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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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스킨스쿠버 교육을 마저 끝마치고 오픈워터 자격증을 딴 수빈은 저녁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다음날 점심 무렵 회사로 나간 수빈은 제1 녹음실에서 점심으로 싸온 김밥을 먹으며 이틀 후 BBG의 신곡 최종 녹음에 대비한 세부 작업을 마무리하고 있었다.
2시간 정도를 헤드셋을 끼고 [Dispatch]를 연속해서 들으며 부분 부분 수정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녹음실 문이 열리며 A&R 팀 조민석이 뛰어 들어왔다.
깜짝 놀란 수빈이 헤드셋을 벗으며 물었다.
"민석씨. 연락도 없이 여기는 어쩐 일로?"
"수빈씨. 왜 전화를 안 받아요. 지금 회사에서 난리가 났는데.."
"아. 신곡 수정 작업을 하느라 헤드셋을 끼고 있어서 전화 온 걸 몰랐네요. 그런데 난리요? 뮤란 데뷔곡이 폭망이라도 했습니까?"
"네? 수빈씨는 음원차트 확인 안 해보셨습니까?"
"하아. 요즘 제 코가 석자라.. 아직 확인을 못해봤습니다. 이미 제 손을 떠난 일이라는 생각도 있고 해서.."
"라퓨타가 일요일 음원 순위 3등 찍고 어제 1등 찍었습니다. 비록 팬덤이 없어서 일일천하로 그치기는 했지만.. 오늘은 현재 10위권 안에 머물고 있고요."
"와우. 그럼 엄청 대박 난 거네요. 신인 걸그룹이 발표한 곡이 1위를 찍다니.. 근데 그럼 좋은 거 아닌가요? 무슨 난리가 났다는 거죠?"
"후우. 2시간 전에 발표된 오리콘 위클리 싱글 차트에서 뮤란의 라퓨타가 위클리 차트 17위에 올랐어요. 지금 그거 때문에 회사가 발칵 뒤집혔는데.. 정작 앨범을 프로듀서한 장본인은 전혀 모르고 계시네요."
"네? 오리콘이면.. 일본 차트 아닌가요?"
"그렇죠."
"흠. 프로듀서인 저도 모르는 사이에 라퓨타 일본어 버전이 녹음되어 출시되었나요? 전 금시초문인데.."
"당연히 그런 적이 없죠."
"그런데 어떻게 오리콘 차트에 올라갑니까? 제가 알기로는 그 차트는 음원 다운로드가 아니라 오로지 앨범 판매 숫자로 순위를 정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뮤란이 일본에서 앨범을 발표한 적이 없잖아요?"
"수빈씨가 말한 게 맞아요. 원래 오리콘 차트는 매주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집계된 앨범 판매 숫자를 차트로 정리해서 화요일에 발표하는데.. 오늘 화요일 오리콘 홈페이지에 뮤란의 라퓨타가 3,700장으로 17위에 올랐습니다. 그 말은 일요일 하루에 4천 장 가까이 팔렸다는 걸 뜻하는데.. 아아. 지금 이럴게 아닙니다. 수빈씨. 지금 저랑 같이 회의실로 가시죠. 다들 지금 수빈씨만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어요."
"저기 민석씨. 죄송하지만 지금 저도 많이 바쁜데요."
잠시 후 조민석의 손에 강제로 압송된 수빈은 회의실에서 머리가 번쩍번쩍 빛나는 이성호의 개략적인 설명을 듣고 있었다.
"홍보부에서 라퓨타라는 노래 제목 때문에 혹시나 해서 일본 쪽으로 넘겨서 매장에 깔은 뮤란의 싱글 앨범 숫자가 딱 1만 장이라고 합니다. 근데 지금 현재 거의 절판 상태라 구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일요일 뮤란의 데뷔 무대가 있은 날 3,700장이 팔렸고 월요일 나머지 앨범이 거의 다 팔린 걸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런 추세라면 만약 물량만 빨리 공급된다면 다음 주 위클리 차트에서는 아마도 상위권에 진출할 거라고 내다보고 있습니다."
이성호의 말에 수빈이 질문했다.
"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일본 사람들이 이제 막 데뷔한 뮤란의 라퓨타 앨범을 어떻게 알고 구매를 하는 거죠? 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요즘 SNS가 워낙 활발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누군가 라퓨타라는 곡이 참 좋다고 추천하면서 일본어로 가사를 번역해서 올렸다고 합니다. 아마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일 가능성이 높겠죠. 그게 일본 쪽에서 퍼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모양입니다."
대화를 듣고 있던 정팀장이 입을 열었다.
"일본에서 라퓨타라는 단어는 일종의 마력을 담고 있는 단어이지 않은가. 아마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를 기억하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그런 거겠지."
정팀장의 말에 수빈이 반문했다.
"제가 곡을 만든 콘셉트는 걸리버 여행기에서 따온 거고 가사 내용상 그 어디에도 [천공의 성 라퓨타] 관련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데요. 첫 도입부와 마지막 끝날 때 라퓨타!라고 뮤란애들이 외치는 게 전분데.."
"그래도 상관없다는 거겠지. 라퓨타라는 이름을 걸고 그것도 감히 조센징이라고 경멸하는 한국에서 나왔다고 하니까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어디 함 들어나 보자는 게 처음 발단이었겠지. 아마 들입다 깔려고 들었을 거야. 너희들이 감히 라퓨타라는 단어를 사용해? 내가 들어보고 아주 자근자근 씹어주겠어. 그런 심정으로 찾아서 들었겠지."
정팀장의 말을 이어서 이성호가 입을 열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막상 들어보니 곡의 완성도나 퀄리티가 기가 막혀서 다시금 SNS 상으로 소문이 널리 퍼진 모양입니다. 일본어로 번역된 가사도 아주 훌륭하지 않습니까?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미소녀들이 부르는 마력의 단어 라퓨타.. 모양새가 딱 맞아떨어지는 거죠."
이성호의 말에 수빈이 긴 한숨을 쉬며 물었다.
"하여간 그 나라 사람들은 이해를 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지금 회의를 하는 목적이 뭔가요?"
수빈의 질문에 정팀장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오늘 밤에 뮤란의 싱글 앨범을 급히 다시 찍어서 내일 일본으로 보낼 계획이네. 그때 일본에 보낼 뮤란의 싱글 앨범을 한국어 판으로 다시 찍어서 보낼지 아니면 일본어 판으로 새롭게 찍어서 보낼지를 지금부터 30분 내로 결정해야 해. 공장에다 빨리 통보해줘야 되니까.. 일본어 판으로 찍으려면 그쪽 직원들이 우리 쪽 작업이 끝날 때까지 대기하고 있다가 날밤 새서 찍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수빈이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준비된 게 전혀 없잖아요? 일본어 판으로 찍어 보내려면 가사도 편곡도 녹음도 새로 다시 해야 된다는 소린데.."
"걱정 말게. 그런 건 수빈군이 전혀 걱정할 필요 없네. 우리 A&R 팀 전원이 다 달라붙으면 밤이 되기 전까지 모든 작업을 다 끝마칠 수 있어. 뮤란도 지금 녹음 때문에 행사를 취소하고 회사에서 스탠바이 상태고 연주자들도 다들 지금 회사로 열나게 뛰어오고 있는 중이야. 일본에서 뮤란 앨범이 대박이 나면 멤버들은 다들 돈방석에 올라앉을 테고 회사나 우리들도 수입이 두둑해지는데 누가 감히 그걸 못하게 막겠나.."
'하아. 돈을 많이 벌면 좋긴 한데.. 이놈의 자본주의는 정말로 징글징글하다.'
수빈은 정팀장의 말에 반문했다.
"그럼 A&R 팀이 알아서 하시면 되지 않나요? 굳이 제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을 거 같은데요.."
"무슨 소리야. 라퓨타의 처음부터 끝까지가 다 수빈군 작품 아닌가. 당연히 수빈군의 의견을 들어봐야지."
"제 의견이라.. 그럼 전 찬성입니다. 이왕 앨범을 새롭게 찍는 거라면 일본어 판으로 찍는 게 판매에 훨씬 더 유리하겠죠. 전 이름만 이전처럼 공동 프로듀서로 올려주시면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저작권이야 어차피 저에게 있는 거고.."
"누가 그런 걸 물어봤나? 그런 건 수빈군이 말 안 해도 당연한 이야기지.."
"그럼 저에게 뭘 원하시는지?"
"천재! 자네는 천재 아닌가. 우리는 지금 이런 절호의 상황을 만든 천재 프로듀서의 날카로운 식견을 구하는 거야. 새롭게 일본어 판으로 찍을 때 주의해야 할 사항이나 첨가하거나 또는 바꾸어야 할 것들이 있는지 물어보는 거라고. 이 노래에 대해서 누구보다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수빈군 아닌가.."
"아.. 그런 거였군요."
"그래. 편곡이니 녹음이니 그런 자질구레한 일들은 우리가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 자네의 뛰어난 식견을 들려주게. 이왕 돈 버는 김에 왕창 버는 게 좋지 않겠어?"
"흠.."
문득 수빈이 주위를 둘러보니 회의실에 앉아 있는 남자 3명이 다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런.. 남자들이 저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으니 소름이 다 돋는군. 다들 나에 대한 기대가 잔뜩 들어가 있는 거 같은데.. 하기야 월급쟁이들이 이런 찬스 때가 아니면 언제 목돈을 벌겠어. 이해 못할 것도 아니고..'
"그럼 잠시만 시간을 주시죠. 제가 워낙 경황없이 회의에 참석해서.. 생각을 좀 정리해보겠습니다."
"그러게나. 30분 안에만 정리해서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면 되네. 그럼 바로 회의를 끝마치고 공장에다 통보한 뒤 우린 바로 작업에 들어가겠네."
수빈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 톡. 톡. 톡.
수빈은 눈을 감고 천재적인 머리로 라퓨타에 관련하여 암기하고 있는 모든 자료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검토하였다.
적막 속에서 들리던 테이블을 두드리던 소리가 뚝 끊어지고 수빈이 눈을 떴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수빈이 좌중을 보면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전에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물어보게."
"지금 뮤란 멤버 중에서 일본에서 제일 인기 있는 멤버가 누군지 아십니까?"
수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이성호가 홍보실로 전화를 걸었다.
홍보실과 통화를 마친 이성호가 말했다.
"홍보실에서 그러는데 멤버들 전원이 인기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에리카가 제일 인기 있다고 그러네. 제일 어리고 예쁜 데다 노래 시작할 때 점프하는 퍼포먼스가 마치 하늘에 있는 천공의 성 라퓨타로 날아올라가는 것처럼 보인다고 일본 사람들이 특별히 더 좋아하나 봐."
"알겠습니다. 제 생각에는 일본어 판이라면 딱 두 개만 바꾸면 될겁니다. 나머지는 A&R 팀에서 알아서 작업하시면 될 거 같고요."
"어떻게 말인가?"
"맨 처음 말입니다...."
회의가 끝나자마자 조민석은 바로 공장으로 전화를 걸었고 이성호는 연주자들의 도착 여부를 체크하기 시작했으며 정팀장은 뮤란에게 연락을 취하였다.
다들 전화가 끝난 뒤 조민석은 앨범 재킷을 일본어로 바꾸는 작업을 하기 위해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뛰어갔고 이성호와 정팀장은 녹음실로 뛰어갔다.
그로부터 3시간 후.
수빈이 제1 녹음실에서 계속해서 작업을 하고 있을 때 까톡이 울렸다.
- 편곡 및 개사 작업 완료. 지금 녹음 들어감.
조민석이 보낸 까톡 내용을 보며 수빈이 중얼거렸다.
"헐. 3시간 만에 그걸 다 했다고? 사람들이 나보고 천재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이 사람들이 오히려 더 대단해 보이는걸.. 돈의 위력이란 게 정말로 무섭군."
그로부터 2시간 후 다시 까톡이 울렸다.
- 녹음 완료. 지금 바로 녹음실로 오셔서 최종 평가를 부탁드림.
"히야. 정말 대단하다. 이게 바로 프로의 진정한 무서움인가.. 돈이 걸리니 거칠 것이 없구나."
잠시 후 수빈은 A&R 팀, 뮤란, 악기 연주자들의 뜨거운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라퓨타 일본어 판을 듣고 있었다. 연속해서 3번을 들은 수빈이 헤드셋을 벗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이 정도로 뽑아내다니.. 다들 훌륭하십니다. 전 만족합니다."
수빈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정팀장이 짝 소리를 내며 박수를 크게 한번 친후 말했다.
"좋아! 원작자의 합격 사인이 떨어졌으니 됐어. 다들 고생했다. 성호는 지금 바로 다운로드해서 공장으로 뛰어가고 민수는 메일로 바로 쏴줘라. 다른 사람들은 혹시 재녹음 해야 될지도 모르니까 공장에 도착한 성호가 이상 없다고 할 때까지 여기서 대기한다. 오늘 저녁은 내가 쏠 테니 먹고 싶은 거 맘껏 시켜!"
- 와우! 난 탕수육.
- 전 치킨에 피자요.
- 이럴 땐 역시 족발에 소주지.
- 어? 술 먹어도 돼?
- 술은 안돼! 족발, 수육 다 먹자.
- 전 짜장면요.
그날 저녁 공장에서는 뮤란의 라퓨타 일본어 판이 밤새도록 찍혀 나왔고 아침에 초도 물량 3만 장이 비행기 편으로 급히 일본으로 공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