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98화 (98/236)

# 98

33 - 1

수빈은 회의실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았다. 재무회계팀, 홍보부, 법무팀 소속 직원들이 열심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A&R 팀이랑 신인기획팀 빼고는 다 와있네.'

수빈이 회의실에 모습을 드러내자 재무회계팀 강성호 과장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수빈씨. 어서 오세요."

"강과장님. 오랜만입니다."

"축하 드립니다. 요즘 하시는 일마다 대박을 터뜨리시는군요."

"대박요?"

"네. 설마.. 모르십니까? 어제 나간 디젤 청바지 광고가 지금.."

수빈은 강과장의 말을 잘랐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제가 찍은 광고가 핫하다니 당연히 저로서는 좋은 일이지요. 그렇지만.. 대박이 터진 건 아니죠."

수빈의 말에 강과장이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그건 수빈씨가 현재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렇게 생각하시는 겁니다. 지금 전국에 있는 디젤 매장에 여성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답니다. 특히 방문한 손님이 실제 구매까지 이어지는 실구매율이 엄청나게 높다고 보고되고 있습니다. 일부 매장에서는 인기상품의 44, 55, 66 등과 같이 많은 여성들이 주로 찾는 사이즈가 품절 상태에 이르고 있어서 지금 재고 파악과 함께.."

수빈은 열변을 토하는 강과장의 말을 다시 잘랐다.

"그래서요? 디젤 상품이 잘 팔리는 거랑 저랑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수빈의 말에 강과장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이신지.."

"제가 알기로는 이번 광고 계약은 6개월짜리 단발입니다. 그리고 인센티브 조항이 전혀 없죠. CF 방영 이후로 유의미하다고 판단되는 매출 증가액 또는 수익 증가분에 대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는 걸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디젤이 날개 돋친 듯 상품을 팔아재껴도.. 제 앞으로는 천원 한 장 안 떨어진다는 소리죠."

그제서야 수빈이 무얼 지적하는지 알아들은 강과장이 신음성을 토했다.

"아.."

옆에서 듣고 있던 법무팀 조대리가 급히 끼어들었다.

"계약을 할 때 저희 법무 쪽에서 상세히 검토를 해봤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통상의 계약과 비교해 볼 때 특별한 문제가 없었고 7억이라는 충분한 금액과.."

수빈은 손을 들어 조대리의 말을 잘랐다.

"오해를 하고 계시는 모양입니다. 전 이번 CF 계약에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만약 있었다면 제 성격에 그 자리에서 뭐라 했겠죠. [실적이 따르지 않는 몸값은 거품에 불과하다.]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따라서 얼마 전 디젤과 계약한 조건들은 그 당시 상황에서 베스트라고 저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CF가 히트를 친다고 해서 제가 대박을 터뜨린 건 아니죠. 디젤이 대박이 난 거라면 모르겠지만.. 그래서 말입니다. 차후부터는 계약조건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차후와 관련해서 말입니다. 지금 디젤에서 이번 광고와 관련해서 보너스도 지급하고 다음 광고의 출연료까지 인상해 주겠다며 최대한 빨리 후속 광고를 찍자는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안 찍습니다."

수빈의 단정적인 말에 회의실이 일순 정적에 빠져들었다. 몇 초의 시간이 흐른 후 정신을 수습한 조대리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조건이 너무 좋습니다. 새로 찍는 광고는 출연료 10억에 일전 광고에 대한 보너스로 1억 정도를 더 가산해서 11억에 광고를 찍자는 제의가 이미 들어와 있습니다. 아직 확정이 된 금액은 아니지만.. 이건 국내 연예인들 중에서 탑 중에서도 탑인 액수입니다."

"인센티브는요?"

"아직 거기까지는 말이 없습니다."

"그럼 안 찍습니다. 일단 디젤에서 이번 광고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할 때까지는 무조건 기다려야 합니다."

"문제점요?"

그때 홍보부 김시후 대리가 끼어들었다.

"이번 광고의 문제점이라면.. 혹시 지금 넷상이나 SNS 상에서 최애진 배우가 욕을 얻어먹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겁니까?"

"그건 문제가 아니죠. 어차피 그 정도는 예상했던 거고 최배우님도 찍기 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물에 빠뜨렸다고 저의 열성팬 분들에게 한동안 욕을 먹겠지만 어차피 그건 한때에 불과합니다. 제가 뭐 모 드라마에서처럼 김치 싸대기를 맞은 것도 아니고.. 사나흘이면 가라앉을 겁니다. 그 대신 이번 CF에서 최.애.진. 이름 석자를 제대로 홍보하지 않았습니까. 그분 입장에서는 남는 장사를 한 거죠."

강과장이 끼어들며 물었다.

"그럼 뭐가 문제라는 겁니까?"

"아까 과장님 입으로 직접 말씀하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제가요?"

"네. 매장에 여성들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면서요."

"그게.. 왜 문제가 되는 겁니까?"

"한국에는 여성들만 살고 여성분들만 청바지를 입나요? 남성분들은요?"

"아.."

"물론 대부분의 가정에서 경제권을 여성이 가지고 있고 쇼핑에 대한 거부감이 적기 때문에 즉각적인 반응이 여성에게서 나타날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번 광고는 여성을 타깃으로 해서 찍은 겁니다. 이번 광고의 효과로 남성들이 쇼핑에 나서는 일은 잘 없을 겁니다. 디젤에서 그걸 깨닫기 전에는 계약 관련해서 어떠한 액션도 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 후속 광고 콘셉트는.."

"당연히 남성을 타깃으로 해서 찍겠죠. 콘티도 이미 생각해 놨습니다. 남성분들 중에서도 특히 자가용을 소지하고 있는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을 타깃으로 할 생각입니다."

"콘티가 어떤 내용입니까? 1편에 이어서 두 사람이 다시 화해를 하게 되는 건가요?"

수빈은 호기심을 못 참고 물어보는 강과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대답했다.

"아직은 비밀입니다만.."

"아. 죄송합니다. 너무 궁금해서.."

"내용을 알려드리기에는 그렇고.. 2편은 1편에 연속해서 이어지는 게 아닙니다. 프리퀄로 찍을 겁니다."

"아. 프리퀄이군요.. 그럼 수빈씨 생각에는 언제쯤 디젤에서 문제점을 파악할 거 같나요?"

"문제가 있다는 걸 파악하는 데에는 일주일이면 충분할 겁니다. 하지만 실제 후속 광고 관련 협의는 한 달 정도가 지나야 시작될 겁니다."

"왜 그런 거죠?"

"문제가 있다는 건 알아챘지만, 월별 매출 현황 파악이 끝나야 디젤 경영진 측에서 자료를 보며 세밀하게 분석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 자료 분석이 끝나야.. 그때야 비로소 제대로 된 협상 테이블이 만들어질 겁니다."

"그럼 그동안 우리들은 뭘 해야 하는 거죠?"

"그걸 왜 저에게 물어보시나요? 각 부서에서 알아서들 하셔야죠."

수빈의 대답에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강과장이 대답했다.

"...수빈씨 생각이 궁금해서요."

"뭐 굳이 제 생각을 물어보신다면.. 준비 작업으로 소문을 적당히 흘리는 게 좋겠죠. 이번 광고에 여성들만 반응한다. 남성들이 반응할 광고가 필요해 보인다. 우리 쪽에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고 얼핏 들은 거 같다. 하지만 싸게 찍을 마음은 절대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 이런 식으로요."

"좋은 작전 같은데요."

"그리고 그 소문이 충분히 돌았을 때쯤 결정타를 한방 날려야겠죠."

"결정타요?"

"한국에 청바지 메이커가 디젤만 있냐. 리바이스도 있고 캘빈클라인도 있고 게스도 있고.. 다른 의류 회사에서 광고 계약 기간인 6개월이 끝나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더라.."

"..멋진 계획이로군요."

"상품을 잘 팔리게 해줬으면 응당 보상도 잘 받아야죠. 다음 광고는 대가를 제대로 받을 생각입니다. 만약.. 디젤 측에서 그걸 못 받아들이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디젤 쪽 광고는 찍지 않을 거니까 미리 알아 두시길 바랍니다."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수빈의 치밀한 계획에 감탄하며 다들 머리를 끄덕일 때 법무팀 조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디젤에서 액수는 적습니다만 의상 협찬 관련해서 계약을 제시한 게 있습니다. 이건 어떻게 처리할까요?"

조대리의 말에 수빈은 속으로 짜증을 내었다.

'아니 왜 자꾸 자기들이 해야 할 일들을 나한테 물어보는 거야?'

수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하나같이 다들 자신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하고선 수빈은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떤 계약 조건입니까?"

"한 달 정도 BBG에 의상 협찬을 하고 오천만 원 정도를 보너스 겸 찬조금 형태로 지급하겠답니다. 아마 지금 분위기를 계속 이어갈려고 하는 모양인데요."

조대리의 말에 수빈이 피식 웃었다.

"디젤에서는 BBG가 거지들이 모여서 만든 그룹인 줄 아나 봐요.. 그런 조건이면 안 한다고 하세요. 그 대신 이렇게 전달해 주세요. 이번 주와 적어도 다음 주까지는 BBG의 디스패치가 음악 관련 방송에서 계속 1위를 차지할 거다. 그러니 다음 주까지는 음악 방송을 나갈 때마다 디젤의 의상을 입어줄 용의가 있다. 그 대신 한 프로당 2천만 원을 내라. 그러면.."

수빈은 잠시 머릿속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내일 있을 엔카부터 뮤뱅, 음중, 인기가요까지 4프로니깐 2 주면 8프로. 총 1억 6천을 내라. 그리고.. 그렇게 계약하면 한가지 특혜를 주겠다고 전달하세요."

"어떤 특혜를 말입니까?"

"조만간 외국 시장을 겨냥한 BBG의 디스패치 뮤직비디오를 찍을 예정인데 그때 디젤의 옷을 입어주겠다. 1억? 2억? 뭐 그 정도면 될 거 같은데.. 아무튼 자세한 액수는 법무팀이랑 재무팀에서 알아서 정해 주시고.. 대충 그 정도 조건이면 하고 아니면 안 한다고 튕기세요."

"네. 알겠습니다. 저희 쪽에서 최대한 뽑아낼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조대리의 말이 끝나자 강과장이 슬쩍 물었다.

"이번 디스패치 뮤비는 수빈씨가 직접 작업할 거라고 들었는데.. 어떤 콘셉트로 찍을 건지 물어봐도 됩니까?"

"KISS! 이번 뮤비는 키스를 콘셉트로 찍을 생각입니다."

"키스라.. 자세한 내용은 비밀인가요?"

"비밀까지는 아니지만.. 아직 콘셉트 단계이고 콘티를 덜 짠 상태라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좀 그렇네요."

"알겠습니다."

강과장과의 대화가 끝나자 수빈은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주위를 둘러본 후 말했다.

"더 이상 의논할 건 없으시죠?"

그때 홍보팀 김대리가 입을 열었다.

"지금 디젤 CF와 관련해서 넷상에 수많은 뉴스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만.. 저희 회사 차원에서 주목을 확 끌만한 아이템이나 재밌는 에피소드 같은 게 혹시 있을까요?"

"흐음. 사람의 주목을 끌만한 아이템이나 에피소드라.."

수빈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그전에 홍보팀에게 하나 물어보죠."

"네. 수빈씨."

"홍보팀에서 인터넷 경매를 진행할 수 있습니까?"

"경매요?"

"네. 경매요."

"해본 적은 없지만.. 굳이 하라고 하면 못할 거까지는 없죠. 어떤 일로 그러시는 건지?"

"이번 디젤 CF 콘티를 제가 짰다는 걸 여기 있는 분들은 이미 다 아실 테고.. 제가 직접 그린 그 콘티북을 경매에 내놓으면 어떨까 합니다. 일전에 보니 제가 그린 그림이 제법 고가에 팔리더군요. 제 사인이 들어간 디젤 CF 콘티북 경매를 하고 수익금 일체는 얼마 전 포항 지진 때 피해를 입은 분들에게 성금으로 내놓는다고 하면 제법 홍보가 될 거 같은데요."

"아주 좋은 생각 같습니다. 제가 적극적으로 추진해 보겠습니다."

"그럼 제가 내일 매니저 형을 통해 홍보팀에게 콘티북을 전달해 드리죠. 실물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야 경매가 될 테니까요."

"알겠습니다."

"후. 더 이상 안건은 없으시죠?"

사람들을 매섭게 째려보며 하는 수빈의 질문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럼 전 연습실에 내려 가 있을 테니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연락 주세요."

잠시 후 수빈은 연습실에서 영화 음악 관련하여 공부를 하였다. 특별한 일이 없는 듯 자신을 찾는 사람이 없자 공부에 집중하던 수빈은, 어느덧 봉순호 감독과 만나기로 한 약속시간이 다 되어서 밴을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하였다.

강남 신사동에 위치한 고급 일식집의 방으로 들어간 수빈은 자신보다 먼저 와 있는 봉순호 감독을 발견하고 인사를 하였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그만 늦었습니다."

"아직 7시 십분 전입니다. 제가 너무 일찍 온 거죠. 앉으세요."

자리에 앉은 수빈이 입을 열었다.

"김성희씨는 아직 도착을 안 했나 봅니다."

"아뇨. 제가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무슨 이유인지 혹시 알 수 있을까요?"

봉감독이 수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약속을 정할 때에는 수빈씨가 지금 핫한 CF의 콘티 작업에 참가했다는 소문을 듣고서 약속을 잡은 겁니다. 이번 영화의 감독으로서 능력 있는 배우와 제작사의 담당 직원과 함께 영화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런 거였죠. 그랬는데.."

"그랬는데요?"

"오늘 오후에 그 CF를 찍은 감독이 박수종 감독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박감독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서 통화를 했죠. 물어볼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았으니까.."

"박수종 감독님과 잘 아십니까?"

"한때는 내 밑에 있는 연출부에서 퍼스트 조감독을 하던 친구니까 당연히 잘 알죠. 대학교 직속 4년 후배이기도 하고.."

"아하. 두 분이 예전부터 잘 아시는 사이셨군요."

"수빈씨도 알다시피 이 바닥이 좁아요. 그래서 이번 CF와 관련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래서 마음을 바꿨습니다. 수빈씨와 단둘이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 그래서 김성희씨 한테는 미안하지만 오늘 자리에는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수빈씨?"

"네. 감독님. 말씀하시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