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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아침부터 자신을 찾아온 많은 사람들과 도미노처럼 연쇄적으로 미팅을 하고서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그런 후 BBG 멤버들과 합주실에서 강도 높은 연습을 하며 오전 시간을 다 보냈다.
연습이 끝난 후 BBG 멤버들과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한 수빈은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어 혼자서 휴게실로 걸어갔다.
비교적 넓은 평수를 자랑하는 휴게실이었지만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아서 빈자리가 보이질 않았다. 음료수 캔을 손에 들고 수빈이 주위를 두리번거릴 때 때마침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어서 휴게실 한쪽 구석에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오늘따라 휴게실에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아. 월요일이라 그런 건가."
테이블에 음료수를 올려두고 휴게실 의자에 앉은 수빈은 핸드폰을 꺼내서 오전에 있었던 미팅을 참고로 앞으로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메모장에 간단히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 뮤란 : 싱글 판매 30만 장 돌파. 오리콘 위클리 싱글 차트 1위 확실. 목요일 일본 동경 뮤란 팬사인회 개최 확정(2시 출국, 8시 귀국). 일본에서 나의 지명도 급상승. 반드시 동행 요망. 홍보팀 일본 SNS X
->> 스페셜 앨범용 그림. 스페셜 앨범 검수.
'뮤란은 이제 그림만 그려주면 끝이네. 스페셜 앨범이야 A&R 팀에서 알아서 할 거고. 일본에 다녀오는 게 좀 귀찮긴 한데 반나절이면 되니까 그 정도는 괜찮겠지. 일본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뭐 나쁜 소식은 아니지. 그리고 홍보팀에서 더 이상 SNS는 이용 안 한다니까 내가 말한 대로 잘 처리됐네.'
- BBG 신곡 : 다음 주 화요일 [유희결 도화지], 목요일 [엔카운트다운], 금요일 [뮤직 뱅크], 토요일 [음악 중심], 일요일 [SBC 인기가요]
->> 하이유 선배와 합동연습(금요일 오전, 토요일 오전)
'후. 다음 주는 정신없겠군. 신곡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게 유희결 선배님 프로네. 방송은 좀 더 뒤겠지만.. 하이유 선배가 금, 토 오전 밖에 시간이 안된다고 하니까 그때 연습을 몰아서 하고 다음 주 화요일에 도화지 녹화를 하러 가면 되겠군.'
- 특별수사본부 : 다음 주 종방. 현재 시청률 27%. 30% 달성이 목표.
->> 이번 주 토요일 어쩌면 일요일까지 마지막 녹화.
'드라마는 한 번만 더 가면 이제 끝이구나. 처음으로 출연한 드라마라 그런지 시원섭섭한데.. 근데 주먹이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작가님이 도통 알려주지를 않네. 공영방송이니까 아무래도 권선징악을 보여주려면 주먹이를 죽이는 게 맞는 거 같은데.'
- 달빛 속의 호위무사 : 하이라이트 추격신 재촬영? 스튜디오 촬영.
->> 러닝개런티 관련 재계약 체결.
'달빛은 야외 촬영분을 다 찍었으니까 실내 촬영 스케줄이 잡혔을 때 몇 번만 더 가면 끝날 거고. 문제는 재계약 여분데.. 뭐 제작사에서 못해주겠다 그러면 나도 재촬영 안 하면 그만이지..'
- SAT : 최종 대본 확인. 재계약 확인. 여주인공 오디션.
->> 대본 암기 및 캐릭터 연구.
'SAT는 일단 최종 대본을 받아야 뭘 하던가 하지. 정회장님 성격상 며칠 내로 최종본이 나올 거 같긴 한데.. 여주인공 오디션은 또 언제 한다는 거야. 아무튼 이건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까 천천히 고민하고..'
수빈은 메모장에 정리한 걸 처음부터 다시 천천히 읽어 보았다.
'뭐 빠진 게 있나. 이대로 진행된다면 다음 주부터는 신곡 활동이랑 SAT만 신경 쓰면 되겠는데.. 후아. 이제 좀 일이 정리되는 거 같네.'
수빈은 백성철 매니저에게 메모된 내용을 첨부하여 문자를 보냈다.
- 성철이형. 첨부한 거 한번 읽어보시고 내가 소화해야 할 일정들 중에 혹시 뭐 빠진 게 있나 봐줘요.
문자를 보낸 후 1분 정도 지났을 때 매니저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형"
[수빈아. 미안한데.. 하나가 빠졌어.]
"뭐가 빠졌죠?"
[너 저번에 [도회지 어부] 찍을 때 우승해서 배지 받고 완장 찼잖아. 그래서 조만간 그 프로에 한번 더 나가야 된다.]
"아. 맞다. 그때 제가 민어 칠짜를 잡는 바람에 [따라와] 완장을 찼었죠. 뭐 그 프로는 1박 2일 쉬러 가는 거니까.. 같이 바람이나 또 쐬러 가죠. 통영으로 간다고 했죠? 언제 가나요?"
[저쪽에서 아직 말이 없네. 일정이 확정되면 다시 알려줄게.]
"네. 그거 말고는 빠진 게 없죠?"
[내가 보기에는 없는 거 같다. 수첩에 적혀 있는 스케줄 표를 봐도 특별한 게 안 보여.]
"네. 알았어요. 혹시 또 생각나는 거 있으면 전화 주세요."
수빈은 전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머릿속을 스쳐가는 일이 하나 있었다. 의자에 도로 주저앉은 수빈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들기며 생각에 잠겼다.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연습생들 한번 봐달라고 부탁한 걸 깜빡했네. 어떡하나.. 다음 주부터 신곡 활동을 시작하면 도저히 시간이 안 날 건데. 그렇다고 뒤로 미루자니 자칫 올해를 넘길 수도 있을 거 같고. 그러면 선생님들이 나를 산 채로 잡아먹으려 들겠지. 후. 이번 주밖에 시간이 없는 건가..'
수빈은 좀 전에 자신에 메모한 걸 다시 살펴보았다.
'수요일 BBG 연습. 목요일 일본. 금, 토는 하이유 선배와 합동 연습. 토, 일은 드라마 촬영.. 후. 비는 날이 내일밖에 없는 건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차라리 빨리 해치워버리는 게 나을지도 몰라. 그럼 그냥 내일 하는 걸로 하자. 한번 봐주는 정도라면 시간이 얼마 안 걸릴 거야..'
마음을 결정한 수빈은 핸드폰을 들고 박송희 댄스 트레이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수빈은 휴게실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그마한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선생님. 저 수빈입니다."
[어머. 수빈씨가 어쩐 일로 나에게 직접 전화를 다 주셨을까.]
"다름이 아니라.. 저보고 연습생들 오디션 형식으로 한번 봐달라고 하셨잖아요."
[어머나. 수빈씨 요즘 엄청 바쁜 걸로 아는데 시간이 나나 봐요? 정말 고마워요. 나랑 이진희 선생님이랑 그것 때문에 하루하루 피가 마르는 중이었는데. 잘 됐다. 언제 시간이 돼요?]
"죄송하지만 제가 내일 밖에 시간이 안됩니다. 내일 봐도 괜찮을까요? 너무 급작스럽지 않을까 걱정되네요."
[무슨 소리를.. 오디션 같은 건 평소 실력으로 보는 거죠. 내일 몇 시에 볼 건가요?]
"점심 먹고 1시 반 정도면 괜찮지 않을까요? 아침 일찍부터 하기에는 좀 그렇고 하니.."
[알았어요. 그럼 오디션을 내일 1시 반, 지하 2층에 있는 1번 연습실에서, 수빈씨랑 다른 선생님들이랑 다 같이 참석해서 보는 걸로 할게요. 아무래도 1번 연습실이 제일 넓으니까 거기서 보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내일 1시경 신인기획팀으로 찾아갈 테니 다 같이 내려가시죠. 그리고.. 오디션 내용은 어떤 방식으로 하실 건가요?"
[그거야 수빈씨 마음이죠. 연습생들한테 보고 싶은 게 있으면 보여달라 그러고 듣고 싶은 게 있으면 들려달라고 하면 되죠. 뭐든지 그 자리에서 다 시키면 돼요. 누가 시키는 건데 감히 안 하겠어요. 자기들 미래가 걸려있는데.. 걱정 말고 맘 편히 와요.]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아. 수빈씨. 내일 연습생들 복장은 어떻게 할까요?]
"흠. 그냥 몸에 달라붙는 트레이닝복이면 충분할 거 같은데요. 너무 심한 노출은 불편하니까 몸매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의상이면 될 거 같습니다."
[OK. 수빈씨. 고마워요. 담에 내가 술 한잔 살게. 그럼 내일 봐요.]
"네. 내일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수빈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내일 볼 오디션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다들 똑같이 지정곡을 부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각자가 좋아하는 노래를..'
수빈이 고민에 빠져드려는 그 순간 휴게실 여기저기에서 깨톡 소리와 휴대폰이 진동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 드르륵. 드르르륵.
- 깨톡. 깨톡. 깨톡.
- 문자 왔숑. 문자 왔숑.
- 띠리리리~ 따라라라~
깜짝 놀란 수빈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재난문자라도 온 거야 뭐야? 어디서 사고라도 터진 건가. 난 왜 문자가 안 오지?'
그때 휴게실 한쪽에서 흥분한 남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야! 대박! 내일 1시에 수빈선배가 드디어 오디션을 본데.
- 이걸 지금 알려주면 어떡해. 우리들 인생이 걸린 건데.
- 빨리 연습하러 가자. 내일 오디션에 우리 미래가 달렸다.
- 천재 프로듀서가 직접 보는 오디션이라. 후. 긴장된다.
- 다들 집에다 연락해. 오디션 때문에 오늘 집에 못 들어간다고.
남자들이 우르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다른 한쪽에서 흥분한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 어머. 나 큰일 났다. 조금 전에 점심 엄청 많이 먹었는데.
- 오디션은 내일인데 오늘 점심 많이 먹은 거랑 뭔 상관이야?
- 오디션 볼 때 얼굴이 부어 보일 거 아냐. 오늘 저녁부터 계속 굶어야지.
- 이년아. 그러다 오디션 보다 쓰러져. 헛소리 그만하고 연습이나 하러 가자.
- 긴장돼서 가슴이 다 두근거리네. 수빈 선배가 직접 보는 오디션이라니. 꿈만 같다.
- 우리도 뮤란처럼 멋지게 데뷔해야 할거 아냐. 다들 오늘 같이 밤새우자.
잠시 후 수빈은 휴게실 구석에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좌우로 돌려 주위를 확인했다. 연습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 빠져나간 걸 확인한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이 평일인데 이 시간에 연습생들이 왜 이렇게 많아? 깜짝 놀랐네. 수능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 건가. 아무튼.. 다들 열심이네. 후. 그렇다면 나도 오디션 준비를 좀 해야 하겠는걸. 아무 준비도 없이 오디션장에 가기에는 왠지 미안해지네.'
수빈은 휴게실을 나와서 제1 녹음실로 올라가 저녁때까지 내일 있을 오디션을 위한 작업을 하였다.
다음날 느지막이 일어난 수빈은 아침 겸 점심을 챙겨 먹고 매니저가 모는 밴을 타고 회사로 나갔다. 1시가 조금 못되어 신인기획팀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 수빈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무실 안에는 신인기획팀 4명, A&R 팀 3명, 재무회계팀 1명, 법무팀 1명 등 총 9명이 앉아 있었다.
"아니 신인기획팀 분들 말고 다른 부서 분들이 왜 이렇게 많이 계시죠?"
수빈의 질문에 A&R 팀 정팀장이 오른손 검지로 천정을 콕콕 찌르며 대답했다.
"사장님 지시 사항이라네. 수빈군이 뽑는 인재가 어떤 애들인지 시간 내서 유의 깊게 한번 지켜보라고 오다가 내려와서.."
"아. 그러셨구나. 그런데 회계랑 법무팀은 왜 오신 건지?"
수빈의 질문에 재무회계팀 강과장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이쪽도 사장님 지시사항입니다. 수빈씨가 잘 아시겠지만 연습생도 등급이 있지 않습니까? 오늘 수빈씨가 뽑는 연습생들은 그 수와 상관없이 무조건 가장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수빈씨가 눈여겨볼 정도로 뛰어난 인재를 타 기획사에게 뺏기면 안 되니까요. 그래서 아예 그 자리에서 계약을 새로 할 준비를 하고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 말씀드리는 건 사실 일종의 대외비에 해당합니다만..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은 다들 한식구이고 비밀을 지킬만한 분이시라고 생각하기에 말씀드리겠습니다."
강과장이 잠시 뜸을 들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올 3월에 공정위에서 연습생 계약 관련해서 시정명령이 내려오지 않았습니까? 거기에 맞춰 새롭게 고친 약관으로 연습생과 계약을 하려고 합니다. 특히 연습생의 이적을 방비하기 위해서 소액이라도 계약금을 지급하고 생활비를 일부 지원하는 조항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소속감이 더 생길 테고 연습생들도 편할 테니까요."
강과장의 설명에 수빈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그건 회사 입장에서 굉장한 모험 아닙니까? 연습생들에게 계약금과 월급을 준다? 처음 들어보는 이야긴데.. 연습생 계약이 기본 3년인데 그럼 3년간 회사에서 계속 월급을 지급한다는 건가요?"
"아닙니다. 이 계약은 1년짜리 계약입니다. 1년간 지켜보고 다시 재계약을 하던지 아니면 계약 해지를 하든지 하겠죠. 사실 이런 형태의 계약은 회의석상에서 그냥 말로만 언급되던 건데.. 수빈씨 때문에 전격적으로 실시하게 된 겁니다."
"저 때문이라고요?"
"네. 천재인 수빈씨의 안목을 믿는 거죠. 수빈씨가 프로듀싱 한 뮤란이 워낙 대박을 치다 보니.. 그 영향이 많이 있습니다. 수빈씨가 뽑는 연습생들에게 1~2억 정도 돈이 더 투자되더라도 수빈씨를 믿고 한번 시도해 볼만하다는 게 사장님 생각 같습니다."
"그런 식이면 제가 너무 부담이 되는데.."
"부담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1년간 한번 시험적으로 실시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연습생들에게 나가는 계약금이나 월급은 사실 회사 입장에서 그렇게 큰 돈이 아닙니다. 회사와 정식 계약을 맺는다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더 강하죠."
그때 이진희 트레이너가 끼어들었다.
"근데 수빈씨. 오늘 오디션에 참석하는 연습생들이 50명이 넘어. 한 명 한 명 제대로 보려면 시간이 꽤 많이 걸릴 텐데.."
"제가 한 명씩 일일이 다 보기에는 힘들죠. 몇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1차적으로 숫자를 줄일 겁니다. 현재의 능력보다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재능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 등을 위주로 보려고 합니다."
"좋은 방법이 있나 봐요?"
수빈이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어제 나름 머리를 굴려서 몇 가지 방법을 생각해 왔습니다. 저밖에 쓸 수 없는 방법이기는 하지만요."
잠시 후 수빈을 포함하여 총 열 명의 사람들이 오디션을 심사하기 위해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