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94화 (9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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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봉순호 감독의 질문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단 먼저 설명을 좀 드려야 할게 있습니다. 정미영 회장님이나 저나 머릿속으로 이번 영화의 감독으로 봉감독님을 가장 먼저 떠올렸습니다. 일전에 정회장님 자택에서.."

그 순간 봉감독이 수빈의 말을 잘랐다.

"[오래된 소년]의 박찬옥 감독은 고려하지 않았나요?"

수빈은 봉감독의 질문에 가볍게 심호흡을 하며 생각했다.

'지금 나를 테스트해보는 건가? 후. 그렇다면 봉감독의 기분이 나쁘지 않게 제대로 대답을 해야겠지..'

"그분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뭐래도 한국에서 명감독이라고 하면 봉감독님이 1순위 아니겠습니까? 일전에 정회장님의 자택에서 그런 대화를 나눈 적도 있고요. 그리고 박찬옥 감독은 이미 영국 드라마 [더 리틀 드러머 걸]을 제작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캐스팅도 이미 진행 중이라서 남자 주인공으로 알렉산드 스카스가드를 낙점해서 계약을 마쳤다는 소식도 들었고요."

"맞아요. 수빈씨가 제대로 알고 있네요. [레전드 오브 타잔] 남자 주인공으로 나왔던 스웨덴 출신의 배우죠."

'나를 테스트하는 게 맞는 거 같군.'

수빈은 다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회장님께 다른 감독을 추천한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봉감독님께서 내년 개봉을 목표로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입니다. 즉, 봉감독님이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을 일은 없겠구나라고 제가 오판을 하게 된 거죠. 그래서 봉감독님이 되면 제일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차선책으로 누가 맡는 게 좋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가 그 감독 분을 추천하게 된 겁니다."

수빈의 말에 봉감독이 대답했다.

"수빈씨가 들은 정보가 맞아요. 원래 [기생충]이라는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어요. 만약 내가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는다면 [기생충] 영화 투자자들에게 제작 지연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줘야만 합니다."

"그럼 정회장님이?"

봉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해서 내주겠다고 하더군요. 대충 계산해도 5억 가까이 될 건데.."

그 말에 수빈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회장님과 저의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그 부분입니다. 회장님은 영화의 투자자로서 그 정도 금액은 대신 물어주고서라도 반드시 봉감독님을 데려와야겠다고 결심을 하신 거고, 전 단순히 배우로서 봉감독님은 도저히 안되겠구나라고 지레짐작을 해서 오판을 한 거죠."

"그렇군요. 그럼 다시 돌아가서.. 수빈씨가 왜 그 감독을 추천했고 뭘 믿고 1,400만을 장담한 건가요?"

봉감독의 질문에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양반이 촬영장에서 세세한 소품까지 직접 챙길 정도로 꼼꼼한 성격이라더니.. 절대 그냥은 안 넘어갈 모양이네. 이렇게 된 이상 차라리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고 협조를 부탁하는 게 낫겠는걸.'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감히 그런 말을 한 건...."

수빈의 말을 다 들은 봉감독이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생각하던 봉감독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수빈씨가 말한 게 다 진실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뭐라고 확답을 드릴 수는 없겠군요. 솔직히.. 아직까지는 수빈씨의 말을 못 믿겠어요. 그래서 말이죠. 수빈씨?"

"네. 감독님. 말씀하시죠."

"만약 내가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게 된다면 시간을 두고 테스트를 해보겠습니다. 수빈씨가 지금 나에게 말한 게 사실인지 아닌지.. 만약 사실이라고 확신이 들면.. 그때 다시 수빈씨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군요."

"알겠습니다. 감독님. 그렇게 하시죠."

"이것 참.. 흥미롭군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수빈씨가 촬영 기간 동안 나에게 과연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가 큽니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겠습니다. 감독님. 그럼 이번 영화를 맡기로 결심을 하신 겁니까?"

"수빈씨 때문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검토해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정미영 회장의 자택 앞에 도착한 일행은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날 근 3주 만에 처음으로 한가한 오전 시간을 가지게 된 수빈은 전날 심사위원들과 과음을 한 탓인지 그만 늦잠을 자버렸다. 아침 10시가 넘어서 늦은 아침을 차리며 수빈은 중얼거렸다.

"오늘은 저녁에 CF 찍는 거 말고는 스케줄이 없으니 마음이 느긋하네."

아침을 먹으며 수빈은 핸드폰의 메모장을 보면서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검토하였다.

"이제 급한 일들은 거의 다 끝난 거 같은데.. 남은 게 뭐가 있으려나."

'팬사인회는 이미 다녀왔고, 드라마도 다 끝났고, 신곡도 성공적으로 발표했고.. 어디 보자.. 그럼 남은 게 뮤란의 스페셜 앨범에 들어갈 그림인데 이건 거의 다 그려가니까 별문제 없을 거고, NAMA 무대를 위해서 홍콩에 한번 다녀와야 하겠군. 이건 하루면 다 끝날 거고. 연말에 시상식에 참석하는 건 아직 날짜가 멀었고..'

수빈은 메모장을 쳐다보며 뿌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몇 주간 미친 듯이 돌아다니며 일을 처리했더니 그렇게 많아 보이던 일들이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앞으로는 영화에만 집중하면서 간간이 다른 스케줄들을 소화하면 되겠는걸."

그때 마치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수빈의 핸드폰이 맹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잠시 후 회사로 나간 수빈은 박실장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안으로 들어간 수빈은 박실장을 발견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실장님. 안녕하세요."

"미안하네. 수빈군. 월요일 아침부터 사무실로 불러서.. 오래간만에 쉬는 시간이라고 들었는데 내가 면목이 없군."

"아닙니다. 실장님. 일이 있어서 부르셨을 건데 어쩔 수 없죠. 무슨 일입니까?"

"계약 때문이네."

"계약요?"

"달빛 속의 호위무사 제작진 쪽에서 연락이 왔어. 인센티브 항목을 새로 집어넣어서 자네와 재계약을 맺고 싶다고 하더군."

"호오. 그동안 연락이 도통 없길래 재계약 의사가 없는 걸로 알았는데.. 그쪽에서 마음이 바뀌었나 봐요?"

"들리는 말로는.. 장감독이 제작진과 대판 싸웠다더군.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말이야."

"감독님이 고생 많이 하셨겠는데요. 얼핏 분위기를 들어보니 그쪽 제작진이 보통 깐깐한 게 아니던데.."

"드림픽처스가 예전부터 예산 관련해서 빡빡하게 굴기로 유명한 제작사지."

"그렇군요. 인센티브는 어떤 조건이랍니까?"

"자네가 600만 이상일 때 100원을 받겠다고 했다면서?"

"네. 조연이 그 이상 요구하는 건 무리 같아서요."

"저쪽에서 700만에 150원을 제시했네."

"700만이라.."

박실장이 화가 났는지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수빈군에게 돈을 안 주겠다는 소리랑 똑같아. 일전에 히트 쳤던 범죄의 도시 최종 스코어가 680만이라고 말했던 거 기억하지? 이번 계약은 그냥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야."

수빈은 잠시 머릿속으로 빠르게 계산을 한 후 입을 열었다.

"꼭 그렇지 않을 수도 있죠. 실장님?"

"후우. 말하게나."

"원래 욕심을 과하게 부리면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법입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계약 조건을 바꿔주시죠."

"어떻게 말인가?"

"800만에 300원으로요. 이쪽에서 그렇게 제시하면 아마 달성이 불가능한 스코어라고 생각해서 제작사에서 덥석 물 겁니다."

"자네가 노리는 게 뭔지는 알겠네만.. 가능하겠나?"

"제작사에서 안 주겠다고 버티는데 괜히 매달려봤자 의만 상합니다. 그런 식으로 억지로 푼돈 뜯어먹느니 크게 한번 질러봐야죠. 잭팟을 노려보는 게 나을 거 같습니다."

"알겠네. 그 정도 조건이면 바로 입질이 올 거야. 아마 오늘이라도 계약이 가능할걸세. 지금 법무팀에게 그런 조건으로 계약서를 만들어 오라고 할 테니까 잠시만 기다리게나. 숫자만 고치면 되니까 금방 들고 올걸세. 아무래도 자네의 사인이 필요할 테니까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가게나.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처리하겠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저쪽에서 나중에 딴소리 못하도록 계약할 때 단단히 옭아매셔야 할 겁니다."

"YK 법무팀이 얼마나 유능한지 자네가 아직 모르는군. 그런 건 걱정 말게나."

"알겠습니다."

잠시 후 수빈은 법무팀에서 급히 만들어서 들고 온 서류에 사인을 한 뒤 박실장의 방을 나섰다. 그런 다음 뮤란의 스페셜 앨범 진척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A&R 팀 사무실에 들렀다.

"100만장이 이미 넘었다는 말입니까?"

깜짝 놀란 수빈의 말에 정팀장이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전주에 벌써 돌파했지. 기세가 한풀 꺾이긴 했지만 아마 최종적으로 계산을 해보면 150만 장은 넘게 팔릴 거야."

"이야. 대단하군요."

"한국과 시장 규모가 다르지 않은가. 일본 역대 앨범 판매 1위가 몇 만장인지 아는가? 780만 장이라네. 앨범 하나로 800만 장 가까이 팔아치우는 게 그쪽 시장이야. 150만 장은 일도 아니지. 그리고 150만 장 팔아봐야 역대 판매 랭킹 10위 근처도 못 간다네. 아마 350만 장 정도는 팔아치워야 그나마 10위권에 도전이라도 해볼 수 있을거야."

"뮤란은 그럼?"

"요즘 일본에서 활동하느라 정신없네. 다들 돈방석에 올라앉아서 피곤한 줄도 모를걸?"

"그렇군요."

정팀장이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수빈에게 말했다.

"고맙네. 수빈군. 자네 덕분에 A&R 팀원들이나 앨범에 참여했던 후배들이나.. 다들 오까네 좀 만지게 되었어. 나도 마찬가지고.."

"뭘요. 저도 다 돈 벌자고 하는 일인데요. 다들 많이 버셨나 봐요?"

"아무리 적게 잡아도 인센티브나 저작권으로 다들 억 가까이는 받을 거야. 자네가 버는 거랑 비교하면 민망한 액수지만.. 월급쟁이들에게는 정말로 큰 돈이라네."

"잘 됐네요. 그럼 지금 다른 팀원 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지금 스페셜 앨범 작업하느라 열흘째 녹음실에서 먹고 자고 하고 있지. 다들 이번 기회에 연타로 대박을 터뜨려서 강남에 집 사서 이사 가겠다고 난리야 난리."

"다들 결혼하지 않았나요? 유부남들이 그렇게 오랫동안 집에 안 들어가면.."

"자네가 아직 결혼을 안 해서 잘 모르는군. 남편이 대박 찬스를 잡아서 강남에 집을 살 정도로 떼돈을 벌어 오겠다는데.. 집에 며칠 안 들어온다고 뭐라 할 부인이 있을 거 같은가? 피곤하다고 집에 들어가서 쉬고 있으면 빨리 일하러 안 나가냐고 엉덩이를 걷어찰걸세."

"그렇군요. 제가 결혼을 해본 적이 없어서.. 그럼 언제쯤 완성본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넉넉잡아서 한 주만 더 기다려주게. 그럼 1차 완성본을 들어볼 수 있을 거야. 그때 수빈군이 들어보고 고쳐야 할 부분이나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적해주면 우리가 다시 밤새워서 수정 작업을 하겠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1주일 정도 뒤에 다시 뵙는 걸로 하죠."

말을 마치고 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정팀장이 따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수빈군."

"네. 말씀하시죠."

"수빈군 아니 수빈씨! A&R 팀은 수빈씨를 위해서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으로도 A&R 팀과 꾸준히 작업을 해 나갈 생각이니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리고 존대는 불편합니다. 팀장님. 그러니 말 놓으세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대방에게 떼돈 벌게 해주는 분이 윗사람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앞으로는 존대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돈 문제를 떠나서.. 수빈씨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 다음에 뵐게요."

도망치듯 A&R 팀 사무실을 빠져나온 수빈은 주차장으로 걸어갔다. 밴을 타고 CF를 찍기 위해 이동하면서 수빈이 물었다.

"형. CF 촬영지가 어디래요?"

"신라호텔에서 찍는다는데."

"신라호텔이면.. 호텔 로비나 객실 같은 곳에서 찍는 건가요?"

"아니. 신라호텔에 있는 어반 아일랜드 수영장에서 찍는다고 들었어."

"수영장? 이 한 겨울에 수영장에서 CF를 찍는다고요?"

"그래서 나도 물어봤는데.. 원래 수영장 CF는 겨울에 주로 찍는데. 여름에는 이용객들이 많아서 빌리기가 아예 불가능하고 겨울이 가장 가격이 싸고 빌리기도 편하다고.."

"흠. 그럼 이 추운 날씨에 수영장 물에 빠져야 되는 건가.."

"가서 콘티를 보면 알겠지. 정 못하겠음 언제든지 말해라. 콘티를 바꿔달라고 요구하면 되니까. 보통의 경우에는 제작사가 갑이지만 지금은 수빈이 네가 갑이야. 그러니 맘에 안 드는게 있으면 뭐든지 나에게 말해라. 바로바로 고쳐줄 테니까.."

"에잉. 그게 되겠어요? 돈 받고 하는 일인데. 한두 푼도 아니고 7억을 받고 찍는 거라는데.."

"무슨 소리야? 지금 너 앞으로 들어온 CF가 얼마나 많은데. 맘에 안 들면 안 하면 되는 거야. 다른 회사 걸 찍으면 그만이지. 박실장님이 내게 말했어. 수빈이 네가 바라는 대로 안 들어주면 때려치워도 된다고..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맘에 안 들면 바로 나에게 이야기를 해."

"알았어요. 일단 콘티를 한번 봐야겠네요."

잠시 후 신라호텔에 도착한 수빈은 어반 아일랜드 수영장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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