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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32화 (3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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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코디가 골라준 옷으로 갈아입고 드라마 제작센터 아래쪽 끝에 위치한 분장실로 이동 중이었다.

'그렇게 난리를 치며 고르더니 결국 이걸 입혀놨군. 하기야 검은색 정장이 조폭들의 공식 유니폼 아니겠어.'

걸어가며 자신이 입은 옷을 살펴보던 수빈은 갑자기 뭐가 그리 우스운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피식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코디가 그래도 좋은 걸 입혀줬네. 조르지오 아르마니 블랙 레이블이라.. 하여간 웃기는 인간이야. 자기 회사 상사 이름이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 명품 이름은 또 꿰차고 있단 말이지. 그 인간이 나름 도움이 될 때도 있긴 하네."

잠시 후 수빈은 분장실 앞에 도착해서 [분장실]이라고 적혀있는 문을 살짝 열고 안을 살펴보았다.

얼핏 눈으로 봐도 20여 평은 족히 넘어 보이는 넓은 평수의 분장실은 드라마 제작센터에 있는 분장실답게 총 6대의 화장대와 의자가 일렬로 놓여 있었고 뒤쪽 벽에는 대기용 소파 여러 대가 놓여 있었다.

이미 모든 의자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탑 배우들과 낯이 익은 유명 배우들이 앉아서 분장을 받고 있었다.

얼마 전 대본 리딩때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던 여자 주인공 역할의 김해수 선배도 한참 분장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분장실 안에는 첫 촬영이라 그런지 배우와 거기에 딸린 코디 및 매니저 등 20여 명이 넘는 인원이 들어차 있었고 여기저기서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분장실 안으로 들어간 수빈은 의자가 비길 기다리며 뒤쪽에 있는 대기자용 소파에 앉았다.

'배우중에 혼자 온 사람은 설마 나뿐인가? 박실장이 코디랑 매니저를 따로 붙여준다고 할 때 들을걸 그랬나..'

수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이제 겨우 처음으로 드라마에 출연하는 조연배우가 그러는 게 더 이상하지. 오히려 시건방져 보일 수도 있어. 혼자인 게 편해. 어차피 의상이랑 분장을 여기서 다 해결해주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없지.'

마음을 정리한 수빈은 슈트 상의의 단추를 풀고 소파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며 편하게 앉았다.

그 상태로 다른 배우들이 분장을 받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머릿속으로는 오늘 찍을 장면들을 되새기기 시작했다.

'오늘 찍을 신이 두 신이라고 그랬지. 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신이랑 마약 거래를 위해 중국 흑사회와 통화하는 신. 첫 등장 신은 조폭 사무실로 출근하는 모습이고 두 번째 신은 사무실 안에서 통화하는 신이고.. 특별히 어려울 건 없겠네. 상대방 배우와 호흡을 맞춰야 되는 신도 없고 액션 신도 없으니..'

수빈이 정면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분장실이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특히 여성들이 살짝 들뜬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 누구야? 저 잘생긴 남자는?

- BBG 수빈이잖아. 몰라?

- 옷 태가 끝내주네. 탑 모델 같다.

- 키도 크고 얼굴에서 빛이 막 나는데.

- 핏이 죽이네. 다리 긴 것 좀 봐.

- 무슨 역할이지? 사진찍어도 되려나?

일전에 구한 약초 덕분에 이미 세맥 단계를 끝마친 터라 수빈은 더없이 날카로와진 감각으로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는 것을 느꼈고, 뛰어난 청각으로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다 들을 수 있었다.

'사람들의 이목이 나한테로 집중되니깐 영 불편하네. 하지만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이런 걸 즐길 줄 알아야겠지.'

마음을 다잡은 수빈은 자신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을 모르는 척 무시하며 눈을 감고 오늘 할 연기를 점검하였다.

시간이 흘러 자신의 차례가 되자 수빈은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분장을 시작했다. 분장을 시작한 지 20여 분이 지난 뒤 마침내 분장이 끝났다는 소리에 수빈은 그동안 감았던 눈을 떴다.

분장을 끝마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지르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며 수빈은 의자에서 일어나서 뒤로 돌아섰다.

어디서 소문을 듣고 몰려왔는지 아까보다 족히 두 배는 더 많아진 여성들이 홍조 띤 얼굴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많은 여성들의 시선에 살짝 긴장한 수빈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모여든 여성들의 숨넘어가는 신음소리와 핸드폰으로 사진 찍는 소리를 뒤로 한채 촬영장으로 이동했다.

촬영장에 도착하니 막 연기를 마친 성강호 선배가 조금 전에 찍은 장면을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수빈을 발견한 성강호가 손을 들어 아는 척을 하며 말했다.

"수빈이 왔냐.."

가볍게 목례를 올린 수빈의 곁으로 다가온 성강호가 눈을 크게 치켜뜨며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놈 이거.. 안 꾸며도 멋진 놈을 이렇게 꾸며놓으니깐 뽀대가 완전 작살인데. 솨라~있네!"

이제 제법 친분이 쌓인 성강호의 과장된 톤의 말을 들으며 수빈이 쓴웃음을 지었다.

"선배님. 제가 횟감용 도다리도 아니고.. 언제는 죽어있었습니까."

"그만큼 멋지다는 소리 아이가. 이야. 내가 니 얼굴 반만큼만 생겼어도 대한민국 멜로 영화는 내가 다 찍었겠다."

"선배님도 충분히 잘생기셨습니다. 그리고 [박쥐인간]이랑 [밀양에서]를 찍으신 분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멜로 영화도 많이 찍으신 걸로 아는데요."

"이 얼굴로 찍어서 그 멜로 영화들은 다 망했지. 이놈이.. 아픈 데를 찌르네."

"...그런 뜻으로 드린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농담이다. 농담. 니는 언제 슛 들어가냐?"

"30분쯤 뒤에 들어간다고 조연출에게 들었습니다."

"그래? 그럼 수빈이가 드라마 첫 촬영이라는데 내가 모니터를 해줘야지. 너 찍는 거 보고 쉬러 가야겠다."

"아닙니다. 선배님. 제가 맡은 역할이 조연인데 굳이 그러실 필요까지는..."

"어허. 널 이 드라마에 데리고 온 사람이 난데 책임을 져야지. 내가 봐주마."

"..감사합니다."

잠시 후 수빈은 뉴욕 양키스 모자를 눌러쓰고 목에는 스톱워치를 걸고 있는 정석호 드라마 제작피디에게 연기에 관련된 디렉팅을 받고 있었다.

"수빈씨는 저기 복도 끝에서 이쪽 조폭 사무실 문 앞까지 쭉 걸어오면 됩니다. 문 앞에 도착하면 뒤에 수행한 부하 1이 문을 열어줄 겁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대사가 따로 없기 때문에 풀샷으로 원테이크에 갈 겁니다."

"알겠습니다. 피디님. 혹시 주의사항이나 유념할 사항이 있습니까?"

"특별한 건 없고 조폭 두목이니깐 어깨 펴고 좀 건방지게 걸었으면 좋겠네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 후 수빈은 복도 끝에서 두 명의 부하를 뒤에 거느린 채 피디의 큐사인을 기다리며 자신이 맡은 배역에 몰입 하기 시작했다.

'나는 깡패다. 피도 눈물도 없지. 사람 목숨 알기를 개똥으로 알고 마약을 팔아서 돈을 버는 쓰레기다. 고로 나는... 악(惡)이다.'

큐사인을 기다리며 서있는 수빈의 입가에 서서히 비열한 웃음이 걸리기 시작했고 눈알은 살기로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 레디~ 액션!

피디의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수빈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걸어가는 수빈의 발밑에서 피어오르는 거칠고 사나운 기운이 광포한 기세로 촬영장을 잡아먹기 시작했다.

촬영장 여기저기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기세에 짓눌려 새된 목소리로 신음을 내뱉기 시작했다.

- 분위기가.. 쪄는데..

- 보고 있으니 소름이 돋네.

- 연기 초짜라며?

- 포스가... 장난 아닌데.

조폭 사무실 문 앞까지 거침없이 걸어간 수빈은 뒤에 서있는 부하 1이 문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수빈의 기세에 얼이 빠진듯 부하 1이 대본대로 빠르게 문을 열어주지 않자 수빈은 살기가 그득한 낮은 목소리로 짐승이 으르렁 거리듯 내뱉었다.

"안 열고 뭐 하나? 이 자리에서 죽여줄까?"

그때 담당 피디가 큰 소리로 외쳤다.

- NG!

급박한 피디의 NG 소리에 수빈은 정신을 차리며 후회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열 때까지 기다렸어야 되는 건가. 내가 실수한 거 같은데..'

수빈은 담당 피디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피디님. 제가 더 기다렸어야 되는데.. 주의하도록 하겠습.."

성강호와 같이 조금 전 촬영한 장면을 모니터링을 하고 있던 피디가 손을 들어 수빈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뇨, 수빈씨가 잘못한 거 없어요. 잠시만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이윽고 모니터링이 끝났는지 성강호와 정피디가 동시에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성강호가 정피디를 보며 뭔가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거.. 이대로는 힘들겠지?"

"하아.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이대로는 못 쓸 거 같은데요."

"어떡하면 좋을까.. 정피디가 좋은 생각 있어?"

"가려야지요. 지금은 별수 없겠는데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빈은 무슨 소린지 이해를 못해 멀뚱멀뚱 서있기만 하였다. 잠시 후 정피디가 수빈에게 말을 걸었다.

"수빈씨."

"네. 피디님."

"조금 전 연기 아~주 좋았습니다. 그리고 촬영하면서 간단한 애드리브나 시바이 치는 걸 망설이지 마세요. 대본이 기본이긴 하지만 더 좋은 장면을 찍기 위해 그 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근데 지금 문제가 있는데..."

"아. 제 연기에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말씀해주시면 고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때 성강호가 끼어들며 말했다.

"이놈아. 니가 잘나도 너무 잘나서 문제야. 악당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인데 포스가... 후. 악역인 조연이 저렇게 주인공 포스로 등장하면 난 어떡하냐. 사람들 눈에는 내가 완전 쩌리로 보일 건데.."

"아! 그럼 제가 연기를 좀 죽이면.."

"엥? 얘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 건 라이브로 하는 연극 무대에서나 하는 소리야. 사후 편집이 가능한 영화나 드라마는 장면 장면마다 항상 베스트로 가는 거다. 피디는 뭐 폼으로 있는 줄 알아? 뭔 말인지 알겠냐?"

"..네."

"니가 잘나서 좀 튀어 보이는 건 피디가 알아서 처리할 거니깐 넌 항상 최선의 연기를 하면 되는 거야. 그런 말은 어디 가서든 두 번 다시 하지 마라. 초짜가 시건방지게 군다는 소리 듣기 딱 좋으니깐.."

"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정피디가 끼어들며 수빈에게 말했다.

"수빈씨. 지금 수빈씨 얼굴이랑 포스가 너무 튀니깐 나중에는 그냥 나가더라도 지금은 얼굴을 좀 가립시다.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장면이니깐 조금은 약하게 나가야 될 거 같아요."

"어떻게 가릴까요?"

잠시 후 1차적으로 배우들 분장이 다 끝났는지 조금은 한가한 분장실에서 수빈은 턱 쪽에 수염을 붙이고 있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수빈이 분장하는것을 지켜보면서 자기들끼리 수근댔다.

- 어머. 수염을 붙히니 야성미가..

- 앞으로는 수빈 오빠라 불러야지.

- 이년아. 너랑 10년은 넘게 차이날거다.

-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 미친년..

자신의 촬영 타임이 끝나고 휴식시간이라며 분장실까지 따라온 성강호가 메이크업 아티스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잘난 놈들은 얼굴에 뭔 짓을 해도 잘났네."

우여곡절 끝에 당일 촬영을 끝마친 수빈은 YK 사옥으로 돌아갔다. BBG 전용연습실로 가니 로빈과 경빈 두 명만이 앉아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빈을 발견한 경빈이 손을 들고 인사를 하며 말했다.

"수빈이 형. 촬영 잘 끝났어요? 안 그래도 형한테 드릴 말이 있었는데.."

"나한테? 어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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