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81화 (81/236)

#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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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의 질문에 홍보부 김대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얼마 전 회사에서 뮤란의 라퓨타 싱글 앨범 판매를 위한 프로모션 관련해서 회의가 열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랬나요? 전 참석을 안 해서.."

"그러실 겁니다. 그때 수빈씨는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 촬영 때문에 정신이 없을 때니까요."

"그런데요?"

"그 회의에서 라퓨타 앨범을 일본에 뿌리자는 의견을 낸 사람이 저였습니다. 제가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같은 걸 좋아하다 보니 노래 제목을 보고 느낌이 딱 왔었죠. 이건 일본 시장을 겨냥해서 팔아야 한다고.. 어차피 한국 음반 시장은 다 죽어가니까요."

"이야. 그러셨군요. 이번에 대박 난 게 김대리님 덕분이었군요. 감사합니다. 근데.. 그건 저에게 사죄할 일이 아닌 거 같은데요. 오히려 회사로부터 보너스를 받고 칭찬받아야 마땅할 거 같은데요."

"사실은.. 라퓨타 앨범이 일본에 풀리는 날 앨범 홍보를 위해서 제가 아는 일본 지인에게 SNS를 하나 올려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아! 누가 라퓨타 가사를 일본어로 번역해서 올렸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이 대리님 지인이셨나요?"

"아뇨. 그건 저도 모르는 분이 스스로 하신 거고 제가 지인에게 올려달라고 부탁한 건 이겁니다."

김대리가 업무수첩을 뒤지더니 메모지를 하나 꺼내어서 내밀었다.

私がいる知り合いに聞いたが

スビンという作曲家が宮崎駿監督のビクペンだって

それで今回にラピュタという曲を作ったって

"간단히 말씀드리면 수빈씨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빅팬이라서 이번에 라퓨타라는 곡을 작곡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네. 제가 주작했습니다. 거짓말을 한 거죠."

"후. 제가 라퓨타라는 곡을 작곡하건 뮤란 애들의 꿈 때문입니다. 자신의 꿈에 대해서 써오라고 숙제를 내줬었는데.. 그때 멤버 대다수가 어릴 때 스튜어디스가 되고 싶은 꿈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하늘을 날고 싶다.. 거기서 영감을 받은 거죠. 그래서 걸리버 여행기의 라퓨타를 생각하고 곡을 만든 겁니다. 노래 가사 보시면 [천공의 성 라퓨타] 애니메이션과 연관된 내용이 하나도 없어요."

"네. 저도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 앨범을 팔려다 보니.. 아무래도 한국인이 만든 곡이라고 하면 일본 사람들이 배척하고 거부할게 뻔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종의 동질감 같은 걸 주기 위해서 제가 지어 낸 겁니다."

"흠. 뭐 이 정도면 굳이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물건을 팔려다 보면 어느 정도는 과장도 하고 그러는 거죠."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서.."

김대리가 메모지 하나를 더 꺼내기 위해 업무수첩을 뒤지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수빈이 말했다.

"하나가 더 있나 봐요? 그럼 그냥 말로 하시죠."

수빈의 말에 김대리가 뒤적이던 업무수첩을 닫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오늘 아침에 라퓨타 일본어 판이 풀릴 때 SNS에 하나 더 새롭게 올린 게 있습니다. 수빈씨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오마주를 하기 위해서 일본어 판에 라퓨타 주문을 넣었다는 내용입니다."

"그것도 사실과는 조금 다르네요. 라퓨타 일본어 판에 라퓨타 애니에 나온 주문을 집어넣은 건 사실이지만.. 오마주라기보다는 장삿속이 더 맞는 말이겠죠. 이왕 일본을 겨냥해서 제작하는 거라면 그러는 게 앨범이 훨씬 더 잘 팔릴 거라는 계산 아래 작업을 한 거니까요."

"천재다운 정확한 예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일본에서 뮤란 앨범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건 그 주문의 영향도 틀림없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루스! 역시 수빈씨는 천재입니다."

"칭찬 감사합니다. 김대리님이 SNS에 올린 내용들이.. 혹시 한국 팬들 눈에 제가 친일파처럼 비칠까 좀 걱정되기는 합니다만.. 아무래도 그 정도까지 확대해석하지는 않을 거 같으니까 이 정도 수위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한데.. SNS에 하나 더 올린 게 있습니다."

"..또요? 후. 말씀하시죠."

"오늘 점심 무렵 SNS에 올린 내용인데.. 조만간 뮤란이 일본에 팬사인회를 하기 위해 출국할 때 수빈씨도 같이 일본으로 건너가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만난다는 글을 올렸습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본다. 천재 간의 조우(遭遇). 그런 콘셉트로요.."

"뮤란이 일본에서 팬사인회를 하기로 했나 보죠?"

"아뇨."

"응? 그럼 제가 감독을 만난다는 건?"

"당연히 거짓입니다."

"그럼 올린 내용이?"

"다 주작입니다. 100% 뻥이죠."

"...그런 식으로 해도 괜찮나요?"

"어차피 SNS라 상관없습니다. 기자가 정식 뉴스로 내보낸 것도 아니고.. 카더라 통신인 거죠. 일본 쪽에다 떡밥을 던져놓고 살짝 간을 보는 거죠."

"뭐 그런 거라면 문제가 없겠네요. 저도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아뇨. 문제가 있습니다."

"네? 어떤?"

"일본에서 조만간 뮤란이 팬사인회를 개최한다는 소문이 오타쿠 층에서 벌써 파다하게 퍼졌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거짓이 진실로 탈바꿈하는 거죠. 오늘 저녁에 일본 유통사랑 뮤란 팬사인회 관련해서 논의가 있을 예정입니다."

"설마.. 그럼?"

"네. 그 부탁을 드리려고 왔습니다. 수빈씨 허락 없이 제 맘대로 주작해서 SNS에 글을 올린 걸 사죄도 드릴 겸 해서.. 만약 뮤란 팬사인회 개최가 확정되면 그때 수빈씨도 같이 일본으로 가주실 수 있나 해서요."

"흠. 그 문제는 지금 확답을 못 드리겠네요. 제 일정이 어떻게 될지를 몰라서요. 개인적으로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서.."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뮤란의 일정이 정해지면 제가 다시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네. 그러시죠."

홍보부 김대리가 죄 사함을 받은 사람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떠나자 수빈은 지친 표정으로 A&R 팀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모습을 본 정팀장이 혀를 차며 말했다.

"쯧. 여태껏 팔방미인이 밥 굶는다는 게 어정쩡하게 여러 재주를 가진 사람이 한가지 잘하는 사람보다 못하다는 뜻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 뜻이 아니었군. 재주가 많다 보니 찾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밥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서 굶은 거였어.. 수빈군이 참 고생이 많아."

"그러게요. 후우. 앞으로는 일을 안 벌여야겠어요."

"그렇게 될 리가 있겠나. 내가 장담하는데.. 사람들이 수빈군을 절대 그냥 내버려 두지 않을 걸세."

"그럼 정팀장님만이라도 도와주세요."

"암. 도와줘야지. 우리는 절대 저런 식으로 수빈군을 괴롭히지 않아. 저 사람들은 돈이 전부인 장사치지만 우리는 다르지. 음악이라는 예술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동지들이 아닌가. 걱정 말게나."

"감사합니다. 그럼 A&R 팀에서는 어떤 일로 절 보자고 하신 겁니까?"

"곡 좀 주게."

"...."

수빈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아무 말 없이 계속 째려보자 정팀장이 헛기침을 하였다.

"흠. 흐흠.."

수빈이 입을 열었다.

"지금 곡을 달라고 하셨습니까? 절 안 괴롭힌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동지라면서요?"

그때 옆에서 듣고 있던 조민석이 끼어들었다.

"수빈씨가 오해를 하시는 거 같습니다. 지금 수빈씨 보고 새로운 곡을 작곡 해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럼 뭔가요? 정팀장님이 곡을 달라고 한 게 사실이 아닌 겁니까?"

"그건 맞습니다."

"그럼 뭐가 오해라는 겁니까?"

"수빈씨가 정신없이 바쁘다는 걸 뻔히 아는데 어떻게 감히 새로운 곡을 작곡해서 달라고 부탁을 하겠습니까. 그럴 필요 없이 이미 만들어 놓은 신곡이 있지 않습니까. 그걸 달라고 하는 거죠."

조민석의 말에 수빈의 머릿속에 퍼떡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 [나는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그거요?"

"네. 좀 전에 뮤란의 스페셜 앨범 이야기를 들어셨죠? 재무회계팀에서 만 이천 원을 받고 팔 계획이라고 하는데.. 한 곡만 달랑 들어간 싱글로는 절대 그 가격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100% 바가지라고 욕먹을 겁니다. 앨범이라는 타이틀을 달수 있게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6곡은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6곡씩이나요? 그럼 A&R 팀에서 나머지 5곡을 새롭게 만들어서 싣는 겁니까?"

"아뇨. 한 달 안에 모든 걸 다 끝내야 되는데 시간상 불가능하죠. 앨범 전부 수빈씨 곡으로 채워 넣을 겁니다."

"네? 오히려 그게 더 불가능한 거 아닙니까?"

"충분히 가능합니다. [라퓨타] 한국어 판. 일본어 판, [달과 나의 이야기] 한국어 판. 일본어 판, [나는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한국어 판. 일본어 판, 이렇게 넣으면 6곡이 됩니다."

당당하게 대답하는 조민석의 말에 수빈이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데요."

"사기라니요. 절대 아닙니다. 달나이 같은 경우에는 아직 일본에 정식으로 출시된 적이 없습니다. 나구바다는 한국에서도 부른 적이 없는 완전 신곡이고요. 따라서 앨범으로서의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는 게 저희 팀 판단입니다. 아. 나구바다는 [나는 구원을 바라지 않는다] 줄임말입니다."

"뭐 나구바다가 줄임말이라는 건 들으니까 바로 알겠습니다.. 근데 그런 식으로 한다고 해도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문제를 말하는 건가요?"

"달나이나 나구바다 둘 다 솔로곡입니다. 걸그룹이 부를 용도로 만든 곡이 아니에요."

수빈의 말에 정팀장이 끼어들었다.

"그거야 편곡하면 되지.."

"그렇더라도 나구바다는 가사나 곡의 분위기가 굉장히 암울해서.. 걸그룹이 부르기에는 너무 다크 한 노래입니다."

"그것도 편곡하면 돼.."

정팀장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수빈이 긴 한숨을 쉬었다.

"하~아."

"수빈군. 아까 말했잖아. 우리는 수빈군 안 괴롭힌다니까.. 그냥 허락만 해주게나. 두 곡다 수빈군 허락 없이는 편곡도 할 수 없고 앨범에 넣지도 못한다고.. 그냥 알아서 하라고 말만 해주면 나머지는 우리가 알아서 다 작업하겠네."

"좋습니다. 그 대신! 편곡 최종본을 들어보고 제 마음에 안 들면 앨범에 절대로 못 싣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거지. 고맙네. 수빈군. 우리도 자네가 만든 소중한 곡을 허투루 작업할 생각은 전혀 없어. 원작자인 자네 마음에 꼭 들 수 있도록 성실히 작업을 하겠네. 우리 A&R 팀의 능력을 한번 믿어 보라고.."

"네. 알겠습니다. 어제 라퓨타 일본어 판 작업하는 거 보니까 믿을만하더군요. 그럼 편곡이 끝나면 연락주 시죠."

"그러지. 그럼 우리는 이만 작업하러 가야겠네."

마라톤 회의가 끝난 후 정신적으로 너무 지친 수빈은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바로 집으로 귀가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드라마 촬영을 위해 수원으로 내려가는 밴 안에서 수빈이 물었다.

"형. 오늘 오후에는 스케줄이 없는 거죠?"

"물론이지. 오늘 오후에 BBG 신곡 녹음한다고 해서 싹 다 비워놨어."

"잘 하셨어요."

"잘하기는..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 그런 건데 뭘. 일찍 일어난다고 피곤할 텐데 가는 동안 눈 좀 붙여라."

"네. 운전 조심하세요."

시간이 흘러 KBC 드라마 센터에 도착한 수빈은 분장실로 찾아갔다.

잠시 후 분장을 마치고 드라마 촬영장으로 걸어간 수빈은 성강호를 발견하였다.

'어라. 이렇게 이른 시간에 주연배우가 어쩐 일로 나와있지?

가까이 다가간 수빈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성강호 형님. 안녕하세요."

"형님? 이놈 보게? 내가 왜 니 형님이야?"

성강호의 날선 대꾸에 수빈은 흠칫 놀라며 살짝 긴장을 하였다.

'흠. 무슨 기분 안 좋은 일이 있으신가. 갑자기 왜 이러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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