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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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실장은 급하게 사무실 전화를 끊고 허둥지둥 대며 핸드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마음이 급해진 수빈도 뉴스를 찾아보기 위해 핸드폰에 대고 말했다.
"성철이형. 이따 다시 전화할게요. 일단 끊어봐요."
[그래. 알았다. 다시 전화 줘라.]
"네. 알겠어요."
- [속보] 천재 아이돌 수빈. 추석 명절을 맞아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2천만원 쾌척.
뉴스 제목 중 하나를 순식간에 찾아 읽은 유실장이 핸드폰을 계속 들여다보며 수빈에게 물었다.
"수빈아. 너 성금으로 2천만원 기부한 게 사실이니? 뉴스에는 그렇다고 나오는데."
핸드폰을 끊고 뉴스를 찾아보기 위해 포탈에 접속을 하고 있던 수빈이 대답했다.
"그런 적 없어요. 누가 저 몰래 제 통장에서 돈을 빼가서 기부를 했으면 또 모를까.. 아무래도 뉴스가 오보인 거 같은데요. 그리고 설혹 제가 2천만원을 기부했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 금액으로 이렇게 속보 형식으로 뉴스를 탄다는 건 말이 안 되는데.."
포탈에 접속해 뉴스를 읽은 수빈은 다시 말했다.
"지금까지 나온 뉴스로는 제가 2천만원을 기부했다는 거 말고는 별다른 내용이 없네요."
그때 유실장이 약간의 우려와 걱정이 섞인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흠. 너에 관련된 뉴스를 한꺼번에 다 풀지 않고 미리 정해둔 순서대로 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누군가가 넷상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위해 작업을 하는 거 같아. 아무래도 이건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된 뉴스야. 혹시 뭐 짐작되는 게 있니?"
"전혀 감이 안 잡히는데요."
그때 유실장이 새로 올라온 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 수빈에게 물었다.
"수빈아. 너 도대체 예능 프로에 나가서 뭔 짓을 한 거니?"
"네? 예능 프로요?"
"[진품명품]이라는 예능 프로 말이야."
"그 프로면 전주에 녹화를 했었는데.. 그날 출제된 4문제 중에 3개는 틀렸고 마지막 하나 겨우 맞춘 걸로 기억하는데요. 제가 아무리 머리가 똑똑하다고 해도 처음 보는 골동품 가격을 어떻게 딱딱 알아맞히겠어요? 그리고 그날 펄펄 날아다녀서 4문제 중에 3개를 맞춘 패널 분도 2분 정도 계셨고.. 전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요."
그때 또 다른 뉴스를 읽고 있던 유실장이 수빈에게 다시 물었다.
"수빈아! 너 그 프로에 그림 그려서 들고나갔지?"
"그림요? 성철이형이 그 프로는 녹화 마지막 부분에 연예인들이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들고 나와서 소개하는 시간이 따로 있다고 해서 하나 그려서 갔죠."
유실장이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이제야 이해가 되네. [명품진품] 녹화가 끝난 다음에 제작진이 너에게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물어봤겠지. 들고 나온 작품을 좋은 곳에 쓸려고 하는데 혹시 제작진에게 그냥 좀 줄 수 있겠냐고. 제작진이 부탁을 하니까 넌 아무 생각 없이 흔쾌히 건네줬을 테고.. 맞지?"
"..네. 그랬죠."
"올 한해 [명품진품]에서 연예인들이 들고 나왔던 작품들을 모아놨다가 비밀리에 화랑 주인이나 예술상들을 불러 모아서 경매로 팔았다는데.. 추석 명절을 맞아 불우이웃 성금으로 기탁을 하려고 제작진에서 기획을 한 모양이야.. 작품을 준 연예인 이름으로 기부 하는 방식으로 말이지. 거기에서 네가 그린 작품이 아주 고가로 팔렸나 보다."
"그런 거면.. 방송국에서 갑질 하는 거 아니에요? 일종의 강매로 볼 수도 있을 거 같은데요."
"얘는.. 그 사람들이 연예인도 아닌데 자신들이 피해를 보면서까지 방송국에 잘 보여야 될 일이 뭐가 있겠니. 장사하는 사람들이 손해 보고 샀겠어? 작품 수준을 보고 적당히 되팔 수 있을만한 가격으로 샀겠지. 다른 연예인들이 들고 나온 작품들은 삼백만원에서 팔십만원 사이의 금액으로 팔렸다고 하잖아. 네 작품만 지금 특출나게 비싼 금액으로 팔린 거라고.."
잠시 후 어느 정도 사태 파악이 끝난 두 사람은 느긋하게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유실장이 약간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수빈이가 정말로 천재긴 천잰가 보다. 그림 하나가 경매에서 2천만원에 팔렸다니.. 아마도 이걸 기획한 제작진도 경매 현장에서 놀라 자빠졌을거다. 설마 그렇게까지 비싸게 팔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겠지. 방송전까지 비밀을 지키려고 제작진에서 무지 노력했겠는데.. 수빈이 넌 연예인 그만두고 화가로 전업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겠다."
"에잉. 그 정도는 아니죠. 제 그림을 사신 분 인터뷰에도 나와 있잖아요. [이 작품을 그린 사람이 천재로 소문난 유명 연예인이라는 점과 세상에 공개된 그의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 그리고 그 돈이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전액 기탁될 거라는 점을 고려해서 측정한 가격이다]라고.. "
"얘가.. 그전에 한말은 왜 쏙 빼니? [작품의 수준이 아주 뛰어나 소장가치가 충분해서 판매 목적으로만 구매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 말은 그림을 다시 안 팔고 본인이 계속 소장할 가능성도 있다는 거잖아. 아무리 연예인 프리미엄이 붙는다고 해도 예술상이 저 정도로 말할 정도면 기본 작품 가격만으로도 몇 백 정도는 족히 나가겠다. 수빈이는 하루에 그림 하나씩만 그려도 금방 부자 되겠는데.."
"무슨.. 말도 안돼요. 저거 하나 그리는데 꼬박 4일 걸렸어요. 밤잠 설쳐가며 그려서 겨우 [명품진품] 녹화 일정에 맞춘 거라고요. 그리고 작품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가격은 점점 더 떨어질걸요."
"암튼.. 네가 그린 그림은 이번 주에 공개된다고 하고 경매 장면은 다음 주에 방송된다고 하니까 찾아서 꼭 봐야겠다. 그쪽 제작진들이 나름 머리를 잘 썼네. 불우이웃 돕기라.. 기획의도도 아주 좋아. 지금 시각이 10시 55분이니까.."
"5분 뒤면 본방이죠. 일요일 오전 11시부터 시작하니까요."
"[명품진품] 시청률이 이번 주랑 다음 주는 제법 오르겠는걸."
그때 갑자기 수빈이 긴 한숨을 쉬었다.
"후우.. 아니 이런 일이 있으면 출연자에게 미리 알려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사람을 이렇게 놀라게 만들다니.."
"나쁜 쪽의 일이면 방송 나가기 전에 출연자에게 슬쩍 통보를 해줬겠지. 그래야 회사에서 미리 대처를 할 수 있을 테니까. 안 그랬다간 서로 원수 되지.. 하지만 지금 같은 일은 그런 게 아니잖니. 그래서 깜짝 쇼를 한 거겠지. 미리 흘리면 김이 다 샐 테니까.. 이런 뉴스라면 안 그래도 요즘 수빈이가 핫한데 홍보부에서 아주 신났겠는데.."
그때 방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수빈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찾아온 신인기획팀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신인기획팀을 이끌고 있는 정세호실장을 비롯하여 보컬트레이너 이진희, 댄스트레이너 박송희 그리고 콘셉트 디렉터 조정미 등 4명 모두 수빈이 연습생 시절 때부터 익히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다.
핑크 베리 데뷔와 관련된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사람들의 질문이 수빈에게 쏟아졌다. 수빈은 손을 들어 사람들을 진정시킨 후 입을 열었다.
"한 분씩 돌아가면서 궁금한 게 있으시면 질문을 해주시죠. 제가 정신이 없네요. 먼저 정실장님?"
수빈의 말에 긴 머리에 깔끔한 콤비 차림을 한 30대 중반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래. 일단 수빈이가 아니지.. 이제는 연습생도 아니고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어엿한 인기스타인데 제대로 불러드려야겠네. 수빈씨."
"실장님. 수빈씨라뇨. 제가 나이 어린 연습생 시절부터 봐왔던 분인데 듣기가 부담스럽습니다."
"아니죠. 이게 맞는 겁니다. 이 바닥에서는 특히 더 그렇죠. 수빈씨가 요즘 잘 돼서 너무 축하드리고.. 다른 사람들을 대신해서 대표로 제가 몇 가지만 물어보겠습니다."
"후우. 하여간 정실장님의 그런 칼 같은 성격은 아직도 여전하시네요..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물어보시죠."
"맨 처음으로 물어볼게 있습니다. 왜 핑크 베리입니까? 지금 YK에 파일럿으로 꾸려진 연습생 그룹만 해도 4개나 됩니다. 그들 4개 그룹 중에는 저희들 자체적 평가로는 핑크 베리보다 히트 가능성이 더 많다고 여겨지는 그룹도 있습니다. 그리고 비록 거기에 속하지는 못했어도 재능 있는 연습생들도 몇십 명씩 있습니다. 그중에서 굳이 왜 핑크 베리입니까? 단순히 그냥 수빈씨랑 친해서? 그러기에는 수빈씨가 쏟아붓는 시간이나 노력들이 잘 이해가 안 됩니다."
정실장의 정중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질문에 수빈이 자세를 바로잡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사실 몇 가지 이유가 있긴 합니다. 물론 제가 핑크 베리 애들하고 친하기는 하죠. 하지만 친하다는 이유로 제가 곡을 주면서까지 데뷔를 도와준다는 건 어폐가 있습니다. 제가 핑크 베리 애들을 도와줘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제가 마이클 조던을 발견했다는 겁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이자 결정적 계기가 된 거죠. 시간상으로 볼 때 제일 처음으로 발견한 겁니다."
수빈은 손바닥을 두드리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다가 얼마 전에 상처 입은 카나리아를 발견했습니다. 예전 같았음 저도 모르고 지나갔을 건데.. 며칠 전부터 제가 귀가 좀 예민해지면서 운 좋게 발견을 하게 된 거죠. 그게 두 번째 이유입니다. 세 번째 이유로는 멤버들 6명 전원이 제가 구상하고 있는 안무를 소화할만한 재능이 있다는 겁니다. 네 번째는.. 이건 지금 말씀드리기에는 좀 그렇네요. 저도 아직 확신이 없어서.. 그 친구들을 곁에서 좀 더 지켜보면서 확인을 해봐야 되는 사항이라서요. 대충 이 정도로 설명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수빈의 긴 설명이 끝나자 신인기획팀 사람들은 황당한 얼굴로 서로서로 얼굴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사람들의 반응을 확인한 후 수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제가 말한 게 알아듣기가 좀 어렵죠? 뭐랄까.. 제 나름대로는 지금 세상에서 통용될만한 방식으로 풀어서 표현을 한다고 한 건데도 그러네요."
그때 갑자기 유실장의 핸드폰이 시끄럽게 울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유실장이 발신자를 확인한 후 밝은 표정을 지은 뒤 좌중을 향해서 말했다.
"홍보팀에서 연락 온 거야. 신경 쓰지 말고 계속 회의 진행해요."
유실장은 회의에 방해되지 않도록 아주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시작했다.
"어. 홍보팀. 나도 수빈이 뉴스 봤어. 아주 좋은 소재 같던데.."
수빈은 회의를 계속하라는 유실장의 말에 신인기획팀을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말은 좀 길어지겠지만 제가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다시 아주 쉽게 풀어서 설명을 드리자면.."
그 순간 유실장 특유의 찢어지는 목소리로 갑작스러운 고성이 터져 나왔다.
"뭐? 갑자기 무슨 소리야! 댓글 테러라니!"
수빈은 유실장의 큰 소리에 깜짝 놀라 급히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어 뉴스들을 확인해 보았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새된 신음성을 내뱉었다.
"으~음."
모든 뉴스의 댓글들이 수빈을 비난하는 욕설들로 뒤 덥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