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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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결. 감성변태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 예전 싱어송라이터에서 현재 뮤지션이라고 불리는 사람. KBC에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유희결의 도화지]라는 음악프로를 진행하는 MC 이자 [안단테]라는 기획사의 수장.
과거에 두 번 정도 만남이 있었던 수빈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유희결과 지금 자신을 반갑게 맞이하는 유희결과는 많은 괴리가 있었다.
'예전에 만났을 때는 무덤덤하게 서로 인사만 주고받은 걸로 기억하는데..'
얼굴 가득 웃음을 띤 채로 자신은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리며 무척이나 반가워하는 유희결을 보며 수빈은 살짝 어색한 웃음을 던졌다.
"..이렇게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호가호위. 슬쩍 유재식을 끼워 넣었다.
"재식이 형님이 꼭 나와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오긴 했지만.."
미끼를 투척하며 찰색을 행하였다.
"일개 아이돌인 제가 심사위원이라는 게 영 맘이 불편하고 걱정이 많이 됩니다."
수빈의 말에 유희결이 호들갑을 떨었다.
"무슨 소리야. 수빈이가 뛰어난 뮤지션이라는 걸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다고.. 별 걱정을 다하고 있네. 잘 왔다."
찰색 결과는 진실. 뮤지션이라고 불릴 만큼 음악에 관해서는 깐깐하기로 이름 높은 유희결이 자신을 진심으로 반기고 있었다.
'이 정도로 과하게 반기는 거 보면 날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다는 거 같은데. 그리고 어쩌면 나에게 바라는 게 있을 수도 있고..'
자신이 만든 [달과 나의 이야기]에 대해서 한참을 미주알고주알 칭찬하는 유희결을 지켜보며 수빈은 경계심을 완전히 풀었다.
'말하는 게 교언영색이라기 보다 유유상종에 가깝군. 자신과 동류에 대한 친밀감.'
수빈은 유희결을 보며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가 만든 음악이 마음에 드셨나 봅니다. 선배님."
"수빈아. 선배라 하지 말고 형이라고 해."
"..네. 형님."
"맘에 들었냐고? 말하기에 쪽팔리지만.. 나 그거 듣고 집에서 펑펑 울었어. 그리고 너랑 하이유가 라이브 공연한 거 있지?"
"네. 평창동계올림픽 기념 무대에서 한번 라이브 공연을 했었죠."
"그때 편곡한 걸 들으면서 계속 소름이 돋아서.. 후. 그거 편곡도 네가 직접 한 거지?"
"예. 제가 했습니다. 형님께서 좋아해 주시니 저도 기분이 좋네요."
"그래 그래. 너 조만간 다시 복귀할 거라며?"
"네. BBG 신곡이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조만간 다시 활동을 시작할 거 같습니다."
"BBG 신곡 그것도 네가 만든 곡이지? 프로듀싱도 직접 할 거고?"
"네. 아마 제가 직접 할거 같습니다."
"너 그럼 복귀하면 [도화지]에 한번 나와줘."
"형님이 불러만 주신다면 감사히 달려가야죠."
"그때 너희만 나오지 말고 하이유도 같이 나오는 게 어떠냐?"
유희결의 말에 수빈은 머리를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다.
'호오. 처음부터 뭔가 나에게 부탁할게 있는 것처럼 보이더라니.. 이거였나.'
"하이유 선배 말입니까? 형님이랑 많이 친한 걸로 아는데요. 직접 나오라고 하시면 되지 않습니까?"
"몇 번이나 말했지. 보통 때 같으면 한 번만 연락해도 시간 내서 나왔을 건데.. 하이유가 [달과 나의 이야기]는 절대 혼자 못 나간다고 그러면서 안 나오잖아. 라이브는 혼자 할 자신 없다고. 너랑 같이 하는 거 아니면 라이브 무대는 다 사절이라고.. 행사도 다 AR 틀고 한다고 그러던데."
"아마 핑계일겁니다. 하이유 선배가 요즘 워낙 바쁘잖습니까. 형님에게 바빠서 못 나간다고 말하기가 그래서 에둘러 말한 거 같습니다."
"흠. 하이유 걔 말은 그게 아니던데? 수빈아. 네가 같이 나가자고 말을 한번 해봐. 우리 [도화지] 게시판에 달나이 공연을 보고 싶다고 지금도 리퀘스트가 계속 쏟아져.. 다른 프로에는 안 나가더라도 우리 프로에는 한번 나올 수 있지 않겠어? 우리는 순수하게 음악만을 다루는 음악 전문 프로잖아."
"글쎄요."
수빈이 살짝 한발 빼는 자세를 취하자 유희결이 몸이 달아 말을 내뱉었다.
"같이 나오면 내가 피디랑 의논해서 그때 아예 BBG 스페셜 무대로 만들어주마. 그리고 또 뭐 부탁할게 있음 내가 언제든지 들어줄게. 같은 뮤지션들끼리 돕고 살아야지. 응. 안 그러냐?"
수빈은 유희결의 말에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을 하였다.
'흠. 어차피 12월 NAMA 시상식 때 공연을 해야 되니까 미리 예행연습한다고 생각하고 나가는 것도 괜찮겠지. BBG 복귀 무대도 화려하게 치를 수 있을 거고. 오늘 로빈에게 부탁한 것도 그때쯤이면 완성될 거고..'
마음을 굳힌 수빈은 유희결을 쳐다보며 마치 대단한 결심을 한 듯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형님.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형님이 직접 부탁을 하시는데 들어드려야죠. 그럼 제가 한번 하이유 선배한테 말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성사가 될지는 저도 장담 못 드립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네가 말하면 하이유도 OK 할 거야. 통화할 때 들어보니까 자기도 하고 싶은데 네가 바빠서 할 수가 없다고 그러더라고. 날짜 정해지면 바로 연락 줘라. 내가 담당 피디랑 의논을 해서 제작비를 오버하더라도 끝내주는 무대를 만들어 줄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근데 형님은.. 여기 고정이십니까?"
"그래. 난 고정이야."
"이 프로가 정확하게 뭐 하는 프로입니까? 어제 재식이 형님한테 급하게 연락받아서.."
잠시 후 수빈은 수빈은 유희결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포맷은 모 방송국의 [프로듀싱 101]이랑 거의 같네요. 예선에서 3명의 심사위원이 탈락이냐 합격이냐를 결정하는 건 여타 다른 오디션 프로들이랑 비슷하고.."
"그렇긴 하지. 방송국끼리 포맷 비슷한 게 어제오늘이냐. 그쪽은 종편이고 이쪽은 공중파라는 게 차이가 나지. 젊은애들이야 [프로듀싱 101]이 뭔지 잘 알지만 조금 나이 먹은 사람들은 그게 뭔 뜻인지도 몰라. 그게 종편의 한계지. 그래서 공중파에서 비슷한 포맷으로 다시 한 번 더 한다고 보면 돼."
"그렇군요. 그럼 오늘 나머지 심사위원 1분은 누구십니까?"
"너도 아마 알 건데 우리 [안단테] 소속 가수야. [페퍼스톤]의 이장운이라고.."
"아. 네. 저도 압니다. 제가 [문제적 인간]에 출연할 때 인사 나눴습니다."
"그래. 걔가 그때 그거 찍고 난 다음부터 사무실에서 너 칭찬 엄청 하더라. 진짜 천재라고. 장운이도 카이스트 출신이고 머리 똑똑한 쪽으로는 어디 가서 안 꿀리는 앤데.. 그날 녹화하면서 쇼크 먹었다나 뭐라나."
"잘 봐주셔서 그런 거죠. 근데 아직 안 오셨나요?"
"거의 다 와 간다고 좀 전에 연락 왔어. 금방 올 거다."
잠시 후 이장운이 도착하여 수빈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을 때 대기실로 박피디가 찾아왔다. 박피디에게 프로그램의 취지와 설명을 듣고 심사위원 각자 개인의 콘셉트를 전해 들었다.
분장을 마치고 9번 홀로 나가자 잘 준비된 무대와 약간 떨어져 있는 심사위원석이 눈에 들아왔다. 심사위원석에 맨 왼쪽에 앉은 수빈은 박피디의 말을 곱씹었다.
'천재 콘셉트로 심사를 진행 해달라 이거지. 약간 무리수가 있더라도 편집으로 적절하게 조율하겠다고.. 방송국 피디가 하는 그런 말을 순진하게 다 믿으면 바보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똥물에서 수영도 마다하지 않는 게 그 사람들이라는데..'
수빈은 심사위원석에 올려져 있는 대본을 집어 들며 마음을 굳혔다.
'그렇다고 너무 밋밋하면 내가 출연한 의미 자체가 없으니 그렇고.. 임팩트를 위해서 한두 장면 정도만 좀 튀는 걸로 하고 나머지는 다른 심사위원들에게 묻어가는 걸로 하자.'
잠시 후 무대 위로 프로그램의 MC를 맡은 전한무가 등장해서 마이크 및 조명 등을 테스트하기 시작하였다.
'오늘은 예선이라 관객이 없어서 맘 편하네. 시끄러운 소리도 안 들리고. 그런데.. 전한무 저 형은 저러다 쓰러지는 거 아닌가 몰라. 당최 안 나오는 프로가 없네.'
이윽고 [유니언] 예선 녹화가 시작되었다.
아이돌로서 성공하기를 꿈꾸는 여러 명의 지원자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수빈은 특별히 튀지 않고 다른 심사위원들과 비슷한 평가를 하며 묻어가고 있었다.
박피디가 수빈에게 천재 캐릭터답게 조금 더 튀어달라고 아니면 차라리 도전자들에게 독설이라도 해달라고 스케치북에 적어서 보여줬지만 깔끔하게 무시했다.
그렇게 평범하게 녹화가 진행이 되고 있을 때 새로운 도전자가 무대에 올라왔다.
평범한 얼굴에 평범한 몸매. 일반 여성의 평균키보다 조금 더 크나 모델이라고 하기에는 모자란 키. 팔다리가 길어 보인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장점이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여성 참가자였다.
하지만 수빈은 몸에 달라붙는 칠부 청바지에 평범한 티를 입고 무대 위로 걸어 올라오는 그녀의 하체를 보는 순간 속으로 감탄성을 터뜨렸다.
'호오. 멋진 하지(下肢) 골격인데.. 엉덩뼈와 연결된 넙다리뼈 라인이 끝내주는군. 넙다리뼈에서 아래로 뻗는 종아리뼈와 정강뼈 그리고 목말뼈까지도 곧게 쭉 뻗었고.. 세가의 각법 중에서도 특별한 자질을 타고나지 않으면 익히기가 어려워 기예(技藝)가 사람을 가린다는 천성무영각(天星無影脚)을 익히기 딱 좋은 골격이야.'
수빈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두개골 형상도 예쁘고 광대뼈나 턱뼈 라인도 따로 손을 안 봐도 되겠어.'
"이번 참가자 성함은 고소영, 나이 19세, 서울 거주 중이며 현재 고3 학생입니다. 심사위원 분들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해 주시죠."
전한무의 참가자에 대한 간단한 소개 멘트가 끝나자 참가자에 대한 질문 시간이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유희결 심사위원이 질문을 하였다.
"고소영 학생. 여기 프로필을 보면 기획사 연습생으로 1년 정도 생활을 하다가 그만둔 경력이 있다고 나와있는데요. 간단하게 설명 좀 해주실래요."
유희결의 질문에 고소영 참가자가 조심스레 대답을 했다.
"네. 제가 고1 때 조그마한 기획사에 스카우트되어서 1년 정도 연습생 생활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데뷔는 보이지 않고 돈은 자꾸 들어가고.. 그래서 집에서 다시 공부하라고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게 하셨어요."
"돈? 연습생이 무슨 돈이 들어가요?"
"거기 기획사 사장님이 매달 150 정도를 내라고 하셔서.. 자기들은 조그만 기획사라 자금이 많지 않다고..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으려면 레슨비를 따로 내야 된다고 하셔서.."
그 순간 참가자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던 수빈이 앞에 놓여있는 마이크를 집어 들고 한마디 툭 던졌다.
"전형적인 사기꾼이네요. 저희 YK에서는 연습생에게 그 어떠한 돈도 받지 않습니다."
이전의 참가자들에게는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던 수빈이 갑자기 끼어들어 말을 하자 다른 심사위원이랑 제작진에서 살짝 놀라움을 표시하였다.
"안타깝게도 사기를 당하셨군요. 전 여기까지만 질문하겠습니다."
방송경력이 많은 유희결이 눈치껏 빠지자 전한무가 수빈에게 말을 하였다.
"오늘 수빈씨가 비교적 조용했는데 말이죠. 이번 참가자에게는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수빈씨 질문하시겠습니까?"
수빈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며 대답했다.
"네. 해야죠."
수빈은 마이크를 들고 참가자에게 질문했다.
"고소영씨?"
"네."
"혹시 성형수술을 받으실 생각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