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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43화 (43/236)

#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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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케빈을 붙잡으러 휴게실로 급하게 걸어갔다. 통유리창을 통해서 휴게실 한쪽 구석에서 케빈과 경빈이 한 손에 음료수 캔을 들고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유리문을 밀고 들어간 뒤 가까이 다가갔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케빈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가 가까이 다가간 수빈과 눈이 딱 마주쳤다.

대화 도중 갑자기 케빈의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자 뭔가 수상한 낌새를 눈치챈 경빈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앉아!"

낮고 단호한 목소리로 수빈이 말하자 경빈이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경빈의 옆자리에 앉은 수빈은 케빈을 쳐다보며 말했다.

"내가 왜 온 건지 알지?"

수빈의 질문에 케빈이 고개를 들어 휴게실 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가을이 다 돼서 며칠 뒤면 추석인데 아직도 모기가 많이 돌아다니네."

"올 여름 계속 가물다가 얼마 전 비가 오면서 물웅덩이가 늘어나 모기 개체 수가 3배로 증가해서 그런 거다. 케빈. 딴청 피우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왜 안 나간다는 거야?"

"..그냥."

"그냥이라.. 피처링을 했으면 첫 방송 정도는 같이 나가주는 게 매너 아니냐? 당연히 네가 매번 나갈 수는 없겠지. 하지만 내일 방송은 나가줘야지. [달과 나의 이야기]가 처음으로 TV 전파를 타고 나가는 건데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잖아."

그때 옆에서 엉덩이를 들썩이던 경빈이 말했다.

"형님들. 두 분이서 중요한 이야기를 하시는 거 같은데 제가 자리를 비켜드.."

"닥치고 앉아 있어."

"넵."

"왜 안 나가려는지 이유를 솔직히 말해봐. 그래야 내가 도와주든지 문제를 해결하든지 하지.."

잠시 고민을 하던 케빈이 입을 열었다.

"난 하이유 선배가 왜 방송에 안 나가겠다고 하는지 알 거 같아.. 자신이 없어서 그런 거야. 그날 녹음을 할 때는 선배가 감정적으로 업이 많이 되었고 노래에 푹 빠져서 녹음을 했지만.. 막상 방송에 나가서 그때처럼 똑같이 불러봐라고 하면 부를 자신이 없어서 그러는 거 일 거야. 솔직히 나도 마찬가지다. 그때 녹음할 때처럼 똑같이 할 자신이 없어.."

"흠. 정 힘들면 AR을 틀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럴 바에는 사람들에게 그냥 음원 다운로드 한걸 들으라고 하면 되지. 굳이 무리해서 무대에 설 필요가 없지.."

"후. 무슨 말인지 알겠다.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수빈의 말에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케빈이 재빠르게 대답했다.

"너도 같이 나가자!"

예상치 못했던 케빈의 대답에 수빈이 눈을 크게 뜨며 되물었다.

"엥? 나도 같이 나가자고? 나보고 거기 나가서 뭐 하라고? 난 노래도 안 불렀고 내레이션도 안 했는데?"

"그거야 난 모르지. 하지만 너도 같이 무대에 서면 좋을 거 같아. 하다못해 무대에서 춤을 추든지 아니면 지휘를 하든지.. 암튼 네가 같이 나가면 나도 나가는 걸로 맘을 바꿔보마. 그러면 아마 하이유 선배도 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어럽쇼. 이것..봐라?'

수빈은 케빈의 말에 묘한 위화감을 느껴 잠깐 생각에 잠겼다.

'케빈이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하게 된 거지? 그날 녹음한 뒤로 제법 성격이나 분위기가 활달해지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리고 내가 나가면 하이유 선배도 나갈 거라고 자신 있게 말을 한다는 건 자기들끼리 미리 입을 맞췄다는 건데.. 그렇다면..'

생각을 마친 수빈은 갑작스럽게 옆자리에 앉아있던 경빈의 어깨에 팔을 올리며 말했다.

"경빈아.."

수빈의 행동과 말에 경빈이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네. 형."

수빈은 소주천을 달성한 뒤 더욱 예민해진 감각으로 경빈의 몸을 관찰했다.

'살짝 놀라긴 하지만 심장 뛰는 소리가 별반 달라지지 않는군. 체온의 변화도 없고. 역시 예상대로 이놈은 아니라는 건데.. 경빈의 머리로는 이 정도 계략을 짜기엔 무리지. 그렇다면 남은 건..'

"로빈이 지금 어디 있냐?"

"로빈형요?"

"그래. 좀 전까지 아마 회사에 있었을 거 같은데.."

"아. 한 시간 전까지 있었어요. 무슨 촬영 있다고 지방으로 간다고 말하고 갔어요."

"지방?"

"네. 내일 저녁이나 돼야 돌아올 거라고 그랬어요. 아. 맞다. 형이 부탁하고 간 게 있었는데.."

"무슨 부탁?"

"형이 로빈형 찾으면 전해달라고 한 말이 있었어요."

"뭐라고?"

"아임 쏘리. 이렇게 말하면 형이 다 알 거라고 하던데요."

경빈의 말에 수빈은 큰 소리로 호탕하게 웃은 뒤 입가에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했군. 이번 건은 내가 로빈에게 완전히 당했어."

삼십분 정도 시간이 지난 후 수빈은 녹음실에서 케빈과 하이유와 함께 내일 공연에 대해서 의논을 하고 있었다.

"내일 우리가 설 무대가 일반적인 음악방송 같은 무대가 아니라서 편곡을 좀 해야 할거 같아요. 무대 특성에 따른 사운드 부분도 그렇고 무대공연을 보는 분들의 나이도 고려를 해야 되니까.."

수빈의 말에 하이유가 대답했다.

"그렇죠. 동계올림픽 개최를 기념해서 평창 야외 특설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거니까요. 오픈된 무대이고 아무래도 동네 어르신들도 많이 올 거고 아이들을 데리고 가족끼리 오시는 분들도 많을 거예요."

"그럼 어떻게 편곡을 할 거냐?"

케빈의 물음에 수빈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시각적인 부분과 청각적인 부분을 다 고려해서 관객들이 우리 무대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야지."

수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하이유가 냉큼 말했다.

"무대에 집중하도록 하는 시각적인 건 어떤 건가요? 제가 미니스커트라도 입어야 될까요? 그리고 청각적인 부분은 또 어떤 건가요? 원곡에 없는 3단 고음이라도 넣어서 할 건가요?"

"아니죠.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죠. 동네 어르신들도 많이 오는데 미니스커트는 오히려 욕먹을 수도 있어요. 3단 고음도 이번 노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고요."

수빈의 말에 케빈이 물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냐?"

"내가 세운 계획이 있는데 일단 한번 들어봐라. [달과 나의 이야기] 첫 도입부가..."

잠시 후 수빈의 말을 다 들은 하이유가 양손바닥을 부딪혀 쫙 소리를 내며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천재! 로빈씨 말대로 수빈씨만 무대에 합류시키면 어떻게든 알아서 잘 해결해줄 거라는 말이 딱 맞네요. 대단해요."

케빈이 말을 받았다.

"그러네요. 난 그런 식으로 무대를 꾸밀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로빈이 말을 듣길 잘했네.. 넌 진짜 프로듀서로 나가도 성공하겠다."

두 사람의 감탄 어린 말을 들으면서 수빈은 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로빈아. 조만간 두고 보자. 내가 얼마나 뒤끝이 긴지를 알려주마..'

다음날 점심 무렵 평창 특설무대에 도착한 일행은 공연 순서에 맞춰 리허설을 하며 사운드 및 동선을 체크하였다.

수빈은 자신이 작곡하고 프로듀싱을 한 첫 곡의 첫 라이브 공연이기에 무대와 관객석을 왔다 갔다 하면서 무선으로 끊임없이 음향 감독과 대화를 나누며 사운드를 체크하였다.

국내에서 무대 음향 감독 중 세 손가락 안에 반드시 꼽힌다는 흰머리가 희끗희끗 보이는 나이 지긋한 음향 감독의 적극적인 협조에 힘입어 만족스럽게 리허설을 끝낸 수빈은 음향 감독을 직접 찾아가 감사 인사를 한 후 대기실로 돌아갔다.

수빈이 박형석 음향 감독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대기실로 돌아가자 옆에 서있던 조경민 음향 조감독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박감독님. 보통 때랑 많이 다르시네요? 아이돌 애들이 사운드 가지고 뭐라 그러면 귓등으로도 안 들어시는 분이.. 수빈이 저놈이 말하는 건 왜 꼬박꼬박 다 들어주십니까?"

조감독의 말에 박감독이 피식 웃으면서 대꾸했다.

"왜? 내가 저놈만 특별대우를 해주는 거 같아서? 저놈이 맨 처음 말한 게 뭔지 기억나냐?"

"하울링이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 보통 아이돌 애들이 하는 말이라곤 자기 MR 잘 안 들린다고 인이어 소리 좀 올려달라고 하는 게 단데 저놈은 하울링이 어떻고 에코가 어떻고 그러더라고.. 우리가 이미 사전에 다 확인을 했었는데 말이지."

"저놈 말고도 그러는 애들이 간혹 있기는 하잖아요?"

"간혹 있기는 하지. 그럴 때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아? 아무것도 안 바꾸고서 바꾸는 척 이것저것 손댄 뒤 다시 확인해봐라고 말하지. 그러면 백이면 백 다들 아까보다 훨씬 좋아졌다고 대답하면서 만족해하지. 음향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겉멋만 들어서 깝죽거린다고.. 그런데.. 저놈은 달라."

"어떻게요?"

"아까 딴 놈들에게 하는 것처럼 바꾸는 척 액션만 취하고 다시 확인해봐라 그랬지. 그랬더니 이놈이 다시 듣자마자 아까랑 똑같다고 다시 조절을 해달라고 요청을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어라? 이놈 봐라? 생각을 했지. 그런데.."

"그런데요?"

"저놈은 자기가 서는 무대뿐만 아니라 관객석까지 내려가서 사운드가 이상한 부분들을 칼같이 정확하게 집어내더라고. 그리고 나중에 AR 틀어줬을 때 하는 말이 더 점입가경이었지. 11초, 23초와 1분 12초에서는 AR 볼륨을 각각 5초, 4초, 30초 동안 한 단계 낮춰달래. 그리고 2분 23초부터 노래 끝날 때까지 볼륨을 오히려 한 단계 올려달라고 말을 하더란 말이지."

"그런 말을 했었어요?"

"그래. 저놈은 웬만한 음향 엔지니어들 보다 귀가 더 예민한 놈이야. 자기가 부를 노래에 대한 이해도 확실하고.. 초 단위까지 머릿속으로 정확하게 계산하고 있어. 대단한 놈이야.."

성격이 무뚝뚝해서 친해지기는 어렵지만 사운드에 관해서는 장인의 경지에 올라가 있다고 평가받는 박형석 음향 감독의 아낌없는 칭찬에 조감독이 놀라 감탄성을 내뱉었다.

"이야.."

"실력이 뛰어나면 거기에 맞게 제대로 대접을 해줘야지. 그게 프로의 세계 아니겠어? 저놈은 가수 그만두고 이쪽 바닥으로 진출해도 성공할 놈이야.. 오늘 저놈이 연출하는 무대가 기대돼서 내가 가슴이 다 설렌다. 오래간만에 음악을 제대로 할 줄 아는 놈이 하나 나왔어.."

드디어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 기념 SBC 특설 무대가 시작되었다.

시간이 흘러 가수들의 라이브 무대가 하나씩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TV를 보고 있는 시청자들의 텐션도 조금씩 올라가는 중이었다.

아무런 예고나 선전 없이 발표한지 이틀만에 사람들의 입소문만으로 국내의 모든 음원 사이트에서 1위를 석권하고 있는 [달과 나의 이야기] 초연 무대가 올려진다는 소식이 SNS와 뉴스를 통해 이미 파다하게 퍼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대기실에서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던 수빈은 긴장하고 있는 일행들을 보며 빙긋이 웃으면서 말했다.

"집중하는 건 좋은데 긴장을 너무 심하게 하는 건 안 좋아요. 명색이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는 노래를 부르는 건데 우리들이 벌벌 떨고 있으면 어떡해요. 다들 릴랙스~ 릴랙스~."

"후. 말이 쉽지.. 손 떨리는 게 멈추지를 않는다."

"네. 수빈씨. 그런데 첫 데뷔 무대보다 더 떨리네요. 하아."

한편 수빈 일행의 무대가 가까이 다가오자 음향팀이 분주해지기 시작하였다. 박형석 음향 감독의 거친 목소리가 무선을 통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음향팀! 다들 집중해! 무대 끝나고 나서 아이돌 나부랭이한테 오늘 사운드가 개판이었습니다 이딴 소리 들으면 다들 나한테 작살 날 줄 알아. MC가 멘트 하는 동안 아까 리허설 때 한 것처럼 세팅 칼같이 하란 말이야. 내말 알아 들었어?"

- 네. 알겠습니다.

- 집중하고 있습니다.

- 네. 감독님. 준비 완료입니다.

- 마이크 쪽은 걱정 마세요.

조서현은 편의점 알바 도중 손님이 없는 틈을 타 핸드폰으로 SBC 특설 무대를 지켜보고 있었다. 드디어 다음 차례가 자신이 기다리던 하이유의 [달과 나의 이야기] 무대라는 MC 멘트가 나왔다.

설레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지켜보고 있던 조서현은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응? 저게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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