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28화 (28/236)

#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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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BBG 전용연습실에서는 성빈과 경빈이 신곡에 들어갈 새로운 랩 가사를 가지고 서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빈과 케빈, 로빈이 YK 구내식당에서 느긋하게 아침식사를 마치고 연습실로 함께 들어왔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주위를 둘러보던 마빈이 경빈에게 물었다.

"경빈아. 수빈이는 어디 갔냐? 아직 안 나왔어?"

"지금 제1 녹음실에 있을 거에요. 좀 전에 제가 랩 가사 때문에 물어볼게 있어서 잠깐 올라가 봤는데 수빈이 형이 작업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냥 내려왔어요."

"작업? 무슨 작업?"

"뭔가 튜닝을 해야 된다고 그러던데요."

"뭘?"

"저도 자세한 건 모르죠."

"흠. 한번 올라가 봐야겠네."

마빈의 말에 로빈이 답했다.

"나도 같이 가자."

잠시 후 제1 녹음실에 도착한 마빈과 로빈은 조심스럽게 녹음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녹음실 안에서는 수빈이 헤드셋을 쓰고 여러 콘솔 단자들을 계속 만지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마빈이 조금 가까이 다가가보니 콘솔 데스크 옆쪽에는 두꺼운 매뉴얼 책이 놓여 있었고 데스크 위에는 A4 크기의 종이가 한 장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종이에는 여러 한자와 음표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마빈이 로빈에게 조용히 물어봤다.

"저게 뭐냐? 뭐라고 적혀 있는 거야?"

마빈의 질문에 로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했다.

"설마 넌 내가 한자를 알 거라 생각하고 물어보는 거야? 나도 너처럼 영국에서 자랐다고.."

"악보 비슷하게 음표도 그려져 있어서 너에게 물어본 거지."

로빈이 슬쩍 종이를 들여다본 뒤 말했다.

"한자는 잘 모르겠고.. 음표는 그냥 단순히 옥타브 음계를 찍어놓은 거 같은데. 악보가 아니라."

"근데 수빈이 언제 저렇게 녹음기기를 잘 만졌지? 네가 따로 가르쳐 준거야?"

"아니. 수빈이가 만지는 걸 나도 오늘 첨 보는데."

그때 수빈이 헤드셋을 벗고 웃으면서 마빈과 로빈에게 다가왔다.

"미안 미안. 작업이 거의 다 끝나가서 마저 마무리하느라 바로 아는 척을 못했다. 어쩐 일로 둘이 같이 여기로 온 거야?"

수빈의 말에 마빈이 답했다.

"너 뭐하나 궁금해서 왔지."

"나? 나는 튜닝 좀 하고 있었지. 내가 생각한 곡이랑 현대 음악에서 쓰는 옥타브 음계랑 좀 달라서 말이지. 그걸 서로 맞추느라 작업을 좀 하고 있었어."

곡이라는 말에 로빈이 놀라 물었다.

"곡? 네가 직접 작곡을 한 거야?"

"내가 직접 작곡을 했다고 하긴 좀 그렇고.. 그냥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곡이 있어서 작업을 한 거뿐이야. 믹싱(mixing) 연습도 할 겸 해서."

그때 마빈이 콘솔 데스크 위에 올려져 있는 종이를 보며 물었다.

"저기에 뭐라 적혀 있는 거야? 악보는 아닌 거 같은데."

"흠. 설명을 하려면.. 둘 다 일단 앉아봐. 서있지 말고."

잠시 후 의자에 앉은 세 사람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말이야. 며칠 전부터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나는 곡이 하나 있었거든. 근데 이게 아주아주 옛날 노래라서 현재 쓰고 있는 옥타브랑 전혀 맞지가 않단 말이지. 그걸 서로 맞추느라 작업하고 있었던 거야."

수빈은 말을 하는 도중 종이를 집어 들어서 읽었다.

"고선(古洗), 중려(仲呂), 유빈(蕤賓), 황종(黃鐘), 대려(大呂), 태주(太簇), 협종(夾鐘), 임종(林鐘), 이칙(夷則), 남려(南呂), 무역(無射), 응종(應鐘)."

"...그게 도대체 뭐냐?"

"아주 예전 중국에서 사용하던 12음계야. 내가 생각하는 노래가 12음계로 되어 있어서 현대 음악으로 재현을 하려다 보니, 제일 먼저 이 12음계를 현대 음악에서 사용하는 옥타브로 바꾸는 게 필요하더라고. 근데 막상 바꾸려고 하니 처음에는 도저히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옥타브는 [도.레.미.파.솔.라.시] 해서 7음계잖아? 12개와 7개는 서로 맞추기가 너무 힘들겠다고 생각을 했었던 거지."

"그렇긴 하지."

그때 수빈은 로빈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말이야. 조금 더 생각해보니깐 해결책이 금방 나오더라고. 로빈은 피아노를 쳐봐서 알 거야. 옥타브는 7음계지만 실제로 피아노 건반을 보면 한 옥타브 안에 몇 개의 건반이 있는지를.."

수빈의 말에 로빈이 뭔가 떠오르듯 감탄성을 내뱉었다.

"아. 맞아! 그렇지. 건반으로만 따지면 12개지. 한 옥타브 안에 앞에 음보다 반음 높은 #인 검은색 건반이 5개 들어가지. 따라서 흰색 건반 7개, 검은색 건반 5개 합쳐서 총 12개지."

"바로 그거야.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옛날 중국에서 쓰던 12음계를 현대 옥타브를 사용하는 피아노에서 똑같이 적용시킬 수가 있겠더라고. 각 음계를 피아노 건반에 맞춰서 튜닝하는 작업을 조금 전까지 했었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나온 결론이.."

잠시 숨을 돌리며 수빈은 종이를 보고 읽었다.

"황종 C,  대려 C#, 태주 D, 협종 D#, 고선 E, 중려 F, 유빈 F#, 임종 G, 이칙 G#, 남려 A, 무역 A#, 응종 B로 최종적으로 튜닝이 됐어. 물론 예전 중국의 12음과 현대에서 쓰는 옥타브 12음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 그래도 튜닝을 하고 나니깐... 이젠 내가 생각하는 곡과 어느 정도는 비슷하게 들린다고."

자신이 한 작업에 만족감이 가득한 얼굴로 말하는 수빈을 보며 마빈이 물었다.

"그래서 나온 곡이 뭔데?"

마빈의 질문에 수빈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듯 아련한 눈빛을 하며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대답했다.

"[월광만조여휘아심곡(月光滿照如輝我心曲)]"

'이전 생에서 그 당시 내가 22살일 때였지.. 보타암(寶陀唵) 출신으로 12대 검후(劍后)인 백소린 소저가 나랑 둘이서 곤륜산 중턱에서 풍찬노숙을 할 때 검무를 추면서 불렀던 노래지. 그날 밤 하늘엔 휘영청 보름달이 떴었고 흩날리던 달빛 속에서 노래를 부르며 검무를 추던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어. 그걸 보고 3살 연상인 그녀에게 내가 한눈에 반했었지. 하지만 그때에..'

수빈이 한참 추억에 빠져 들어가고 있을 때 마빈이 말했다.

"흠. 제목만 들어선 무슨 노랜지 도저히 모르겠다. 나도 한번 들어보고 싶은데.. 로빈이랑 같이 듣게 한번 틀어줘봐."

분위기를 깨는 마빈의 말에 수빈이 자신도 모르게 슬쩍 째려보았을 때 로빈이 말했다.

"연습실에 있는 다른 멤버들도 불러서 다 같이 듣는 게 낫지 않을까?"

잠시 후 제1 녹음실에 BBG 멤버 전원이 모였다. 수빈이 멤버들에게 설명을 하였다.

"이 곡은 내가 직접 작곡한 곡은 아니고 내 머릿속에 있던 곡을 꺼집어내서 작업한 곡이야. 예전 중국 12음계 기반의 곡을 현대 옥타브로 바꿔서 일차적으로 믹싱을 했는데.. 아직 완벽하지는 않은데 들어줄 만은 할 거다. 지금 악기가.."

수빈이 말을 하고 있는 도중에 경빈이 손을 들었다.

"경빈이는 왜? 뭐 궁금한 게 있어?"

"형이 직접 작곡한 곡이 아니면 나중에 표절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까요?"

"흠. 바흐가 죽은 게 1750년 정도 되나? 이 곡을 부른 사람은 그보다 몇백 년 더 이전에 죽었으니깐 그런 문제는 없을 거다."

"이야. 그렇게 오래된 곡을 형이 어떻게 알고 있죠?"

"후우. 나에게 방학 때마다 무술을 가르쳐 주신 뒷산 할아버지한테서 들었다."

"우와. 그렇구나. 그럼 직접 녹음을 하신 거예요? 예전에 녹음기기를 만져보신 적이 있으세요?"

"하아. 녹음기기를 직접 만진 건 나도 오늘이 두발생초행(頭髮生初行)이다. 내가 직접 녹음을 한건 맞고."

"두발생초행? 그게 뭐죠?"

"대가리 털 나고 처음 해봤다고!! 경빈아. 그만 좀 물어보고 그냥 닥치고 들어!"

"..네. 형."

잠시 후 녹음실에 띵~ 띠딩 띵띵~ 이라는 탄현악기 소리와 둥~ 둥~ 두둥 하는 드럼 소리가 함께 섞여서 들리면서 전주가 시작되었고 계속해서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잔잔한 초반부가 지나고 격동적으로 꿈틀대는 중반부를 지나 휘몰아치는 종반부를 끝으로 마침내 음악이 끝났다.

잠시 녹음실에 정적이 흘렀다.

수빈이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멤버들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어때? 아직 악기도 다 현대식으로 못 바꿨고 드럼도 심벌즈도 없이 집어넣어서 좀 밋밋하긴 하지만.. 전체적으로 들어본 느낌이 어때?"

수빈의 말에 로빈이 대답했다.

"난 나쁘지 않은데. 조금 중국 색채가 나긴 하지만 그거야 편곡을 좀 하면 괜찮을 거 같고.. 특히 종반부가 이 곡의 하이라이트 같은데 난 듣기 좋더라."

마빈이 이어서 말했다.

"나도 나쁘지 않아. 초반 끝 무렵에서부터 나오는 악기 소리.. 끼이이잉 하는 소리. 그거 혹시 해금을 사용한 건가? 내가 국악 쪽은 잘 몰라서.. 암튼 그런 거랑 비슷한 소리가 계속 이어지는 게 나는 듣기 좋았어. 사람의 감성을 건드리는 뭔가가 있더라고.."

그때 경빈이 손을 번쩍 들고 말했다.

"형! 나도 궁금한 게 있어요."

"하아. 그래. 경빈아. 말해봐라."

"초반에요. 띵~ 띠딩 띵띵~ 하면서..."

그때 누군가 조심스럽게 녹음실 문을 노크하였다.

- 똑 똑 똑

갑자기 들린 노크 소리에 다들 문쪽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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