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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22화 (22/236)

#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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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헤이리에 있는 액션스쿨에 도착한 후 정도홍 무술감독을 다시 만났다.

"수빈아. 어서 와라. 다시 보니 정말 반갑다."

"안녕하세요. 정감독님. 처음 찍는 영화를 정감독님과 함께 해서 영광입니다."

자신의 손을 굳세게 잡고 등을 팡팡 두들기며 예상보다 훨씬 과하게 반겨주는 정감독의 눈빛에서, 수빈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무도인의 끈끈한 동지애를 발견했다.

'성격이 화끈하고 누굴 속일 줄 모르는 사람이야. 내 편으로 만들 가치가 충분해.'

수빈은 정감독의 사무실에서 정감독의 환심을 사기 위해 무술과 관련된 열띤 대화를 1시간 가까이 나누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여러 사람이 사무실로 찾아왔고 수빈과 인사를 나눴다.

선화 옹주역을 맡은 정세경, 좌검 이택민역을 맡은 장태호 그리고 이번 영화에서 무술 조감독을 맡은 조영기와 처음으로 안면을 텄다.

이들과 30여 분 정도 신변 및 영화 관련하여 대화를 나눈 수빈은 나름의 판단을 내렸다.

선화 옹주역의 정세경은 아역배우 출신으로 탄탄한 연기력과 현재 인기몰이 중인 여배우답게 아름다운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지닌 여배우다.

수빈이 정세경과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며 느낀 인상은, 인기 절정의 여배우 답지 않게 예를 지킬 줄 알고 말을 함에 있어서 지나침을 경계하는 현명한 여자구나라는 인상을 받았다.

'나에 대한 소문을 들어서 충분히 알 텐데도 불구하고 이런 조심스러운 태도는 본인 스스로의 중심이 확실히 잡혀있다는 거지. 괜찮은 여자야. 영화를 찍는 동안 특별히 문제 될 게 없겠군.'

좌검 이택민역의 장태호는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아버지 전상서]에서 맡은 배역으로 인기가 급상승한 배우로서 연차가 아직 얼마 되지 않은 신인배우에 속한다.

모델 출신답게 187cm의 훤칠한 키와 남자답게 굵은 선의 잘생긴 외모를 지녔다.

하지만 수빈은 인사를 나누면서 살펴본 그의 혼탁한 눈빛에서 품성을 짐작하였고 그와 나눈 대화에서 충만한 그의 자만심을 읽었다.

'자신만의 세상에 갇혀사는 느낌이로군. 그래도 완전한 쓰레기는 아닌 거 같아 보이는데.. 반인반쓰 정도 되려나. 이런 놈들은 그냥 가만히 놔두면 결국 나중에 아군 등에 칼질을 하지. 아무래도 먼저 수를 써야겠군.'

정도홍 무술 감독의 사무실에서 다 함께 잠시 한담을 나눈 후 일행은 본격적인 액션 연기 연습을 위해 무술 도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먼저 조감독 조영기의 액션 시연(試演)이 있었다.

가장 먼저 보인 시연은 영화에서 수빈의 첫 번째 등장 신(scene)인 마당에서 혼자서 무술 연습을 하는 장면이다.

칼을 높이 치켜들고 상단에서 하단으로 내려치기를 시작으로 좌측 베기, 우측 베기를 하고 다시 중단에서 찌르기를 하는 등 여러 동작들을 절도 있게 시범을 보였다.

수빈은 조감독의 시연을 보면서 하나하나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꿔서 외웠다.

'태산압정((泰山壓頂), 손방에서 감태 방향으로 횡소천군(橫掃千軍), 그다음 감방에서 손건 방향으로 횡소천군, 그런 다음 동자배불(童子拜佛)에 이은 선인지로(仙人指路)... 예전 조선 무관들이 육합검법을 사용했었나? 하기야 기본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겠지.'

조감독의 시연이 끝나자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액션스쿨에서 가장 칼을 잘 다룬다는 정감독의 소개처럼 여러 사람들 눈에는 조감독의 칼 솜씨가 훌륭해 보였나 보다.

하지만 수빈의 눈에는 겉멋만 들은 하수의 칼질일 뿐이었다.

'어디 가서 칼 맞아 죽기 딱 좋은 솜씨야. 나름 잘 배우긴 했지만 결정적인게 다 빠졌어.'

정감독이 수빈에게 다정하게 물어왔다.

"수빈아. 어떠냐 우리 조감독 솜씨가? 쉽게 따라 할 수 있겠어? 영화 촬영전까지 금방 본 동작들을 똑같이 따라 할 수 있어야 돼."

자신을 테스트하려는 듯 던지는 정감독의 질문에 수빈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겸손을 가장한 대답을 하려다 멈칫했다.

얼마 전 자신이 다졌던 결의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더 이상 숨지 않고 나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기로 결심했지. 후우. 그러려면 이번 영화가 그 시발점으로써 충분히 훌륭한 자리가 될 거야. 더 이상 꾸밀 필요도 숨길 필요도 없어. 나는 나일뿐이지.'

마음속으로 다시 한번 굳게 결심을 한 수빈은 겸손과 거짓을 모조리 걷어치우고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훌륭한 솜씨라고 생각합니다만 제가 배워왔던 무술과는 조금은 궤(軌)가 다르군요. 지금 조감독님이 보여준 방식으로 해야만 되는 겁니까? 아니면 제 방식으로 바꿔서 해도 상관없는 건가요?"

"당연히 바꿔도 되지! 나도 수빈이 네가 배웠다는 무술이 궁금하다고! 아직 촬영전까지 시간은 충분하니깐 네가 원하는 데로 바꿔서 한번 해봐."

정감독의 흥분된 목소리로 내지르는 답변을 듣고 수빈은 천천히 도장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서 칼을 움켜쥐었다.

'앞으로 영화를 편하게 찍으려면 기선제압이 필요하지. 특히 장태호 같이 자만심이 가득한 놈들은 그동안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초장에 실력으로 기를 죽여놔야만이 내가 편해진다. 안 그러면 날이 갈수록 설쳐대서 내가 피곤해져.'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수빈은 가슴을 활짝 편 후 천천히 심호흡을 하기 시작하였다.

[칼을 들어 상대와 생사결을 함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하느냐? 뛰어난 내공? 단련된 외공? 천하의 보검?  천만에. 제일 중요한 건 각오(覺悟)다. 언제든 나도 상대방의 칼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각오. 그런 각오가 서려있지 않은 칼은 단지 무희(舞姬)의 춤에 불과할 뿐이야. 그런 각오와 함께 반드시 상대방을 죽이겠다는 기세가 서려 있어야만 진정한....]

이전 생에서 칼을 처음 배울 때 들었던 검술 교관의 말을 떠올리며 수빈은 칼을 강하게 양손으로 움켜쥐고 느릿느릿하게 들어 올려 상단 자세를 취했다.

상단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수빈의 호흡이 조금씩 깊고 길어지며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으면서 냉정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명경지수와 같이 고요하던 수빈의 기세가 불어오는 폭풍처럼 사나워지고 한겨울 삭풍처럼 살을 엘 듯 매서워졌다.

수빈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하게 압박해 오는 수빈의 기세에 짓눌려, 자신도 모르게 긴장을 하며 침을 삼키기 시작했다.

그 순간 수빈의 왼발이, 아무런 기척도 아무런 소리도 없이, 반족장 앞으로 미끄러져 나갔다.

그런 후 수빈의 칼이 벼락같이 아래로 떨어졌다. 마치 앞에 서있는 상대방을 반으로 쪼개버릴 듯 광포한 기세였다.

구경하던 사람들이 흠칫 놀래며 자신들도 모르게 약속이나 한듯이 다들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마치 자신의 머리 위로 칼날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수빈은 아래로 떨어진 칼을 잡아당기는 오른팔에 맞춰 왼팔을 펴며 왼발을 중심으로 순식간에 반바퀴 회전한 후 다시 오른발을 반족장 내밀면서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 쾅

도장 마루에서 울리는 진각 소리와 함께 양손으로 다시 움켜쥔 칼이 오른쪽 사선 방향으로 섬광처럼 빠르게 뻗어 나갔다.

다시 칼을 회수하며 빠르게 반대 방향으로 돌은 수빈은 이번엔 왼발을 반족장 내밀며 다시 한번 진각을 강하게 밟았다.

- 쾅

양손으로 움켜쥔 칼이 꿈틀거리며 좀 전과 반대인 왼쪽 사선 방향으로 힘차게 날아갔다.

마지막으로 꼿꼿이 선채 중단 자세를 취한 수빈은, 마치 절벽에서 사람이 추락하듯 몸이 갑자기 아래로 푹 가라앉았다.

몸을 아래로 급속히 주저앉힘과 동시에 수빈은 한족장 길게 왼발을 앞으로 뻗고 마루가 부서질 듯 진각을 강하게 밟음과 동시에 오른손으로 칼을 위쪽으로 비스듬한 각도로 힘차게 찔러 넣었다.

- 콰앙

마지막으로 공중으로 높이 솟구쳐 올라간 칼을 빠르게 회수하며 오른발을 한족장 앞으로 신속하게 당겨서 꼿꼿한 중단 자세를 취하는 걸로 수빈의 시연이 끝났다.

기세를 풀고 눈빛을 다시 원상태로 돌린 수빈은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정세경은 놀란 토끼눈으로 소름이 돋았는지 팔뚝을 계속 문지르고 있었고 장태호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자신을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정도홍 감독은 자신을 감탄이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고 조영기 조감독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이 정도 반응이면 목적한 성과는 충분히 거둔 것 같군.'

수빈이 들고 있던 칼을 바닥에 내려놓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정감독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도 정감독의 박수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다 같이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멋진 칼질이야. 지켜보고 있는 내가 목이 달아날까 등골이 서늘하다. 수빈이는 도대체 어디서 그런 칼질을 배운 거야?"

정감독의 물음에 수빈은 아무런 말없이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하였다.

'이럴 때 주절주절 떠드는 건 하수지. 말없이 신비감을 심어 줘야 앞으로의 행보가 편해져.'

시간이 흘러 선화옹주와 좌검의 액션 연기도 시연이 끝났다. 이윽고 휴식시간이 되자 수빈은 장태호를 쳐다보았다.

수빈과 시선이 마주치자 장태호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하는 게 느껴진다.

수빈은 얼굴을 펴고 가을날 길옆에 피어난 코스모스처럼 친근한 미소를 지으며 장태호에게 천천히 다가가서 솜털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장태호씨."

장태호는 자신을 부르는 수빈의 말에 움찔하면서도 수빈의 입가에 어린 친근한 미소에 경계심을 조금 누그러 뜨리며 대답했다.

"....네?"

"우리.. 서로 나이도 비슷한데 편하게 친구로 지내면 어떨까요? 앞으로 영화 촬영 기간 동안 자주 볼 거 같은데 그런 게 서로 부담 없지 않겠습니까?"

"뭐... 저는 좋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편하게 말 놓으시죠?

"...흠. 그럴까?"

"그래. 태호야. 내가 영화가 첨이라 부족한 게 많다. 앞으로 잘 부탁해. 같이 열심히 해서 좋은 영화 찍어보자고."

"그래. 알았다. 근데 아까 너.... 졸라 멋지더라."

"별거 아냐. 내가 무술을 어릴 때부터 배워서 네가 보기에 좀 그렇게 보일 뿐이야. 너도 조감독님께 배우면 금방 그렇게 될 건데 뭐. 혹시라도 내가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 열심히 나도 도와줄게. 그리고... 너도 나 좀 도와줘라. 친구 좋은 게 뭐냐. 안 그래?"

"그래. 앞으로 잘 지내보자."

"그래 그래."

수빈은 장태호와 다정하게 어깨동무를 한 채 휴게실로 향했다.

'이 정도면 앞으로 영화 찍는데 필요한 사전 작업은 충분히 한거 같군. 집에 가서 두 달 남았다고 미뤄 뒀던 영화 관련 공부도 빨리 시작해야겠는걸.'

한편 그 시각.

서울시 용산구 한강로에 있는 이촌 1동. 흔히 이촌동에 있는 세 마을 중에 가장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부이촌동이라고 불리는 곳.

부촌으로 알려져 있는 동부이촌동 중에서도 가장 부자들만 모여서 살고 있다는 단독주택 밀집 지역. 그중에서도 나름 큰 평수를 자랑하는 한 저택의 호화로운 거실에서 중년 여성이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 중이다.

젊었을 때 미모가 대단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아름다운 중년 여성은 관리를 잘 받았는지 아직도 팽팽한 얼굴과 날씬한 몸매를 지녔다.

하지만 그녀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심기가 몹시 불편한지 목소리에 날이 서있었고 앙칼졌다.

"김실장. 정말 제대로 확인한 거 맞아요?"

[네. 맞습니다. 서류상으로는 영국에 입양된 게 틀림없습니다.]

"그럼 빨리 처리를 해야 될 거 아니에요. 그냥 계속 이대로 놔둘 건가요?"

[저희가 슬쩍 한번 탐색을 해봤습니다만... 상대가 유명 연예인이라 바로 손을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모님. 그래서 일단 확실히 알아보기 위해서 조속히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려고 지금 저희 쪽에서 작업 중에 있습니다.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금만 기다려 주시죠. 사모님.]

"...정 그럼 할 수 없죠. 김실장만 믿을게요. 경비랑 수고비는 걱정 말고 최대한 빨리 서둘러주세요."

[알겠습니다. 사모님.]

전화를 끊은 중년 여성은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린 채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내뱉었다.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쌍팔년도도 아닌데 남아 선호 사상이라니. 이따위께 내 발목을 잡을 거라곤 상상도 안 해봤는데... 하아. 유명 연예인만 아니었음 벌써 처리했을 텐데."

중년 여인은 다시 전화기를 집어 들은 후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BBG의 마빈이라.. 내가 김실장만 믿고 가만히 있을 순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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