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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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촬영을 위해 백성철 매니저와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어제저녁에 미처 챙겨보지 못한 뉴스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 명품 복근과 명품 얼굴 그리고 명품 배우 수빈.
- 수빈의 환상적인 몸매에 [수갑이 운다] 제작진들 감탄!
- 아름다운 남자 수빈, 그의 벗은 몸은 예술과도 같다.
- [수갑이 운다] 카메오로 깜짝 출연한 수빈의 탈의 장면.
- 전설의 이소룡이 울고 갈 수빈의 멋진 몸매. 전격 공개.
- 노출된 그의 몸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몸매종결자] 수빈.
'이 세상에는 내공을 제대로 익힌 사람이 없다 보니 이 정도 몸으로도 난리가 나는구나. 세가에서 나 정도 몸매는 흔했었는데..'
수빈은 뉴스를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남자 벗은 몸 하나 가지고 뭐 이렇게 난리를 치는지 원.. 누가 보면 내가 영화에서 배드신이라도 찍은 줄 알겠다."
수빈의 혼잣말을 들은 듯 백성철 매니저가 대꾸했다.
"단순히 몸매만 좋으면 이 난리가 나겠냐. 그 얼굴에 그 몸매니깐 이러는 거지. 그리고 헬스장에 가보면 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난 그런 사람들 몸 보면 징그럽다는 생각부터 들던데 네 몸은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부터 들더라."
"이야. 우리 형이 요즘 조만간 진급할 거라는 이야기가 돌더니 갑자기 안 하던 아부를 다하신다.. 이제 회사에서 간부급으로 올라가니까 제대로 사회생활을 해보시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아부는 무슨.. 난 있는 그대로 말한 거야. 그리고 내가 진급해봐야 로드매니저에서 매니저로 올라가는 건데 그게 무슨 간부급이냐.."
"호오. 매니저 정도로는 눈에 안 차신다? 야망이 크시군요. 제가 유실장님께 형이 그렇게 말하더라고 전해드리죠."
"야야! 그랬다간 마녀가 날 말려 죽일거다. 수빈아. 농담이지?"
"네. 농담입니다.. 형. [질주맨]이야 저도 여러 번 봐서 잘 알고 있는 프로지만 [도회지 어부]는 정말로 촬영 가서 1박2일 동안 낚시만 하다가 오면 되는 건가요?"
"그럼. 예능이지만 대본이나 억지스러운 설정 같으게 전혀 없는 프로니까 개인기 같은 것도 필요 없어. 30~50대 남성이 주 시청자층인데 보는 시청자들이 그런 걸 원하지 않거든. 그냥 배 타고 바다로 나가서 하루 종일 낚시만 하다가 잡은 물고기로 회 뜨고 매운탕 끓여서 밥 먹고 오면 끝이야."
"이야. 낚시 좋아하는 사람한테는 완전히 꿀 빠는 프로그램인데요."
"그렇지.. 왜 남자들이 젊었을 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한창 낚시 다니다가 결혼하면 집에서 부인들이 자기를 주말과부 만든다고 난리를 쳐서 못 나가잖아. 그런 중년 남자들의 욕구를 대리만족시켜주는 프로라고 볼 수 있지."
"그렇군요."
"방송에서 담당 피디가 하는 말 못 들어봤냐? 다른 프로들은 출연자들 보고 새벽에 어디로 오라고 하면 불만이 엄청 많은데 그 프로는 찍소리 안 하고 차 몰고 총알같이 달려온다잖아. 보통 예능 프로에서 1박하고 다음날 새벽에 출연자들 깨우려고 하면 짜증 내고 난리도 아닌데 이 프로는 출연자들이 알아서 새벽같이 일어난데. 빨리 낚시하러 가야 된다고.."
"전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요. 그런데.. 그런 프로가 시청률이 잘 나와요? 낚시 하는 거 말고는 아무 내용도 없는데?"
"그럼! 종편 예능인데도 3% 정도 나오는걸."
"3%나 돼요? 우와. 놀랍네요. 하루 종일 낚시만 하는 프로면 당연히 여자들이 싫어할 거 같은데.. 그게 어떻게 가능하죠? "
"제작진 말을 들어보니까 요즘 집에서 남자들이 그 프로 볼 때는 부인들이 아예 안 건드린다고 하더라. 처음에는 뭐 이따위 쓸데없는 프로를 보냐고 몇 번 건드렸다가 남자들이 불같이 화를 내니까 눈치 깐 거지. 아. 이건 건드리면 안 되는 거구나. 건드리면 남자가 진심으로 화를 내는구나.. 낚시를 좋아하지만 일에 치이고 가정에 치여서 가고 싶어도 못 가는 남자들에게 일종의 신성불가침(神聖不可侵) 프로인 거지. 뭐 프로야구처럼 매일 하는 것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번 하니까 그 정도는 부인들이 봐주는 걸수도 있고.. 그래서 시청률이 매회 계속 올라가고 있데."
"그렇군요. 근데.. 말하는 게 마치 형 본인의 이야기를 하는 거 같은데요?"
"하하. 나도 젊었을 때는 주말마다 낚시 가고 그랬지. 결혼하고 애까지 생기니까 지금은 꿈도 못 꾸지만.. 수빈이는 바다낚시를 해본 적이 있어?"
"전 한 번도 없어요."
"그래? 그럼 촬영 가게 되면 처음으로 해보는 거겠네?"
"그렇죠. 형을 위해서라도 [도회지 어부]는 제가 꼭 나가야겠네요. 촬영하는 동안 오래간만에 형도 맘 편하게 낚시할 수 있게.."
"뭐 그러면 나도 좋긴 하지만.. 네가 바쁜데 굳이 억지로 나갈 필요는 없다."
"형 덕분에 저도 1박2일 동안 쉬면서 힐링 좀 하게 내일이나 모레라도 나갈 수 있도록 일정을 잡아봐요. 그럼 오늘은 [질주맨]만 찍는 거죠?"
"그래야지. 한꺼번에 두 개를 동시에 찍을 수는 없으니까."
한편 그 시각 YK 사옥에서는 가수 1팀의 유실장과 배우 1팀의 박실장간의 만남이 진행되고 있었다.
"어때요? 박실장님 취향에 맞는 편인가요?"
"나쁘지 않아. 좋은데.."
"괜찮죠?"
"이름이 뭐라고?"
"스페인어로 마테(mate)라고.. 남미의 녹차라고 불리는 건데 주로 아르헨티나나 우루과이에서 많이 즐기는 차에요."
"남미까지 출장 가서 일하는 것만 해도 힘들고 정신없었을 건데 이런 좋은 선물까지.. 유실장. 고마워."
"뭘요. 제가 없는 동안 수빈이를 이렇게까지 잘 띄워주고 키워주신 분이신데요."
유실장의 말에 박실장이 피식 웃으면서 대답했다.
"유실장. 아무리 그래도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네? 무슨 말씀을?"
"유실장 없는 동안 내가 수빈이를 띄워주고 키워줬다고? 날 치켜주는 건 좋지만 없는 말을 지어내면 곤란해. 그놈은 자기 스스로 혼자 뜬 놈이야.."
박실장은 마테차를 홀짝인 후 당황해하는 유실장을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수빈이 얼굴이 잘생겨지라고 성형을 시킨 적도 없고 머리가 좋아지라고 공부를 시킨 적도 없네. 연기를 잘하라고 연기학원을 보낸 적도 없고 몸이 좋아지라고 헬스클럽을 보낸 적도 없어. 수빈이는 누구의 도움 같은 건 필요가 없는 애야. 그냥 우리는 옆에서 스케줄 관리나 계약 같은 자질구레한 것들을 도와주고 행여나 이상한 스캔들 같은 게 터지지 않도록 막아주면 된다네."
"음.."
"괜히 천재라고 불리는 게 아니지.. 자네나 나나 그냥 옆에서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는 거야."
"하지만 수빈이는 아직 나이가 너무 어리잖아요. 그래서 젊은 나이에 실수를 할 수도 있으니까 우리가.."
그 순간 박실장의 핸드폰이 울어댔다. 발신자를 확인한 박실장이 유실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미안하네. 전화 좀 받아야겠네. 이 전화는 안 받을 수가 없어.."
"네. 괜찮아요."
박실장은 핸드폰을 들고 통화 표시를 누른 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이야. 강배우! 오래간만이야. 어쩐 일로 이렇게 전화를 다 주셨나?"
강배우라는 사람과 통화를 하는 도중 박실장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
"그래. 나도 알지. 강배우가 올해가 마지막이라는 건 들어서 알고 있어. 하지만.."
[....]
"알겠네. 그래.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내가 도와줘야지. 그럼 내가 한번 힘을 써보도록 하지."
[...]
"후우. 알았어. 그만 좀 보채게. 그래. 알았다니까.. 내가 꼭 보내도록 하겠네. 약속하지. 그래. 확정되었다고 봐도 좋아. 그래그래. 이만 끊자고."
박실장이 굳은 얼굴로 전화를 끊자 유실장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강배우가 누구 말하는 거예요?"
"후우.. 강소연."
"강소연이면.. 설마 영화 [C-바지]의 그 강소연?"
"그래. 그 강소연."
"아까 얼핏 들으니까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하던데.. 결혼해서 은퇴라도 한다는 건가요?"
"결혼은 무슨.. BIFF(Busan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이야기야."
"BIFF 면.. 부산국제영화제?"
"그래. 강배우가 거기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잖아. 임기가 아직 4년이나 남았는데 올해만 하고 물러나겠다고 한 달 전쯤에 발표를 했었지."
"아. 그렇구나. 근데 왜 박실장님 안색이 안 좋으세요?"
"후우. 5월에 거기 부 집행위원장이었던 김수석 프로그래머가 칸에 참가했다가 안타깝게도 심장마비로 별세했네. 그래서 평생을 BIFF에 바친 고인을 기리는 상을 이번에 처음으로 만들었다고 들었어. 그런데.. 집행위에서 아무래도 새롭게 만든 상이다 보니까 새로운 신인배우가 발표하는 게 더욱 뜻깊겠다고 생각을 한 모양이야."
"설마?"
"그 설마가 맞아. 수빈이를 발표자로 보내달라고 그러네. 내가 곤란하다고 거절을 했는데.. 강배우가 한 성격하잖아. 나랑 젊었을 때부터 잘 아는 사이고.. 하아. 명색이 집행위원장이라는 사람이 애처럼 얼마나 졸라대는지.. 도저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네. 끝까지 거절하면 회사로 쳐들어와서 날 때려죽일 기세더라고."
"음. 수빈이가 아직 배우로서는 입지가 약한데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근데.. 그렇다고 그렇게 나쁜 일도 아니잖아요? 영화인들과 얼굴도 익히고 지명도도 더 올리고. 제 생각에는 괜찮은 자리인 거 같은데요. 굳이 끝까지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요? 박실장님이 잘 결정하신 거 같은데요."
"하아. 자네는 가수 팀이라서 지금 내 고충을 모를 거야. 내가 BIFF 개막일이 다가오면서 수빈군 때문에 대한민국의 유명 여배우라는 사람들한테 얼마나 시달리고 있는지 아나? 자네는 상상도 못할걸세. 내가 그 사람들의 프라이버시를 위해서 차마 말을 하고 다니지 않아서 그렇지. 아주 미쳐버릴 지경이라고.."
"네?"
"네는 무슨 네야.. 여배우들이 어떤 종류의 인간들인지 유실장도 어느 정도는 잘 알 거 아닌가. 자기가 참석한 자리에서 자신이 가장 주목받고 가장 빛나길 원하는 게 그 인간들이라고.. 그냥 평범한 자리도 아니고 전 세계 영화인이 주목하는 부산국제영화제 아닌가. 그런 특별한 자리에서 주목을 받기 위해서라면 과감한 노출에 꽈당 쇼까지 불사하는 게 그 족속(族屬) 들이라고.. 하아. 죽겠군."
"그럼 여배우들이 수빈이를?"
"그래. 누가 뭐래도 요즘 가장 핫한 게 수빈군 아닌가. 수빈군을 파트너로 데리고 가면 사람들이나 언론들에게 주목을 한 몸에 받을 수 있겠지.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고 키 크고 옷발도 좋으니까 같이 있으면 당연히 폼 나지 않겠나. 수빈군의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BIFF 레드 카펫을 걷게 해달라고 내가 얼마나 많은 여배우들에게 압력을 받고 있는지 아는가?"
박실장은 소파에 허리를 묻으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휴. 돌겠군.. 수빈군은 아직 영화 쪽으로는 경험이 적어서 이번 BIFF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어렵사리 다 거절을 해왔었는데.. 그게 소문이 돌아서 이제 좀 잠잠해져서 겨우 살만하다 했더니.. 수빈군이 발표자로 BIFF에 참석한다는 사실이 그 바닥에서 돌면.."
그 순간 박실장의 핸드폰과 사무실 전화가 미친 듯이 울어댔다.
박실장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했다.
"벌써 시작인가. 빌어먹을.."
그 시각 수빈은 일산에 있는 SBC 제작센터에 도착하여 차에서 내렸다.
수빈은 [질주맨] 출연자들이 함께 사용하는 대기실로 걸어가면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나도 국민 MC라고 불리는 유재식을 만나게 되는 건가.. 스파르타! 김정국도 볼 수 있고.. 후. 왠지 설레는걸.'
수빈은 대기실 문 앞에 서서 심호흡을 한 뒤 가볍게 문을 노크했다.
- 똑똑똑
- 네. 들어오세요.
수빈은 손잡이를 돌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한편 주차장에 차를 대기 위해서 이동하고 있던 백성철 매니저는 운전 도중 핸드폰이 울려서 받았다.
"여보세요?"
[아. 나 박실장인데..]
"네. 실장님."
[지금 수빈군 옆에 있나?]
"아뇨. 지금 일산 SBC 제작센터에 무사히 도착해서 수빈이는 방금 전 대기실로 갔습니다. 저는 주차장에 파킹 하려고 하는 중이고요."
[그래? 흠. 요 근래 백군이 수빈군 옆에서 계속 따라다녔지 않은가?]
"네. 그렇죠. 제가 계속 옆에 붙어있었죠."
[그렇지.. 지금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자네가 좀 결정을 해줘야겠네.]
"제가요? 무슨 문제인데요?"
[수빈군이 제일 좋아하는 여배우가 누군지 혹시 알고 있나?]
"네~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