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9화 (29/236)

#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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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크 소리가 난 후 녹음실 안으로 하늘하늘한 몸매와 가냘파 보이는 인상을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왔다.

그 여성을 보고 BBG 멤버들이 깜짝 놀라 괴성을 질렀다.

- 헉. 하이유? 맞나?

- 하이유다! 난 실물은 첨 본다.

- 대박. 하이유 선배다..

- 우와.. 얼굴이 조막만 하다.

- 바람 불면 날아가겠는데..

수빈도 하이유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면서도 속으로는 의문이 들었다.

'하이유가 갑자기 여기를 왜 온 거지?'

"안녕하세요. 하이유 선배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뵙게 돼서 다들 반가워요."

잠시 후 BBG 멤버들의 떠들썩한 자기소개와 인사 교환이 끝난 뒤 수빈과 하이유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쩐 일로 선배님이 여기를 다 찾아오신 겁니까?"

"수빈씨 보려고 왔죠."

"저를요?"

"네. 사실 어제 만나보려고 했었는데 어젠 제가 너무 스케줄이 바빠서 회사로 못 왔어요. 그래서 오늘 시간이 난 김에 수빈씨 보려고 왔는데 여기 녹음실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찾아온 거예요."

"저 근데.. 선배님. 말씀 낮추시죠. 제가 나이가 선배님보다 어립니다."

"저도 아직 어려요. 수빈씨랑 저랑 2~3살밖에 차이가 안날 걸요? 그리고 저는 말 낮추는 게 오히려 더 불편해요."

"알겠습니다. 근데 무슨 일로 저를?"

질문을 하면서 수빈은 열심히 머릿속 기억을 더듬었다.

'설마 하이유 선배한테도 껄떡거렸었나? 특별히 하이유와 관련된 기억이 없는데.. 아니면 다른 이유라도 있으려나?'

"얼마 전에 박실장님 한테서 수빈씨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박실장님이면.. 배우 1팀 박동주 실장님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제가 가수 2팀에 소속되어 있긴 하지만 예전 KBC에서 방송한 드라마 [프로듀서]에 출연할 때 박실장님 도움을 제가 많이 받았거든요. 그래서 많이 친해요."

"아하. 그러시구나. 그런데 박실장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으셔서 저를 찾아오신 건지?"

"박실장님이 얼마 전에 저보고 [문제적 인간]에 출연하라고 말을 하셨거든요. YK 소속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높여야 하겠다면서요. 전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도 꼭 출연해야 된다고 자꾸 말씀하셔서."

하이유는 잠깐 입술을 깨문 뒤 말을 이었다.

"제가 계속 고사했더니 조건을 거셨어요. 저보다 먼저 다른 사람이 출연할 건데 그때 그 사람이 잘해서 회사 이미지가 충분히 높아지면 저는 안 나가도 되고, 만약에 그 사람이 잘못하면 그때는 제가 나가는 걸로 하자고.."

수빈은 하이유의 말을 들으면서 어이가 없어서 속으로 박실장을 욕했다.

'일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선 뒷수습하기 힘들까 봐 엉뚱한 데다 구라를 쳐놨네. 혹시 김소희 선배한테도 저런 식으로 말해 놓은 거 아냐? 이거 영 불안한데..'

"그래서 일요일에 [문제적 인간] 보면서 수빈씨를 정말 열심히 응원했거든요. 그런데 수빈씨가 생각보다 너무너무 잘하셔서.. 월요일 아침에 전화로 박실장님께 여쭤보니깐 저 안 나가도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수빈씨한테 너무 고마워서 밥이라도 아니면 커피라도 한잔 사드리려고 찾아왔어요."

"하아. 선배님. 안 그러셔도 됩니다."

"아뇨. 제가 꼭 사고 싶어요. 거기 나가서 한 문제도 못 풀고 멍하니 바보처럼 앉아있을 제 모습을 떠올리면.. 아휴.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요."

"정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런데 좀 전에 밖에서 들었는데.. 음악이 좋던데요. 처음 들어보는 곡인데 누가 작곡하신 건가요?"

옆에서 듣고 있던 경빈이가 냉큼 끼어들며 대답했다.

"수빈이 형이 작곡했어요. 수빈이 형은 진짜 천재에요."

"경빈아! 넌 좀 제발 닥치고 있어라."

자신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경빈을 한번 째려본 후 수빈은 다시 하이유에게 질문했다.

"일단 제가 작곡한 게 맞긴 합니다만.. 왜 그러시는지?"

"수빈씨가 천재라더니 작곡도 잘 하시는구나. 혹시 제가 다시 한번 제대로 들어볼 수 있을까요?"

시간이 제법 흐른 후 BBG 멤버와 하이유는 점심을 먹기 위해 회사 근처의 단골 고깃집으로 다 함께 이동했다.

수빈은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기감을 최대한 높여 혹시나 마빈을 노리는 청부업자나 해결사가 있는지 꼼꼼히 살펴보았다.

'지금 내 수준이 세맥 끝 단계인데.. 이 수준에서도 발견을 할 수 없는 작자라면 일류에 속한다. 이 세상에 그런 수준의 청부업자가 흔할 리가 없겠지. 다행히 의심 가는 사람은 안 보이는군.'

마음속으로 어느 정도는 안도를 하면서 수빈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BBG 멤버들과 하이유가 둘러앉아 있는 방안으로 여종업원 두 명이 주문을 받으러 들어왔다.

수빈은 방안으로 들어오는 종업원들을 보자마자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아. 이리 주세요. 그 대신에.. 이번 한 번만이에요."

그러자 여종업원 중 연장자로 보이는 여성이 잠깐 망설이다가 미안한 표정으로 수빈에게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경빈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뭐예요? 형 아시는 분? 아니면 형 사인을 받으시려고 그러시는 건가?"

"후우. 그냥 지켜보면 안다."

수빈은 가까이 다가온 종업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종업원이 조심스럽게 옆구리에 끼고 있던 얇은 책 한 권과 연필을 건넸다.

책을 건네받으며 수빈은 입구 쪽에 서있는 다른 종업원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쪽이 시간 재실 건가요?"

"네. 제가 핸드폰으로 잴 거예요. 죄송해요. 너무 궁금해서.."

"괜찮아요. 그쪽 분들이 첨도 아니고.. 그 대신 담부터는 안 해드립니다."

옆에 앉아 있던 성빈이가 수빈이 받은 책의 제목을 조심스럽게 읽었다.

"수~도~쿠?"

성빈이가 하는 소리를 무시하며 수빈이 책을 가져온 종업원에게 다시 물었다.

"몇 페이지?"

"23페이지요. 제가 삼 일째 못 풀고 있는 문제라서.."

"알았어요. 23페이지라.. 9X9 문제네요. 시작합니다. 시간 재세요."

잠시 후 빠르게 숫자를 적어나가던 수빈이 외쳤다.

"끝."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으면서 시간을 재고 있던 종업원이 호들갑을 떨면서 외쳤다.

"41초? 어머어머 말도 안 돼! 진짜 천잰가 봐!"

"6X6이면 20초 내에 푸는데.. 9X9라 시간이 확실히 더 걸리네요."

"수빈씨. 이거 찍은 거 제 SNS에 올려도 되나요?"

"올리시는 건 좋은데 좋은 말만 써주실 거죠?"

"당연하죠!"

"그럼 올리셔도 됩니다."

하이유가 앞에 있어서 그런지 조금은 뻐기는듯한 말투로 대답한 후 수빈이 연필을 책 속에 꽂아 넣었다. 그리고선 책을 앞으로 내밀자 다른 종업원이 존경스럽다는 눈빛으로 책을 받아 갔다.

잠시 후 일행들이 주문을 마치고 종업원이 나가자 궁금한 걸 절대 못 참는 경빈이가 입을 열었다.

"형. 이런 일이 자주 있었어요?"

"[문제적 인간] 방송 나가고 난 뒤 이틀 새 벌써 여섯 번째다. 나만 보면 자꾸 문제 한번 풀어보라고 사람들이 들이대서 내가 아주 죽겠다. 후우. 방송으로 본 걸 못 믿겠다 이거지."

"우와. 그렇구나. 난 첨에 형이 뭔 소리를 하나 했어요."

"옆구리에 책을 끼고 들어오는 걸 보고 바로 알았지. 뭐 시간이 지나가면 차츰차츰 나아지겠지. 지금도 모든 퀴즈 프로에서 날 섭외하겠다고 연락이 온다더라."

"그럼 또 나가시면 되죠."

"야. 한번 나갔는데 이 지경이다. 그런데 또 나가라고? 이젠 안 나갈 거야."

그때 하이유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수빈씨."

"네. 선배님."

"아까 제가 물어본 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정도로 맘에 드세요?"

"네. 지금 상태로는 수빈씨 말처럼 완전하지 않지만 편곡을 하고 나면 상당히 멋진 노래가 될 거 같아요. 제가 그 노래를 부르는 거에 대해서 수빈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그 말을 듣고 있던 로빈이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직 그 곡이 우리의 신곡이 될지 안될지도 결정이 안됐는데.. 지금 대답하기엔 조금 이르지 않을까요?"

로빈의 말에 수빈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냐. 이 곡은 여자가 불러야 되는 노래야. 우리 신곡으로는 맞지 않아."

수빈은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자신의 앞에 놓여있는 숟가락을 집어 들려고 손을 뻗었다가 멈췄다.

'하이유 선배가 보고 있는데 숟가락으로 손바닥을 두들기면 보기에 좀 그렇겠지. 명색이 나도 연예인인데..'

잠시 후 수빈은 정리가 끝났는지 하이유를 보고 입을 열었다.

"선배님. 그전에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선배님께서는 싱어 송 라이터 인걸로 제가 아는데.. 가사를 직접 쓰실 겁니까?"

"네. 허락만 한다면 제가 쓰고 싶어요."

"그럼 제 조건은 간단합니다. 가사를 쓰실 때 이곡의 제목처럼 [밤하늘에 가득한 달빛이 내 가슴속에 들어와 빛난다]라는 느낌을 가지고 써주세요. 그리고 또 하나의 조건이 있습니다. 이 곡을 제가 직접 프로듀싱하고 싶습니다."

"프로듀싱을 직접 하시겠다고요?"

"네. 제가 요즘 그쪽 분야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 중입니다. 제가 가장 잘 아는 곡이니깐 제가 직접 프로듀싱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흠. 좋아요. 그 대신.."

"그대신?"

"제가 볼 때 실력이 너무 형편없으면 다른 피디에게 부탁할 거예요. 그러기엔 노래가 너무 아까우니깐요. 동의하시나요?"

수빈은 얼굴의 반을 차지하는 동그랗고 커다란 눈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하이유와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었다.

"좋습니다. 제가 프로듀싱할 실력이 안된다고 판단되시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하지만! 이 곡을 저만큼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겁니다."

수빈의 자신감이 가득한 말에 하이유가 방긋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편채 손을 내밀었다.

"좋아요. 그럼 그 곡은 제가 부르는걸로 약속?"

내밀은 새끼손가락에 같이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네. 약속."

하이유에게서 점심 식사를 얻어먹은 수빈은 다른 멤버들과 같이 연습실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연습실 한쪽에 정좌를 하고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면서 수빈은 고민을 하고 있었다.

'머리카락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야 12시간이라고 인터넷에 분명히 나와 있단 말이야. 그럼 검사를 해도 열번을 하고도 남았을 건데.. 아직까지 그쪽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단게 너무 이상해. 이해가 안되는데..'

수빈은 고민을 거듭하다 아무도 들을 수 없도록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뜸을 들이는 건가 아니면 핏줄이 아닌 걸로 판명이 난 건가.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가 이 일의 진행을 가로막고 있는 건가. 정보가 너무 없어서 판단하기가 힘든데.."

그때 연습실의 문이 왈칵 열리면서 하이톤의 뾰족한 목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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