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45화 (45/236)

# 45

16 - 1

새로운 KBC 수.목 드라마 [특별수사본부] 첫 회가 방영된 후로 벌써 4일이 흘렀다.

최근에 방영된 드라마 중에서 화제성이 뛰어나서인지 첫 회를 14.2프로라는 높은 시청률로 출발한 드라마는 다음날 방영된 2회에서는 시청률이 껑충 뛰어 무려 18.4프로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따라서 다음 주에 방영될 3, 4화에서는 시청률 20프로는 확실히 돌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드라마의 시청률이 초반부터 고공행진을 하자 조연으로 출연하고 있는 수빈의 배우로서의 위상도 덩달아 높아졌다.

악역이고 출연 시간은 짧지만 1화 첫 등장 신에서 압도적인 존재감과 천재성을 유감없이 선보였고, 2화 다른 조폭 조직과의 격투신에서 비호(飛虎) 같은 몸놀림으로 아무런 연장 없이 싸우는 맨손 격투를 멋들어지게 소화하였기에 드라마를 본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눈도장을 찍은 상태다.

특히 평상시 아이돌에 대해서 잘 모르고 관심이 없던 중장년층들에게 수빈의 인지도가 이전보다 월등히 올라갔다.

극중 역할인 권법 고수이자 조폭 두목이라는 설정으로 인해 경찰 쪽에서 부르는 [주먹이]라는 호칭이 시청자들에게 널리 퍼져서 BBG의 수빈이라고 하면 누군지 모르는 어르신들도 [특별수사본부] 조폭 두목 [주먹이]입니다라고 하면 열에 셋넷은 알 정도로 인지도가 수직 상승했다.

- 특수본, 첫방부터 시청률 고공 행진 중.

- 믿고 보는 대배우들의 활약, 특수본 순항 중

- 명품 주연과 명품 조연의 향연. 케미갑! 특수본!

- 아이돌에서 연기파 배우로 변신한 BBG의 수빈.

- 작곡가 겸 배우인 아이돌 출신 팔방미인 수빈.

- 천재 작곡가의 연기 변신. 그 정체를 파헤친다.

일요일 오전 BBG 전용연습실에서 수빈은 핸드폰으로 최근 올라온 뉴스들을 보면서 작게 중얼거렸다.

"파헤치기는 뭘 파헤쳐. 진정한 내 정체를 알면 세상이 다 뒤집어질걸."

계속해서 뉴스들을 살펴보던 수빈은 자신의 예민한 감각에 잡히는 현재의 상황이 맘에 들지 않아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약 먹은 쥐처럼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인상을 쓰고 있는 다른 멤버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것들아. 다들 얼굴 좀 펴라.. 누가 보면 어디 초상이라도 난 줄 알겠다."

수빈의 말에 경빈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수빈형. 이제 좋은 시절은 다 갔어요. 어후.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경빈의 말에 신곡 안무를 구상하느라 요 며칠 얼굴 보기가 힘들었던 성빈이 말을 받았다.

"맞아요. 이따가 마녀 얼굴 볼 생각을 하니 밥맛이 다 떨어졌어요. 근데 형은 오히려 천하태평이네요?"

성빈의 말에 수빈은 웃으며 대답했다.

"사고 안치고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면 마녀에게 잔소리 들을 일이 뭐 있겠냐. 그리고 여태껏 마녀에게 욕이란 욕은 내가 다 먹었는데 왜 너네들이 인상을 쓰고 있냐."

옆에서 음악을 듣고 있던 케빈이 대꾸했다.

"잔소리 많은 시어머니가 옆에 떡 하고 다시 나타나는데 누가 기분이 좋겠냐. 당장 밥 먹을 때 식단부터 꼬치꼬치 간섭할 건데.. 근데 수빈이 너. 어떻게 책임질 거야?"

"응? 갑자기 뭔 책임?"

"요 며칠 새 내 핸드폰이 불이 난다. 불이 나. 뜨거워서 만질 수가 없어.."

"이야. 케빈이가 한국말이 많이 늘었네. 이제 뻥도 칠 줄 알고.."

"농담이 아니라 진짜라니까. 평상시 알고 지내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름도 모르고 지나가다 인사 한번 한 게 다인 사람들까지 연락이 계속 오고 있어."

"왜?"

"왜긴 왜야.. 자기 노래에 피처링 좀 해달라고 연락 오는 거지.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그래? 나는 그다지 특별히 연락 오는데 가 없던데. 케빈이가 다른 가수들에게 인기가 많네. 부럽다."

수빈의 말에 케빈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얼굴을 구기며 대꾸했다.

"이 인간이.. 그거야 너한테 작곡 의뢰하려면 곡 나올 때까지 시간도 걸리고 작곡료도 제법 줘야 하니까 쉽게 연락하기가 힘들어서 그런 거고.. 내가 하는 피처링은 돈도 몇 푼 안 들고 자기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거 내가 가서 몇 줄 읽기만 하면 끝이니까 자꾸 연락이 오는 거잖아.. 너랑 나랑 입장이 같냐!"

"그렇구나. 근데 그게 왜 내 책임이냐? 피처링을 끝내주게 잘한 너의 뛰어난 재능이 원인인 게지.. 너무나도 잘난 너 자신을 원망하렴."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태연하게 내뱉고선 다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수빈을 보며 케빈의 얼굴이 붉어졌다.

화가 난 케빈이 고함을 치려고 하는 순간 연습실 문이 열리며 날카로운 하이톤의 목소리가 연습실 안으로 울려 퍼졌다.

"BBG! BBG 여기 있냐?"

수빈은 자신의 귀에 꽂히는 날카로운 소리를 듣자마자 누군지 바로 알아차렸다. 일전에 BBG 멤버들의 낚시에 성공해서 만선 일보직전 연습실로 들이닥쳐 산통을 다 깨버렸던 바로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오늘 오후에나 도착한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왔는걸. 남미로 공연 간 팀들보다 한발 먼저 귀국한 건가? 근데 발소리로 봐서 혼자가 아닌데.'

수빈이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30대 후반의 나이에 150cm 정도의 아담한 키와 통통한 몸매를 지닌 여성이 선두로 당당하게 걸어오고 있었고 그 뒤를 쫓아 다른 여러 명의 젊은 여자들이 무리 지어 들어오는 게 보였다.

'선두는 유실장이고.. 가수 1팀 전속 메이크업 아티스트랑 코디들이 다 같이 왔네.'

마녀의 습격에 깜짝 놀란 BBG 멤버들은 급하게 자리에서 우르르 일어나서 오랜만에 상봉한 가수 1팀 유실장 일행과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잠시 후 수빈은 가수 1팀 유정옥 실장의 방에서 유실장과 독대를 하고 있었다. 유실장이 평상시랑 다른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수빈아. 향옥이가 실수한 일은 내가 다시 한번 사과 하마."

"아닙니다. 아까 연습실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전 최팀장님께 나쁜 감정 없습니다. 과거에 제 눈깔이 썩은 동태 눈깔이었던 건 제가 일부러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를 하고 다녔던 건데 굳이 사과까지 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이야기는 그만 넘어가시죠."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건 그렇다 치고.. 수빈이가 이렇게 뛰어난 천재라는 걸 유럽 공연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내가 바로 눈치를 챘어야 되는 건데. 그날 널 만나보고 갔었는데도 몰라봤으니.. 하아. 아무튼 이 모든 건 나의 불찰이야."

유실장이 탄식을 터뜨리며 하는 말에 수빈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제가 제법 연기를 잘 했죠?"

"그래. 여태껏 어쩜 그렇게 깜쪽같이 나를 속였니? 내가 너 사고 친 거 수습하고 다니느라 고생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그게 다 연기였다니.. 수빈아. 이제 앞으로 그런 일은 두 번 다시는 없는 거지?"

"그럼요. 그리고 예전에 제가 철없이 저질렀던 일들로 실장님이 고생하신 건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럼 됐어. 난 그거면 충분해. 과거는 그만 묻어두고.. 지금부터는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계획을 세워야겠지. 먼저 지금 수빈이 네가 작업하고 있는 게 네 가지지?"

"그렇죠. 음악 쪽으로는 BBG 신곡 작업을 위주로 핑크 베리 애들에게 줄 곡 작업을 따로 하고 있는 중입니다. 연기 쪽으로는 [특별수사본부] 드라마랑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영화가 있죠."

"시간은 어때? 일정이 너무 타이트해서 모자라거나 하지는 않아?"

"특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음악 쪽이야 아직 발표일까지 날짜가 충분하고 연기 쪽이야 어차피 두 작품 다 제가 조연인데다 영화는 2주 뒤에 촬영을 들어가기 때문에 아직 그렇게 바쁘지는 않습니다."

"잘 됐네. 앞으로의 스케줄은 내가 직접 특별히 관리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일단 먼저 음악 쪽부터 의논해 보자. BBG 신곡 진행 상황은 어떠니?"

"지금 거의 완성 단계에 와 있습니다. 제목도 이미 정했고 몇 군데만 다시 손보면 조만간 최종적으로 녹음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안무도 거의 다 완성되어 간다고 들었습니다."

"그럼 그 곡도 [달과 나의 이야기]처럼 네가 직접 프로듀싱을 할 거니?"

"그래야겠죠."

한치의 주저함도 망설임도 없는 수빈의 대답에 유실장이 한숨을 쉬었다.

"후.. 수빈이는 똑똑하니까 내가 지금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 충분히 짐작하겠지?"

유실장의 말에 수빈이 피식 웃으며 바로 답했다.

"회사 A&R 팀과의 수익 배분에 따른 갈등을 걱정하는 거겠죠."

"역시나.. 그래. 네 말이 맞아. 이번에 네가 프로듀싱 한 [달과 나의 이야기]가 대박을 쳤잖아. 음원 사이트 1, 2위를 아직도 원곡 음원과 실황 음원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차트를 휩쓸고 있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대박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A&R 팀 지분이 단 1%도 없다는 게 문제야. 작곡도 네가 하고 프로듀싱까지 직접 네가 다 하는 바람에 A&R 팀에서는 단돈 십 원도 못 가져가는 상황이라고.."

유실장의 걱정 어린 말에 수빈은 머리를 빠르게 굴리며 생각을 정리하였다.

'유실장을 적으로 돌리면 회사에서 일을 하기가 너무 힘들어져. 평상시에 잔소리가 많기는 하지만 성격 하나는 똑 부러지고 BBG에 대한 애정도 많은 분이니 미우나 고우나 끝까지 함께 가야겠지..'

수빈은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리고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실장님. BBG가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같이 동고동락하신 분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저 나름대로의 해결책이 따로 있긴 합니다. 하지만 당분간은 A&R 팀과 협력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실장님이 지금 걱정해야 될 문제는 그쪽 팀 수익이 아닙니다. 조만간 불가피하게 BBG와 A&R 팀 간에 충돌이 발생할 겁니다. 실장님께서는 그때 과연 누구의 손을 들어줄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셔야 할 겁니다."

수빈의 아무런 숨김이 없는 직설적인 대답에 유실장이 깊은 한숨을 토했다.

"하~아.. 일단 이 문제는 차후에 다시 의논하기로 하자. 핑크 베리에게 주기로 한 곡 작업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

"곡 작업 자체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신인기획팀에서 과연 제 곡을 받아서 걔네들을 정말로 데뷔시킬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까지는 제 소관이 아니니까요."

"그럼 신인기획팀을 불러서 같이 의논을 하는 게 제일 확실하겠지? 나도 그쪽 팀 입장을 정확하게 모르니까.."

유실장은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낸 뒤 신인기획팀과 통화를 하였다. 짧게 통화를 끝낸 유실장은 전화기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수빈에게 말했다.

"그쪽 팀에서 준비하고 올라오는데 30분 정도 걸린다네. 그동안 연기쪽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자."

"그러시죠."

유실장이 막 입을 열려던 순간 탁자 위에 올려진 유실장의 핸드폰과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사무실 전화가 동시에 시끄럽게 울어댔다. 유실장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진동으로 해놓은 수빈의 핸드폰도 맹렬하게 떨렸다. 백성철 매니저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수빈아. 나 성철형인데.. 지금 당장 뉴스 좀 확인해봐라. 지금 난리 났다!]

"네? 무슨 일 있어요?"

그때 옆에서 흥분한 유실장의 째지는듯한 하이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라고? 그게 정말이니? 수빈이가 불우이웃 돕기 성금으로 2천만원이나 기부 했다는 뉴스가 올라왔어?"

귓속으로 날카롭게 파고드는 유실장의 말에 수빈은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릴뻔했다.

'아니 이게 무슨 말 같지도 않은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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