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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36화 (36/236)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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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대기실에서 방금 막 도착한 성강호 선배와 김해수 선배에게 인사를 드렸다. 드라마 주연이다 보니 수빈과 달리 청담동 고급 미용실에서 이미 풀 메이크업을 하고 온 상태였다.

잠시 후 대기실에서 두 명의 주연배우와 같이 앉아 있던 수빈은 날카로운 감각과 찰색을 통해 김해수 선배가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꾹 참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수빈은 의자에서 일어나 슬며시 김해수 선배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김해수 선배님."

"응? 수빈씨. 왜 불렀어?"

자신에게 특별한 용건이 없다는 듯 핸드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태연하게 대답하는 김해수를 보며 수빈은 머리를 굴렸다.

'호오. 명배우라 역시 연기가 쩌시는군.. 할 말은 있지만 하기가 힘든 상황이라면 일단 멍석부터 깔아드려야겠지.'

"제가 드라마 첫 출연이다 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게 많습니다. 이런 부족한 저에게 혹시 조언이나 충고를 하실게 있으면 좀 해주시겠습니까? 선배님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수빈은 자신의 정중한 말에도 불구하고 김해수가 갈등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멍석을 깔아드렸는데도 망설이네. 아무래도 쐐기를 박아드려야 입을 열겠는걸.'

"부담 없이 해주시길 바랍니다. 저에게 충고하신 말씀은 어디 가서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이래 봬도 입이 무겁고 약속은 지키는 남자입니다. 선배님께서 저를 질책하셔도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수빈의 계속되는 정중한 요청에 결국 김해수가 입을 열었다.

"수빈씨. 나 SN 소속인 거 알지?"

"네. 알고 있습니다. SN이 국내 삼대 기획사 중에서도 원탑 아닙니까. 제가 소속되어 있는 YK보다 훨씬 더 좋은 기획사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이번에 수빈씨가 맡은 역할 있잖아. 그거 원래 하기로 한 남자 배우가 SN 소속이거든."

"아. 그랬나요? 전 지금 처음 들었습니다."

"다들 예민한 내용이라 쉬쉬했으니 못 들었겠지. SN에서 틀어막고 있기도 하고.. 암튼 그래서 조만간 누가 수빈씨한테 시비를 걸지도 몰라. 그 배우가 수빈씨에게 앙심을 품고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SN 내부에서 요 며칠 은밀하게 돌았어."

"그렇군요.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아마 별일 없을 거야. 감히 공중파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서 수작을 부리기는 힘들 테니..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누가 시비를 걸어오더라도 수빈씨가 좀 참아. 대응을 잘못하면 괜히 수빈씨가 구설수에 오를 수도 있어."

"네. 선배님이 해주신 충고. 가슴 깊이 새기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자리에 돌아온 수빈은 핸드폰으로 천천히 손바닥을 두들기며 생각을 정리했다.

'KBC 드라마 제작 발표회에 정면으로 시비를 걸진 않겠지. 그건 누가 봐도 자살행위니까.. 그런 일은 SN 회장도 감히 못할 거고. 결국 나 개인에게 사적인 일을 언급하며 시비를 걸겠지. 뭘 걸고넘어지려나.. 시비를 걸더라도 그냥 참고만 있으라? 그런 건 내 성격상 불가능하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고..'

생각을 마친 수빈은 피식거리며 아무도 못 듣게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기가 약을 하다 걸려서 잘린 걸 가지고 나에게 앙심을 품는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데.. 하여간 이 바닥에는 별의별 이상한 놈들이 넘쳐나는군. 연예계란 곳이 마교의 한국 분타(分舵)도 아닐 텐데 말이야.."

이윽고 제작발표회 시간이 다가왔다.

오늘 제작발표회의 특별 MC를 맡은 전한무의 소개를 받으며 대기실에 있던 모든 배우들과 제작 피디, 작가 등등이 준비된 단상에 올라가 인사를 하였다.

수많은 기자들의 플래시 속에서 간단한 프레젠테이션이 끝난 후 전한무의 유쾌하고 매끄러운 진행 속에서 기자회견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질문이 성강호. 김해수 같은 주연 배우들과 강민철 제작 피디와 정수희 극작가에게 쏟아졌고 조연인 수빈에게는 질문이 들어오지 않았다.

수빈은 자리에 앉아서 만면에 미소를 띤 채 날카로운 감각으로 제작발표회장에서 자신에게 적의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제작진이나 스태프 쪽에는 없고.. 기자들 중에서 세 명 정도가 나를 적대시하고 있군. 나름 미리 계획을 짜고 온 거 같은데. 약해서 잘린 놈한테 다들 뒷돈이라도 받아 처먹은 건가..'

기자회견이 거의 마무리되어갈 무렵 수빈이 찍었던 기자 중에 한 명이 손을 들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수빈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이제 슬슬 시작하는 건가.'

"네. 기자님. 질문하시죠."

전한무의 말에 기자가 일어서서 질문을 던졌다.

"지금 BBG 수빈씨가 자리에 앉아 계신데요. 굳이 다른 훌륭한 조연들을 제쳐두고 연기 경력도 없고 히트작도 없는 수빈씨를 제작발표회에 부른 건 일종의 특혜 아닙니까? 수빈씨가 사전에 미리 자신을 제작발표회장에 불러달라고 제작진에 부탁을 한 건가요?"

명백한 악의를 저의에 깔고 하는 질문에 전한무가 살짝 얼굴이 굳어진 채로 수빈에게 공을 넘겼다.

"수빈씨. 질문에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불편하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수빈은 마이크를 옆자리에 앉아있는 성강호에게서 넘겨받은 후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처음으로 저에게 오는 질문인데 대답을 해드려야죠. 일단 질문해주신 기자님께 감사드립니다. 기자님이 아니었으면 제작발표회 와서 말 한마디 못하고 사진만 찍다가 돌아갈뻔했습니다."

수빈의 능청스러운 발언에 기자석 곳곳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건 제가 맡은 역할이 조연이고 악역이긴 하지만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스토리 진행에서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배역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출연자들 중에서 가장 중국어에 능통한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겠죠.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잠시 뜸을 들이자 다들 수빈의 입을 주목하였다. 그때 수빈이 여보라는 듯 오늘 지은 미소 중에 가장 멋지고 환한 미소를 기자들을 향해 지으며 말했다.

"제가 조연 중에서 가장 잘생겼기 때문입니다."

수빈의 재치 있는 답변이 끝나자 기자석에서 플래시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한무가 웃음 띤 얼굴로 말을 이어받았다.

"네. 수빈씨가 잘생긴 걸 대한민국에서 누가 모르겠습니까. 제가 수빈씨 정도만 생겼으면 벌써 장가를 갔을 거 같군요. 자. 다른 질문 또 있으십니까?"

수빈이 찍었던 기자 중 다른 한 명이 손을 들어 질문했다.

"수빈씨가 이번 드라마에 캐스팅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이후 벌써부터 연기력 논란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이 과연 그런 중요한 역할의 조연을 맡을만한 연기력이 된다고 보시는지요?"

수빈은 기자의 질문에 일초의 머뭇거림도 없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연기력 논란이란 건 배우의 연기가 시청자의 기대에 못 미치거나 또는 평균적인 수준에 미달했을 때 나오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제가 배우로서의 첫 작품입니다. 그 말은 논란이 있을만한 연기 자체를 아직 여러분들께 한 번도 보여드린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벌써부터 논란이 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군요. 음식을 드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맛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맛이 있는지 없는지 음식이 나올 때까지 일단 한번 기다려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수빈이 답변을 하고 마이크를 내려놓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성강호가 단상 아래에서 수빈의 발을 툭툭 치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잘하고 있어. 아주 좋아. 솨라~있네."

전한무가 마지막으로 질문 하나만 더 받겠다고 말하자 또 다른 기자가 손을 들어서 질문했다.

"요즘 수빈씨가 [문제적 인간] 출연 이후로 세간에 천재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다른 한편에서는 그 프로에서 수빈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조작이나 연출을 한 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의 질문이 끝나자 전한무가 딱딱한 얼굴로 말했다.

"제가 그 프로의 메인 MC입니다. 그 어떤 조작이나 연출이 없었다는 걸 제가 보장합니다. 기자님 질문이 좀 과한 거 같습니다."

수빈이 마이크를 다시 들며 입을 열었다.

"제가 천재라는 건 과장된 게 맞습니다. 하지만 [문제적 인간]이라는 프로에서 조작이나 특별한 연출이 있었다는 건 기자님이 잘못 알고 계신 거 같습니다. 지금 기자님께서  저에게 물어본다는 게 그 명확한 증거가 아닐까 합니다."

수빈의 말에 전한무가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기자분이 증거라는 게 무슨 말이죠?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문제적 인간]이라는 프로는 국내 굴지의 재벌 그룹이 운영하는 방송사에서 제작하고 있습니다. 일개 연예인에 불과한 제가 그런 방송을 맘대로 조작하거나 연출한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정말로 조작이 있었다면 제가 재벌 회장 아들이거나 못해도 최소한 친척 정도는 된다는 건데.. 그러면 기자님이 지금 이 자리에서 저에게 그런 질문을 맘 편하게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기자님이 명확한 증거라는 겁니다."

"아하. 그런 뜻이군요. 아무튼 어떠한 조작이나 연출은 없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수빈과 전한무의 말에도 불구하고 기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정말로 수빈씨가 천재라면 제가 내는 간단한 암산 문제를 이 자리에서 풀어보시죠. 많은 기자들이 보는 자리에서 증명하면 오해가 풀리지 않겠습니까?"

끈질긴 기자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수빈은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얼굴 가득 밝은 미소를 띠며 되물었다.

"기자님께서 저에게 직접 암산 문제를 내신다고요? 흠. 그럼 만약에 제가 정답을 맞히면 기자님께서 저희 드라마 관련 기사를 예쁘게 잘 써주시는 걸로 약속하시죠. 어떻습니까?"

수빈이 웃으며 던지는 질문에 기자가 자신 있게 대답했다.

"약속하죠. 만약에 수빈씨가 틀리면?"

"기자님께서 원하시는 데로 기사를 쓰셔도 제가 어떠한 이의 제기도 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그럼 기자님께서 문제를 직접 내주시죠."

수빈의 말에 기자가 미리 문제를 준비해 온 듯 핸드폰을 보며 문제를 출제했다.

"3,456X2,345+1,432-9,845는?"

기자가 문제를 다 읽자마자 수빈이 즉각적으로 대답했다.

"8,095,907"

전광석화처럼 빠른 수빈의 대답에 다들 질문한 기자의 입을 쳐다보았다. 어떤 기자는 계산기를 열심히 두들기고 있는 중이었다.

믿기지 않는듯 떨리는 목소리로 기자가 천천히 내뱉었다.

"....정답.. 입니다."

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제를 낸 기자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정중하게 인사를 올린 뒤 말했다.

"감사합니다. 기자님. 저희 드라마 앞으로도 좋은 기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수빈의 옆에서 박수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김해수 선배가 입가에 아름다운 미소를 머금고 감탄 어린 눈빛으로 수빈을 바라보며 조용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수빈이 김해수에게 감사의 표시로 고개를 숙이자 곧바로 제작진과 기자석에서도 박수소리가 울려 퍼지며 여기저기에서 감탄성이 터졌다.

- 정말 천잰데. 조작은 아닌 모양이네..

- 아직 어린 친구가 대단하네..

- 야마 하나는 정해졌네. [천재. 드라마에 첫 출연하다.]

- 이번 드라마 잘하면 대박 나겠는걸..

제작발표회를 끝마치고 수빈이 대기실로 돌아가자 난리가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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