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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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수원에 있는 드라마 센터로 가고 있는 차 안에서 백성철 매니저가 물었다.
"수빈아. 아침부터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냐?"
"팬카페에 올라온 글들 읽어보고 있어요."
"그래? 연예인이 자기 팬들에게 신경 쓰는 거니까 잘하는 일이긴 한데.. 촬영장까지 가는 동안이라도 좀 쉬지 그러냐. 요 며칠 많이 힘들었잖아."
"괜찮아요. 어제 푹 잤어요. 열받는 일이 있으니까 잠이 더 잘 오더라고요."
"왜? 어제 무슨 일 있었어?"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웬 철없는 망아지가 천지를 구분 못하고 날뛴 거뿐이니까.. 근데 형."
"왜?"
"이거 팬카페에 올라오는 글들 보니까 일반인들뿐만 아니라 기획사 연습생들도 많이 있나 봐요. 새로운 오디션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많이 올라와 있네요. [믹스에잇]이나 [유니언]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직접 도전한다는 글들도 있고.."
"유실장이 그러더라. 예전보다 연습생 팬들이 많이 늘었다고.. 네가 [달과 나의 이야기] 프로듀싱을 성공적으로 하고부터 부쩍 많아졌데."
"흠. 그렇군요."
"수빈아. 적당히 보고 눈 좀 붙여. 일찍 일어나서 잠이 부족할 건데."
"괜찮은데.. 후. 알았어요."
수빈이 매니저의 말에 따라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였다.
이윽고 차가 드라마 센터에 도착하자 수빈은 매니저와 함께 대기실로 걸어갔다.
"수빈아. 분장이랑 촬영 시간표 좀 알아보고 오마. 그동안 대본이나 다시 보고 있어."
"네. 알았어요. 다녀오세요."
매니저가 대기실을 나가자 수빈은 대본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잠시 후 매니저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9시부터 분장 들어가고 10시부터 스탠바이래. 아마 10시 반쯤 촬영 들어갈 거 같다."
"아직 30분 정도 시간이 남았네요."
"대본은 다 외었어?"
"그럼요. 대사가 몇 줄 되지도 않아요. 중국에서 오는 마약 공급량이 적다고 짜증 내는 장면,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는 장면, 중국 쪽 두목이 깔끔한 걸 좋아해서 면도를 하면서 화를 내는 장면, 그리고 출국하기 위해 사무실을 나서는 장면. 오늘 찍을게 총 4신인데 대사가 다 합쳐도 열 줄이 안되는걸요."
"중국 촬영은 담 주말에 꼭 가야만 하는 거지?"
"네. 드라마에서 제가 중국 공항에 도착하는 장면이랑 상하이 시내 컷들이 필요하니까요. 근데 반나절이면 다 찍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할걸요. 대사 치는 장면들은 어차피 한국 세트에서 찍어야 되니까요."
"그래. 여권이나 스케줄 같은 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걱정 말고. 근데.. 오늘은 주연 배우들이 아무도 안 보이네."
"오전이라 그럴 거예요. 주연 배우들이 얼굴이 부은 채로 화면에 나오면 안 되니까 아침 일찍부터는 잘 안 하죠. 촬영이 밀려서 밤새우고 그러면 몰라도.. 아직은 그럴 정도로 몰린 상황은 아니니까요."
잠시 후 수빈은 분장실에서 분장을 받고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분장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네?"
"아무래도 제가 수염을 많이 기른 상태라 분장이 예전보다 수월하죠."
"그 동안 수빈이가 수염 기르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이제 오늘이 마지막이네. 이제 TV 화면에 잘생긴 네 얼굴 그대로 나올 수 있겠다. 고생했어."
"뭘 고생씩이야.. 아침마다 면도 안 해도 되고 오히려 더 편했죠."
그 순간 대기실의 문이 열리며 김해수가 들어왔다.
"수빈 동생!"
예상치 못한 김해수의 등장에 깜짝 놀란 수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 해수 누님. 아침부터 여기에는 웬일로? 아침에 촬영 있으세요?"
"촬영? 있지. 나 말고 너."
"네?"
"후. 수빈 동생 촬영이 있어서 온 거라고."
"제가 촬영이 있는데 누님이 왜?"
"너 지금 바깥 상황을 전혀 모르니?"
"바깥 상황요? 바깥에 무슨 일 있나요? 좀 전에 분장 받고 올 때도 아무 일 없었는데.."
"그때야 너 촬영 시간까지 아직 여유가 있어서 그런 거고.. 지금 세트장 근처에는 난리 났을걸."
김해수가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 통 이해를 할 수가 없어서 수빈은 매니저를 쳐다보았다. 수빈의 눈빛을 받은 매니저가 자신도 모른다는 듯 고개를 저은 뒤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대기실 밖으로 급히 뛰쳐나갔다.
그 모습을 지켜본 김해수가 긴 한숨을 쉰 후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너 면도신 찍는다고 이 바닥에 소문이 쫙 퍼졌잖니. 나랑 친한 코디들이 며칠 전부터 촬영장에 데려가 달라고 하도 사정을 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다 데리고 왔어. 촬영 전이라 방해하지 않으려고 대기실로 아무도 데리고 오지는 않았지만.. 이따 촬영 끝나면 걔네들 사진이나 좀 같이 찍어줘. 부탁할게."
"뭐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만.. 친한 코디 분들이 오셨다고요?"
"그래. 오늘 일없는 코디들이 하도 졸라대서.. 넌 지금 네가 여자들 특히 아줌마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은지 잘 모르지?"
"네. 요즘 스케줄이 바빠서.."
"젊은 애들은 경력 순으로 다 자르고 예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나이 먹은 아줌마 코디들로만 데리고 왔는데도 4명이야. 네가 오늘 옷 벗는다니까 다들 눈이 뻘게 가지고 말이지. 후우. 이거야 원 결혼한 여자들이 더 설쳐대고 있으니.. 몸 좋고 잘생기고 젊은 수빈 동생에게 아주 환장을 하네."
그때 백성철 매니저가 누렇게 뜬 얼굴로 황급하게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외쳤다.
"수빈아. 큰일 났다."
한편 그 시각 촬영장에서 촬영 준비를 하고 있던 강민철 피디가 주위를 한 바퀴 쓰윽 둘러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보면 드라마 촬영장이 아니라 나훈아 디너쇼 현장인 줄 알겠다. 동네 아줌마란 아줌마들은 다 모였네.."
옆에 있던 카메라 감독이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아이고. 그렇게 말하는 형님도 형수님 포함해서 3명 데리고 오셨다면서요?"
"하아. 마누라랑 마누라 친구들이 하도 쪼아대서.."
"이러다 행여나 사고라도 나는 거 아닌가 걱정됩니다."
"다들 나이가 있으니까 그러지는 않을 거야. 사춘기 소녀팬들도 아니고.. 문제는 수빈씨가 촬영에 집중을 못할까 봐 그러는 거지."
"제 생각에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 친구를 카메라 렌즈를 통해 계속해서 쳐다보고 있으면 한 번씩 심장이 두근두근할 때가 있거든요. 그 집중력 그리고 그 눈빛.. 남자인 저도 가슴이 설레는데 여자들은 오죽하겠어요."
"아무튼 이번 면도신이 방영되면 아마 전국에 있는 아줌마들이 난리 날 거다. 나도 아직 직접 눈으로 본 적은 없지만 사진으로 보니깐 몸이 장난 아니던데. 그 얼굴에 그 몸이면.. 솔직히 사기 케릭이지."
"예술이죠. 그런 몸은 저도 처음 봤습니다. 보고 있으면 뭐랄까 원초적인 본능 같은 게 끓어오르는 느낌이 있던데요."
"경외심(敬畏心) 같은 거겠지. 솔직히 이소룡이 어디 연기를 끝내주게 잘해서 남자들이 그렇게 따라 했나? 그런 몸을 만들려면 얼마나 힘든지 남자들이 오히려 더 잘 아니까 좋아하고 따라 한 거지. 아무튼 제대로 한번 잘 찍어보자고. 작품 하나 만들어야지."
"그래야죠. KBC 드라마 촬영감독 중에서 영상미 하면 또 저 신호성이 아닙니까. 그래서 형님이 계속 저랑 작업하시는 거고.."
"그렇지. 누가 뭐래도 영상미 하면 신호성이지. 카메라 세팅은 문제없겠지? 면도신이라 한 번에 끝내야 된다고."
"카메라 4대가 동시에 돌 겁니다. 제가 상체를 잡고 나머지 3대가 좌.우 그리고 뒤에서 풀샷으로 찍을 겁니다. 상체는 제가 잡으니까 걱정 마세요. 가슴팍에 미끄러지는 물방울 하나도 안 놓칠 테니까.."
"너만 믿는다. 후. 조연출 보고 현장 통제 확실히 하라고 당부 좀 해야겠다."
피디가 자리를 뜨자 신호성은 카메라를 다시 꼼꼼하게 점검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수빈의 촬영이 시작되었다.
부하에게 화를 내는 신 1이 끝나고 비행기 예약을 하는 신 2가 끝났다.
면도를 하는 신 3을 찍기 전에 피디가 수빈에게 다가와 물었다.
"수빈씨."
"네. 피디님."
"시간 좀 드릴까요?"
"시간요?"
"아무래도 노출 장면이다 보니까.. 푸시업 같은 걸 좀 해서 펌핑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요."
피디의 말에 수빈은 웃으며 대답했다.
"제 몸은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바로 가셔도 됩니다."
"그래요? 그럼 준비 좀 부탁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수빈은 큼지막한 거울이 설치되어 있는 세면장 세트 앞으로 걸어가면서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상의를 완전히 탈의하자 점 하나 없는 새하얀 백설 같은 피부와 짐승의 몸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거울 앞에 선 수빈이 단전에 양손을 모으고 심호흡을 깊게 하자 근육들이 순식간에 벌크업을 하며 핏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고무공 여러 개를 프레스를 이용하여 강제로 압축시킨 듯 탄력 있는 팔과 어깨 근육들이 부위별로 세세한 형태를 드러냈고 그 위로 빨랫줄 같이 굵은 핏줄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광배근과 척추기립근은 근육들이 한올 한올 꼬여서 마치 조각을 한 듯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냈고 쩍쩍 갈라진 가슴 근육은 결의 숫자를 눈으로 직접 셀 수 있을 정도로 확연히 구별되었다.
탄탄하게 균형 잡힌 선명한 식스팩과 그 옆에 좌우로 자리한 외복사근은 마치 춤을 추듯 꿈틀거리고 있었고 특히 하복부에서 배꼽까지 한줄기 선을 이루며 올라온 털은 야성미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한 마리 야수 같은 수빈의 몸이 드러나자 조용한 촬영장 사방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침을 삼키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제작진에서 미리 충분히 공지를 한 듯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는 않았다.
"준비됐습니다. 피디님."
수빈의 말에 피디가 신호를 보내려고 하자 카메라 감독이 급히 말을 던졌다.
"피디님! 수빈씨 몸에 물 좀 끼얹고 시작하죠. 그게 화면이 더 섹시하게 나올 거 같은데요."
"그래? 수빈씨. 가슴팍이랑 등 쪽에 물 좀 몇 번 뿌려줘요."
피디의 말에 수빈이 반문했다.
"피디님. 샤워가 아니고 간단하게 면도만 하는 건데요? 지금 밑에는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바지 입고 면도를 하는데 몸에 물을 뿌리면 시청자분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물이 바지 쪽으로 줄줄줄 흐를 건데."
"그딴 거 일일이 신경 쓸 필요 없어요. 그쪽이 화면에서 더 섹시하게 나온다니까 부탁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림만 잘 나오면 개연성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건가..'
수빈이 몸에 물을 뿌리자 피디가 주위를 둘러보며 큰 소리로 말했다.
"구경하는 아줌마들! 다들 이 바닥 관계자분들이니까 잘 알 겁니다. 아까 주의 드린 대로 개인 핸드폰 같은 걸로 몰래 촬영하면 안 됩니다. 만약에 드라마 방영도 안됐는데 몰래 찍은 걸 SNS 같은 곳에 올리면 영업방해로 KBC에서 바로 고소 들어갑니다. 명심하세요."
피디가 수빈을 다시 한번 쳐다본 다음 심호흡을 한 후 외쳤다.
- 레디~이. 액션!
수빈의 면도신이 시작되었다.
면도가 진행되어 갈수록 덥수룩한 수염에 가려져 있던 아름다운 수빈의 얼굴이 조금씩 더 많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순정만화의 주인공처럼 아름다운 수빈의 얼굴과 물에 젖은 한 마리 야수 같은 수빈의 몸이 점점 더 극명하게 대비되기 시작하였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이 순간 이 하나의 면도신으로 인해 중국에서의 반응이 폭발적으로 터질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모든 촬영이 끝난 후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수빈은 BBG의 멤버인 성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성빈아. 나 수빈이 형인데."
[네. 형.]
"너 지금 어디냐?"
[저 지금 사무실요.]
"그래? 잘 됐다. 나 지금 수원에서 회사로 올라가고 있는 중인데 조금 있다가 나 좀 보자."
[무슨 일인데요?]
"[Dispatch] 안무 관련해서 의논 좀 하려고. 혹시 다른 스케줄 있냐?"
[아뇨. 없어요. 그럼 저 점심 먹고 기다릴 테니 빨리 오세요.]
"그래. 이따가 보자. 점심 잘 먹고."
수빈은 전화를 끊고 휴식을 취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그런지 삼십분 정도 흘렀을 때 핸드폰이 울렸다. 수빈은 눈을 뜨고 발신자를 확인했다.
'어라? 이 형님이 어쩐 일로 전화를?'
"네. 형님. 저 수빈입니다."
[오. 수빈아. 그래. 형이다. 요즘 많이 바쁘지?]
"네. 조금 바쁘네요. 근데 재식 형님께서 어쩐 일로 전화를 다 주셨습니까? 지금 혹시 촬영 중에 전화하시는 겁니까?"
[아냐. 오늘은 촬영 없어. 나 지금 운동 중이야.]
"아. 그러시군요. 그럼 무슨 일로?"
[수빈아. 형이 너한테 부탁 하나만 좀 하자.]
"부탁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