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47화 (47/236)

# 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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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급박하여 신인기획팀과는 차후에 다시 의논을 하기로 하고 모두 돌려보냈다. 그런 뒤 수빈과 유실장은 댓글들을 살펴보는 한편 TV를 켜서 [명품진품]을 시청하고 있었다.

"하~아. 유실장님. 악플이 무지하게 달리네요."

"그래. 나도 지금 보고 있다. 아직 네가 그린 그림은 방송에 소개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이 정도라니.. 분위기가 너무 나쁜걸."

"이럴 바에는 차라리 뉴스가 안 나오는 게 더 나을뻔했겠는데요."

"얘가 얘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그건 아니지. 안티는 언제 어디서나 있는 법이야. 그런 거 무서워서 이런 좋은 뉴스를 내보내지 말자고? 말도 안 되지. 일단 돌아가는 상황을 좀 더 지켜본 다음 회사 차원에서 손을 쓰면 되는 거야. 연예인을 몇 년씩 했다는 애가 그런 소리를 하니.."

'사실 연예인 된지 몇 달 밖에 안됐습니다만..'

수빈은 읽었던 댓글들을 머릿속에서 빠르게 정리한 후 입을 열었다.

"지금 악성 댓글들 유형을 보니까 세 종류로 나뉘네요. 첫 번째 유형은 지금 일어나는 일들은 방송국이랑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아무리 잘 그렸다고 해도 그림 하나가 2천만원이라는 고액에 팔렸다는 건 얼마 전 시작한 드라마의 흥행을 위해서 노이즈 마케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유형은 그렇게 비싸게 팔릴 정도의 수준 높은 그림을 연예인에 불과한 그것도 대학 문턱도 못 가본 내가 그렸을 리가 없다.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그린 걸 돈을 주고 사서 들고 나왔을 것이다. 세 번째 유형은.. 이건 좀 그렇네요. 그냥 나라는 인간이 꼴보기 싫다.."

"흠. 사람들이 많이들 오해를 하는 모양이야.. 아니면 네가 요즘 잘 나가니까 질투를 하는 거일 수도 있고. "

그때 수빈은 수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어라? 이것 봐라? 이건 말이 안 되는데..'

한편 그 시각 이런 사태에 흥분하여 날뛰는 여성이 있었다.

수빈의 팬클럽 회장이며 BBG 팬카페에서 [치맥은진리]라는 아이디를 쓰고 있는 강성희는 솟구쳐 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괴성을 지르며 핸드폰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아악! 이런 쓰레기 같은 사람들이.. 가슴 따뜻한 뉴스를 보면 좋게 칭찬해주면 되지. 왜 욕을 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노이즈 마케팅은 무슨.. 거기에 직접 그렸는지 믿을 수 없다는 인간들은 또 뭐야. 상식도 없나? 금방 들킬 일을 왜 하겠어. 조사하면 다 나오는데 누가 그러겠냐고! 대가리에 똥만 가득 찬 인간들 같으니!"

그런 모습을 뒤에서 걱정스레 지켜보는 직원들이 낮은 소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 사장님. 왜 또 저러신데?

- 몰라. 좀 전까지만 해도 기분 좋다고 방방 뛰셨는데.

- 조울증이야. 조울증. 저러다 또 금방 좋아지셔.

- 사장님이 미쳐 날뛰고 있는 중입니다.

직원들의 뒷담화를 듣지 못한 채 강성희는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댔다.

"YK! 너네들은 지금 뭐하고 있는 거니. 유실장은 남미서 아직도 안 온거야 뭐야.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거 아냐!"

한편 사무실에서 수빈은 자신이 발견한 수상한 점을 유실장에게 말하려고 하는 순간 유실장이 큰 소리로 외쳤다.

"수빈아! 지금 연예인들 작품 소개한다!"

고개를 돌려 TV를 보니 [명품진품] MC가 한 여성 연예인이 들고 나온 작품 소개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작품 소개를 마친 후 MC가 3명의 감정평가단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서 작품을 건넸다.

백발에 뿔테 안경을 끼고 나이가 지긋한 회화 전문가인 진동민옹과 반백의 머리에 통통한 얼굴의 서예 및 고서 전문가 김영목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성으로서 도자기 및 민속품 전문가인 양의순 세 명으로 구성되어 있는 감정평가단은 MC에게서 작품을 받은 후 자유롭게 토론을 하기 시작하였다.

잠시의 시간이 흐른 후 감정평가단의 대표격인 회화 전문가 진동민옹이 마이크를 들었다.

"방금 감정한 도자기는 아주 독특하고 개성이 넘치는 뛰어난 작품이었습니다. 앞으로가 더욱 기대가 됩니다. 훌륭한 작품을 보게 돼서 좋았습니다."

누가 들어도 립 서비스로 들리는 감정평가단의 소감이 끝난 후 수빈의 차례가 되었다. 수빈은 허리를 숙여 옆에 세워뒀던 두루마리를 집어 들었다.

"수빈씨가 들고 나온 게 두루마리 인걸로 보아 그림이나 글씨 같아 보이는군요."

"네. 미천한 솜씨지만 그림을 하나 그려서 들고 나왔습니다."

"네. 요즘 한창 인기가 절정이신데 겸손까지 하시군요. 자. 그럼 천재로 알려진 수빈씨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을 한번 볼까요?"

수빈이 두루마기를 조금씩 펴기 시작하자 감정평가단 쪽에서 조금씩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마지막까지 두루마리를 활짝 펼치자 12호 정도 크기의 그림이 모습을 보였다. 왼쪽 한편에는 글이 적혀 있는 수묵으로 그린 한 폭의 산수화가 활짝 드러나자 감정단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허어. 예사롭지 않은 솜씬데.

- 으음. 연예인이 저걸 직접 그렸다고?

- 어머. 그림이 멋지네요.

"지금 감정단 분들 분위기를 보니 예사 그림이 아닌 거 같아 보입니다. 그림을 보니 산들이 많이 보이고 가운데에는 특히 바위로 된 산이 보이는데요. 수빈씨. 간단하게 설명 좀 부탁드릴까요?"

"네. 북한산에서 으뜸이라는 인수봉을 그렸습니다. 제가 요즘 좀 바빠서 멀리 갈 수가 없어서 가까운 북한산을 감상한 후 그린 겁니다. 다른 산과 달리 인수봉은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는 봉우리라서.."

그때 MC가 수빈의 말을 급히 잘랐다.

"감정단 여러분들. 제가 금방 그림을 들고 갈 테니까 진정들 하시죠."

카메라가 감정단이 있는 자리를 비추자 전원이 일어나서 그림을 조금이라도 자세히 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잡혔다. 진동민옹은 일어서서 안경을 연신 추켜올리고 있었고 다른 감정단들은 허리를 앞으로 숙여서 조금이라도 그림을 가까이 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었다.

"여기 이쪽에는 글이 적혀있는데요. 일종의 시나 시조 같아 보입니다. 직접 적으신 거겠죠?"

"네. 그렇습니다. 어려운 시는 아니고요. 사람들이 자주 쓰는 사자성어들로 인수봉을 본  제 느낌을 간단히 표현했습니다."

"자주 쓰는 사자성어라고 하지만 저는 잘 모르겠군요. 그럼 감정단 분들에게 평가를 한번 받아보고 시의 내용도 한번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MC가 그림을 들고 가자 감정평가단 전원이 일어서서 그림을 조심스럽게 받아 드는 모습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한편 사무실에서 그 모습을 TV로 지켜보고 있던 유실장이 깜짝 놀란 목소리로 수빈에게 물었다.

"수빈아. 저거 네가 직접 그린 게 맞니? 감정단들 반응이 장난 아닌데.. 저분들 얼굴 표정으로 봐서는 절대 쇼는 아닌 걸로 보이는데.."

"유실장님까지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합니까. 제가 그린 게 맞습니다."

"이런 방송 내용이라면 가만히 놔둬도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 저절로 정화되겠는걸.. 직접 눈으로 본 최고의 전문가들이 저런 반응이라면 일반인들은 아무도 이의 제기를 못할 거야. 2천만원이 과하다고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떠들던 사람들 입이 쏙 들어가겠는데.."

"아닐걸요. 그래도 댓글로 욕할 겁니다. 직접 그린 게 맞냐고. 어디서 사 온 거 아니냐고. 아무리 방송에서 좋게 말을 하더라도 믿을 수 없다며 방송국이랑 짰다고 계속 떠들어댈 겁니다. 제가 아까 이상한 걸 발견했거든요."

"이상한 거? 어떤 거?"

"뉴스에 달린 댓글들이 욕설로 도배된 건 어느 정도 이해를 하겠는데 좀 전에 살펴보니 [명품진품] 시청자 게시판까지 욕설로 도배가 되어 있더라고요."

"응? 그건 좀 이상한데.."

"그렇죠? 절 싫어하는 젊은 애들이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면서 댓글을 달수는 있겠지만 일부러 [진품명품] 게시판까지 찾아가서 욕설로 도배를 한다? 평상시에 거의 보지도 않는 프로그램인데 말이죠. KBC 방송국에 접속할 아이디조차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일 텐데 그런 귀찮은 일을 할리가 만무하잖습니까."

"그렇다면 누군가가 이번 사태를 뒤에서 조작하고 있다는 건데.."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저를 아주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KBC 방송국 드라마가 잘 나가는걸 방해하고 싶은 사람이 조작을 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얼마 전 드라마 제작발표회 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거든요."

"흠. 이건 그냥 가볍게 넘길 일이 아냐.. 누가 이번 일을 기획했는지 뒤를 한번 캐봐야 할 거 같다."

그때 TV에서 감정이 끝났는지 진동민옹이 마이크를 들고 살짝 떨림이 있는 목소리로 감정 결과를 발표하였다.

"대단한 그림입니다. 이건.. 대가의 솜씹니다. 솔직히 연예인이 그린 그림이라고는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듭니다. 붓끝의 과감한 터치나 섬세한 농담(濃淡) 조절 특히 인수봉 암석의 질감 묘사는 감히 걸작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서예 솜씨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그래서 외람되지만 수빈군에게 한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본인이 직접 그림을 그리셨다고 하니 글도 직접 적었을 건데 어떤 서체로 적었는지 감정단에게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까?"

마치 자신을 테스트하는듯한 질문에 수빈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초서체로 적었습니다."

수빈의 대답에 서예 및 고서 전문가인 김영목 감정위원이 급히 되물었다.

"아뇨. 그걸 물어본 게 아닙니다. 서풍을 물어본 겁니다."

"아. 서풍이라면 구양순체를 많이 닮았다고 보시면 될 겁니다."

"으음.. 굳이 서성(書聖)이라고 불리는 왕희지나 조선 최고의 명필로 꼽히는 김정희 선생님의 추사체를 놔두고 구양순체를 좋아하는 이유가 특별히 있습니까?"

"개인적으로 그분의 시문혁신론을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서체도 닮아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아직 추사체는 따로 공부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수빈씨는 당연히 시문혁신론을 읽어보셨겠군요?"

"네. 읽어봤습니다."

"어떤 내용인지 이 자리에서 간략히 말해 주실 수 있습니까?"

"어려운 문체로 문장의 화려함을 추구하지 말고 일상에서 사용하는 쉬운 문체로 시를 만들자는 주장을 펼치신 걸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쓴 시도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쉬운 사자성어로 시작(詩作)을 한 거군요?"

"네. 그렇습니다."

수빈의 대답에 김영목 감정위원이 감탄 어린 얼굴로 정중히 말했다.

"잘 알겠습니다. 훌륭한 그림에 어울리는 훌륭한 시와 글 솜씨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영목 감정위원의 말이 끝나자마자 회화 전문가인 진동민옹이 매서운 눈빛으로 질문을 던졌다.

"지금 보는 수빈군이 그렸다는 그림의 화풍은 아주 독특합니다. 아마 [명품진품]에서 나온 회화 중 시청자분들이 처음으로 보는 화풍일 겁니다. 어떤 화풍인지 한번 설명해 주시죠."

수빈을 시험하는듯한 감정단의 연이은 질문에 수빈이 조금 난감한 표정을 짓자 MC가 끼어들었다.

"수빈씨. 지금 굳이 설명 안 하셔도 됩니다. 이 프로는 생방송이 아닙니다. 녹화 끝나고 감정단 여러분들과 대화를 나눌 시간이 충분히 있습니다."

MC의 말에 수빈이 대답했다.

"제가 좀 죄송해서 그렇습니다. 이번에 제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여러 화가들의 유명한 산수화들을 잠깐 살펴보았습니다. 대부분의 유명한 그림이 16세기 때부터 유행한 절파(浙派) 화풍의 그림이거나 아니면 18세기 때부터 유행한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 이더군요. 19세기 때에는 남종화가 유명하고요. 그런데.."

"그런데요?"

수빈은 MC의 말에 순간적으로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였다.

'절파랑 진경산수화 같은 걸 살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그런 식으로 그림을 그리냐.. 추사 김정희도 그렇고 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나온 것들뿐인데.. 쩝. 그런 사실을 대놓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제가 연치가 아직 어린 관계로 회화 공부가 짧아서 그런 화풍의 그림을 잘 못 그립니다. 제 그림은 어렸을 때부터 공부했던 마하파(馬夏派)의 화풍을 많이 따르기 때문에 보시기에 조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수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동민옹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마하파가 어디서 유래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그리고 그 특징은 뭡니까?"

"남송 때 화원인 마원(馬遠)과 하규(夏珪)에 의하여 주도되어 마하파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습니다. 특징으로는 자연을 사람의 눈길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관조(觀照) 한 상태로 그림을 그리는 것입니다."

수빈의 대답이 끝나자 그 순간 모든 시험은 끝나다는 듯 진동민옹의 어깨에서 힘이 빠지고 눈꼬리가 내려오며 얼굴 표정이 봄날처럼 부드러워졌다.

"그렇군요.. 수빈군 아니 수빈화백은 지금 나이가 어떻게 됩니까?"

"수빈화백이라뇨. 그냥 수빈군으로 불러주시죠. 올해 22입니다."

"22이라.. 이제 막 약관이 지난 나이에 이런 대가의 경지에 오르다니.. 대단합니다. 오늘 수빈화백이 그린 그림을 감상할 수 있어서 아주 영광입니다. 앞으로도 이런 훌륭한 그림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진동민옹이 더없이 좋은 평가로 말을 끝맺자 MC가 잽싸게 질문을 던졌다.

"이야. 수빈씨가 직접 그렸다는 그림이 정말 뛰어난 수준인가 봅니다. 막눈인 제 눈에도 아주 훌륭한 그림인 걸로 보입니다. 그럼 이제 그림 옆에 적혀있는 시를 좀 해석해주시죠."

"그러죠. 시가 아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지금 보시면.."

그때 핸드폰을 보고 있던 유실장이 호들갑을 떨며 수빈에게 소리쳤다.

"수빈아. 수빈아. 지금 뉴스가 새로 올라왔어. 잘 됐다. 이거면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킬 수 있겠는데.."

유실장의 말에 뉴스를 급히 찾아본 수빈이 의혹 어린 말투로 되물었다.

"이거 유실장님이 결정하신 거예요?"

"뭔 소리야. 난 너랑 계속 같이 있었는데.. 이거 네가 결정한 거 아냐?"

"전 아닌데요."

"그럼 도대체 이런 뉴스가 왜 나온 거지?"

그 순간 유실장과 수빈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한편 그 시각 강성희는 자신의 사업장에서 새로 올라온 뉴스를 보며 미친년처럼 웃어젖히고 있었다.

"오호호. 이거지. 바로 이거야. 이제 수빈씨를 비난하던 쓰레기 같은 인간들은 다 버로우 타겠지. 오호호호."

한참을 웃던 강성희는 갑자기 웃음을 뚝 그치며 중얼거렸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지. 지금 필요한 건 무엇? 스피드~"

핸드폰을 들고 컴퓨터 앞으로 급하게 뛰어가는 강성희를 보며 뒤에서 직원들이 수군댔다.

- 갈수록 상태가 심해지는데.

- 내가 그랬잖아. 금방 다시 좋아질 거라고.

- 조울증은 약을 먹어야 되지 않나?

- 냅둬. 월급이 밀리는 것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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