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44화 (44/236)

# 44

15 - 3

MC의 소개 멘트와 함께 하이유를 가운데 두고 양옆으로 수빈과 케빈이 각자의 손에 길쭉한 무언가를 들고서 걸어 나왔다.

수빈과 케빈은 깊은 밤 깜깜한 하늘을 상징하는 듯 검은색 슈트를 입었고 안에는 검은색 셔츠를 받쳐 입었다. 그리고 두 사람의 손에는 자신의 악기를 연주하기 위한 활과 드럼 스틱이 각각 들려져 있었다.

하이유는 밤하늘에 높이 뜬 달처럼 환한 순백색 원피스에 하얀색 양말과 로퍼를 신고 손에는 어떠한 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무대 가운데 앞쪽으로 걸어 나온 세 사람은 서로서로 손을 잡고 관객석을 향하여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를 올렸다. 관객석에 인사를 하고 난 뒤 세 사람은 미리 세팅되어 있는 각자의 의자에 앉기 위해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핸드 마이크가 의자 위에 얌전히 올려져 있는 하이유 자리를 기점으로, 1미터 정도 떨어진 오른쪽 케빈의 의자 앞에는 14인치 작은북이 세팅되어 있었고, 1미터 정도 떨어진 왼쪽 수빈의 의자 앞에는 해금이 놓여 있었다. 각각의 자리에는 리허설 때처럼 스탠딩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었고 악기에는 핀 마이크가 달려 있었다.

하이유를 비롯한 세 사람이 자리에 착석하자 박형석 음향감독의 낮은 목소리가 무선마이크를 통해 전달됐다.

- MR 준비해.

수빈은 두 사람을 차례차례 쳐다보았다. 수빈과 눈을 맞춘 케빈과 하이유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준비 상태를 확인한 수빈의 고개가 크게 끄덕거렸다.

- MR 스타트!

무대와 관객석으로 쓸쓸한 현악기 소리와 들릴 듯 말 듯한 일정한 리듬의 드럼 소리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늦여름 깊은 밤 왠지 가슴을 적시는듯한 전주소리에 사람들이 조금씩 집중하기 시작하였다.

- 카운트 7, 8, 9, 10 MR 낮추고.. 작은북 마이크 하이!

둥~둥~ 하는 낮은 드럼 소리에 동 도롱~ 동 도롱~ 하는 케빈이 작은북을 두드리는 소리가 관객들에게 겹쳐서 들리기 시작했다. 가슴을 조금씩 뛰게 만드는 소리에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다.

- 카운트 20, 21, 22 다시 MR 낮추고.. 해금 마이크 하이!

사람들이 전주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서글픈 해금 소리가 사람들의 귀에 꽂혔다. 끼이잉~끼이이잉~ 하는 마치 슬피 울고 있는듯한 해금 소리가 전주에 섞이기 시작한 것이다.

- 다시 MR 올리고.. 1분까지는 지금 상태 그대로 가는 거야.

사람들이 음악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때 마침내 하이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물기를 머금은 촉촉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감정을 가볍게 살짝 톡톡 건드리는 듯 별다른 힘을 주지 않고 차분하게 불렀다.

늦은 밤 조심스레 문을 나섰어요.

사람 없는 벌판을 나 홀로 돌아다녔죠.

내일이 걱정 없는 철부지 아이처럼~

미래가 걱정 없는 철없는 소녀처럼~

이리로~ 저리로~ 뛰어다녔죠.

문득~ 고개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어요.

높은 곳에 계신 달님이 나를 보고 웃고 있네요.

손을 들어 반갑게 인사하니 달님이 말을 건네왔죠.

........

마치 아주 예전 어렸을 적 자신이 쓴 일기장을 읽는듯한 하이유의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오자 관객석에서 뛰어노는 몇몇 어린아이들을 빼고 모든 관객들이 하이유의 노래에 귀를 쫑긋 기울이며 듣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들의 가슴이 감성으로 조금씩 젖어가고 있을 때 박형석 음향감독이 무선마이크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 음향팀. 좋아. 다들 잘하고 있어. 집중하고.. 카운트 1분 7, 8, MR 낮추고 10, 11 수빈이 마이크 하이로 올려!

1절이 끝나갈 무렵 해금의 소리가 점차 작아지면서 아아아~ 하는 담백한 느낌의 수빈의 허밍 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3, 4, 작은북 마이크 하이로!

허밍 소리에 섞여서 들리던 케빈의 작은북소리가 조금씩 커져가고 빨라지고 있었다.

둥둥 두구둥둥 둥둥 두구둥둥 하며 급박하게 울려 퍼지던 작은북소리가 몇 초간 계속되더니 불현듯 뚝 끊어졌다. MR 소리도 집중하지 않으면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아졌다. 공연장에는 아아~하는 수빈의 허밍 소리만이 부드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순간 하이유와 케빈의 내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상처받은 과거와 견디기 벅찬 현재까지의 내레이션이 차례로 진행되는 동안 많은 관객들이 마치 뭐에 홀린 듯 양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자세로 내레이션을 듣고 있었다.

어느덧 내레이션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 MR 5초에 걸쳐 조금씩 올린다. 셋, 둘, 하나 천천히 올려.

MR이 조금씩 커지면서 흘러나오고 허밍 소리는 사라졌다. 그리고 다시 우는듯한 해금 소리가 구슬프게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 케빈의 굵직한 목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고 하이유의 목소리가 하이톤으로 치닫기 시작했다.

[You can do Everything, You can be Everything.]

- 당신은 하고 싶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당신은 되고 싶은 어떠한 사람도 될 수 있어요.

[We cheer you up, We love you forever.]

- 우리는 항상 당신을 응원하고 있고, 우리는 영원히 당신을 사랑합니다.

Never give up!!

-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마침내 절정의 내레이션이 끝난 뒤 케빈은 다시 작은북을 힘차게 두들겼고 하이유는 물기 가득한 눈을 한채 떨리는 목소리로 2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수빈은 케빈과 하이유와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이며 해금을 더욱더 거세게 타기 시작했다. 거기에 맞춰 케빈은 더욱 힘차게 작은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 음향팀! 마지막이다. 조금만 더 집중하자. 카운터 2분 18초 19, 20 올 마이크 다 하이로! 22, 23 MR 맥스로.. 좋아. 가자!

휘몰아치는 해금과 미친 듯이 두드리는 작은북소리에 MR이 기세를 올리며 합세하였다. 하이유가 감정이 고조되었는지 원곡보다 훨씬 힘차게 또 높게 마지막 부분을 부르기 시작했다.

[..난 오늘도 희망을 품고서 살아가요~오~오]

하이유가 마침내 노래를 끝마치자 마지막을 힘차게 연주하던 수빈이 케빈과 눈을 마주친 후 고개를 끄덕였다.

- 다섯, 줄이고 셋, 더 줄이고 하나 다운!

수빈과 케빈의 연주와 MR이 하나처럼 동시에 뚝 끊어졌다. 마침내 [달과 나의 이야기] 초연 무대가 끝이 났다.

- OK. 음향팀. 다들 수고했어. 좋은 무대였다..

수빈과 케빈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하이유에게 다가갔다.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것처럼 바람소리만 들릴 뿐 관객석과 무대 쪽에서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고요한 적막 속에서 금방이라도 울듯이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하이유가 두 사람을 끌어안으며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세 사람이 손을 잡고 무대 앞 관객석 쪽으로 걸어가서 허리를 숙이며 인사를 올릴 때 그제야 정신을 차린듯 관객석에서 박수소리가 여기저기서 조금씩 들리더니 잠시 후 박수소리가 우레처럼 터져 나왔다.

관객들에게 인사를 올린 후 퇴장하기 위해 걸어나가는 일행의 뒤에서 관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힘차게 외치는 소리가 울음 섞인 박수소리와 함께 들렸다.

- 우와! 짝짝짝. 대박!

- 앵콜! 앵콜! 다시 나와라!

- 흑흑.. 앵코~오~올.

MC의 감사 멘트와 다음 팀 안내 멘트를 들으며 대기실로 돌아간 일행은 한 번의 공연에 진이 다 빠진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의자에 앉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울기 시작한 하이유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감정을 추슬렀는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수빈씨. 케빈씨. 오늘 너무 고마워요. 지금 제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요. 이런 공연을 하게 해줘서 정말 정말 감사해요.. 제가 쏠 테니까 우리 다 같이 회식하러 가요."

하이유의 말에 케빈이 수빈을 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수빈이 너 회식 갈 거냐? 시간이 될 거 같아?"

수빈이 의자에 기대었던 몸을 일으키며 케빈에게 되물었다.

"지금 몇 시나 됐냐?"

"8시 반 정도 됐을 거야."

하이유가 수빈에게 급하게 물었다.

"왜요? 수빈씨는 이거 다음에 또 다른 스케줄이 있으세요?"

"아뇨. 다른 스케줄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조금 있다가 KBC에서 제가 출연한 드라마 첫방이 있어서요. 제가 본방을 보면서 모니터를 좀 해야 될 거 같은데.."

"아. 그럼 TV가 있는 방으로 회식장소를 잡으면 되겠네요. 다 같이 식사하면서 같이 모니터링해요. 저번에도 수빈씨가 사는 바람에 제가 못 샀는데 오늘은 제가 꼭 사고 싶어요."

그렇게 일행이 회식에 대해서 의논하고 있을 때 TV로 공연을 본 시청자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하이유의 무대를 잔뜩 기대하고 본 시청자들도, 아무 생각 없이 SBC 8시 뉴스를 보려다 공연을 보게 된 시청자들도,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공연을 보게 된 시청자들도 가슴 가득한 감동을 한번 느꼈던 거로만 만족하지 않고 직접 행동에 나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SNS에 [달과 나의 이야기] 공연에 대한 감상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그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SBC 방송국에 직접 전화를 걸고 방송국 홈페이지에 접속해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감동을 안겨준 [달과 나의 이야기] 공연을 다시 보길 원했고 보다 많은 사람들은 [달과 나의 이야기] 실황 음원을 직접 다운 받아서 소장하고 싶어 했다.

그러한 일들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동안 차를 타고 회식장소에 도착한 일행은 드라마 모니터링을 위해 TV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회식을 하기 위해 방안에 있던 가수 2팀 조실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잠시 후 전화를 받기 위해 방 밖으로 나갔던 조실장이 흥분한 얼굴로 뛰어 들어와 하이유 옆으로 다가가서 말했다.

"금방 SBC에서 연락이 왔는데.. 지금 사람들이 조금 전 공연한 [달과 나의 이야기] 음원을 올려달라고 방송국 쪽으로 요청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있단다. 완전 대박이야. 방송국에서 직접 전화해서 매달릴 정도면 우리 쪽에게 아주 좋은 조건으로 계약할 수 있어. 빨리 확답을 달라고 그러네."

조실장의 흥분한 말에 하이유가 차분한 말투로 대답했다.

"어머. 잘 됐네요. 근데 그걸 왜 저에게 말하세요?"

"응?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제가 [달과 나의 이야기]로 방송 출연이나 콘서트는 자유롭게 할 수 있지만 실황 음원 발매나 리메이크 관련 권리는 수빈씨에게 있잖아요. 자세히는 몰라도 작곡료 대신 저작인접권 중에 그건 수빈씨가 가지는 걸로 계약이 되어 있을건데요."

하이유의 말에 뭔가를 깨달은듯 굳은 얼굴로 뻣뻣하게 서있는 조실장을 보고 수빈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조실장님. 저도 먹고는 살아야죠. 작곡이랑 프로듀싱을 다 공짜로 해줬는데 그거라도 챙겨야 밥이라도 사 먹을거 아닙니까.."

그때 케빈이 끼어들며 말했다.

"수빈아. 드라마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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