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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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배우 1팀 박실장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빈군. 자네가 부탁한 걸 알아봤네."
"감사합니다. 제가 예측했던 것보다는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는데요?"
"후우. 그럴 이유가 있다네. 자네가 부탁한 걸 알아보다가 생각보다 일이 좀 복잡해졌어."
"일이 복잡해졌다고요?"
"그래. 맨 첨에는 내가 잘 아는 경찰 쪽 고위 간부한테 자네가 알려준 자동차 번호 조회를 부탁했었지. 조회 결과 그 자동차는 [대한 가드]라는 업체 소속으로 되어있다고 나왔어."
"대한 가드요?"
"일종의 용역업체라네. 다른 기업과 계약을 통해 주로 경호나 경비업무를 대행해주는 업체야. 전문적으로 경호 업무를 익힌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더라고. 처음에는 해결사 같은 그런 이상한 용역업체가 아닌가 의심했는데 조사해보니 그런 업체는 아니더라고.."
"그렇군요. 근데 그 정도 사실을 알아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일이 복잡해졌다는 게 이해가 잘 안되는데요."
"하아. 내가 그만 욕심을 부렸다네."
"설마.. 그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어디랑 계약이 되어 있는지를 조사하신 겁니까?"
"..그렇네. 이쪽을 충분히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쪽 계통에서 제법 날고 긴다는 친구한테 부탁을 했거든. 최대한 조심스럽게 알아봐 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말씀하시는거 보니 실장님 뜻대로 잘 안 풀렸나 봅니다."
"거꾸로 내가 당한 거 같아. 상대방 측에서 오히려 이쪽을 역추적 한 모양이더라고.."
"흠. 무리하셨군요. 상대방이 국내 굴지의 재벌이라는 걸 깜빡하신 모양입니다."
"그러게 말이야. 내가 과욕을 부렸지. 미안하네."
"뭐 괜찮습니다. 이미 엎질러진 물 아닙니까. 그리고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될 상대입니다. 오히려 잘 됐습니다.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그래서 그쪽에서 특별한 움직임 같은 건 없습니까?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는 이쪽으로 직접 접촉을 해왔을 거 같은데요."
"맞네. 좀 전에 나에게 직접 연락이 왔어,"
"실장님께 직접 연락을 한 거면.. 그럼 한호 그룹 이회장한테서 연락이 온 모양이죠?"
박실장이 놀랍다는 눈빛으로 수빈을 쳐다봤다.
"자네는.. 어찌 그리 잘아는가?"
"간단합니다. 마빈이 이회장의 손자가 아니라면 지금 마빈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말이 안 됩니다. 결국 마빈이 이회장 손자라는 건데.. 그럼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사태에서 가장 중요한 건 비밀 유지와 마빈의 안전 아니겠습니까. 이회장이 제정신이라면 자기 손자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중차대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맡길 리가 없겠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친손자 아닙니까.. 그래서 이회장이 실장님에게 뭐라고 하던가요?"
"처음에 전화통화를 하면서 본인이 한호 그룹 이회장이라고 밝혀서 내가 깜짝 놀랐었지. 그런 다음 속으로 내가 이일을 어떻게 알았는지 아니면 어디까지 아는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지 고민을 했었는데 말이야. 그런 건 아예 물어보지도 않더라고. 그냥 간단하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끊어버렸어."
"사전 조사를 통해 우리가 마빈 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거죠. 설마 재벌이 그 정도 능력도 없겠습니까. 그러니 자세한 사정 같은 건 굳이 안 물어봤겠죠. 지금 급한 건 그런 자질구레한 게 아니라는 걸 아는 거죠. 그래서요? 이회장이 뭐라 말하고 끊던가요?"
"세 가지를 말하더구먼. 첫째 남의 집안일에 함부로 끼어들지 말라는 거 하고, 둘째 자신이 직접 과거에 일어났던 일에 대해서 은밀히 조사 중이니까 어디 가서 입도 뻥끗하지 말라는 거 하고, 마지막으로 마빈의 안전은 자신이 책임지니깐 더 이상 우리 쪽에서 신경 쓰지 말라는 말만 하고 끊더구먼."
박실장의 말에 수빈이 입가에 비웃음을 띠며 말했다.
"웃기는 영감이로군요. 일이 이 지경까지 오게 된 게 누구 책임인데요.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양반이 그딴 식으로 말하다니.."
"앞으로 어떡해야 되겠나?"
"일단은 한발 물러서서 지켜봐야죠. 이회장이 책임을 지겠다니 믿고 맞길 수밖에요. 자기 손자 아닙니까. 하지만.."
"하지만?"
"걱정되는 게 좀 있긴 합니다. 이회장이 지금 과거사를 은밀히 조사하겠다고 나섰는데 이십몇 년 전 이회장이 한참 힘이 넘칠 때도 눈치 못 챘던 일을 지금 나이 먹고 힘 다 빠져서 과연 제대로 조사가 가능하겠냐는 점과 일전에 마빈을 관찰하던 작자가 지금 마빈을 경호하는 인간들보다 훨씬 고수라는 점이 걱정되긴 하네요."
"그럼 어쩌면 좋겠나?"
"지금으로선 별수 없죠. 더 이상 이쪽에서 개입하면 괜히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꼴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무튼 박실장님께서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아닐쎄. 괜히 나 때문에 일이 꼬인 거 같아서 자네 보기에 미안하군."
"아닙니다. 지금처럼 되는 게 오히려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마빈이 이회장 핏줄이란 게 전화 통화로 확실해졌잖습니까. 차라리 마빈에게는 이게 더 맘 편할 겁니다."
잠시 후 수빈은 제1 녹음실에서 마빈을 기다리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안녕하십니까. 박피디님. 저 BBG 수빈입니다."
[아. 수빈씨. 안 그래도 모레가 방송일이라 수빈씨 연락 기다리고 있었어요. 어떻게 됐습니까? 보내주기로 한 영상이 준비가 됐나요?]
"아닙니다. 영상도 준비가 안됐고 시간도 따로 안 빼주셔도 될 거 같습니다. 저희 쪽에서 자세히 알아보니깐 사실이 아닌 걸로 판명이 나서요. 죄송합니다. 피디님."
[아. 그렇군요. 뭐 어쩔 수 없죠. 뭔지 모르지만 재밌는 화젯거리가 있다고 해서 기대를 잔뜩 했었는데 안타깝네요. 수빈씨 덕에 시청률 좀 오르나 했는데..]
"괜히 제가 피디님을 귀찮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 편집하시려면 힘드실 텐데.."
[괜찮아요. 수빈씨 부탁대로 그날 녹화 뜬 거 편집하면서 1분 정도 따로 비워놓긴 했었는데.. 그 정도는 편집 마무리하면서 재료 손질하는 거나 요리하는 거 조금 더 길게 잘라 붙이면 되는 거라 별 문제 없어요. 옛날처럼 녹화 테이프를 일일이 잘라 붙이는 시절이 아니잖아요.]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귀찮고 힘드신 건 똑같죠. 죄송합니다. 피디님. 혹시라도 제가 도움이 될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 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요. 안 그래도 요즘 수빈씨 잘 나간다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다른 프로에서라도 제가 부탁하면 출연 좀 해주세요.]
"그럼요. 언제든지 말씀만 하시죠. 피디님이 부르시면 제가 바로 달려가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됐죠. 다음에 봐요. 수빈씨. 이만 끊어요.]
"네. 박피디님.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수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작게 중얼거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박피디가 화를 안 내는데.. 내가 요즘 잘 나간다는 소문을 들어서 이 정도로 그친 건가. 하여간 연예인은 뭔 짓을 해서라도 일단 잘나가고 볼일이야."
수빈이 녹음실에서 [달과 나의 이야기]를 편곡하면서 시간을 보낸지 1시간쯤 지났을 때 마빈이 상기된 얼굴로 녹음실 문을 열었다.
"마빈이 왔냐. 근데 너 얼굴이 왜 그러냐?"
"헉헉. 네가 급하다고 하길래 주차장부터 녹음실까지 뛰어왔지. 엘리베이터가 빨리 안 오길래 그냥 계단으로 뛰어 올라왔더니.."
"그래? 고생했다. 일단 앉아봐라. 오늘 내가 너한테 해줄 이야기가 좀 많다."
이틀 뒤 아침 YK 사옥으로 나간 수빈은 BBG 멤버들을 만나러 연습실로 찾아갔다. 경빈이 혼자 수빈을 기다리고 있었다.
"형. 오셨어요? 무슨 일로 다 같이 보자고 하신 거예요?"
"너 혼자 있는 거야? 다른 멤버들은?"
"지금 다들 구내식당에 아침 먹고 있어요. 금방 올 거예요."
"그렇구나. 그럼 다들 밥 먹고 올 때까지 좀 기다려야겠네."
"형. 어제 뉴스 난거 봤어요. 사진 잘 나왔던데요."
"뉴스? 어떤 뉴스?"
"어제 저녁에 마빈이 형 [정글의 규칙] 촬영하러 아프리카 간다고 형이 인천국제공항에 배웅하러 나갔잖아요. 그거 공항패션이라며 사진 찍혀서 뉴스가 잔뜩 올라왔던데요."
"아. 그거. [특별수사본부] 드라마 팀에서 연락이 와서 나간 거야. 드라마 출연진들 당분간 언론에 자주 노출 좀 부탁한다고 그러길래.. 마빈이 배웅도 할 겸 겸사겸사 공항으로 나갔었지. 드라마 방영일이 얼마 안 남았잖아. 오늘 제작 발표회도 있을 예정이고.."
"그래서 형이 그렇게 빼입고 공항에 나가신 거구나."
"그래. 안 그랬음 내가 인천공항까지 배웅하러 나갔겠냐. 마빈이 애도 아니고.."
그때 아침 식사를 마친 나머지 멤버들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왔다. 로빈이 수빈에게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면서 물었다.
"수빈이 왔네. 요즘 드라마 촬영 들어가서 바쁘다며? 근데 무슨 일로 오늘 다 같이 보자고 한 거냐?"
"아침은 잘 먹었냐? 우리들 신곡 관련해서 일정 좀 확실하게 잡으려고. 내가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바쁘잖아.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에 조만간 영화도 촬영 들어가고 하이유 선배랑 핑크 베리 애들 곡도 프로듀싱해야 되고.. 앞으론 시간 내기가 쉽지 않을 거 같아서 오늘 좀 보자고 했지."
수빈은 멤버들을 둘러보며 한 명씩 집어서 물어보았다.
"경빈이 너 랩은 다 썼냐?"
"..아뇨. 아직 다 못 썼어요."
"로빈이 작곡하는 건 어떻게 돼가냐?"
"..아직."
"그럼 당연히 케빈이 작사도 아직이겠네?"
"..응. 그렇지."
"거봐라. 그래서 내가 오늘 보자고 한 거야. 랩이랑 작곡이랑 작사랑 아직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잖아. 다들 내일 저녁 먹기 전까지 결과물을 가지고 와라. 완벽하지 않아도 되니 일단 내일 저녁에 만나서 다 같이 한번 맞춰보자고. 기본적인 테마는 이미 정해져 있잖아."
수빈의 말에 멤버들 전원이 갑자기 다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이번 신곡은 내가 직접 프로듀싱을 할 거고 그 곡으로 내가 A&R 팀과 한판 붙을 계획이라고 저번에 말했었지? 그러니깐 지금부터 내일 저녁까지 부지런히 작업을 해서 들고 오라고. 이런 식으로 내가 닦달하지 않으면 휴식기라고 다들 자꾸만 늘어져서 안되겠어. 싸우는 건 내가 총대 메고 앞에 나서서 싸울 테니 너희들은 자기 할 일만 열심히 좀 해줘. 알았냐?"
잠시 후 머리를 감싸 쥐고 고민하는 BBG 멤버들을 남겨 두고 수빈은 드라마 제작발표회장으로 가기 위해 차에 올라탔다. 자신이 신인이라는 걸 잘 알기에 예정 시간보다 훨씬 일찍 길을 나섰다.
시내에 위치한 모 호텔을 빌려서 하는 드라마 제작발표회장에 도착한 수빈은 코디가 건네주는 옷을 입고 메이크업을 마친 뒤 대기실에서 다른 배우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흘러 성강호를 비롯한 드라마 주연 배우들이 속속 도착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