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91화 (91/236)

# 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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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결의 도화지] 녹화를 한 다음날 자정에 BBG의 신곡 [Dispatch] 음원이 공개되었다.

[Dispatch] 초연 무대에 흠뻑 매료되었던 [유희결의 도화지] 방청객들의 입소문과 SNS를 통해 곡의 홍보가 기대 이상으로 이루어졌고, 거기에 기존의 BBG가 가지고 있는 팬덤의 화력과 최근 무섭게 증가한 수빈의 국내외 팬들로 인해 음원이 공개된 지 1시간 만에 음원 1위에 올라섰다.

음원이 공개된 이후 BBG 멤버들은 [엔카운트다운], [뮤직 뱅크], [음악 중심], [SBC 인기가요] 등과 각종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정신없이 바쁜 한 주간을 보냈다.

디스패치의 음원이 며칠째 계속해서 다운로드 1위를 찍고 BBG가 많은 음악 방송에서 신곡 무대를 선보임에 따라 디스패치의 인기몰이가 서서히 시작되었다.

특이한 점은 아직 기사화되지 않아 수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외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이태원 클럽 등을 통해서 디스패치의 세몰이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날 거부한다면, Dispatch.

날 싫어한다면, Dispatch. Dispatch.

세상 모두가 나의 죄를 묻더라도,

Dispatch. Dispatch. Dispatch.

If you refuse me, Dispatch.

If you hate me, Dispatch. Dispatch.

Even if everyone in the world asks my sins,

Dispatch. Dispatch. Dispatch.

이상과 같이 Dispatch의 후렴은 한글과 영어로 반복된다.

이러한 후렴 부분의 가사가 Dispatch의 구어적인 의미를 알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는 의도적으로 기획하여 만든 중의적인 가사로 들린다는 것이다.

[날 거부한다면 최대한 빨리 너의 곁에 다가가겠어]라는 의미의 가사가 [날 거부한다면 널 죽여버리겠어]라는 식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같이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가사와 세련되고 감각적인 댄스 리듬으로 인해 [Dispatch]가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 급상승 중이다.

수빈은 정신없이 바쁜 시간들을 보내고 근 열흘 만에 회사로 나가서 박실장을 만났다.

"수빈군. 어서 오게나."

"잘 지내셨습니까."

"요즘 많이 바쁘지?"

"네. 조금 정신없네요."

"그래. 신곡 인기가 장난 아니라던데..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수빈군. 내가 궁금해서 그러는데.. 디스패치의 작사, 작곡을 자네가 다 했지 않은가. 요즘 디스패치에 관련된 소문을 자네도 들어서 알고 있지? 이태원에 있는 외국인들이 자주 가는 클럽 아니 요즘은 홍대에 있는 클럽까지 번졌다고 하더군. 외국인들 사이에서 디스패치 인기가 장난 아니라는데.. 가사는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든 건가?"

"저도 그 소문을 듣기는 했는데.. 그걸 노리고 작사한 건 아닙니다."

"그럼 자네는 작사할 때 디스패치에 그런 뜻이 있다는 걸 전혀 몰랐었나?"

"...그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노린 게로군. 솔직히 말해서 노린 게 맞지?"

"후. 그냥 반반 정도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

"알겠네. 자네가 밝히기 싫은 모양인데.. 어차피 이미 심의를 다 통과한 곡인데 뭐 어떤가. 역시 수빈군은 천재야. 자네에게는 범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특별함이 있어."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그것 때문에 오늘 보자고 하신 겁니까?"

"아. 그런 건 아니네. 몇 가지 의논해야 할 일들이 있어서 바쁜 자네를 보자고 한걸세."

"의논해야 할 일들이 있다고요?"

"그래. 아주 많다네. 일단 제일 처음으로 대본부터 이야기하지. 수정된 대본은 이미 다 봤을 거고.. 읽어본 느낌이 어떤가?"

"나름 수정이 잘 됐다고 봅니다. 특히 클리셰를 반드시 넣어달라고 말했었는데 남자 주인공에게는 집안의 가난과 관련된 클리셰를, 여자 주인공에게는 집안의 원수와 관련된 클리셰를, 마지막으로 유럽 2팀의 몰살에는 제5열에 대한 클리셰를 넣었더군요. 셋 다 진부하고 사골처럼 우려먹는 소재이기는 하지만 관객들을 흡입하기에는 딱이라고 봅니다. 너무 길지도 않고 적절하게 분량 조절도 잘 했던데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내가 듣기로는 자네가 정회장님에게 그렇게 넣어라고 콕 집어서 적어줬다고 하던데?"

"적어주긴 했습니다만.. 그냥 예를 들어서 이런 식이면 좋겠다고 적어준 건데.. 설마 그대로 다 채택할 줄은 예상 못했죠."

"자네가 적어준 대로 하는 게 좋다고 판단했겠지. 천재인 자네가 직접 분석까지 다 해서 적어준 내용 아닌가. 나라도 그러겠네. 그러면.. 대본 중에 자네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나 행여나 더 고칠 점 같은 건 없나?"

"세세한 부분들이 있긴 한데.. 어차피 그런 부분들은 최종 콘티 작업을 하면서 조금씩 상황에 맞게 수정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그럼 대본은 더 이상 손을 안 봐도 되겠군."

"네. 괜찮을 거 같습니다."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지. 그럼 다음으로 이야기할 건은.. 이번 주 일요일 오디션이 잡혔네."

"오디션이면.. 여자 주인공 오디션 말하는 건가요?"

"맞네. 평일인 다음 주 화요일에 하려고 했었는데 지원하는 여배우들이 다들 시간이 잘 안 맞아서 주말인 일요일에 하기로 결정했네. 자네도 참석해야겠지?"

"네. 어렵게 부탁한 건데 아무리 바쁘더라도 제가 참석해야죠. 어디서 하나요?"

"역삼동 리츠 칼튼 호텔 2007호라고 들었네. 오후 3시부터 시작한다고 하더군."

"이틀 뒤 리츠 칼튼 호텔 2007호.. 알겠습니다."

"그래. 혹시 그 시간에 행사 같은 게 잡혀있으면 그런 건 BBG 멤버들끼리 가도 충분하니까 꼭 참석하도록 하게나. 그리고.. 드디어 CF가 잡혔네."

"CF요?"

"그래. 자네 몸값이 올라갈 거 같아서 재무회계팀에서 그동안 꾹 참고 있었는데.. 이제 충분히 올라갔다고 판단한 모양이야. 사실 국내에서 이보다 더 오르기는 힘들지. 특급 대우야."

"특급이면 얼맙니까?"

"7억."

"...7억이라고요?"

"그래. 7억이면 특급 대우지. 요즘 자네가 아무리 핫하다고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이것보다 더 받기는 사실상 불가능해. 물론 CF 출연료로 한편 당 10억 정도를 받는 연예인도 있긴 하지. 하지만 그건 실적이 충분히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액수라네."

"7억도 엄청난데요."

"그렇긴 하지. 일 년 내내 쉬지도 못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행사 뼈빠지게 뛰어봐야 CF 몇 편 찍는 것보다 못하니까.. 재무회계팀 말로는 일단 한편을 특급 대우로 찍고 시장이나 대중들의 반응을 본 후에 출연료를 더 올릴 계획이라고 하더군.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하나만 일단 엄선해서 골랐다고 들었네."

"어떤 CF입니까?"

"진. 그러니까 청바지 CF 지."

"메이커가 어디입니까?"

"디젤(Diesel). 몇 년 전 붐이 좀 일었다가 요 근래 인기가 많이 죽은 메이커라네. 그래서 그쪽 회사에서 CF를 통해 다시 붐을 일으키고 싶은 모양이야. 그 모델로 자네를 선택했고.."

"그렇군요. 디젤이 제법 큰 회사인 모양이죠? CF 출연료를 7억이나 주는 걸 보니.."

"응? 자네는 패션에 대해서 잘 모르는 모양이야?"

"네. 별로 관심이 없어서.."

"연예인이 그러면 안 되지. 앞으로는 관심을 좀 가지게나. 디젤은 이탈리아 브랜드로 세계적인 캐주얼 패션 브랜드야. 원래 이런 세계적인 브랜드들은 동양인 모델을 잘 안 쓴다네. 자네가 특별히 뽑힌 거지. 아까 말하지 않았나. 재무회계팀에서 나름 엄선해서 골랐다고.."

"그렇군요. 언제 찍는다고 하던가요?"

"다음 주 월요일."

"음? 삼일 뒤네요."

"아무래도 자네가 영화 들어가기 전에 해치워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시일을 촉박하게 잡은 걸 거야."

"후. 이러면 다음 주도 정신없겠는데요."

"연예인이 바쁘면 좋은 거지."

"알겠습니다. 더 이상 다른 건 없죠?"

"하나가 더 있네. CF는 재무회계팀이 자네에게 말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한 거고.. 이건 A&R 팀이랑 홍보팀이 의견을 물어봐달라고 나에게 부탁한 거네."

"아니 왜 다들 박실장님에게 부탁을 합니까? 저에게 직접 연락을 해도 되고 매니저도 있고 유실장님도 계신데.."

"자네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간 거야. 적어도 나 정도 위치는 되어야 이런 부탁을 자네에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지. 그리고 괜히 어쭙잖게 자네에게 다이렉트로 이야기했다가 거절당하면 그 뒤에는 대책이 없지 않은가? 수빈군 같은 천재가 다른 사람의 사탕발림에 넘어갈 것도 아니고.. 그래서 나한테 부탁하는거지. 날 통해 일단 운을 한번 띄워보고 자네의 반응을 확인한 다음 대책을 마련하고 싶은 거지. 내가 자네와 많이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고.."

"사람들도 참.. 실장님과 제가 나이 차이가 얼만데 감히 친하니 안 친하니 합니까."

"뭐 어떤가? 난 자네를 친구처럼 생각한다네. 어떨 때는 나보다 더 어른 같기도 하고."

"...제 귀에는 제가 애늙은이 같다고 욕하시는 것처럼 들립니다만.."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펄쩍 뛰었다.

"무슨 그런 소리를 하나. 오핼세. 그만큼 자네의 탁월한 머리와 현명한 판단력을 내가 존중하고 있다는 뜻일세."

"비겁한 변명처럼 들리지만.. 넘어가겠습니다. 그쪽에서 무슨 부탁을 하던가요?"

"그쪽 팀들 말로는...."

잠시 후 박실장의 설명을 다 듣고 난 수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들어보니 나쁜 기획은 아닌 거 같습니다만.. 제가 시간이 될지 모르겠네요."

"어차피 길어봐야 하루면 다 끝나는 일이야. 내가 봐도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긍정적으로 한번 생각을 해보게나."

"언제까지 답변을 달라고 하던가요?"

"일주일. 그 이상이 넘어가면 아무래도 약발이 떨어지겠지."

"고민해 보고 며칠 내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그럼.. 이제 다 끝났나요?"

"그래. 다 끝났네. 바쁠 텐데 가보게나."

"알겠습니다."

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서려고 할 때 박실장이 다시 불렀다.

"아. 수빈군."

"네?"

"내가 하나 깜빡했네. 올해 KBC 연기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이랑 남자 신인상으로 자네가 선정됐네. 그러니까 매니저 보고 그때 스케줄을 조절하라고 미리 말을 해두게나."

"알겠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다음 주에 [특별수사본부] 종방연이 있지?"

"네. 목요일 마지막 회 방송을 하고 저녁에 종방연이 잡혀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매니저 보고 그때 1차든 2차든 회사 법인카드를 들고 가서 계산하라고 전하게나. 연기대상에서 상을 두 개나 받았는데 우리 쪽에서 거하게 한턱 쏴야지."

"잘 알겠습니다. 더 없으시죠?"

"그래. 고생하게나."

수빈은 박실장의 방을 나온 뒤 빽빽하게 잡혀 있는 스케줄들을 소화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주차장 쪽으로 걸어갔다.

다음 날인 토요일 수빈은 [Dispatch]로 MBS 방송국의 [음악 중심]에서 처음으로 1위를 달성하였다. 기뻐하는 BBG 멤버들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 속에서 하루를 보낸 수빈은 다음 날인 일요일에 SBC 등촌동 공개홀에서 진행되는 [SBC 인기가요]에 출연하였다.

[SBC 인기가요]에서도 1위를 차지한 수빈은 방송이 끝나자마자 급히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백성철 매니저가 모는 밴 안에서 수빈이 물었다.

"아직 안 늦었죠?"

"그래. 차가 좀 막히기는 하지만 밟으면 등촌에서 역삼까지 40분이면 주파하니까 3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을 거다."

"후. 다행이네요."

"도착하면 깨워줄 테니까 한숨 자는 게 어때?"

"아뇨. 명색이 심사위원으로 참석하는 건데 자다 일어난 얼굴로 갈 수는 없죠."

강남 시내를 총알처럼 달린 매니저 덕분에 수빈은 3시가 못되어 역삼동 리츠 칼튼 호텔 지하 3층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수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SAT 여자 주인공 오디션]이 열리는 20층으로 올라갔다.

잠시 후 2007호 앞에 도착한 수빈은 방문을 가볍게 노크하였다.

- 네. 들어오세요.

여성의 나긋한 목소리에 방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걸어들어간 수빈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야. 예측은 어느 정도 하고 있었지만.. 정회장님도 정말 대단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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