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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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킨스쿠버 강사로 보이는 남자가 한 손에 서류를 들고 수빈에게 다가와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세요. 수빈씨. 오늘 1 대 1로 교육을 맡은 강사 이성호라고 합니다. 유명인이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강사가 수빈이 미리 작성한 서류를 읽어보면서 말을 하였다.
"그럼 몇 가지 확인부터 먼저 하겠습니다. 여기 작성하신 것처럼 특별한 지병은 없으시죠?"
"네. 없습니다."
"그럼 물에 대한 두려움 같은 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교육을 받으시는 거죠?"
"네. 오늘이 처음입니다."
"그럼 지금 수빈씨가 배울 수 있는 코스는 초보자가 처음으로 받는 교육 과정인 오픈워터(OpenWater) 다이버 코스입니다. 이걸 이수해야만 자격증이 나가고 그 자격증이 있어야만 다른 곳에 가서도 다이브를 할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오픈워터 말고 다른 코스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 수 있나요?"
"오픈워터 다음에는 어드밴스 과정이 있고 그다음 레스큐 마지막으로 마스터 스쿠버 다이버 코스가 있습니다.“
"강사님. 제가 일반인들보다 운동신경이 많이 좋은 편인데.. 혹시 속성반 같은 게 따로 있습니까?”
“없습니다. 각 과정마다 이전 과정의 이수 자격증이 있어야만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픈워터 자격증을 먼저 따야 그다음 어드밴스 과정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죠."
“그렇군요.”
“오픈워터 과정은 수영장 교육 이틀, 이론수업 및 필기시험 마지막으로 해양실습 이틀이 있습니다. 해양실습은 경포대 아니면 제주도로 가는데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교육비가 차이가 납니다. 어디로 가실 건가요?”
“바람도 쐴 겸 제주도로 가죠. 가격이 어느 정도 하나요?”
“제주도로 가시면 전 과정을 다 합쳐서 130~150만원 정도면 충분할 겁니다. 그럼 수빈씨가 1 대 1 개인 강습을 원하셨으니까 지금 바로 잠실 수영장으로 이동해서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로부터 이틀간 열심히 수업을 받은 수빈은 잠실 수영장에서 받는 제한 수역 다이브(Confined Water Dive) 마지막 과정을 남겨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수빈씨. 이제 수영장 교육은 1시간 정도만 하면 끝입니다.”
“이틀 동안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강사님.”
“고생이라뇨. 이게 제 직업인데.. 그런데 정말 대단하시네요.”
“뭐가요?”
“운동신경 좋은 거야 잠수복 입을 때 수빈씨의 벗은 몸을 보면서 짐작을 했었고, 머리 좋기로야 워낙 유명하신 분이니까 수업을 잘 이해하고 쉽게 따라오는 거까지도 납득이 됩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수빈씨가 참 특이한 게.. 보통은 다이브 교육을 받다 보면 사람들이 긴장을 많이 하거든요. 아무래도 물속 깊이 내려가면 공포심이 들기 마련이죠. 인간은 누구나 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수빈씨처럼 아무런 긴장감 없이 여유롭게 교육을 받으시는 분은 제가 강사 생활하면서 처음 봤습니다.”
강사의 말에 수빈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한번 죽어봤던 사람 같죠?”
“하하. 뭐 그럴리야 있겠습니까.. 아무튼 굉장히 대범한 성격이신 거 같아요. 수빈씨가 스킨스쿠버 자격증을 따시려고 하는 게 영화 촬영 때문에 그러시는 거죠?”
"네. 이번에 들어가는 영화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제가 스킨스쿠버를 해야 하는 액션신이 있어서요."
"그러시군요. 어디 바다에서 다이브를 하시는 건가요?"
"바다가 아니라 육지에서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슬슬 다시 교육을 해볼까요?"
잠시 후 교육을 마친 수빈은 강사와 사흘 후 제주도에서 다시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차로 돌아갔다.
"어서 와라. 교육받느라 고생했다. 다른 스케줄이 없는데 집으로 갈까?"
"네. 형. 집에 가서 대본이나 좀 봐야겠어요."
집에 도착한 수빈은 레토르트 식품 위주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한 후 대본을 집어 들고 거실 소파에 몸을 묻었다.
<<영화 대본...
김지훈은 며칠간 자신을 추적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제대로 씻지를 못해 머리는 떡이 지고 턱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란 채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3월이라 절기상 봄이지만 오대호 근처의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은 계속해서 지훈의 코트 깃을 세우게 만든다.
멀리서 자동차 소리가 들릴 때마다 뒤로 돌아서서 히치하이킹을 하기 위해 엄지를 치켜들었지만 추레하게 보이는 지훈을 태워주려는 자동차는 한 대도 없었다.
"빌어먹을.."
결국 히치하이킹을 포기한 지훈은 한참을 길을 따라 걸어갔다. 옷깃을 파고드는 매서운 바람을 피하기 위해 코트 깃을 세운 채 고개를 숙여 땅만 쳐다보며 걸어가던 지훈의 귀에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지훈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멀리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보았다.
지훈의 눈에 하늘에 걸려있는 선명한 무지개가 들어왔다. 무지개 아래에는 백여 미터 높이로 튀어 오르는 수많은 물방울들이 자욱한 운무를 만들고 있었다.
나이아가라 폭포였다.
"후. 이제 다 왔군."
지훈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발걸음을 빨리하여 이번에 자신이 힘들게 얻은 정보를 비싼 가격에 사겠다는 구매자와 사전에 약속한 장소로 걸어갔다.
잠시 후 지훈의 눈에 [수정 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오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불고기와 LA 갈비를 파는 한인 식당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환한 미소를 지은 지훈은 한달음에 식당 입구로 뛰어가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훈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식당 안에 앉아서 불고기를 먹고 있던 히스패닉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 2명이 지훈을 쳐다보았다. 그들을 발견한 지훈은 발걸음을 주춤거리며 멈추었다.
남자들이 지훈을 쳐다보며 자리에서 일어설 때 그들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권총이 지훈의 눈에 잡혔다.
"이런 xx 젠장.."
뒤돌아 거칠게 식당 문을 박차고 나온 지훈이 식당 안에 있던 남자들을 경계하며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때 식당 주차장 쪽에서도 자신을 향해 뛰어오는 남자 2명이 보였다.
"사람.. 사람들이 많은 쪽으로 도망가야 해."
다급한 얼굴로 급하게 말을 뱉어낸 지훈이 코트를 휘날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지훈의 클로즈업한 얼굴에는 오른쪽 눈가에서 턱까지 이르는 선명한 흉터 자국이 보였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람하는 관광객들이 모여있는 쪽으로 달려간 지훈은 테이블 록(Table Rock)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입장권을 사려고 매표소 앞에 섰다.
매표소 앞에서 돈을 찾기 위해 코트 주머니를 뒤지는 지훈의 뒤쪽 멀리 지훈을 잡으려고 4명의 남자가 급히 뛰어오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가진 돈이 없는 듯 지훈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는 지훈의 손이 화면상에 클로즈업 되며 동그란 조그마한 스위치를 연신 누르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결국 돈이 없어 표를 사는 걸 포기한 지훈이 옆쪽 방향으로 다시 뛰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관광객이 없는 절벽 위에 선 지훈은 자꾸 뒤를 돌아보았다. 절벽 아래에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시작된 급류가 세찬 소리를 내며 흘러가고 있었다.
- Freeze.
- Don't move,
히스패닉 남자 4명이 절벽 위에 서있는 지훈을 빙 둘러서서 움직이지 말라고 소리치며 조금씩 가까이 다가왔다. 그걸 목격한 지훈이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야 이 개새끼들아. 더 가까이 오면 뛰어내릴 거야. 알아들어?"
지훈의 뒤를 쫓아온 남자들이 오른손은 허리춤에 꽂혀있는 권총에 손을 올린 채 왼손을 앞으로 들어 지훈을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그 순간 지훈이 비장한 표정을 지으며 코트 안에서 붉은색 USB를 꺼내들었다. 그런 후 천천히 사방을 둘러보았다.
가까이 보이는 나이아가라 폭포에 눈을 고정한 채 지훈이 모든 것을 포기한 얼굴로 말했다.
"죽기 딱 좋은 장소로군. 너희들은 이걸 절대 못 찾을거다.."
손에 들고 있던 USB를 입에 넣은 후 지훈이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뒤쪽으로 넘어졌다.
"아아아악~"
절벽 위에서 떨어진 지훈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한동안 비명을 지르며 자유낙하를 하다가 시퍼런 강물 속으로 풍덩 빠져들었다.
곧이어 절벽 위에서 황당한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는 남자들의 얼굴이 잡혔다.
...영화 대본>>
"흠. 쫓아오는 남자들이 히스패닉 계열이면 스페인어 아니면 영어로 대사를 쳐야 되는 거 아냐? 한국말로 말하면 걔네들이 무슨 수로 지훈이 하는 말을 알아듣지. 나중에 원어로 다시 바꿀 생각인 건가.. 그런 게 아니면 차라리 북한 공작원 애들한테 쫓기는 걸로 바꾸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머릿속으로 영화 장면을 구성하며 대본을 읽던 수빈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발견하고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후 다시 대본을 들여다보았다.
수빈은 이틀간의 스킨스쿠버 교육 내용을 참고하며 자신이 물속에서 해야 할 액션 연기 부분을 꼼꼼히 읽어 보았다.
<<영화 대본...
지훈이 물속에 빠진 상태에서 팔다리를 흔들며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이 보낸 신호를 받고 물속에서 대기하고 있던 미주 1팀 백업 요원인 이석희가 보였다.
지훈은 스킨스쿠버 장비를 갖춘 이석희가 가까이 다가오자 입속에 머금고 있던 붉은색 USB를 꺼내어 안전한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런 후 이석희가 건네주는 호흡기의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그 상태에서 이석희의 등 쪽으로 이동하여 매달렸다.
잠시 후 물속에서 잠수로 급류를 타고 하류 쪽으로 내려간 두 사람은 사전에 정해놓은 지점에서 육지로 올라간 후 미리 대기시켜놓은 차에 올라타 어디론가 이동하였다.
장면이 바뀌어 아지트로 보이는 사무실로 들어서는 두 사람이 잡혔다.
"팀장님."
이석희가 부르는 소리에 지훈이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왜?"
"너무 무모한 거 아닙니까? 작전이 조금만 빗나가도 목숨이 위험할 거 같은데요.. 굳이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습니까?"
"위험해도 어쩔 수 없어. 내가 그놈들 눈앞에서 USB를 소지한 채 죽는 장면을 연출해야만 추적을 끊을 수 있는 거야. 어설프게 도망쳤다가는 끝까지 우리 뒤를 쫓아올 거다. 이제 안심하고 USB 안에 들어있는 정보를 이용할 수 있으니까 한국에 있는 본사로 보내줘. 난 좀 씻어야겠다."
잠시 후 샤워를 하고 나온 지훈이 세면대 거울 앞에 서서 덥수룩하게 난 수염을 면도하기 시작했다. 면도가 다 끝난 후 지훈은 얼굴에 있는 흉터 끝부분을 잡고 조심스럽게 뜯어냈다.
흉터 없이 말끔한 얼굴의 지훈이 거울을 들여다보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영화 대본>>
거기까지 대본을 읽은 수빈은 다시 중얼거렸다.
"흠. 대본에 나와 있는 대로라면 수중 연기 자체가 크게 어려울 건 없어 보이는데.. 근데 정말로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에서 추락하는 장면을 찍을 수 있는 건가. 촬영 허가를 받아내기가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뭐 내가 걱정할 일이 아니긴 하지. 제작사에서 알아서 섭외하겠지."
수빈은 다시 대본에 집중하였다.
다음 날 회사로 나간 수빈은 이틀 후 데뷔를 앞두고 있는 뮤란의 연습실로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