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90화 (90/236)

# 90

30 - 4

김민호 음향 감독은 무전기로 자신의 밑에서 일하는 조감독을 급히 호출하였다. 그런 후 하우스 밴드에서 베이스를 치는 연주자를 한 명 빨리 섭외해 오라고 오더를 내린 다음 수빈에게 말했다.

"수빈씨. 지금 베이시스트를 한 명 호출해놨어요. 베이스와 관련된 악기 세팅이랑 기본적으로 체크해야 할 것들은 그 친구가 대신해줄 겁니다."

"그럼 전 뭘 해야 되죠?"

"지금부터 수빈씨는 나랑 같이 움직여야 됩니다. 일단 제작진부터 빨리 만나러 갑시다. 수빈씨가 내놓은 아이디어처럼 무대 연출을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꾸미는 게 가능한지 아니면 불가능한지 그 친구들과 의논부터 해야 돼요. 그래야 다음 작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수빈은 무대 연출, 장치, 음향, 조명, 소품팀 등과 함께 긴급회의를 하고 있었다.

수빈이 설명하는 걸 차분하게 경청한 박명국 총연출이 입을 열었다.

"지금 수빈씨가 말한 무대 콘셉트는 연출 측면에서 보자면 나쁘지 않습니다. 보는 관객분들도 재미있어 할거 같고요. 하지만 사전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무대를 꾸미게 되면 아무래도 제약이 어느 정도 따르게 마련입니다. 수빈씨가 원하는 걸 다 만족시키기에는 시간이 촉박할 거 같은데요."

수빈이 박명국 피디의 말을 다시 받았다.

"저도 박피디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기존의 무대는 그대로 두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대 장치같은 건 다 생략하고 간단하게 조명과 소품만을 이용하여 연출을 하면 어떨까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말입니까?"

"일단 조명을..."

잠시 후 수빈의 말이 끝나자 박피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거 같은데요. 새로 뭘 제작할 필요도 없고.. 조명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피디의 질문에 서정호 조명 감독이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원래보다 조명을 더 밝게 해달라고 하면 문제가 있겠지만 어둡게 해달라고 하는 건 스위치만 내리면 되니까 아무 문제가 없죠. 수빈씨가 원하는 조명 효과들도 지금 상태로도 충분히 연출 가능한 수준이라서 별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박피디가 조명 감독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인 후 소품팀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김연희 소품 담당이 대답했다.

"저희 쪽도 문제없어요. 수빈씨가 원하는 소품들은 특별한 게 아니라서 소품실에 내려가서 기존에 있던 걸 찾아서 가져오면 될 거 같아요."

소품 담당자의 긍정적인 대답을 들은 후 박피디가 이번엔 무대 장치를 담당하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최동훈 무대 장치 담당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수빈씨가 말하는 장치는 넉넉잡고 30분이면 다 끝낼 수 있습니다. 그냥 걸었다가 밑으로 떨어뜨리기만 하면 되니까 별로 어려울게 없습니다."

각 담당자들의 의견을 들은 후 박피디가 마음의 결정을 내린듯 주위를 휘이 둘러본 다음 입을 열었다.

"좋습니다. 다들 문제가 없다고들 말씀하시고 제가 생각해봐도 큰 무리 없이 무대 연출을 변경할 수 있을 거 같으니까 수빈씨가 제시한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들 빠른 시간 내에 준비 작업을 마쳐 주시고 저에게 결과를 바로바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 네. 알겠습니다.

김민호 음향 감독이 수빈의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다.

"수빈씨는 나랑 같이 음향 체크하러 갑시다. 천재의 솜씨가 어떤 건지 한번 봐야죠."

"네. 알겠습니다."

그 이후로 수빈은 음향 체크를 하느라 정신없이 뛰어다녔고 거기에 무대 장치, 조명, 소품까지 일일이 직접 확인을 해가면서 카메라 리허설을 무사히 끝마쳤다.

이윽고 저녁 7시가 되자 방청객들이 공개 홀로 입장을 하기 시작하였다. 방청객들이 입장을 마치고 각자 미리 정해진 자신의 자리에 착석을 완료하자 마침내 [유희결의 도화지] 녹화가 시작되었다.

유희결이 무대로 걸어 나오자 관객들의 박수와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 한가운데에 외롭게 홀로 놓여 있는 의자 옆에 멈춰 선 유희결이 마이크를 들고 정중히 인사를 하였다.

"유희결의 도화지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 와아아아.

또다시 터져 나온 관객들의 환호성이 어느 정도 그치자 유희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먼저 오늘 도화지의 오프닝 무대를 꾸며줄 가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은 로또에 당첨되신 거랑 똑같습니다. 누가 뭐래도 올 한해 최고의 히트곡은 이 곡이었죠. 그리고 올 한해 수많은 사람들을 정말 펑펑 울게 만든 곡이기도 합니다."

유희결의 멘트가 나가자 그때부터 객석이 조금씩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 말하는 게 달과 나의 이야기 같은데. 맞나?

- 오늘 도화지에서 달나이를 공연하는 거야?

- 말도 안 돼. 라이브는 절대 안 한다고 들었는데.

- 설마? 오늘 진짜로 하이유가 나오는 건가요?

"이 가수의 라이브 무대를 보고 싶어 하는 분들은 정말로 많았지만 실제로 직접 보신 분들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몇 달 간 수많은 분들이 도화지에 제발 한번 모셔달라고 신청을 하셨던 분이기도 합니다. 정말 정말 모시기 힘들었습니다만.. 오늘 드디어 도화지에 나왔습니다."

유희결은 시장 바닥처럼 웅성거리는 관객석을 쳐다보며 잠시 뜸을 들인 후 큰 소리로 외쳤다.

"하이유의 [달과 나의 이야기]입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시길 바랍니다."

유희결의 소개에 신관 공개 홀이 떠나갈듯한 박수 소리와 환호성이 터져 나올 때 박명국 피디가 연출실에서 조용히 지시를 내렸다.

- 장치팀. 장막 큐. 조명팀. 암전 3, 2, 1."

그러자 무대 뒷면의 도화지라는 글자 형태로 만들어진 형형색색의 LED 조명을 가리며 검은색 장막이 천장에서 미끄러지듯이 주르르 내려오기 시작했고 공개 홀 전체의 조명이 단계별로 하나둘씩 꺼지며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 조명팀. 핀 조명 큐.

공개 홀의 조명이 거의 다 꺼지고 희미한 핀 조명만이 무대에 올려져 있는 의자를 때렸고 그때 분홍색 원피스 차림의 하이유가 무대 위로 사뿐사뿐 걸어 나왔다.

- 조명팀. 별 큐.

하이유가 의자에 앉는 것과 동시에 검은색 장막에 마치 밤하늘처럼 조그마한 별들이 무수히 떠올랐다.

- 음향팀. 3, 2, 1 큐.

공개 홀에 둥~ 둥~ 하는 나지막한 드럼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핀 조명이 아주 천천히 조금씩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밝아진 조명 덕분에 사람들이 눈으로 하이유를 확인할 수 있을 때쯤 무대 옆쪽에서 삐리리~ 하는 청아한 피콜로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얼굴을 숨기기 위해서 가면 무도회에서 쓰는 나비 가면을 착용한 정체불명의 남자가 피콜로를 불며 무대 중앙 쪽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기 시작했다.

많은 방청객들이 숨을 죽이고 지켜보고 있을 때 앞자리에 앉은 몇몇 관객들이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자기들끼리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리기 시작했다.

- 저 남자가 누군지 아는 사람?

- 복면 가왕도 아니고. 난 모르겠는데.

- 달나이 공연이니까 혹시 수빈 아냐?

- 아냐. 수빈씨 보다 키가 엄청 작잖아.

그 순간 피콜로를 불던 남자가 잠시 중심을 잃고 휘청한 것처럼 보였지만 무사히 무대 중앙까지 걸어갔다. 남자가 하이유 옆에 서서 피콜로를 불고 있을 때 공개 홀이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고 밤하늘 같은 장막에 보름달이 둥실 떠올랐다.

잠시 동안 드럼 소리와 피콜로 소리만이 공개 홀에 울려 퍼졌다. 그러다 피콜로 소리가 뚝 멈췄고 드럼 소리가 조금씩 커져갔다. 마침내 기타와 피아노가 합류하며 드럼 소리에 어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이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늦은 밤 조심스레 문을 나섰어요.

사람 없는 벌판을 나 홀로 돌아다녔죠.

방청객들이 노래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내일이 걱정 없는 철부지 아이처럼~

미래가 걱정 없는 철없는 소녀처럼~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녔죠.

방청객들이 음악에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문득~ 고개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높은 곳에 계신 달님이 나를 보고 웃고 있네요.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하니 달님이 말을 건네왔죠.

방청객들이 숨을 죽이며 호흡을 길게 내뱉기 시작했다.

[달과 나의 이야기]의 하이라이트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 내레이션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시 연주를 쉬고 있던 나비 가면의 피콜로가 다시 하이 피치로 울기 시작했고 드럼이 두구두구 소리를 내며 달리기 시작했다. 기타가 불을 뿜듯 속주를 하기 시작했고 피아노의 타건 소리가 미친 듯이 빨라졌다.

방청객들의 텐션이 끝없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연출실에서 숨죽이며 지켜보던 박명국 피디가 비명처럼 소리를 질렀다.

- 장치팀 지금!

신호에 맞춰 무대 뒤쪽에 있던 장막이 한 번에 바닥으로 덜컥 떨어져 내렸고 무대 앞쪽에서는 불꽃이 터지기 시작했다. 장막 뒤에서 연주하던 밴드가 마침내 방청객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꺄아아악! BBG다.

- 어머! 어떡해. BBG야.

- 수빈 오빠! 사랑해요!

- BBG! BBG! BBG!

전혀 예상하지 못한 BBG를 발견한 방청객들이 흥분해서 자리에서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고 잠시 후 다섯 명의 남자들이 거친 목소리로 마치 군가를 부르듯 절도 있게 내레이션을 시작하였다.

방청객들의 목이 쉬어라 내지르는 괴성과 비명 속에 내레이션이 진행되었고 마침내 마지막 구절이 시작되었다.

BBG가 굵고 힘찬 목소리로 마치 선언문을 포고하듯 방청객을 향해 우렁차게 내질렀다.

"Never give up!"

무대 중앙에 있던 하이유가 한 손을 귀에다 살포시 대고 객석으로 마이크를 돌리자 모든 방청객들이 단체로 떼창을 하듯 내레이션을 따라 했다.

- Never give up!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오

"절대"

- 절대에~

"포기하지 마세요."

- 포기하지 마세요!

- 와아아아. 포기 안 해요!

- 나에게 포기란 절대 없다!

- 포기는 김장할 때만!

울부짖는듯한 방청객들의 내레이션이 끝나고 다시 연주가 시작되었다.

잠시 후 무대 위에서는 유희결과 하이유 그리고 BBG 멤버들이 나란히 앉아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유희결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하이유씨. 아니 좀 전에 난 어디 부흥회에 온 줄 알았어요. 방청객들이 무슨 광신도 마냥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는데.."

유희결의 질문에 하이유가 마이크를 잡고 대답했다.

"제가 봐도 좀 그랬던 거 같아요. 음. 아무래도 오늘은 BBG와 함께 한 공연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방청객 여러분들이 평상시보다 업이 많이 되신 거 같아요. 그래도 다들 좋아해 주시고 내레이션까지 따라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요즘 많이 바쁠 텐데 오늘 이렇게 나와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하이유씨 덕분에 오늘 오프닝 무대가 너무너무 좋았어요."

"네. 저도 좋았어요. 앞으로도 도화지에 자주 좀 불러주세요."

"거짓말! 내가 몇 번을 나오라고 부탁을 했는데도 안 나와놓고서는.."

"선배님. 오늘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 곡은 제가 혼자 나와서 소화하기에는 너무너무 힘들어요. 오늘처럼 BBG와 함께 불러 주시면 앞으로도 자주 나올게요."

하이유의 대답에 유희결이 갑자기 본인 특유의 음흉한 눈빛을 하며 물었다.

"하이유씨. 잘 생기고 어린 남자 좋아하는구나?"

유희결의 질문에 하이유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치면서 대답했다.

"어머. 아니에요. 선배님."

"농담입니다. 농담. 고생하신 하이유씨에게 박수 부탁드립니다."

- 짝짝짝짝.

"감사합니다."

하이유가 자리를 떠나고 본격적인 BBG의 인터뷰 시간이 되었다.

"수빈씨?"

"네. 선배님."

"안 본 사이에 더 잘생겨지셨는데요?"

유희결의 뜬금없는 질문에 수빈이 당황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유희결이 몸을 돌려서 객석을 향해 물었다.

"그렇죠? 여러분?"

- 네! 더 잘생겨졌어요.

- 멋져요. 사랑해요.

- 오빠! 나를 가져요.

- 미친년.

수빈이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유희결에게 말했다.

"선배님.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 음악 얘기를 하시죠."

그러자 유희결이 다시 방청객에게 물었다.

"그럴까요? 여러분?"

- 아뇨! 궁금한 게 너무 많아요.

- 수빈씨. 상의 탈의를 원해요.

- 맞아요! 복근 보여주세요.

- 벗어라! 벗어라! 벗어라!

수빈은 난감한 표정을 하며 잠시 머리를 긁적거리더니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객석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오늘 오신 남성분들에게 미리 사죄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수빈이 아랫배 쪽 셔츠를 잡더니 위로 걷어올렸다.

- 꺄아아악. 십일자야. 십일자.

- 완전 빨래판이야. 빨래판.

- 어머어머. 완전 짐승 같아.

- 어쩜. 속살이 백옥같이 하얗네.

다시 자리에 앉은 수빈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 이제 음악 이야기를 하시죠. 선. 배. 님!"

"그럴까요? BBG가 이번에 신곡이 새로 나왔다면서요?"

"네. 디스패치라고 싱글이 새로 나왔습니다."

"디스패치 면.. 특종이라는 뜻 아닌가요?"

"그런 뜻도 있지만 빠르게 보낸다, 급하게 송달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저희들 BBG가 이번 노래를 통해서 팬분들 곁으로 빠르게 다가가겠다는 의미로 제목을 디스패치로 지었습니다."

"그런 뜻도 있었군요. 아. 그리고 아까 보니 BBG가 뒤에서 직접 밴드 연주를 하시던데.. 연주 실력도 다들 수준급이고요. 이번에는 밴드로 활동하시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 밴드 연주는 이벤트 형식으로 가끔 할 겁니다."

"그렇군요. 디스패치라는 신곡은 언제 정식으로 나오죠?"

"내일 자정에 정식으로 음원이 출시될 겁니다."

"그럼 오늘 도화지에서 출시 이전에 미리 공개하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궁금한 게 아주 많습니다만.. 일단 새로 나온 신곡을 한번 들어보고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죠. 도화지에서 최초로 공개되는 신곡입니다. BBG의 디스패치."

유희결의 멘트가 끝나자 BBG 멤버들이 각자의 정해진 자리로 이동하였다.

잠시 후 디스패치가 대중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