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74화 (74/236)

#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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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대본...

서울시 서초구 내곡동 소재의 한 건물.

건물 밖에서 바라 보았을 때 5층에 위치한 불 꺼진 회의실에서 희미한 불빛이 창 너머로 새어 나오고 있었다.

5평 정도 되는 제법 넓은 회의실 한가운데에는 기다란 사각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사각 테이블 좌우로 각각 2명씩 4명의 남자가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회의실 한쪽 벽면에 걸려 있는 은색 스크린에는 사각 테이블 끝부분에 올려진 슬라이드 환등기 불빛이 강하게 비치고 있었고, 거기에 오늘 모임의 주제가 큰 글씨로 띄워져 있었다.

- [SAT Project]

다들 무언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 사각 테이블 상석을 기점으로 왼쪽 상단에 앉아 있던 남자가 좀이 쑤시는지 몸을 꿈틀거렸다. 회사에서 예산과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 기획조정실장 신헌수가 나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많이 늦어지는군."

자신의 말에 아무도 반응을 하지 않자 반백의 머리에 은테 안경을 쓰고 예리한 눈매를 가진 신헌수 기조실장이 스크린에 확대 영사되어 있는 글을 손가락질을 하며 입을 열었다.

"3차장. 프로젝트 이름이 뜻하는 게 뭔가?"

기조실장이 던지는 질문에 비로소 침묵의 서약이 깨졌다는 듯 미국통이라 불리며 통상적으로 대북 정보 및 해외 국익 정보 수집을 담당하는 서남구 1차장이 말을 받았다.

"SAT 면 일반적으로 미국 대입 자격시험을 말하는 건데.. 설마 그건 아닐 거고.."

1차장의 말에 국내에서 방첩, 대공수사와 대테러 담당인 김주환 2차장이 대꾸했다.

"아마도 정보가 새어나갔을 경우를 대비해서 이름을 평범하게 지은 거 같습니다. 노린 거 같은데요."

그 순간 곰 같은 덩치에 웬만한 여자 허리만큼 굵은 팔뚝을 지닌 김상군 3차장이 사람들의 대화를 말없이 듣고만 있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통상적으로 사이버테러, 통신정보와 기술정보 등을 담당하며 회의실에서 가장 막내인 3차장은 일어서서 허리를 똑바로 곧추세운 뒤 입을 열었다.

"SAT는 Special Agency Team의 약자입니다. 이들은 회사와 정규 고용 계약을 맺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해외에서 긴급히 처리해야 할 일이 발생했을 때, 그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현장에서 특별 고용을 한 후 활동을 하는 팀이기 때문에 붙혀진 명칭입니다."

김상군 3차장의 대답에 회사의 예산을 담당하고 있는 신헌수 기조실장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럼 평상시 그쪽 팀에게는 우리 회사에서 급여가 나가지 않는 건가? 작전이 떨어졌을 때만 예산이 들어가는 팀이라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평상시 작전이 없을 때에는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신분으로 생활을 하다가 일이 터졌을 때에만 일종의 수당 형식으로 예산이 집행되는 팀입니다."

3차장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흡족한 표정을 지은 기조실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쁘지 않군. 3차장이 머리를 잘 썼어. 그 돈들이 다 국민의 세금 아닌가. 최대한 아껴 써야지."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면 바깥의 밝은 불빛이 안으로 왈칵 밀려 들어왔다.

비서로 보이는 건장한 젊은 남자가 회의실 문 손잡이를 잡은 채 먼저 입장을 하며 사람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원장님. 들어오십니다."

그 순간 회의실에 앉아 있던 모든 사람들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몇 초후 고급스러워 보이는 검은색 정장 차림을 한 노년의 남성이 카리스마를 내뿜으며 회의실 안으로 저벅저벅 걸어들어왔다.

원장으로 보이는 남성은 비서가 뽑아주는 상석 의자에 앉은 다음 손사래를 치며 입을 열었다.

"다들 편하게 앉아요. 뭘 자꾸 그렇게 벌떡벌떡 일어섭니까."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착석하자 원장이 경상도 억양이 약간 섞인 말투로 좌중을 향해 말을 던졌다.

"미안해요. VIP랑 미팅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늦었습니다. 자.. 오늘 회의는 3차장이 주재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무슨 내용인지 어디 한번 들어봅시다."

원장의 말에 김상군 3차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스크린이 걸려있는 벽 쪽으로 걸어갔다. 스크인 앞에 선 3차장이 좌중을 향해 고개를 숙인 후 입을 열었다.

"먼저 이번 프로젝트가 발족하게 된 배경을 간단히 설명드리겠습니다. 얼마 전 새롭게 취임하신 VIP 님의 강력한 의지에 따라 저희 회사가 앞으로는 국내 정치와 관련된 활동 및 정보 수집 등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VIP 님께서 후보자 시절일 때부터 품고 계시던..."

원장이 손을 들며 3차장의 말을 잘랐다.

"3차장. 서론이 너무 길어. 짧게 하게."

"네. 알겠습니다. 흠. 흠."

약간 당황한 듯 주먹을 쥐어 입을 가리며 헛기침을 몇 번 하고서 3차장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회사 내에서 새롭게 조직개편이 이루어졌고 그에 따른 잉여 인력과 재원이 불가피하게 발생하였습니다. 이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급변하는 세계정세에 발맞춰 국제 금융 사기, 테러 모의, 무기 암거래 등 여러 가지 비상사태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국외 특수팀을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SAT라고.."

3차장의 설명 도중 원장이 다시 손을 들었다.

"잠깐.."

"네. 원장님."

"국외 특수팀인데 왜 그걸 3차장이 설명하지? 그럼 앞으로 그 팀들은 3차장이 관리한다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원장이 고개를 돌려 서남구 1차장을 바라보았다.

"1차장."

원장의 호명에 살이 쪄서 기름기가 잔뜩 흐르는 통통한 얼굴의 서남구 1차장이 허리를 바로 세우며 대답했다.

"네. 원장님."

"국외 파트는 1차장이 맡는 거 아니었나?"

"일반적인 국외 정보 습득은 저희 쪽에서 계속해서 맡습니다. 하지만 지금 발족하는 팀은 세계적으로 날로 증가하는 화이트칼라형 범죄에 대응하는 현장활동팀이라서 3차장이 직접 맡기로 했습니다. 일전에 보고드렸습니다만.."

"내가 요즘 하도 정신이 없어서.."

원장이 3차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둘이 합의가 된 거라면 상관없겠지. 계속하게나."

3차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네. 알겠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SAT 즉, Special Agency Team은 날로 급증하는 지능형 범죄에 대응하는 국외 활동팀으로서 지역에 따라 2개의 팀을 만들었습니다. 아시아 쪽은 한국과 가까워서 회사에서 직접 관리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제외했고 미주 1팀과 유럽 2팀으로 2개의 팀을 조직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영화 대본>>

'흠. 초반에는 3차장 역할이 많이 중요한 거 같은데.. 누굴 캐스팅한 거지?'

머릿속으로 영화 속 장면을 상상하며 BJ에서 보내준 최신판 수정 대본을 꼼꼼하게 읽고 있던 수빈은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대본 끝 쪽에 첨부되어 있는 캐스팅 리스트를 찾아보았다.

캐스팅 리스트를 쭉 읽어보던 수빈은 3차장 역할로 내정되어 있는 배우를 발견했다.

- 국가정보원 3차장 김상군(남) 역할 = 마동식(확정)

'마동식 형님이로군. 여자 허리만큼 굵은 팔뚝이라는 부분에서 어느 정도 짐작을 하기는 했지만 이번 영화에서 조연으로 출연하시는 모양이네. 얼마 전 개봉한 [범죄의 도시]가 대박을 쳐서 이제 단독으로 주연을 하셔도 충분한 분이 조연이라니.. 다음에 만나면 감사하다고 인사를 제대로 드려야겠군.'

수빈은 캐스팅 리스트를 계속해서 살펴보았다.

- 국가정보원 원장(남) = 성강호(내정)

'원장 역할은 성강호 형님이 내정되어 있네. 내정이라고 적혀 있는 거 보니 아마도 카메오로 잠깐 출연해주실 모양인데.. 이 형님도 만나면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군.'

수빈은 회의실 장면에서 다른 역할들로 내정되어 있는 사람들을 찾아보았다.

'1차장, 2차장, 기조실장 역할을 맡으신 분들은 이름을 봐도 누가 누군지 잘 모르겠군. 언제 시간 내서 검색을 한번 쭉 해봐야겠다.'

좀 전에 읽던 회의실 장면을 계속해서 읽기 위해 수빈이 캐스팅 리스트를 접고 대본을 다시 펼칠 때였다. 밴을 운전하고 있던 매니저가 수빈을 힐끗 바라보며 말했다.

"수빈아."

"네. 형."

"거의 다 왔다. 준비해라. 차가 막혀서 예정 시간보다 좀 늦었는데 괜찮으려나.."

"별 상관없을 거예요. 어차피 그쪽도 지금은 점심시간이라.. 교육을 받으려면 점심시간 지나서 받아야 될 거니까 조금 늦어도 괜찮을 겁니다."

"그래? 그럼 다행이고. 근데 수빈아.."

"왜요?"

"꼭 네가 해야만 되는 거야? 많이 위험한 건 다른 사람을 시키지.."

"또.. 형도 잘 아시면서 또 그러신다. 그러면 CG 처리를 해야 되기 때문에 후처리 작업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서 안된다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제가 직접 다 해야죠."

"후. 사고 날까 봐 걱정이 돼서.."

"그래서 시간 날 때 미리미리 교육을 받으러 가는 거 아닙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알았어.."

수빈은 자신을 걱정하는 매니저를 따뜻한 눈빛으로 쳐다본 후 대본을 접고 가방에 넣은 다음 내릴 준비를 하였다.

"형."

"왜?"

"아직 점심 안 드셨죠? 전 오늘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집에서 아점 겸 해서 먹고 나왔으니까 형은 저 내려주고 식사하고 오세요. 전 교육을 다 받고 나서 챙겨 먹으면 될 거 같아요."

"혼자 가도 괜찮겠어?"

"그럼요. 교육받는데 옆에 형이 옆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가서 식사나 하고 오세요."

"알았다. 후딱 먹고 올게."

잠시 후 모 건물 앞에 밴이 정차하자 가방을 들고 내린 수빈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1층에 위치한 스킨스쿠버 교육장으로 문을 열고 들어간 수빈은 데스크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성에게 다가갔다.

"실례합니다."

"네. 말씀하세요."

"오늘 스킨스쿠버 교육을 받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왔습니다."

"그러세요? 지금 강사분들 다들 식사하러 가셨는데.. 잠시만요."

그제서야 핸드폰에선 눈을 떼고 수빈을 바라본 여성은 깜짝 놀란 얼굴로 계속해서 눈을 껌뻑껌뻑 거렸다. 한참을 그러던 여성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

"꺄악! 어머나! 어머어머. 어머머머.. 수빈씨! 수빈씨 맞죠?"

"네. 맞습니다."

수빈은 호들갑을 떠는 여성을 간신히 진정시킨 후 간략한 서류를 작성하여 데스크에 제출한 다음 비어있는 소파를 찾아가서 앉았다. 그런 후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 들어 아까 보다가 중지한 3차장의 대사 부분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영화 대본...

"미주 1팀과 유럽 2팀 공히 보안을 유지하기 위해 소수 정예로 운영되기 때문에 각 팀은 팀장 겸 현장 활동 요원 1명, 백업 요원 1명, 연락책 1명 등 총 3명의 요원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팀장은 화이트칼라형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서 머리가 특출나게 영리하고 외국어 구사 능력이 뛰어나 현장에서 임무를 수행하기 적합한 사람으로 엄별하여 선발했습니다. 먼저 미주 1팀으로 뽑힌 요원들을 보시겠습니다."

슬라이드가 넘어가며 증명사진이 붙어 있는 이력서 1장이 스크린에 띄워졌다.

...영화 대본>>

그 장면을 읽으면서 수빈은 머리를 작게 끄덕였다.

'여기서 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구나. 내가 맡은 역할이 미주 1팀 팀장이로군. 대본이 엄청 많이 수정되었는데.. 아무래도 후속작 제작을 노리다 보니 [미션 임파서블] 비슷한 형식으로 바뀐 모양이야. 이러면 내가 한국판 헌트가 되는 건가..'

그때 스킨스쿠버 강사로 보이는 남자가 수빈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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