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63화 (63/236)

#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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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의 질문에 유재식이 대답했다.

[그래. 몇 가지 부탁 좀 하자. 일단.. 너 내가 MBS에서 출연하고 있는 [무리한 도전] 알지?]

"형님도 참.. 대한민국 사람 중에 그 프로를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당연히 알죠. 근데 형님. 그 프로가 요 몇 주간 방송국 사정으로 방송이 안된 걸로 아는데요."

[그게 이제 잘 해결돼서 다음 주면 다시 정상적으로 촬영이 재개될 거 같아. 방송이 되려면 좀 더 있어야 하겠지만.. 그래서 말이야. 그 프로에서 올해 꼭 해야만 되는 게 있는데 아직 못한 게 있어.]

"어떤 걸 못하셨다는 겁니까?"

.....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제가 2가지를 도와드려야 되는 거군요."

[그래. 좀 많지? 힘들더라도 부탁 좀 하자. 나도 운동하다 급하게 연락받아서.. 그 대신 너도 부탁할게 있음 언제든 말해라. 형이 최대한 도와줄게.]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형님. 그럼 제가 알아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유재식과의 통화를 끝낸 수빈은 백성철 매니저에게 물었다.

"유재식 형님이 부탁한 건데 아무래도 다 들어드려야겠죠?"

"당연히 그래야지. 유재식씨가 부탁한 거라고 말하면 유실장이나 박실장도 별말 안 할 거다. 국민 MC가 부탁하는 거잖아. 그리고.. [무리한 도전]에 한 번이라도 출연하고 싶어 하는 연예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너도 잘 알 거 아니냐."

"제가 스케줄만 안 바쁘면 문제가 없는데.. 재식이 형이 부탁한 걸 저 혼자 다 처리하기에는 제가 너무 바쁘잖아요. 며칠 있음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 촬영까지 시작되는데. 흠. 어떻게 해결하는 게 제일 좋을까요?"

"글쎄다. 난 머리가 나빠서.."

매니저의 대답에 수빈은 짧은 한숨을 내쉰 후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서 핸드폰으로 손바닥을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

'후. 오래간만에 다시 낚시를 좀 해야겠군.'

계획을 세운 수빈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로빈아. 나 수빈이."

[어. 그래. 어쩐 일로 전화했냐?]

"너 지금 어디야?"

[나? 지금 케빈이랑 동대문에 옷 좀 사러 나왔어.]

"그래? 지금 케빈이랑 같이 있어? 잘 됐네. 그럼 둘 다 쇼핑 최대한 빨리 끝내고 회사로 좀 들어와라. 의논할게 있으니까.."

수빈의 말에 로빈이 살짝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또 무슨 일인데? 우리 아직까지는 휴식기잖아.]

"와서 보면 알아. 빨리 와라."

수빈은 로빈과의 통화를 끝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불만쟁이 로빈이랑 내성적인 케빈만 설득하면 작전 성공이지. 마빈이랑 경빈은 내가 부탁하면 군소리 안 하고 따를 거니까 굳이 연락 안 해도 될 거고..'

이윽고 YK 사옥에 도착한 수빈은 BBG 전용연습실로 찾아갔다. 연습실에 다른 멤버들은 보이지 않고 성빈이 혼자서 신곡 안무를 연습하고 있었다.

"형님. 오셨어요?"

"그래. 너 혼자야? 다른 사람들은?"

"저 혼자뿐인데요. 누구 또 오기로 했어요?"

"로빈이랑 케빈."

"그 형들은 아직 안 왔어요."

"그래? 잘 됐다. 그럼 너 [Dispatch] 안무 짠 거 있지? 일단 그거 급하게 수정부터 좀 하자."

"어떻게요?"

"일단 내가 생각한 걸 한번 보여줄게."

잠시 후 수빈이 수정한 안무를 지켜보고 있던 성빈은 입을 쩍 벌렸다. 수빈의 댄스가 끝난 후 성빈이 당황한 어조로 말했다.

"형. 진짜 그렇게 바꾸시려고요? 저희 멤버 중에 그 춤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형이랑 저밖에 없을걸요. 다른 멤버들은 무리에요. 무리.."

"안무를 꼭 이렇게 바꾸겠다는 건 아냐. 넌 그냥 이걸 빨리 좀 외워라. 그런 다음 내가 바뀐 안무라며 시범으로 같이 추자고 할 때 다른 멤버들에게 한번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거야. 가능하지?"

"저야 뭐 어릴 때부터 춤만 췄으니까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안된다니까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바뀐 안무나 빨리 연습해봐."

"네. 알았어요."

성빈이 바뀐 안무를 연습하는 걸 지켜보며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정도면 떡밥은 준비되었고.. 때로는 내용보다 순서가 더 중요한 법이지. 조삼모사에 일석이조라.. 나쁘지 않아.'

시간이 흘러 이윽고 로빈과 케빈이 연습실에 도착하자 네 사람은 연습실 바닥에 빙 둘러앉아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잘 들어. 다들 유재식 형님 알지? 그 형님이 급하게 부탁을 한 게 있어서 그 일을 누가 맡을지 지금 결정을 해야만 돼."

수빈의 말에 로빈이 물었다.

"그 형님이 너한테 부탁을 했다고? 그럼 네가 맡아서 하면 되잖아. 우리는 아직 휴식기라고..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기간이라는 뜻이지."

로빈의 말에 케빈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본 수빈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네놈들이 그렇게 나올 줄 알았다. 일안하고 계속 더 놀고 싶다는 거겠지. 영국 스타일이라. 끝까지 그럴 수 있나 두고 보자고.'

"[유니언]이라고 KBC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이 있어. 거기에 스페셜 심사위원으로 몇 번 좀 나와달래. 아무래도 프로그램 초반에 사람들의 이목을 끌만한 뉴스거리가 좀 있어야 하니까."

수빈의 설명에 로빈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심사위원이라면 나가서 평가도 해야 되고 누가 합격인지 불합격인지 결정을 해야 되는 거 아냐? 다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해야 되는 부담스러운 자린데.. 난 안 한다."

로빈의 말에 이어 케빈도 말했다.

"나도 안 나갈 거다. 부담된다. 그리고 우린 휴식기라고.. 아직 2주 넘게 남았어. 저번에 너 때문에 내가 내레이션 한번 잘못하는 바람에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수빈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너희들의 의견이 그렇다면 그럼 이건 내가 나가도록 하지. 그리고 재식 형님이 하나 더 부탁을 한 게 있는데.. 너희들도 [무모한 도전]이 어떤 프로인지는 알고 있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자 수빈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거기 2년에 한 번씩 무도 가요제를 개최하는데.. 올해가 개최연도란 말이지. 그런데 그쪽 방송국 사정으로 계속 못하고 있다가 이제 촬영을 시작하려나 봐."

수빈의 설명에 로빈이 대꾸했다.

"그래서?"

"거기에 나가려면 가요제에서 발표할 곡을 하나 완성해야 되니까 작사랑 작곡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필요해. 로빈이 작곡을 할 줄 알고 케빈이 작사를 할 줄 아니까 둘이 같이 나가면 어떨까 하는데.."

수빈의 말에 로빈이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넌? 너는 작사도 할 줄 알고 작곡도 할 줄 알고 거기에 프로듀싱까지 할 줄 알잖아. 네가 딱이네. 네가 혼자 나가면 되겠다. 난 안 하련다."

옆에 있던 케빈이 로빈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본 수빈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았어. 이것도 내가 나가는 걸로 하지. 뭐 둘 다 하기엔 내가 바쁘고 정신없겠지만 어쩔 수 없지. 쉬겠다는 친구를 방해하면 친구로서의 도리가 아니지. 그럼 둘 다 내가 나가는 걸로 하고.. 아무리 휴식기라도 신곡 준비는 계속해야겠지? 이번에 우리가 발표할 [Dispatch] 안무를 성빈이랑 내가 짰는데 내일부터 연습을 해야만 되니까.."

수빈은 고개를 돌려 말없이 앉아만 있던 성빈을 쳐다보며 말했다.

"성빈아."

"네. 형님."

"아까 우리가 같이 완성한 안무 있지? 그거 한번 얘네들한테 보여주자. 로빈이랑 케빈도 내일부터는 안무 연습을 본격적으로 해야 되니까.."

"...네."

수빈은 일어서서 입고 있던 재킷을 벗은 후 바닥에 내려놓고 성빈과 같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앉아서 성빈과 수빈의 춤을 지켜보고 있던 로빈과 케빈의 얼굴이 점점 샛노래졌다.

잠시 후 춤을 끝낸 수빈은 바닥에 놓은 재킷을 주워들며 말했다.

"후. 오래간만에 추니 힘드네. 다들 내일부터 매일 아침 9시까지 연습실로 나와라. 복귀전까지 다 같이 안무 연습을 해야 하니까.. 내일 보자."

수빈이 무심하게 뒤돌아서서 나가려고 하자 로빈이 급히 수빈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외쳤다.

"수빈아! 수빈아! 이러고 그냥 가면 어떡하냐."

"응? 내가 뭘?"

"저런 안무를 우리가 무슨 재주로 소화하냐? 우린 연습생 출신도 아니고 영국에서 태권도를 배운 적도 없다고.."

"별 어려운 것도 없잖아?"

"다리 찢기! 저걸 내가 무슨 재주로 하냐고!"

"아. 그거? 로빈. 돈 워리 해라. 내가 명색이 권법 고수 아니냐. 안 아프게 찢는 노하우를 잘 알고 있으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한 열흘만 계속 찢다 보면 쭉쭉 찢어질 거야. 그리고 나중에 군대 가면 다 찢게 돼있으니까 미리 연습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아. 맞다. 너랑 케빈이는 영국 출신이라 군대 안 가도 되려나? 뭐 아무튼 내일부터 같이 연습하자."

수빈의 별거 아니라는 듯 담담하게 던지는 말에 로빈이 한숨을 쉬며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일어났다.

"수빈아. 내가 잘못했다. 내가 뭘 할까? 심사위원? 아니면 가요제?"

"흠. 글쎄.. 일단 가요제는 너 혼자서 못 나가잖아? 케빈은 아직까지 아무 말 없는 걸."

수빈의 말에 케빈이 굳은 얼굴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리더가 까라면 까야지. 아무렴. 그렇고말고. 휴식기 따위가 뭐 중요하겠니. 수빈아. 로빈이랑 둘이서 어딜 나갈까? 말만 해라."

"그래? 둘이 정 그렇다면.. 가요제에 나가는 게 어때? 너희들의 재능을 널리 알려야지. 아무래도 그게 좋지 않겠어?"

수빈의 말에 로빈이 숨도 안 쉬고 대답했다.

"굿. 아주 좋아. 케빈이랑 둘이서 가요제에 나가마. 그럼 다리 찢기는 안 해도 되는 거지?"

"글쎄. 나랑 성빈이가 나름 신경 써서 짠 안무라서 쉽게 바꾸기가.. 흠. 아. 로빈. 내가 하나 더 부탁할게 있는데.."

.....

"그것까지만 들어주면 되는 거지? 더 이상은 없는 거지?"

"그럼. 이 정도만 해줘도 나로선 더없이 고맙지."

"알았어. 다 할게. 그러니 소중한 내 다리는 제발 그냥 좀 놔둬라.."

"OK. 로빈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데 나도 친구의 부탁을 들어줘야지."

수빈은 고개를 돌려 성빈을 쳐다보며 말했다.

"성빈아. 네가 잠도 안 자고 열심히 짰는데.. 미안하게 됐다. 안무를 이전 걸로 다시 바꿔야 할거 같네. 형이 다음에 고기 사줄게."

옆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만 보고 있던 성빈이 피식 웃으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네. 형님. 알겠습니다."

수빈은 재킷을 어깨에 걸친 후 입술을 삐쭉 내밀고 서있는 로빈과 케빈을 등 뒤로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연습실을 나섰다.

다음날 아침 수빈은 매니저와 함께 경기도 일산시에 있는 킨텍스로 출발하였다.

킨텍스에 도착하여 [유니언] 촬영 장소인 9번 홀로 찾아간 수빈은 박지연 피디를 발견했다. 얼마 전까지 유재식과 함께 [해피 투모로우]를 연출했던 박피디가 현장 정리에 여념이 없었다.

"박피디님. 안녕하세요."

"어머. 수빈씨. 오셨어요? 고마워요. 한창 바쁠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아닙니다. 어제 재식이 형님이 각별히 부탁을 하셔서요. 그런데.. 아이돌인 제가 심사위원이라는 게 시청자분들이 보시기에 어떨지 모르겠네요."

"무슨 소리예요. 수빈씨가 작사 작곡에 프로듀싱까지 가능한 천재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요. 걱정 마세요. 제가 지금은 정신이 없으니까 일단 대기실에 가 계실래요? 여기 정리가 좀 되고 나면 제가 대기실로 찾아갈게요."

"네. 알겠습니다."

수빈은 9번 홀 근처에 있는 대기실로 걸어가서 대기실 문 앞에서 가볍게 노크를 하였다.

- 똑똑똑

- 네. 들어오세요.

수빈이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바싹 마른 명태 같은 몸매의 남자가 수빈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오. 수빈이 왔냐?"

"네.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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