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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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수빈은 서울 사무실로 가는 밴 안에서 스마트폰과 연결된 노트북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있었다.
어제저녁 [특별수사본부]에서 주먹이가 상의를 탈의한 채 면도를 하는 장면이 방송되었다. 그 이후로 수많은 뉴스가 넷상에 올라왔고 다음 날인 지금도 계속해서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는 중이다.
- 주먹이 수빈. 드라마에서 몸짱 몸매 전격 공개.
- 아름다운 남자. 수빈. 드라마에서 반전 매력 선보여.
- 짐승남. 수빈. 면도하며 근육질 몸매 드러내다.
- 짐승남 + 뇌섹남 = 짐섹남. 수빈. 신조어를 만들다.
- 수빈. 공개된 그의 섹시한 몸매에 한류 팬들도 열광.
- 아름다운 영상, 예술적인 몸매, 수빈에게 빠져들다.
"이야. 형. 뉴스가 엄청 많이 올라왔네요. 형도 보셨어요?"
"...."
자신의 말에 아무 반응이 없자 머쓱해진 수빈은 다시 뉴스를 쳐다보았다. 그때 새로 올라온 뉴스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 성룡(成龍). 수빈을 극찬하며 영화 출연 제의.
"어. 형! 성룡이 나에게 영화 출연을 제의했다는데요. 혹시 들은 거 있으세요?"
"...."
수빈은 매니저가 또다시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짧은 한숨을 쉬고 뉴스를 클릭하여 기사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뉴스 기사를 다 읽은 수빈은 어이가 없어 혀를 차며 말했다.
"뭐야. 그냥 성룡이 자신의 SNS에 내 몸을 칭찬하면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나랑 같이 영화를 한번 찍어보고 싶다고 올린 거뿐이잖아. 이걸 무슨 영화 출연 제의라고 뻥을 치냐. 하여간.. 형. 그래도 성룡이면 중국에서 알아주는 배우니까 아무래도 나에게 도움이 되겠죠?"
"...."
수빈은 고개를 들어 밴의 천장 쪽으로 긴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노트북을 덮었다. 그런 후 몸을 운전석 쪽으로 기울인 후 약간의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형.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 테니 그만 좀 화 풀어요."
"...."
"형이 저 때문에 박실장님이나 유실장님한테 왕창 깨져서 저도 엄청! 엄청!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
자신의 애교 섞인 사과의 말에도 매니저가 반응을 하지 않자 수빈은 다시 한번 한숨을 길게 내쉰 후 낮고 진중한 목소리로 말을 던졌다.
"형님. 저도 익숙하지 않은 영화 찍느라 몸과 마음이 다 지칩니다. 근데 형까지 이러시면 제가 어떻게 차에서 맘 편하게 휴식을 취합니까? 제가 일하다 피곤에 절어서 쓰러지길 원하시는 겁니까?"
그제서야 매니저가 반응을 보였다.
"수빈아."
"네. 형님."
"내가 누구에게 깨지고 그런 건 하등 중요한 게 아니야. 요 몇 년간 너 때문에 방송국이나 사무실에서 내가 깨진 게 어디 한두 번이냐. 요즘이야 네가 맘잡고 사고를 안쳐서 그런 거고."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원래 매니저가 하는 일이 다 그렇고 그런 거다. 자기 연예인 대신 깨지는 것도 매니저가 할 일이고 몫이야. 그러라고 회사에서 월급 받는 거고.."
"네.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제 점심 먹고 난 뒤에 네가 새로운 악상이 떠올랐다고 집에 가서 미디 깔린 노트북을 들고 오라고 나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괜찮아. 내가 진심으로 화난 게 뭔지 알아?"
"그게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새로운 악상 따위가 중요한 게 아냐. 지금 정말로 중요한 건 네가 그런 위험천만한 연기를 아무에게도 상의하지 않고 혼자 결정하고 실행에 옮긴 거다. 그것도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말이다.."
"형님이 그 자리에 계시면 위험하다고 못하게 말릴게 자명해서.. 죄송합니다."
"만약에 어제 촬영을 하다가 다치기라도 했다면 연예인으로서 너의 인생에 아마 치명타가 됐을거다. 내가 회사에서 깨지고 잘리고 그런 건 문제가 아냐. 네가 다치면 정말로 다치기라도 했다면.. 하아.."
흥분하여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매니저를 바라보며 수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형님. 형님이 절 얼마나 아끼는지 그리고 걱정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약속드리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그러니 그만 화 푸시고 걱정도 하지 마세요. 이번에는 여러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제가 모험을 한 거고 앞으로는 형이나 회사랑 충분히 상의를 하면서 일을 진행하겠습니다."
"만약에 또 이런 일을 저지르면.."
"제가 형님 아들입니다. 인천이 동생 부천이 할게요. 백부천!"
"후우.. 이번 한 번으로 앞으로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을 거라고 믿어보마. 피곤할 텐데 좀 쉬어라."
시간이 흘러 서울 사무실에 도착한 수빈은 도착하자마자 배우 1팀 박실장의 방으로 불려가서 또다시 가루가 되도록 박살이 나고 있었다.
방 안에서 박실장이 얼굴이 벌게져서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수빈에게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다.
"자네 미쳤나? 제정신이야?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에서 다른 말위로 뛰다니! 그게 영화배우가 할 일이야? 그런 건 스턴트맨도 위험해서 요즘 하지 않는 연기라고. 젊은 자네는 모르겠지만 예전 서부영화에서 그런 비슷한 장면을 찍다가 얼마나 많은 스턴트맨들이 사고로 죽거나 불구가 된 줄 아나?"
"죄송합니다."
그 이후로도 한참을 화를 내던 박실장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는지 낮은 목소리로 수빈에게 물었다.
"내가 어제저녁에 그 이야기를 듣고 촬영장으로 달려가서 장감독이랑 정감독을 뼈째로 갈아 마시려고 했는데.. 말을 들어보니 자네가 하겠다고 먼저 감독들에게 제의를 했다며? 그것도 연기 동선이나 촬영 기법까지 상세히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지. 맞는가?"
"네. 맞습니다."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랬던 건가? 지금같이 중요한 시기에.."
"실장님. 오히려 지금처럼 중요한 시기이기에 그랬던 겁니다. 연예인이란 하나의 상품 아니겠습니까? 상품 가격을 제대로 받으려면 상품의 우수함을 숨기지 말고 만천하에 널리 알려야죠. 그래서 모험을 한번 했습니다. 나름 성공할 자신도 있었고요."
"그런 위험한 모험을 하지 않아도 자네가 뛰어난 상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그러나. 그러니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그러지 말게."
박실장의 말에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소주천을 완성한 내가고수라는걸 이 세상에서는 드러낼 수가 없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네..'
수빈은 박실장의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실장님 말씀 충분히 이해합니다. 저도 아무 때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액션 연기를 할 생각은 이제 없습니다. 하지만 영화 내용상 필요하다면 이런 연기를 또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전에 회사랑 충분히 상의를 하고 안전장치를 취한 후에 할 겁니다. 고래로부터 내려오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있지 않습니까? 아끼다 똥 된다.. 필요한 경우가 있으면 해야죠."
"흠. 자네가 액션 연기를 잘하고 자신이 있다는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 말처럼 옛날부터 내려오는 진리가 또 하나 있지.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진다.. 그러니 약속하게. 반드시 먼저 상의를 하겠다고. 그리고 회사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네.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럼 잔소리는 그만하고 이제 그만 내려가보도록 하지."
"어딜 말입니까?"
"분장 받으러 가야지. 이왕 부산영화제에 참석하는 김에 제대로 하고 가야지."
수빈은 박실장과 함께 배우 1팀 전용분장실로 내려갔다. 분장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박실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수빈군 데리고 왔다. 변검.."
그 순간 배우 1팀 전용분장실을 맡고 있는 김팀장이 째지는듯한 하이톤의 목소리로 외쳤다.
"실장님! 그 입! 다무세요!"
"응? 아니 왜 화를 내고 그러나? 자네가 그렇게 좋아하고 보고 싶어 하는 수빈군을 내가 직접 데리고 왔는데.."
"하아. 정말 모르세요? 제가 몇 번을 말씀드렸잖아요. 그렇게 부르지 마시라고.. 실장님 때문에 여자들이 자꾸 분장 받은 다음에 고맙다고 [둘코락스]를 선물이라고 주고 가잖아요. 그것도 은밀하게 다가와서 [효과는 좌약이 직방이에요] 그런 식으로 말하면서 건네주고 가는 바람에 제가 얼마나 창피한 줄 알아요?"
"그거야 오해한 그 사람들이 잘못한 거지. 난 아무리 생각해도 멋진 별명인 거 같은데.."
"난 싫다고요! 하아.. 알았으니 수빈씨 놔두고 실장님은 그만 가보세요."
"그래. 아무튼 오늘 저녁에 부산영화제에 참석해야 되니깐 수빈군 잘 좀 부탁하네."
"걱정 마세요. 이미 김해수씨 쪽이랑 의견 조율이 다 끝났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잘 됐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수고해. 삐앤리앤뉘~"
박실장이 떠나자 김팀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빈에게 물었다.
"박실장님이 마지막에 중국어 비슷하게 말한 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수빈씨 중국어 잘하잖아요?"
"글쎄요. 박실장님 발음이 워낙 안 좋으셔서.. 무슨 뜻인지 모르겠군요."
"그래요? 수상한데.. 일단 의자에 앉으세요."
잠시 후 발갛게 홍조 띤 얼굴로 열심히 붓질을 하던 김팀장이 손을 뚝 멈추고선 수빈의 얼굴을 몽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했지만 정말 멋있다.. 원판이 워낙 좋으니까 이런 예술 작품이 나오네."
김팀장의 말을 들은 수빈은 감았던 눈을 뜨고 물었다.
"분장이 다 끝난 건가요? 이제 일어나도 되나요?"
수빈의 말에 김팀장이 후드득 놀라며 대답했다.
"아. 분장은 끝났지만.. 수빈씨 헤어를 손보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계속 앉아 계셔야 돼요."
"네? 헤어를 손질하는데 오래 걸린다고요? 제 머리가 긴 편이 아니라서 금방 끝날 건데요."
의아해하며 던지는 수빈의 질문에 김팀장이 급히 대답했다.
"영화제에 수빈씨랑 같이 동반해서 참석할 김해수씨 의상이 진홍색 오프숄더 원피스로 결정 났어요. 그래서 두 분이 커플로 어울리게 분장을 좀 하려고 하는데.. 어차피 남자는 검은색 턱시도에 보타이를 매는 게 일반적이라 의상으로는 크게 변화를 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수빈씨 머리에 강렬한 붉은색 브릿지를 넣을 거예요."
"붉은색 브릿지요? 그럼.. 탈색을 해야 하는건가요?"
"그러면 안 되죠. 영화 촬영 중이신데.. 하루 정도 유지될 수 있도록 간단하게 색을 입힐 거예요."
조금 후 수빈은 흔히 뷰티 스프레이 가리개로 불리는 투명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얼굴가리개를 들고 있었고 옆에서 김팀장은 열심히 락카를 흔들고 있었다.
- 딸칵. 딸칵. 취이이익~
조용한 분장실에서 락카를 흔들 때 나오는 특유의 소리와 락카를 분사할 때 나오는 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수빈씨. 다 끝났어요. 눈 뜨시고 가리개를 떼셔도 돼요. 보기 어때요?"
김팀장의 말에 수빈은 눈을 뜨고 거울을 쳐다보았다. 변함없이 잘생긴 얼굴이긴 하지만 붉은색 브릿지가 여러 군데 들어가 있는 헤어스타일로 인해 어딘지 위험해 보이고 약간은 퇴폐적인 느낌의 얼굴이 거울 속에 보였다.
"이거.. 살짝 날라리 같은 느낌이 나네요."
"어머어머. 날라리라뇨! 무슨 말씀을.. 세상 여자들이 다 목을 매는 세련되고 잘생긴 나쁜 남자 스타일이죠."
"흠. 그런가요?"
"그럼요. 제 눈을 믿으세요. 이러고 영화제에 가면 수빈씨 얼굴을 본 여자들은 다 자지러질 거예요. 저도 지금 그런 기분을 느끼고 있으니까.. 오호호."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빈이 감사의 말을 건네며 일어서자 김팀장이 말했다.
"수빈씨. 잠깐만요."
김팀장이 뒤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명숙아! 명숙아! 빨리 와봐."
잠시 후 수빈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두 명의 여성을 향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게.. 뭡니까? 제가 드라큘라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