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30화 (30/236)

#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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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크 베리의 임시 리더인 지영이가 연습실로 거침없이 걸어들어왔다.

마치 빚쟁이가 수금을 하기 위해 집으로 쳐들어오는 듯 기세가 제법 거칠다.

"수빈이 오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자신을 향해 대단한 불만이라도 있는지 두 눈을 부릅뜨고 외치는 지영의 말에 수빈은 일순 어안이 벙벙해졌다.

'내가 핑크 베리한테 뭐 실수한 게 있었나?'

특별히 잘못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도와줬으면 도와줬지.

지영은 수빈의 앞에까지 척척척 걸어와서는 허리에 양팔을 올리고 수빈을 똑바로 쳐다보며 따지듯이 말했다.

"오빠랑 우리 사이에는 끈끈한 정(情)이란 게 있잖아요. 하루 만에 만리장성도 쌓는다는데 오빠가 우리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수빈은 풋 하고 헛웃음을 터뜨렸다.

찰색을 통해 겉으로 보기엔 당당한 자세로 자신에게 따지고 드는 지영의 눈동자가 불안감에 끊임없이 잘게 흔들리고 있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반 사람들은 알아차리기가 힘들겠지만 무공을 익힌 수빈은 눈엔 지영의 무게중심이 보통 때보다 훨씬 자주 뒤쪽으로 쏠리는 것을 알아챘다.

'이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은 심정의 발로 거나 아니면 뒤쪽에 자신의 뒤쪽에 동료가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지. 대충 알만하군.'

관찰을 끝내고 사태 파악을 마친 수빈이 사뭇 엄중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하루 만에 만리장성을 쌓는다는 게 뭔 뜻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야? 이제 18살인 여자애가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거냐. 오빠한테 한번 혼나볼래?"

수빈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순간적으로 바짝 얼은 지영이 조그마한 소리로 대답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情)이란 게 엄청 중요하다는 뜻 아닌가요?"

"에라이. 부지곡조불탄금 몰라? 네가 아는 그런 뜻 아니니깐 어디 가서 두 번 다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너 같은 어린애들이 입에 올릴만한 이야기가 아냐. 알아들었어?"

"...네. 오빠. 집에서 아빠가 엄마한테 용돈 탈 때 정을 강조하면서 자주 그런 말을 쓰시길래 그냥 따라 한 건데.."

"하아. 알았으니깐 연습실 밖에 서있는 애들이나 다 들어오라고 해. 네가 왜 이러는지 대충은 알겠는데 자세히 들어나 보자."

수빈의 말에 지영이 살았다는 듯 얼굴이 환하게 펴지면서 번개처럼 돌아서더니 연습실 밖으로 후다닥 뛰어나갔다. 그리곤 연습실 밖에서 여자애들이 단체로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그때 지영의 난입에 다들 멍해있던 BBG 멤버들 중 경빈이 물었다.

"형."

"왜? 지영이가 왜 저러나 싶어서 물어보려고?"

"에잉. 그런 거야 수빈이 형이 알아서 잘 처리하겠죠. 제가 나설 문제도 아니고.."

"음? 그럼 날 왜 불렀어?"

"부지곡조불탄금(不知曲調不彈琴)? 그게 뭔 뜻이에요?"

"아. 곡조도 모르면서 마치 알고 있는 척 악기를 함부로 치지 말라고.. 잘 모르면서 함부로 나대지 말라는 뜻이다. 네가 꼭 알아야 될 이야기라고 볼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자신의 구박 섞인 말에 입술을 삐죽거리는 경빈을 무시하고 서있으니 연습실 문으로 핑크 베리 멤버 6명이 우르르 줄지어 들어왔다. 그런 후 수빈의 앞에 일렬로 도열하듯이 섰다.

"다들 그렇게 서있지 말고 앉아."

다들 긴장을 하고 있는지 멤버 전원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빠른 속도로 자리에 착석했다.

"자. 누가 대표로 얘기할래? 지영이가 할래?"

수빈에게 지목받은 지영이가 흠칫 놀래서 에리카를 쳐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에리카. 네가 대표로 말해. 수빈이 오빠가 널 젤 좋아하잖아."

지영의 뜬금포 공격에 수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힘 빠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뭔 또 에리카를 제일 좋아하냐. 너희들 다 똑~같이 좋아하니깐 이상한 소리 좀 하지 마라. 어디 끌려갈까 이 오빠가 겁이 난다."

지영의 지목에 에리카가 잠깐 주저하더니 조그마한 소리로 말했다.

"수빈 오빠. 저희가 좀 전에 소식을 들었는데요."

"뭔 소식?"

"오빠가 이번에 엄청나게 좋은 곡을 작곡했는데요. 그걸 하이유 선배님한테 드렸다고 들었어요."

"후. 짐작은 했다만.. 도대체 그걸 너희들이 어떻게 알았냐? 1시간도 안된 일을.."

"이 바닥 소문이 얼마나 빠른데요. 지금쯤이면 회사 사람들도 다 알걸요."

수빈은 에리카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 정말 대단하군. 개방이나 하오문 같이 정보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문파들도 연예계 쪽으로 진출하면 아마 쪽도 못써보고 망할 거야.'

"그래서?"

"저희 멤버들이 좀 섭섭했나 봐요. 솔직히 하이유 언니는 직접 노래도 많이 만들고 다른 훌륭한 작곡가분들이 노래도 많이 주고 그러지만.. 저희는 작곡가 선생님들에게서 아직 한 곡도 받아 본 적이 없는데.."

"그래서 그게 서운했다? 내가 너희들한테 안 주고 하이유 선배한테 줘서?"

수빈의 질문에 에리카가 얼굴이 빨개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손가락을 꼬무락거리며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많이는 아니고.. 아주 조금요."

"하아. 이 철없는 어린 중생들을 어떻게 해야 되려나."

수빈은 탄식 어린 말을 하며 자신도 자리에 앉아서 손짓을 했다.

"다들 이리 가까이 와봐. 오빠가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걸 바로잡아줄게."

핑크 베리 멤버들이 앉은 채로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가까이 다가왔다.

"잘 들어. 첫째로, 하이유 선배한테 준 곡이 엄청 좋은 곡은 아냐. 오빠가 살면서 처음으로 작곡한 곡을 준거라고. 작곡을 처음 해 봤는데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니. 그러니깐 너희들이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막 좋은 곡이 아냐. 너희들이 잘못 알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두 번째로.."

그때 수빈의 말에 반박하듯 지영이가 날이 바짝 선 목소리로 대꾸했다.

"오빤 천재 작곡가잖아요!"

생각도 못한 타이밍에 치고 들어오는 지영이의 기습적인 멘트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가려던 수빈은 깜짝 놀라 평생 안 하던 사레가 들렸다.

"두 번째로... 쿨럭. 컥컥.."

지영이의 말에 동조하듯 여기저기서 호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 맞아. 오빠는 완전 천재야.

- 그날 저녁에 우리 다 같이 [문제적 인간] 봤잖아?

- 귀신처럼 무섭게 문제를 순식간에 다 풀었지.

- 다른 사람들도 다 오빠가 천재라고 했어. SNS 봤지?

- 천재 작곡가들은 원래 처음 만든 곡이 젤 좋다고 했어.

겨우 사레들린 걸 진정시킨 수빈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야! 논리적으로 생각을 해봐라. 퀴즈 좀 잘 푼다고 작곡까지 잘한다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 말에 반박하듯 에리카가 평상시랑 달리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녜요! 우리 엄마가 그랬어요. 오빠처럼 머리가 천재인 사람은 뭘 해도 다 잘한다고요. 그러니깐 오빠는 작곡도 잘할 거예요. 오빤 천재 작곡가 맞다고요!"

수빈은 에리가의 박력있는 목소리에 놀라서 멍한 눈으로 에리카를 쳐다보았다.

'얘가 이제 보니 장군감이었네. 사람이 변해도 이렇게 변하나. 아니 근데.. 엄마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내가 잘할 거라는 근거는 당최 뭐냐?'

평상시 달변을 자랑하던 수빈은 황당함에 입만 뻐끔뻐끔하면서 잠시 동안 말을 이어나가지를 못했다.

시간이 흘러 핑크 베리 멤버들과 어느 정도 대화가 진행된 뒤 수빈은 마침내 모든 것을 체념한 목소리로 현재의 상황을 정리하듯 말했다.

"무슨 말인지 알았으니깐 이제 그만하자. 오빠가 너희들이 바라는 데로 최대한 빨리 너희들을 위한 댄스곡을 하나 작곡해 보마. 그러니깐 하이유 선배한테 드린 곡은 잊어버리고 나 좀 그만 괴롭혀라. 그리고.. 어디 가서 천재 작곡가니 뭐니 이상한 소리는 좀 하지 말고. 알아들었냐?"

- 네. 와우. 신난다.

- 우리도 이제 천재 작곡가의 곡을 받는 거야.

- 오빠. 정말 정말 감사해요.

- 거봐. 오길 잘했지. 오빠가 보기보다 맘이 여리다니깐.

- 오빠. 사랑해요. 우리 곡은 일주일이면 나오겠죠?

- 천잰데 더 빨리 나오지 않을까? 사랑해요. 오빠.

잠시 후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뒤 기가 다 빨려 너덜너덜해진 수빈은 연습실 바닥에 구겨진 비닐봉지처럼 널브러져 있었다.

그 꼴을 지켜보던 마빈이 옆으로 오더니 수빈의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하듯 말했다.

"능력이 너무 뛰어나도 괴롭겠구나. 우리 수빈이가 고생이 참 많다."

"하아. 어린 여자애들이 말도 안 통하고 완전 무데뽀로 들이대니깐 내가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저 나이 때 여자들을 논리적으로 설득한다는 건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로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는 미션이야. 미션 임파서블이라고. 애초부터 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

수빈은 마빈의 말을 들은 뒤 몸을 천천히 일으켜서 앉은 다음 진저리를 쳤다.

'차라리 마교가 친 천라지망을 단신으로 돌파하는 게 더 쉽지.. 하아. 진이 다 빠지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정신을 어느 정도 챙긴 수빈은 마빈을 불렀다.

"마빈아."

"응?"

"이틀 뒤 오후 1시에 [냉장고를 처리해] 정피디님이랑 미팅 있는 거 알지? 알아서 시간 빼 놔라."

"그날은 완전히 다 비워놨지. 걱정하지 마. 근데 정피디를 만나면 그 자리에서 우리 계획을 다 설명할 거야?"

"그날 상황을 봐야겠지. 먼저 정피디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을 해야지. 그런 다음 거기에 맞춰 작전을 진행해야 할 거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그래. 너만 믿는다. 그리고.... 고맙다. 많이."

"웰컴. 아임 유어 파더는 아니지만.. 아임 유어 프렌드 정도는 되잖아."

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액션 연습하러 헤이리에 가봐야 하는데.. 가서 연습할 힘이나 날려나 몰겠다."

"그래. 가서 잘하고 와라. 내일 보자."

잠시 후 밴을 타고 헤이리에 있는 액션 스쿨에 도착한 수빈은 도장 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갔다.

액션 연습을 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 유독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어. 저 사람은 그분 아냐? 맞는 거 같은데'

수빈은 자신이 생각한 사람이 맞는지 확인을 하기 위해 그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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