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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호 감독과 김샛별이 여러 가지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을 때 성강호가 김해수와 수빈 쪽으로 허리를 틀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수야. 쟤는 어지간한 여배우들은 얼굴 하나로 그냥 다 씹어먹겠다. 저런 얼굴이면 다니는 학교나 사는 동네에서 얼짱이니 여신이니 하면서 소문이 나도 벌써 났을 건데.. 어떻게 저런 애를 뽑은 거야?"
성강호의 질문에 김해수가 뿌듯한 얼굴로 대답했다.
"제 발로 걸어왔죠. 우리 사무실이 국내에서 톱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그랬냐? 대박인데.. 사무실에서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왔다고 한바탕 난리가 났겠는걸."
그때 수빈이 슬쩍 끼어들어 물었다.
"누님. 지원자 외모가 더할 나위 없이 좋긴 한데.. 아무래도 제가 어디서 본듯한 얼굴인데요. 혹시 다른 경력 같은 건 없습니까?"
수빈의 질문에 김해수가 수빈을 날카로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되물었다.
"왜? 동생 스타일이야? 맘에 드니? 그래서 벌써부터 작업 들어가는 거니?"
"네? 아닙니다. 그냥 낯이 많이 익어서.. ."
"낯이 익긴 뭘 익어. 여태껏 학교에서 공부만 했다는데.. 그리고 저렇게 예쁜 애를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을 못한다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그때 성강호가 짓궂은 얼굴로 말을 보탰다.
"이야. 수빈이가 벌써부터 작업 시작했네. 한 번만 봐도 평생 못 잊을 얼굴인데 기억을 못해? 백 프로 뻥이지.. 하기야 한창 피 끓는 나이 아이가. 해수야. 쟤 관리 잘해야겠다. 수빈이가 언제 낚아채갈지 모르겠는데.."
자신을 놀리는 두 선배의 말에 당황한 수빈이 급히 해명을 하려고 할 때 봉순호 감독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오디션 지원자의 연기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미리 나눠드린 대본에 있는 장면을 연기하시면 됩니다. 유럽 2팀과의 연락이 갑자기 두절되어서 아지트로 급히 찾아가는 장면입니다. 김샛별양?"
"네. 감독님."
"대본은 다 이해하셨죠?"
"네. 이해했습니다."
"아지트를 찾아갔을 때의 긴장감과 시체를 발견했을 때의 당혹감 등을 잘 표현해 주시면 됩니다. 아지트를 빠져나와서 본부와 전화 통화할 때의 긴박감, 초조함 등도 표현해 주시고요."
"네. 알겠습니다."
"진행팀. 미리 준비된 거 있죠? 샛별양에게 모형 총 가져다주시고 옆에 전화기도 간단하게 세팅해 주세요."
잠시 후 김샛별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어딘가 많이 어색해 보이지만 대사를 버벅거리거나 틀리지 않고 나름 열심히 연기를 하였다.
"연기는 아직 한참 더 배워야겠다."
김샛별의 연기를 지켜보던 성강호가 중얼거리자 김해수가 대답했다.
"연기 배운지 아직 며칠밖에 안돼서 그래요. 그것보다 난 이런 부담스러운 자리에서 얼지 않고 씩씩하게 연기하는 게 오히려 기특한데요. 초보자치고는 제법인데.. 원래 성격이 대범한 편인가."
"연기자가 성격이 대범하면 굿이지. 뭐 목소리도 좋고 발음도 별문제 없으니.. 해수 니가 앞으로 잘 가르치면 되겠다."
"내가 그럴 짬밥이에요? 사무실에서 알아서 잘 가르치겠죠. 근데 의상이 영 맘에 안드네.."
김해수의 말에 수빈이 끼어들었다.
"대본 내용상 트렌치코트를 입는 게 맞지 않습니까? 제대로 입고 온 거 같은데요."
"대본이야 오디션장에 와서 받은 거고.. 미용실에서는 더 예쁜 옷을 입고 있었단 말이야."
잠시 후 김샛별의 연기가 끝나고 봉순호 감독이 입을 열었다.
"수고했어요. 연기가 좀 어색하긴 했지만.. 아직 어린 나이인데 떨지 않고 잘 한거 같습니다. 혹시 좀 전에 본인이 한 연기에 관련해서 할 말이 있나요?"
봉순호 감독의 말에 김샛별이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연기는 저 나름대로는 열심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할 말이 없어요. 그런데 권총이.."
"권총 말입니까?"
"네."
김샛별은 손에 쥐고 있던 모형 총을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대본에는 글록 19라고 되어 있는데 이 총은 손잡이에 콜트라고 찍혀 있어요."
"흠.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 거죠?"
"차이라면.. 아까 대기실에서 핸드폰으로 글록 19를 검색해 봤었는데 제가 보기에는 글록이 더 예쁜 총인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다음에는 꼭 글록을 준비하도록 하죠."
봉순호 감독이 좌우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전 질문할게 더 없으니 다른 심사위원 분들 중에 혹시 궁금한 게 있으신 분들은 직접 질문을 하시죠."
봉순호 감독의 말에 김해수가 마이크를 잡고 질문을 던졌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김샛별양이 저랑 같은 SN 소속이에요. 그래서 오늘 아침에 메이크업할 때 잠깐 봤었는데.. 그때 본 의상은 트렌치코트가 아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어떻게 된 건가요?"
"아. 아까 받은 대본에 주인공이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다고 적혀 있어서.. 코디 언니한테 말해서 급하게 다른 사람 걸 빌려 입고 나왔어요."
"아. 그랬군요. 연기에 충실하기 위해서 그런 거였군요. 아주 좋은 자세네요."
그 말에 옆에 있던 성강호가 툭 던졌다.
"이야. 해수가 같은 사무실이라고 너~무 띄워 준다."
성강호의 말에 김해수가 고개를 획 돌려서 성강호를 매섭게 째려보며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죽을래요?"
김해수의 앙칼진 말투에 성강호가 재빨리 꼬리를 내렸다.
"아니 그냥 그렇다고.. 계속 진행해."
김해수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코트를 벗어 줄 수 있나요? 지금 그 복장으로는 본인의 장점을 제대로 어필하기가 힘들어 보여요."
"네. 알겠습니다."
김샛별이 마이크를 내려놓고 졸라맨 허리띠를 풀고 코트를 벗기 시작했다.
마침내 코트를 다 벗자 김샛별의 몸에 쫙 달라붙은 상태로 광택이 자르르 흐르는 검은색 벨벳 원피스가 자태를 드러냈다. 몸매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터틀넥 오프숄더 형태의 미니 원피스로 쇄골과 어깨 그리고 허벅지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옷이었다.
김샛별이 코트를 벗고 똑바로 서자 서양인처럼 길쭉한 다리 라인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잡아끌었다. 골반과 연결된 허벅지 라인이 도자기처럼 매끄럽게 흘러내렸고 특히 무릎 아래 일자로 쭉 뻗은 종아리와 가느다란 발목 라인이 보는 사람을 매혹시켰다.
- 이야. 각선미가 완전 예술인데.
- 모델이야? 몸매로 다 죽이겠는데.
- 저 얼굴에 저런 몸매가 가능한 거냐?
- 캐릭터가 완전 사기 캐릭인데.
오디션 장에 있는 사람들이 경악에 찬 말들을 앞다투어 쏟아내고 있을 때 수빈은 김샛별의 다리를 보며 사람들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 어라? 어렵쇼? 저 다리는..'
깜짝 놀란 수빈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본 성강호가 깜짝 놀라 급하게 입을 열었다.
"수빈아. 야야. 수빈아. 참아라. 아무리 맘에 들고 보기 좋아도 그렇지. 그렇게 벌떡 일어나면 어떡해. 야 인마. 사람들이 다 쳐다보잖아. 빨리 자리에 앉아."
성강호의 다급한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수빈은 좌우를 둘러보았다. 심사위원과 스태프들이 자신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깜짝 놀란 수빈이 황급히 다시 자리에 앉자 그 장면을 지켜본 김해수가 거세게 콧방귀를 뀌었다.
"흐~응. 그렇게 좋아? 아주 정신을 못 차리네."
김해수가 다시 마이크를 입에 대고 말했다.
"역시.. 지금 그 옷이 샛별양의 장점을 확실히 보여주네요. 샛별양은 여자인 제가 봐도 부러운 몸매를 가지고 있어요. 좀 전에 제 옆에 앉은 수빈군이 정신 못 차리고 헬렐레하는 거 봤죠? 앞으로도 관리 잘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수빈은 어이가 없으면서도 속으로는 감탄을 하고 있었다.
'현대 의학은 정말로 대단하구나. 이렇게 사람을 바꾸어 놓다니.. 나조차 깜쪽같이 속았네.'
김해수가 마이크를 내려놓자 수빈이 재빨리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혹시나 다른 분들이 오해를 하실까 봐 제가 마이크를 잡았습니다. 샛별씨?"
"네."
"얼마 전 저랑 한번 본 적이 있었죠?"
수빈의 질문에 오디션장이 웅성거렸다.
- 둘이 아는 사이야? 무슨 사이래?
- 사무실이 서로 다른데. 예전에 사귀었었나?
- 아까 김샛별이 연예계 경험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 둘이 클럽에서 만나서 부킹이라도 한 건가?
여태껏 차분하게 감정 조절을 잘 하고 있던 김샛별의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고 잠시 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수빈은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샛별씨. 갑자기 왜 울어요? 이전에 본 적이 있지 않냐고 물은 거뿐인데.."
"흐윽. 맞아요. 오빠. 흑. 예전에 만난 적 있어요. 오빠 덕분에.. 흑. 제가 용기를 잃지 않고 흑흑. 이 자리까지 오게 됐어요. 흑흑흑."
오디션장에서 김샛별이 점점 더 서럽게 울어대자 수빈은 더 이상 말을 이어 갈 수가 없어서 머리만 긁적거렸다.
시간이 흘러 오디션이 모두 끝나자 봉순호 감독이 수빈에게 다가왔다.
"수빈씨?"
"네. 감독님."
"정회장님이 심사위원들 모두 저녁식사에 초대를 했는데.. 같이 가실 거죠?"
"그럼요. 당연히 가야죠."
"그럼 제 차로 같이 가죠. 식사 전에 물어볼 것도 좀 있고 해서.."
"알겠습니다. 감독님."
잠시 후 수빈은 정회장의 자택으로 가고 있는 봉감독의 차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 그럼 아이돌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샛별양을 만난 거군요?"
"네. 그날 처음으로 봤고 오늘 두 번째로 본 겁니다. 그때는 이름이 고소영이었는데.. 이름도 다르고 얼굴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못 알아봤죠. 당시에는 연예인이 되는 걸 집에서 반대한다고 해서 결국 탈락 처리되었는데 지금은 SN이랑 계약까지 한걸 보니 사정이 좀 바뀐 거 같아요."
"그랬군요. 하기야 요즘 성형기술이 워낙 좋아져서.. 근데 수빈씨?"
"네. 감독님. 그리고 말씀을 편하게 하시죠. 제가 불편합니다."
"원래 제 스타일이 이래요. 그러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마시고.. 정회장님이 한 달 전쯤에 이번 영화의 감독을 맡아달라고 저에게 부탁을 했었어요. 사실 그때는 다른 작품을 준비 중이라서 거절을 했었는데.. 얼마 전에 워낙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하셔서 지금 갈등 중입니다."
"아. 그럼 아직 결정을 못하신 겁니까?"
"네. 그래서 오늘 최종 결정을 할 생각입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그전에 수빈씨에게 하나 물어볼게 있습니다."
"네. 말씀하시죠."
"제가 듣기로는 수빈씨가 이번 영화의 감독으로 적합한 사람이 있다고 정회장님에게 추천을 한 적이 있다죠?"
봉감독의 질문에 수빈은 내심 뜨끔해서 답변이 살짝 늦어졌다.
"..네. 있습니다."
"그것도 그 사람이 감독을 맡으면 1,400만을 보장한다고 정회장님께 말했다고 들었는데.. 맞나요?"
"1,400만을 보장한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1,200~1,400만 정도는 가능하다고 했었죠."
"1,200에서 1,400만이라..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서 말이죠. 만약에 내가 감독이라면 영화를 찍기도 전에 천만이라는 스코어를 장담할 수 있을까? 전 감히 천만도 자신할 수 없는데 말이죠. 수빈씨가 말한 그 감독은 과연 무슨 재주로 영화를 찍으면 1,400만이 가능 하다고 장담하는지.. 너무 궁금해서 말이죠."
봉감독의 말에 수빈은 긴 한숨을 쉬었다.
'난리 났군. 이거 말 잘해야겠는데.. 까닥 잘못하면 영화 들어가기도 전에 감독님에게 단단히 찍히겠는걸.'
수빈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