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38화 (38/236)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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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급히 돌려 호텔로 다시 돌아간 수빈은 빠른 발걸음으로 제작발표회 때 사용했었던 대기실로 걸어갔다.

대기실에 도착해서 빠르게 살펴보니 성강호와 김해수가 풀 메이크업인 상태로 의자에 앉아서 각자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수빈이 도착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성강호가 수빈을 발견하고 손을 높이 들며 큰 소리로 말했다.

"왔냐. 수빈아. 다시 오라고 해서 미안하다."

"아닙니다. 선배 아니 형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전화받자마자 바로 차를 돌려서 최대한 빨리 온다고 온 건데.. 저쪽에서 제가 꼭 있어야 된다고 하던가요?"

"그래. 지금 인터넷에서 너와 관련된 뉴스로 난리가 나니까 담당 피디가 바로 말을 바꿨어. 내가 너도 같이 하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며칠 전부터 계속 주장했었는데..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내 말을 쌩까더니 이제 와서 말을 바꾸네. 사람이 말이야. 그러게 처음부터 내 말을.."

성강호가 불만에 가득 찬 목소리로 떠들 때 옆에 있던 김해수가 말을 자르며 끼어들었다.

"시끄러워요! 이제라도 수빈 동생이랑 같이 하면 좋잖아요. 지금 예정보다 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빨리해야 되니까 다들 서둘러요."

수빈은 성강호, 김해수와 같이 한 호텔 방으로 들어섰다. 방안에는 인터뷰를 찍기 위한 간단한 촬영 세트가 미리 설치되어 있었다.

일행이 방에 도착하니 인터뷰어로 보이는 한 여성이 가까이 다가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담당 피디님이 급하게 연락 와서 수빈씨도 같이 꼭 모셔서 인터뷰를 하라고 해서요. 다들 많이 바쁘실 텐데 정말 죄송해요."

일행의 대표로 성강호가 웃음 띤 얼굴로 자기가 언제 불만을 가졌었냐는 듯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에이. 아닙니다. 수빈이까지 같이 인터뷰를 하면 드라마 홍보를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오히려 더 잘 됐죠. 다들 시간 충분하니깐 맘 편하게 잡수시고 느긋하게 인터뷰하시면 됩니다."

"어머 어머. 역시 천만 배우다운 여유가.. 대단하세요. 아무쪼록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최대한 빨리 진행을 하도록 노력할게요."

잠시 후 일행들이 각자 마이크를 차고 자리에 앉아서 음향 상태를 체크한 뒤 조도(照度)까지 꼼꼼하게 확인을 마친 후 인터뷰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시청자 여러분. VJ 김성림입니다. 오늘은 다음 주부터 새롭게 방영되는 KBC 수.목 드라마 [특별수사본부]에 출연하는 배우 세 분을 특별히 모셨습니다."

- 성강호 : 와아.. 우후..

- 김해수 : 박수.. 짝짝짝..

- 수빈 : 사랑해요~ 연예계 중계!

수빈이 드라마 홍보를 위해 KBC 방송국의 [연예계 중계]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 시각.

강남 청담동 명품거리 뒤쪽에 위치한 한 2층 건물에서 젊은 여성이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입이 귀에 걸려서 내려올 줄을 몰랐다.

건물 1, 2층 전부를 통으로 쓰고 있는 네일숍의 사장인 강성희는 올해 나이 28세로 수빈이 데뷔할 때부터 입덕한 진성 덕후로서 현재 수빈의 팬클럽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이다.

수빈을 칭찬하는 뉴스가 넷상에서 물밀듯이 올라오자 강성희는 핸드폰을 붙들고 터져 나오는 웃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뉴스를 어느 정도 읽은 강성희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빠른 손놀림으로 기사들을 링크해서 자신의 SNS에 마구마구 올렸다.

- 천재 아이돌, 드라마에 도전하다.

- 천재. 드라마에 첫 출연.

- 대배우와 같이 열연하는 천재, BBG 리더 수빈.

- 자신의 재능을 숨겨왔던 수빈, 배우로 데뷔.

- 수빈, 천재적인 재능으로 배우에 도전하다.

- 천재 수빈, 배우로 성공 가능?

한참을 정신없이 기사를 올리던 강성희는 문득 자신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절친인 박수정을 떠올렸다.

'박수정 네 이년.. 수빈씨가 머리도 멍청하고 성격도 더러운데 그런 애를 왜 좋아하냐고 항상 날 갈궜었지. 어디서 말도 안 되는 찌라시를 보고 와서는.. 오늘 한번 죽어봐라.'

강성희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차분한 손놀림으로 박수정의 전화번호를 누른 뒤 기다렸다. 잠시 신호가 가더니 상대방이 전화를 받았다.

[야. 한창 바쁜데 왜 전화했어?]

"어머. 친구야. 많이 바쁜가 봐? 내가 급하게 할 말이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 어떡하지?"

[..하아. 나도 뉴스 봤어. 이 년이 어디서 호박씨를 깔려고.]

"어머. 그랬니? 그럼 내가 전화를 끊어야 되는 거니?"

[휴우. 알았어. 친구야. 이 몸이 지은 죄가 있으니 어쩌겠냐. 나 진짜 바쁘니깐 딱 10분 준다. 어디 한번 원 없이 떠들어봐라.]

...

...중략

...

"그래서 너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 고쳐주려고 내가 직접 친절하게 전화를 했잖니."

[..10분 지났다. 그래. 내가 잘못했다. 친구야. 내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사과하마. 그리고 앞으로 그런 이야기는 두 번다시 안하께. 이제 됐지? 나 진짜 바빠..]

"알았어. 바쁘다니깐 할 수 없지. 내일 다시 통화하자."

[이 인간이.. 내일 또 자랑하려고? 됐어 이년아. 당분간 전화하지 마!]

"어머. 웃기는 년일세. 친구끼리는 자주 연락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말한 게 누군데? 내일 봐. 딸깍."

강성희는 십 년 묵은 숙변이 내려간 듯 상쾌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던 강성희는 사람들이 수빈을 다시 보게 만든 이번 드라마 촬영을 위해서 자신이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컴퓨터 앞에 다가간 강성희는 BBG 팬카페에 들어가서 채팅방을 만든 후 팬카페 회장과 부회장을 각각 초대했다.

잠시 후 BBG 팬카페 회장인 [황금올리브]와 부회장인 [반반무만이]가 채팅방에 입장해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세명이서 한참을 진지하게 대화를 나눈 뒤 결론이 내려졌다.

- 치맥은진리 : 그럼 드라마 촬영장에 조공을 보내는 걸로 결정하죠. 다들 반대 없으시죠?

- 황금올리브 : 수빈씨 팬클럽 회장님이 직접 주도하신다고 하니 저희도 적극적으로 협조할게요. 다른 BBG 멤버들의 팬분들께서도 이번 건에는 반대가 없으실 걸로 생각되네요.

-  반반무만이 : 수빈씨가 잘 되는 게 BBG 전체로 봐서도 좋으니까요. 저도 이견이 없어요. 그럼 메뉴는 뭘로 하실 건가요?

- 치맥은진리 : 치도락을 보내야 하겠죠. 우리 BBG 팬들의 전통이니까 계속 지켜나가야죠.

- 황금올리브 : 그럼 제가 수빈씨 드라마 촬영 스케줄을 알아볼게요. YK에서 BBG를 담당하는 유실장님이 지금 외국에 나가있으니 이런 면에서는 좀 불편하네요.

- 반반무만이 : BBG가 휴식기라 어쩔 수 없죠. 지금 남미 쪽 콘서트를 도와주고 계시니까 한국으로 돌아오려면 2주는 더 있어야 될 거예요.

- 치맥은진리 : 그럼 회장님이 촬영 스케줄을 알려주시면 제가 알아서 BBG 전체의 이름으로 조공을 보내겠습니다.

- 황금올리브 : 네. 그런 다음 영수증을 올려주시면 저희가 일부 부담할게요.

- 치맥은진리 :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또 봬요.

채팅을 마치고 팬카페를 나온 강성희는 드라마 촬영장으로 보낼 치도락 종류와 가격을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서핑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뒤에서 네일숍 직원들이 한숨을 쉬며 지켜보고 있었다.

[연예계 중계]와의 인터뷰가 시작된 지 한 시간쯤 지난 후 수빈은 지친 얼굴로 백성호가 기다리고 있는 차에 올라탔다.

"수빈이 인터뷰 잘하고 왔냐. 음? 너 얼굴이 왜 그러냐?"

"하아. 몇 분 나가지도 않을 인터뷰를 얼마나 오래 하는지.. 거기다 인터뷰하면서 별의별 걸 다 시키네요. 제가 꼭 동물원 원숭이가 된 기분이라서요."

"뭘 시켰길래 그러냐?"

"암산에 스도쿠에 말도 안 되는 이상한 퀴즈에.. 드라마 관련해서는 거의 안 물어보고 짜증 나는 것들만 잔뜩 시켜서요. 실제로 방송에는 나가지도 않을 거 같은데.. 인터뷰가 끝날 때쯤에는 성대모사 안 시켜서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던데요."

"저런.. 수빈이 네가 이해 좀 해라. 인터뷰하는 입장에서는 너를 재미 위주로 할 수밖에 없었겠지. 네가 연기 관련해서는 쌓아 놓은 업적이 전혀 없잖아? 물어볼래도 물어볼 건더기가 있어야지. 이번 드라마가 대박 나면 다음부터는 달라질 거다. 이번만 좀 참아.."

"후우. 그래야겠죠.."

"그래 그래. 그래도 배우 자격으로 [연예계 중계]에 출연했다는 게 어디냐? 평생 연기로 먹고살면서 거기에 얼굴 한번 못 내밀어본 배우가 영화판에 허다하다. 나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나갈 수 있는 프로가 아냐."

"알았어요. 형. [명품진품] 출연하는 건 어떻게 됐어요?"

"날짜 잡았다. 4일 뒤 촬영이야. 촬영이 끝나면 다음 주 일요일 방송될 거다."

"흠. 그래요? 드라마는 다음 주 수요일에 첫방인데 날짜가 좀 어중간하네요. 뭐 그렇게라도 일단 하나 출연을 해야겠죠? 부탁한 피디 체면도 있고 하니.."

"그래. 어차피 네가 주연 배우도 아닌데 그 정도 성의를 보여주면 충분할 거야."

"형. 그럼 회사로 가기 전에 대형 문구점에 들렸다 가죠."

"응? 대형 문구점은 왜?"

"거기 나가려면 도자기나 그림이라도 하나 들고 가는 게 좋다면서요? 도자기는 제가 만들 줄도 모르고 복잡하니까 패스하고.. 그림을 그리려면 도구가 있어야죠. 간단하게 난(蘭)이라도 하나 쳐서 들고 가야죠."

"너 동양화도 그릴 줄 알아? 이야. 우리 수빈이. 정말 대단하다. 넌 뭐가 그렇게 잘하는 게 많냐? 천재라서 그런 건가."

매니저의 말에 수빈은 쓴웃음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명색이 전생의 제 호(號)가 구절양장(九絶亮將)입니다. 시(詩), 서(書), 화(畵), 금(琴), 진(陳), 기(棋), 의(醫), 지(智), 무(武) 아홉 가지가 뛰어나 구절이오. 특히 그중에서도 지략이 뛰어나 계략을 짤 때는 마치 예전의 제갈량(諸葛亮)과 같고, 무공이 뛰어나 싸울 땐 전장에 나간 장수(將帥)와 같이 무섭다고 해서 세가연합회 회주가 직접 붙여준 호란 걸 형이 알리가 없겠죠.'

그렇게 수빈은 차를 타고 문구점으로 향했다.

어느덧 [특별수사본부] 드라마 제작발표회가 있은지 사흘이 흘렀다.

수빈은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운기토납법을 수행하고 있었다. 세맥을 이미 끝내고 활락 단계에 접어든 수빈은 몸속의 기경팔맥에 정신을 집중한 채 호흡을 점차 길게 늘여나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평상시랑 다르게 기경팔맥이 간헐적으로 진동을 하기 시작했다. 온몸으로 진동을 느낀 수빈은 흥분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오늘인가. 이 현상은 단전을 생성하기 위한 경맥의 떨림! 마침내 소주천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온 건가.'

수빈은 순간적으로 흥분한 마음을 다시 차분히 가라앉히며 운기토납법을 계속 시행하였다. 잠시 후 그동안 쌓아왔던 진기로 가득한 몸이 조금씩 부풀어 오르기 시작하였고 압력에 못이긴 혈맥이 금방이라도 찢어질 거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고비다. 여기서 한발 삐끗하면 주화입마로 이번 인생도 종 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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