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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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 밴을 타고 BJ. Ent. 사옥에 도착했을 때 카톡이 하나 도착했다.
- 135,000,000
카톡을 확인하고 창밖을 내다보니 BJ. Ent. 사옥 주차장에 각종 방송국과 신문사들의 취재차량이 줄을 지어 빽빽이 주차해 있는 게 눈에 뛴다. 기가 질릴 정도로 많은 숫자였다.
매니저 역시 도열하듯 서있는 수많은 취재차량을 확인한 듯, 주차장 한 구석에 조심스럽게 차를 세운뒤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수빈아. 도착했다. 어떡해? 아까 말한 대로 할 거야? 아님 강행돌파?"
"형. 작전대로만 하시면 돼요. 형은 최대한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가시기만 하면 됩니다. 잊지 마세요. 절대 무리하게 사람들을 밀치거나 뚫고 나가면 안 됩니다. 기자들의 반감을 사면 안되니까요. 나머진..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후. 그래. 알았다."
"제가 부탁한 건 구하셨나요?"
"그래. 뒤에 실어 놨다."
"잘하셨습니다. 그럼 나중에 저 기자회견 때 준비 좀 해주세요."
"그래. 알았다."
매니저가 각오를 다지듯 주먹을 불끈 쥐며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매니저가 열어주는 차 문으로 수빈도 내렸다. 수빈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옥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던 취재진들이 수빈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오기 시작했다.
꿀을 향해 모여드는 개미 떼처럼 삽시간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온다. 굳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매니저를 앞세우고, 매니저의 등 뒤에서 천천히 걸어가며 수빈은 자신에게 뛰어오는 기자들을 예리하게 관찰했다. 표정, 시선, 눈빛 등을 빠르게 분석하며 찰색을 행하였다.
기자들이 수빈을 둘러싸기 시작하자 매니저가 약속대로 슬쩍 빠졌다.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진다. 수십여 개의 마이크와 녹음용 핸드폰이 수빈의 얼굴 앞으로 치고 들어왔다.
- 수빈씨. 정말 은퇴합니까?
- 동대구역에서 삼천 배를 올릴 건가요?
- 폭행죄를 인정하십니까?
- BBG에서 언제 탈퇴합니까?
- 피해자에게 제대로 사과는 하셨나요?
수빈은 기자들이 떠드는 소리를 들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후. 찰색 결과가 너무 안 좋군. 기자들이 거의 다 나에게 적대적이거나 불구경 하듯 즐기고 있는 상태야. 인기 절정의 연예인이 한순간 나락으로 추락하는 게 너무나 재밌다는 생각들 뿐이겠지. 예상은 했지만.. 막상 확인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않은데.'
수빈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한 손을 위로 들며 말했다.
"다들 진정하세요. 이러면 인터뷰 못해드립니다."
잠시 후 기자들이 조용해지자 수빈이 입을 열었다.
"오늘 오후 2시 반에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지만.. 이렇게 추운 겨울날 아침부터 취재를 위해 고생하시는 기자분들에게, 제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간단하게 몇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수빈은 억울함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1억 3천 오백만원. 이 금액이 뭘 뜻하는지 아십니까? 조금 전 모 업체 쪽에 저희 소속 사무실에서가 아니라.. 제가 직접! 제 돈으로! 손해배상을 해준 액수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번 사태로 제가 엄청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여러 업체들에게 제가 수십억, 어쩌면 수백억을 배상해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도저히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어서, 오늘 오후에 기자회견을 하기로 한 겁니다."
수빈은 기자들이 받아쓸 시간을 잠시 준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거짓된 주장을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말씀드립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우치고 소(訴)를 취하할 것을 기대하면서 제가 며칠간 꾹 참고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저도 못 참습니다. 만약 기자회견 전까지 고소를 취하하지 않는다면.. 이제는 저도 적극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며칠간 기회를 줬고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분명히 기회를 드렸습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시고 빨리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소를 취하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머지는 기자회견 때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빈이 눈짓을 하자 매니저가 큰 소리로 말했다.
"대본 리딩에 늦었습니다. 기자 여러분. 비켜주시죠. 이 정도면 충분하시지 않습니까. 자자. 이따 기자회견 때 다시 인터뷰하시고.. 다들 비켜주세요."
기자들이 순순히 비켜주자 수빈은 매니저의 뒤를 따라 사옥으로 걸어갔다. 매니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생각보다 금방 끝나네? 하이에나 같은 기자들에게 한참을 시달릴 줄 알았는데.."
"탐스러운 고깃덩이를 던져줬잖아요. 1억 3천 오백만원. 어설프게 인터뷰를 계속하는 것보다 제가 손해 배상해준 금액을 정확하게 불러줬으니, 다들 그걸 빨리 기사화할 생각에 쉽게 물러나는 거죠."
"예상한거냐?"
"당연하죠. 이러려고 아침 일찍 디젤에서 당장 안 줘도 된다는 걸 억지로 떠안겨주다시피 해서 손해배상을 해줬는데요. 억대가 넘는 피해액수가 만천하에 공표되었으니까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일 겁니다. 아마 오후 기자회견이 라이브로 전국에 나가면 시청률이 장난 아닐걸요? 그리고.. 법정에서 증거자료로 쓰기에도 딱 좋고요."
매니저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
"역시 난.. 내가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될 거 같다."
사옥 로비를 지나 대본 리딩이 잡혀있는 회의실로 들어가자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제작진, 출연 배우들, 취재진 등등. 수빈이 들어서자 플래시가 계속해서 터졌다. 다행히 사전에 언질이 있었는지 수빈에게 접근하는 취재진은 없었다.
수빈은 봉감독에게 다가가 인사을 올렸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제가 너무 많이 폐를 끼친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봉감독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폐라니. 뭔 소리야? 대본 리딩 현장에 취재진이 이렇게 많이 온 게 누구 덕인데.. 덕분에 영화 선전을 공짜로 잔뜩 하잖아. 폭행 문제는 어차피 자네가 알아서 잘 해결할 거고.. 안 그래?"
"네. 제가 알아서 잘 해결하도록 하겠습니다."
봉감독이 수빈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난 처음부터 수빈이 너와 관련된 폭행 관련 기사 따위는 믿지도 않았어. 지금도 별 관심 없고.."
수빈은 약간 어이가 없다는 눈빛으로 물었다.
"뭘 믿고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십니까?"
"내가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사람으로 보여? 네 성격상 차라리 목을 따서 아무도 모르게 어디에 갖다 묻었으면 묻었지 이렇게 어설프게 처리할 리가 없을 테니까.. 보나 마나 오보 아니면 조작이겠지."
봉감독의 말에 수빈이 한 템포 늦게 반응했다.
"..감독님 눈에는 제가 그런 성격으로 보이십니까?"
"수빈아. 나도 어렸을 때부터 머리 좋다는 소리 많이 듣고 자란 놈이야. 천하의 봉순호에게 면전에서 그따위로 영화 찍지 말라고 호통치는 놈이 예사 놈이겠냐? 그것도 개봉한 영화 한편 없는 초짜 배우가.. 나도 그 정도 눈치는 있는 사람이다."
그때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회의실 입구에 활짝 피어난 장미처럼 아름다운 여성이 코디로 보이는 여성과 함께 등장했다. 웅성거림이 점점 커지며 취재진들의 플래시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봉감독과 수빈도 그 여성을 쳐다보았다.
"샛별이가 왔네요. 프리마돈나의 등장이로군요.."
수빈의 중얼거림에 봉감독이 화답했다.
"역시 아름다워. 얼굴이 깡패야 깡패.."
회의실 쪽으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던 샛별이 입고 있던 붉은색 롱 코트를 벗어 코디에게 건네줬다. 그 순간 회의실 곳곳에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플래시가 미친 듯이 터졌다.
아래에는 통일감을 주기 위해서인지 검은색 하이힐에 아름다운 각선미를 돋보이게 하는 검은색 쇼트 팬츠와 같은 색깔의 팬티스타킹을 신고 있었고, 위에는 피팅감이 돋보이는 순백색 골지로 된 슬림한 니트를 입고 있어서 볼륨감 있는 몸매가 더욱 두드러져 보였다.
"감독님. 몸매도 깡패 같은데요."
"심플 이즈 베스트. 몸매가 되니 뭘 입어도 예술이네.. "
봉감독이 수빈의 어깨를 툭 치며 놀리듯 말했다.
"수빈아. 잊지 마라. 3월 생이라니까 아직 몇 달 더 기다려야 된다."
봉감독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수빈이 뭐라 대답을 하려는 찰나, 봉감독이 샛별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가 버렸다. 봉감독이 환하게 웃으며 샛별을 가볍게 끌어안자 또다시 플래시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대본 리딩이 시작되었다. 봉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은 봉순호 입니다."
사방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그럼 먼저 이번 영화의 여자 주인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김샛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뉴페이스죠. 이번 영화가 첫 데뷔작인 김샛별 양입니다. 제가 직접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오디션에서 수많은 경쟁자를 물리치고 뽑혔습니다. 앞으로 좋은 영화 많이 찍을 수 있도록 여러분들이 많이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샛별이 이쪽 저쪽으로 몸을 돌리며 허리를 숙이고 인사를 하자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번 영화의 남자 주인공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봉감독이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수빈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아이돌 출신이니 다들 잘 아시죠? 요즘 누굴 두들겨 팼다고 소문이 잘못 나는 바람에 한참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번 영화의 각본에 직접 참여했고, 이번 영화의 음악 감독이며, 최종 편집 작업을 저랑 같이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번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수빈입니다."
장황한 수빈의 소개에 사방에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수빈은 여기저기로 인사를 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무슨 생각으로 소개를 그렇게 하신 거지? 나중에 여쭤봐야겠는데.'
본격적인 대본 리딩이 시작되었다. 진지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된 대본 리딩이 휴식 시간 없이 4시간 가까이 지속되었다. 마침내 대본 리딩이 모두 끝나고 수빈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 후 따로 준비되어 있는 대기실로 갔다.
잠시 후 있을 기자회견을 위해 분장을 매만지며 수빈은 핸드폰을 들여다보았다. BBG 멤버부터 자신의 지인들까지.. 수많은 문자들이 도착해 있었다. 심지어 샛별에게서도 자신을 걱정하는 문자가 도착해 있었다.
'애는 문자로 우네 울어..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수빈은 샛별의 문자를 읽어본 뒤 자신이 원하는 문자를 찾기 시작했다. 마침내 원하는 문자를 발견했다.
+ 3, 4, 3 = 92,234,500,000
- 4, 8, 6 = 76,293,410,000
빨검빨F - 검파빨M - 검백파F
수빈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자에 적힌 내용들을 암기했다. 대기실로 매니저가 들어왔다.
"수빈아. 기자회견장 쪽에서 방송 준비가 다 끝났다고 연락 왔다. 네가 준비되는 대로 가면 된다."
"네. 형. 저도 준비 끝났으니까 바로 가죠."
수빈은 의자에서 일어나며 강남 경찰서와 서울 중앙 검찰청 그리고 서울 중앙 지법 인근에서 자신의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 작전 개시.
평온하던 수빈의 얼굴이 기자 회견장 쪽으로 걸어가며 조금씩 딱딱하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긴장한 얼굴로 기자 회견장 문의 손잡이를 꽉 잡고 있는 매니저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날 건드린 대가를 제대로 치르게 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