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52화 (52/236)

#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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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수요일 아침 10시경 뮤란 멤버들의 연습 상황을 알아보고 자신이 내어준 숙제를 검사하기 위해 연습생들이 사용하는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1, 2, 3, 4로 나누어진 4개의 연습실 중 가까운 시일 내에 데뷔가 확정되어 특별히 3번 연습실을 전용으로 배정받은 뮤란을 만나기 위해 지하 2층으로 내려가니 입구에서부터 각방에서 흘러나오는 노랫소리가 들렸다.

복도에는 아침부터 고된 연습으로 땀에 절어서 앉아서 쉬고 있거나 복도에 설치된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있는 등 여러 연습생들이 보였다.

수빈을 발견한 연습생들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건네오자 수빈도 밝은 얼굴로 화답하며 3번 연습실로 걸어갔다. 부러움이 가득 담긴 연습생들의 눈빛을 뒤로 한채 수빈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자 뮤란 멤버들이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각자 하던 연습 계속해라.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연습했는지 한번 봐야지."

뮤란 멤버들의 연습을 지켜보던 수빈은 땀을 뻘뻘 흘리며 연습실 한쪽 벽을 따라 계속 왔다 갔다 하며 끊임없이 걷고만 있는 에리카에게 다가갔다.

"에리카. 그동안 열심히 연습했네. 근데 아직은 걷는 속도를 빨리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한걸음 한걸음 걸을 때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걸어야 돼. 그래서 잠재의식이나 관련된 신경계, 근육 등에 완전히 인이 박혀야만 걸음걸이를 완전히 바꿀 수가 있는 거야. 그게 먼저다."

"네. 알겠습니다."

"내가 내딛는 앞발은 어떻게 하라고 했지?"

수빈의 질문에 달달달 외운 듯 에리카가 숨도 안 쉬고 대답했다.

"걸음을 걸을 때 내딛는 앞발은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위를 결정하고 내딛는 땅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솜털처럼 가볍게 내디뎌야 한다."

"뒷발은?"

"앞발의 방위와 지형 확인이 끝나는 순간 발가락에 힘을 주어 폭발적으로 땅을 강하게 밀어 추진력을 얻는다."

"호흡은?"

"내딛는 앞발에 들이쉬고 미는 뒷발에 내뱉는다."

"몸은?"

"누군가 실로 매달아 공중에서 나의 몸을 잡아당기고 있다는 생각으로 항상 곧고 바르게 세워야 한다."

"잘 기억하고 있네. 넌 지금 아직도 호흡과 발이 잘 안 맞아. 걷는 속도가 느려도 되니까 다시 천천히 호흡을 하면서 걸어봐. 걷는 게 완성되야만 뛸 수 있다. 명심해라."

수빈의 말에 에리카가 주먹을 꽉치며 당차게 대답했다.

"네. 오빠. 걱정 마세요. 열심히 연습할게요."

"그래. 넌 데뷔 전까지 그것만 완성시키면 된다."

수빈은 에리카를 격려한 뒤 양 갈래로 머리를 땋고 양팔을 양옆으로 벌린 채 복식호흡을 계속하고 있는 소희에게 다가갔다. 수빈이 가까이 다가오자 소희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오빠. 저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어봤어요."

"응? 뭘?"

"오빠가 그날 제가 고음을 잘 지를 수 있는 소질을 타고났는데 실제로 잘 안되는 이유가 폐가 약해서 그렇다고 말했자나요. 두성으로 고음을 예쁘게 내려면 강한 호흡으로 소리를 위로 끝까지 끌고 올라가야되 는데 전 가다가 힘이 달려서 중간에 자꾸 멈추고 소리가 새고 있다고..  그러면서 아마 어릴 때 폐 질환을 심하게 앓은 적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그랬지. 그런데 넌 그렇게 아팠던 기억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네. 근데 제가 집에 가서 엄마한테 물어보니까 그런 적이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돌 이전에 급성폐렴에 걸려서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서 죽다 살아났데요. 오빠가 말한 게 정확해요."

"그래? 소희야."

"네. 오빠."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냐.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그 누구도 되돌릴 수 없어. 지금 이 상태로도 연습만 충실하게 하면 넌 얼마든지 고음을 예쁘게 낼 수 있다. 내가 뭐라고 했지?"

"언제 어디서든 항상 폐를 최대한 확장시키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평상시에도 절대 어깨를 움츠리고 다니지 말고 최대한 가슴을 내밀며 걸어라. 그리고 복식호흡을 연습할 때 내뱉는 호흡을 길게 그리고 강하게 하는 연습을 꾸준히 하면 얼마든지 고음이 가능하다."

"그래. 복식호흡을 하면서 많이 힘들겠지만 이러다 쓰러져 죽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호흡을 길게 내뱉어. 호흡이 어느 정도 길어져야만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명심해. 올바른 방법으로 꾸준히 연습하면 인간의 몸은 틀림없이 좋아진다. 과거에 있었던 일은 신경 쓰지 말고.."

"네. 오빠. 죽기 살기로 할게요."

잠시 후 수빈은 뮤란 멤버들을 다 모아놓고 숙제 검사를 하던 도중 크게 화를 내며 질책을 하고 있었다.

"[걸리버 여행기]에 소인국, 대인국 나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우리 동네에서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그 정도는 안다. 내가 그날 말했지. 애들용 동화 말고 성인용으로 나온 책을 읽으라고.. 작가인 조나던 스위프트가 성공회 신부였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신부가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그 사람은 어떤 말을 우리에게 하고 싶은 걸까? 소인국 같은 건 왜 등장시킨 걸까?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안 해봐? 내가 분명히 [걸리버 여행기]를 정독하고 오라고 했지? 책 한 권 읽는데 사흘씩이나 준 이유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정독(精讀)이 무슨 뜻인지 몰라? 이따위로 숙제를 해오면서 지금.."

그 순간 수빈의 핸드폰이 울어댔다. 수빈은 한숨을 크게 쉰 후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수빈군! 나 박실장인데.. 자네는 도대체 뭘 하고 돌아다니는 건가?]

"네?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지금 BJ 그룹에서 연락이 왔다네. 빠른 시간 내에 미팅을 하고 싶다고.. 후우. 지금 내 방으로 빨리 와줄 수 있겠나? 만나서 이야기하세.]

"네. 알겠습니다."

수빈은 전화를 끊은 후 뮤란 멤버들을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본 다음 말했다.

"너희들 잘 들어. 지금 이 자리에서 몇 발짝만 걸어서 방 밖으로 나가면 이 방을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연습생들이 복도에 즐비하다. 걔네들은 너희들만 한 재능이 없거나 노력을 안 해서 데뷔를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웃기지도 않는 소리지. 다들 잘 생각해라."

수빈은 멤버 한 명 한 명 눈을 맞춘 뒤 이어 말했다.

"사람마다 100미터 달리기 기록이 다른 것처럼 지적 수준이 다른 건 당연한 거다. 난 지금 너희들에게 [걸리버 여행기]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라고 말하는 게 아냐. 현재 자신의 수준에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고 오라고 말하는 거야. 그게 정독이라는 거다. 3일 뒤에 다시 검사를 할 테니까 그때 다시 보도록 하자. 그때도 제대로 안 해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자르고 새로운 멤버로 교체할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지?"

- 네. 오빠.

- 알겠습니다. 정독! 하고 올게요.

- 걱정 마세요. 오빠.

- 저희를 믿어주세요. 오빠.

잠시 후 수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있는 배우 1팀 박실장 방으로 찾아갔다.

"어서 오게. 수빈군."

"안녕하세요. 박실장님."

수빈이 소파에 앉자 박실장이 오기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빈군. 자네는 알면 알수록 더욱 불가사의한 사람이야. 내가 유실장에게 수빈군이 블록버스터 영화에 주연으로 도전하겠다고 맘을 먹었다는 소리를 들은 지 이제 삼일 정도 지났나? 그 짧은 삼 일 만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는지 정말 신기해. 도대체 어떤.."

수빈은 흥분한 박실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손을 들며 말을 잘랐다.

"박실장님. 전 지금 무슨 상황인지 잘 모르고 있습니다. 흥분을 가라 앉히시고.. 차분하게 설명 좀 해주시죠."

"음. 내가 너무 흥분했군. 유실장에게 회사로 들어온 오퍼가 있다는 건 들었지?"

"네. 들었습니다. CF와 연동해서 제가 그쪽 회사 제품 광고만 찍고 그 대신 볼록버스터 영화에 주연으로 쓰는 걸 고려하겠다는 오퍼가 들어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게 BJ 그룹이라는 것도요. 아마 저를 당분간은 독점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건 그냥 단순한 오퍼일 뿐이야. 확정된 게 아니었지. 우리 입장에서야 그렇게 되기만 하면 무조건 이익이지만 상대방은 손익 계산을 충분히 해봐야 되니까.. 그래서 자네가 블록버스터 영화에 도전하겠다고 말을 꺼낸 순간부터 우리 측에서 자료를 준비하기 시작했네. 자네가 정말로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배우라는 걸 증명해야 되니까. 사실 수빈군 배우 경력이 너무 일천하지 않은가? 그래서 홍보팀이랑 나랑 머리를 쥐어짜고 있는 중이었는데 말이야."

"그러던 중에 그쪽에서 갑자기 먼저 연락이 온 거군요?"

"그래. 그때의 오퍼를 지금 회사 내에서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라고 빠른 시간 내에 미팅을 하자는 거야. 이게 지금 어떤 상황인지 난 지금 이해가 안 된단 말이야. 단순하게 얼굴 한번 보자는 미팅이 아니라고. 자네가 출연할 영화까지 결정해서 연락이 왔어. 이건 BJ 내부에서 아주 구체적인 계획이 세워졌다는 이야긴데.."

"만약 한다면 제가 출연할 영화 제목이 뭡니까?"

"[스팅. 그 아름다움에 관한 보고서]"

영화 제목을 듣자마자 수빈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기억이 있었다.

"음? 그 영화는.."

"자네도 들어본 적이 있지?"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대본까지 다 외우고 있습니다.. 일전에 읽어보라고 주신 각본들 중에 있던 거 아닙니까? 국제적으로 노는 사기꾼이 주인공인 영화.."

"역시.. 천재는 정말로 무섭군. 아직도 대본을 다 외우고 있다니.. 맞아. 그 영화야."

"근데 그 영화는 해외 로케가 많아서 제작이 불투명하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랬지. 그런데 BJ에서 각본을 사들인 모양이야. 수빈군이 대본을 다 외우고 있다고 하니 그 영화 캐릭터가 갖춰야 될게 뭐라고 생각하는지 말해줄 수 있겠나?"

박실장의 질문에 수빈이 망설임 없이 빠르게 대답했다.

"젊은 나이, 잘생긴 얼굴, 회전이 빠른 머리, 화려한 언변, 다양한 외국어 능통, 잽싼 몸놀림, 뛰어난 격투 실력."

"하나 더 있지. 훤칠한 키. 외국에 나가서 촬영하면 주인공 키가 더욱 중요해져. 장대 같은 외국인들 사이에 난쟁이 같은 주인공이 서있으면 그림이 살겠나? 자네 키가 얼마지?"

"186 정도 됩니다."

수빈의 말에 박실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누가 봐도 이 캐릭터에 자네가 적임자라는 건 맞아. 하지만 말이야. 좀 전에 통화할때 영화 제작비로 300억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고 말을 하더라고. 그 순간 내가 생각한 것보다 두 배 가까이 많은 제작비에 깜짝 놀랐고 또 이런 생각이 동시에 들었지."

박실장이 수빈을 지그시 쳐다보며 말했다.

"뭘 믿고 이럴까... 대체 뭘 믿고? 30억짜리 영화도 이런 식으로 급박하게 진행하지는 않아. 300억짜리야. 무려 300억이라고.. 얼마전에 개봉했던 [군함섬]이랑 비슷한 제작비라고. 이 정도 돈이면 만에 하나 영화가 흥행에 참패라도 하면.. 아무리 재벌이라고 해도 회사 주가가 출렁일 정도의 금액이야. 이건 영화가 흥행에 반드시 성공할 거라는 확신이 선거야. 그게 아니라면 절대 이럴 수가 없어. 그래서 결론적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지.. 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수빈군이 또 뭔가 엄청난 일을 했구나. 자. 이제 나에게 들려주게. 이 짧은 3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한 건가?"

"3일 사이에 제가 한 일중에 특별한 일이라고는 하나밖에 없을 거 같은데요. 그런데.. 별로 특별할게 없었는데요."

"그게 뭔가?"

"월요일 오후에 성강호 형님이 카메오로 출연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셔서 남양주 촬영장으로 출발을 했었는데.."

"했었는데?"

"가는 도중에 남양주 근처에 있는 다른 장소로 촬영지가 바뀌었다고 주소를 보내주더라고요. 네비 찍고 그쪽으로 오라고."

"그래서?"

"그래서 네비를 찍고 막상 도착을 해보니 영화 세트장이 아니라 빠지더군요."

"바지?"

"아뇨. 빠지(barge)요."

"아아. 빠지.. 그래서?"

"그래서.."

수빈은 머릿속으로 그날의 기억을 회상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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