또 한번 베팅을 한다고? 역시.. 자네랑 같이 있으면 피가 끓어. 스릴과 모험이 넘쳐흐른다고. 가슴이 다 두근거리는걸. 이번처럼 좋은 계획이 또 있는 건가?"

"지금 화랑 백화점 주가가 어떻게 되나요?"

"화랑 백화점? 거긴 왜? 지금은 거의 원상태로 다시 회복됐지. 월요일 하한가 치고 수요일 오전까지 계속 떨어지다가, 수요일 점심 지나서 오후부터 다시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네. 어제 상한가 치고 오늘도 계속 상승 중이라서 지금은 거의 다 회복한 상태야."

"자금을 많이 풀은 모양이군요."

"그룹 차원에서 지원이 있었다고 들었네. 시장에 풀린 물량을 거의 다 받아냈어. 그래서 주가가 다시 정상화가 된 거지."

"하긴.. 월요일에 제가 터뜨린 내용들은 다 반짝에 불과하죠. 김호진이 최고경영자도 아니고. 그나마 회장 직계라 효과를 본 거에 불과하니까요. 그리고 그날 제가 언급한 검찰 조사는 어차피 시작도 안 할 겁니다. 재벌이라 그 정도 막을 힘은 충분히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일시적인 쇼크 상태에 빠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거지."

수빈이 먹잇감을 눈앞에 둔 짐승처럼 흉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잡아먹기 딱 좋은 상태로군요. 먹음직스러운데요."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마 지금.. 화랑 백화점을 상대로 작전을 한번 더 하겠다는 속셈인가? 이제는 힘들지 않겠나? 저쪽도 한번 호되게 당해서 눈에 불을 키고 바짝 긴장하고 있을 텐데.."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장님. 김호진이가 절 타깃으로 해서 이번처럼 얼토당토않은 일을 꾸민 이유를 아십니까?"

"다른 이유가 있겠나. 자네가 연예인이기 때문이지. 2주짜리 진단서로 고소해봐야 일반인들은 별 피해가 없지. 뭐 경찰서 왔다 갔다 하느라 귀찮아지기야 하겠지만 끽해야 돈 백이면 다 해결될 사소한 일이니까.."

"맞습니다. 제가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연예인이기 때문입니다. 스캔들이나 루머에 치명타를 맞는 연예인이기 때문이죠. 이번 일은 연예인이기 때문에 겪는 숙명이나 비애 같은 겁니다."

잠시 틈을 두고 수빈이 지혜로운 눈빛으로 그리고 자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말입니다. 음이 있으면 양도 있는 법입니다. 연예인이기 때문에 불리한 점이 있다면, 연예인이기 때문에 좋은 점도 있는 게 세상의 이치입니다. 이번 작전에는 그 점을 십분 활용할 생각입니다."

"어떻게 말인가?"

수빈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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