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41화 (41/236)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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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미친 듯이 화를 내며 소리치는 케빈에게서 단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계속 부딪혔다.

한참을 자신과 충돌하다 결국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이기지 못해 울음을 터뜨린 케빈을 수빈은 양팔로 강하게 부둥켜 안았다.

품에서 울고 있는 케빈을 꼭 끌어안고 수빈은 등을 토닥이며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허밍을 하듯 읊조렸다.

"그래 그래. 울어라. 케빈아. 넌 아무 잘못이 없는 거야.. 머나먼 영국까지 입양을 간 것도 동양인으로 태어나 피부 색깔이 다른 것도 학교에 적응 못해 성적이 나쁜 것도.. 그 모든 게 너의 선택도 아니고 너의 잘못도 아니야. not your fault.."

수빈은 케빈의 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물기 가득한 목소리로 계속 읊조렸다.

"술만 마시면 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의 무서운 얼굴도.. 갈라섬에 힘들어하며 슬피 울던 어머니의 떨리는 등도.. 술에 취해 한겨울 런던에서 동사한 아버지의 시퍼런 시신도.. 이제는 모두 모두 흘려보내야지.. 마음 아파하지 마~ 힘들어하지 마~ 괴로워하지 마~ 너에겐 멀리 영국에서 너를 사랑해주시는 어머니와 이곳 한국에서 너를 아껴주는 친구들이 곁에 있잖아. 나의 사랑하는 친구 케빈.."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에 놀라 녹음 부스 밖으로 나왔던 하이유가 눈물이 고여 그렁그렁 한 눈으로 그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수빈은 마이크 스위치를 올리고 녹음 부스 안에 있는 케빈에게 말했다.

"케빈. 이제 다 울은 거지?"

[닥쳐! 망할 자식.]

"이야. 내성적이고 울보인 우리 케빈이가 이제 화도 낼 줄 아는구나."

[...죽여버린다.]

"알았어. 녹음 끝나고 내가 소!고!기!랑 술을 사마. 용서해줘라. OK?"

[..한우냐?]

"당연히 한우지. 특등급으로 사주마. 그러니 그만 용서하고 녹음이나 잘 좀 부탁해."

[후우. 알았어. 열심히 해보마.]

그때 하이유가 말했다.

[녹음 끝나면 제가 한턱 낼게요. 다 같이 회식해요.]

"하이유씨가 같이 가는 건 좋지만 원래 이럴 땐 친구인 제가 쏘는 겁니다. 자. 다들 준비해주시고.. 케빈."

[왜?]

"첫 구절은 너의 내레이션을 듣게 될 수많은 힘들고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다는 마음으로, 두 번째는 사랑을 담아서, 세 번째는 용기를 담아서 하는 거야. 테크닉이나 성량 같은건 중요한 게 아니야. 너의 진심을 담아서 해줘라. 부탁해."

[말은 쉽지.. 최대한 노력해보마.]

어느덧 시간이 흘러 차분하고 따스한 분위기 속에 내레이션과 하이유의 노래까지 무사히 녹음을 끝마쳤다.

회식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녹음실 밖 복도로 나온 수빈과 케빈은 서로서로 어깨를 걸고 투닥투닥 거리며 걸어갔다. 그리고 그 뒤를 하이유가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따라가고 있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사흘이 흘렀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서 수빈은 차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마빈이 오늘 [정글의 규칙] 촬영을 마치고 귀국하기 때문이다.

인파를 피하기 위해 공항 주차장에서 마빈을 기다리며 수빈은 생각에 잠겼다.

'오지에서 촬영하는 것도 힘들 텐데 거기에 개인사까지 겹쳐서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웠겠지. 마음이 꺾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잠시 후 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배낭을 어깨에 울러매고 까맣게 탄 얼굴에 밝은 미소를 띤 마빈이 차 안으로 들어서며 씩씩한 목소리로 외쳤다.

"헤이. 친구. 날 마중 온 거야? 고마워."

"그래. 고생했다. 이럴 땐 리더가 마중을 와야지. 어디 다친데 없냐?"

"그래. 다친데 없이 몸 건강하게 잘 다녀왔어."

회사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수빈은 마빈을 조심스럽게 관찰하였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상태가 좋은 걸.. 아프리카에서 득도라도 한 건가.'

마빈이 수빈을 보며 피식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뭘 그런 눈으로 쳐다보냐. 난 괜찮아."

"흠. 오지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 거냐? 가기 전보다 상태가 더 좋아 보이는걸."

"처음 이틀 정도는 많이 힘들었어. 몸과 마음 모두.. 그러다가 문득 떠나기 전 네가 나에게 해준 말을 떠올렸지. 그러니 자연스럽게 맘이 편해지더라고.. 그 뒤부터는 고민 같은 건 다 잊어버리고 촬영에 집중해서 재밌게 보내다가 왔다."

"내가 너에게 해준 말 덕분이라고?"

"그래."

"어떤 말? 내가 너에게 해준 말이 한두 개냐."

마빈이 고마움이 듬뿍 담긴 눈으로 수빈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인천공항에서 떠나기 직전 네가 내 귀에 대고 이렇게 말했었지. [복수는 걱정하지 마라. 친구. 너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내가 대신 복수해준다. 이건 친구로서의 약속이자 나의 맹세다.]"

"뭐 그런 말을 하긴 했었지."

"다른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면 그냥 농담이려니 하고 웃어넘겼을 건데. 이상하게 네가 말한 건 뇌리에 박혀서 잊히지가 않더라고. 자꾸자꾸 생각이 나.."

마빈은 말을 하다 갑자기 한 손으로 수빈의 어깨를 힘 있게 붙잡았다.

"앞으로의 미래도 불안하고 삶과 죽음도 예측할 수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확실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지. 내가 누군가에게 억울하게 당하면 나의 복수를 해줄 친구는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졌어."

수빈은 마빈의 격앙된 말에 어깨를 붙잡은 마빈의 손을 툭툭 두들기며 대답했다.

"걱정 마라. 하늘이 무너져도 복수는 내가 해줄 테니.. 친구라면 적어도 네가 귀신이 되어서 구천을 떠돌지 않게는 해줘야지."

수빈의 대답에 마빈이 빙긋 웃으며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세상에 무서운 게 없더라고. 그래서 맘이 편해졌다. 다 너 덕분이야. 고맙다. 친구."

"뭘 그런 걸 가지고.."

"너 드라마 찍고 있는 건 잘 돼가고 있는 거야? 시청률은 좀 나올 거 같아?"

"모레 첫방이다. 시청률이야 조연인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나야 그냥 열심히 하는 거밖에는 없지.."

"잘 나올 거다. 걱정하지 마라. 시청률이 저조하면 나나 다른 BBG 멤버들이 돌아가면서 카메오로 출연해서 발가벗고 춤이라도 출테니까.."

마빈의 격려에 수빈이 입을 벌려서 크게 웃은 뒤 말했다.

"입장이 바뀌었네. 네가 날 다 걱정해주고. 암튼 고맙다."

잠시 후 YK 사옥에 도착한 수빈과 마빈은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는 연습실로 내려갔다. 마빈을 기다리고 있던 멤버들이 마빈이 등장하자 반갑게 맞이했다.

- 형! 오셨어요.

- 이야. 얼굴이 탄 게 건강해 보인다.

- 마빈형. 어디 다친데 없어요?

- 잘 다녀온 거냐?

오래간만에 BBG 멤버 전원이 모인 자리에서 수빈은 완성된 신곡을 들려주기 위해 핸드폰을 꺼냈다.

"다른 사람들은 작업하면서 여러 번 들어봤을 거고 마빈은 지금 처음으로 듣겠네. 작곡은 나랑 로빈이 했고 작사는 케빈이, 랩은 경빈이가 했다. 어제저녁에 1차로 완성된 거야. 어차피 최종 녹음은 메인 보컬인 마빈이가 다시 불러야 되니까 그걸 감안해서 들어줘라."

잠시 후 수빈의 핸드폰에서 둥둥 당~ 둥둥 당~ 둥둥 두두당~ 드럼 소리를 시작으로 빠른 비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멤버 전원이 진지한 얼굴로 노래를 들었다.

노래가 끝나고 마빈이 맨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좋은데. 정해진 제목은 있나?"

수빈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Dispatch]"

"응? 연예 전문 온라인 신문 이름 같은데.. 급보? 발송?"

"이중적인 의미로 지은 거야. 명사형으로 네가 말한 거처럼 빠르게 뭔가를 보낸다는 의미도 있지만 동사형 의미도 있지."

"발송하다? 아니면 신속히 처리하다?"

"옛날식으로.."

"..죽여버린다."

"역시 영국 출신 애들이 많으니까 일일이 설명 안 해도 되니 편하네. 이번 곡명의 의미는 [우리를 아껴주는 팬들에게 빠르게 우리의 노래를 보낸다]라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를 괴롭히고 방해하는 나쁜 놈들은 다 죽여버리겠어]라는 각오가 담긴 이중적인 의미가 있지. 물론 대외적으로는 전자의 의미로만 설명해야 하겠지."

"난 맘에 든다. 좋은 곡명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곡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예전하고 조금 바뀐 거 같은데? 도입부랑 중간까지만 해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은 많이 다른 걸."

"그렇지. 예전에 발표한 곡들이 가볍고 달달한 분위기의 댄스곡이었다면 지금은 좀 더 무겁지. 팬들이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중간까지는 예전과 비슷하게 나가고 마지막 하이라이트 부분만 웅장하고 비장한 분위기로 만들었어."

"그래서 가사도 그런 분위기로 한 거야?"

"우리도 이제는 조금은 진지한 음악을 한번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음악을 할 건지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종의 출사표라고 볼 수 있지."

"OK. 난 이번 곡에 아무런 이견이 없다. 맘에 들어. 우리가 데뷔한지 3년이 다 되어 가는데 매번 솜사탕 같은 노래만 부를 수는 없다고 생각해."

"그럼 됐네. 지금부터 가사를 입에 붙여봐. 조금 있다 다 같이 녹음실로 가서 단체로 녹음을 다시 하자."

그때 갑자기 연습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들어왔다. BBG 멤버 전원이 쳐다보자 어색한지 한 손으로 벗겨진 이마를 문지르며 다가왔다.

남자를 보고 수빈이 약간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가수 2팀 조실장님? 여긴 어쩐 일로?"

"수빈 아니 수빈씨. 제발 나 좀 살려줘라."

"네? 살려달라니요? 조실장님. 밑도 끝도 없이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아. 하이유가 지금 고집을 부리고 있어서 미치겠다."

"하이유 선배가 고집을 부린다고요? 무슨 고집을?"

"오늘 저녁에 음원을 발표하겠다고 지금 난리야."

"무슨.. 녹음 끝난지 이제 3일 지났는데 음원을 발표한다고요? 말이 안 되는데.. 방송국 심의는 어떡하고요? 아무리 빨라도 기본이 일주일은 잡아야 되는데.."

"내 말이.. 내가 지금 돌아버리겠어."

"음원을 올리려면 심의가 끝나야 가능하잖아요? 노래 자체야 심의에 걸릴 내용이 하나도 없으니 문제가 없겠지만 시간상 아직 올릴 수가 없을 건데.."

"KBC나 MBS는 심의 결과가 아직 나오지도 않았어. 하이유 정도 되는 인기가수가 음원을 발표하려면 미리 홍보부서에서 기사도 내고 선전도 하면서 날짜를 조율해야 되는 건데.. 지금 완전 막무가내야. 뮤비도 안 찍었고 의상 콘셉트도 정해진 게 없는데 발표부터 하겠다네. 수빈씨가 어떻게 좀 해줘봐.."

"아니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수빈씨가 작곡가 겸 프로듀서잖아. 제발 좀 가서 말려주라.."

"근데 지금 이게 말이 안 되는 게.. 하이유 선배가 올리고 싶다고 해도 심의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음원 사이트에서 안 받아주지 않나요?"

"..그게 지금 SBC랑 엠네트 쪽에서는 심의 결과가 나왔어."

"아! 맞아. 그쪽들은 심의가 빠르죠. 하루 만에 결과가 나오기도 하니까.. 그러면 오늘 올릴 수가 있겠네요. 한 군데서만 결과가 나와도 일단 등록이 가능하니.."

"이런 경우는 여태껏 한 번도 없었어. 지금 다른 대형 방송국에서는 아직 심의 결과가 안 나와서 노래를 틀지도 못하는데 음원을 발표하다니.. 말도 안 되지. 수빈씨. 제발 나 좀 살려줘라."

"전 힘이 없다니까요.."

그날 밤 12시 아무런 예고나 선전 없이 전격적으로 하이유의 [달과 나의 이야기] 음원이 처음으로 음원 사이트에 올라갔다.

그리고 폭풍이 태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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