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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연예인이 되다-20화 (20/236)

# 20

7 - 2

수빈은 힘차게 진각을 밟으며 얼핏 예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경(經)이란 무엇이냐? 말 그대로 지나간다는 뜻이다. 자신이 원하는 목표물 앞에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들. 그게 갑옷이든 인간의 근육이든 상관없이 지나가서 자신이 목표한 지점에서 힘을 터뜨릴때 비로서 경을 터득했다고....."

수빈은 정신을 고도로 집중시켜 하나로 모았다.

강한 진각을 통해 얻은 거센 반탄력을 유연하게 허리를 비틀어 어깨 쪽으로 유도한 후 내처 장심 쪽으로 이끌었다.

'목표는 간.'

봄바람이 일듯 부드럽게 손을 내뻗어 남자의 복부 쪽을 가볍게 타격하며 손바닥에 모인 힘을 순간적으로 상대의 복부 안으로 밀어 넣었다.

- 퍽

마치 물이 가득 찬 1.5리터 생수통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린 듯 작은 소리가 났다.

수빈을 향해 덮쳐오던 남자의 몸이 일순 정지한 것처럼 보였다.

2~3초 정도가 지났을까?

남자의 얼굴이 샛노래지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입에 거품을 물면서 꺽꺽 숨넘어가는 소리를 흘리기 시작했다. 그걸 지켜본 주변의 사람들이 놀라서 떠들기 시작했다.

- 꺄악. 매니저 오빠.

- 이게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 어떡해. 숨이 안 쉬지나 봐.

- 수빈아. 지금 뭐 한 거야?

"시끄럽다. 안 죽으니깐 걱정 말고. 간에 가해진 충격 때문에 극통이 발생해서 몸이 경직된 거뿐이야. 간 근처의 담도랑 혈관 쪽이 뒤집... 하아. 내가 지금 이걸 왜 설명하고 있는 거지."

수빈은 하던 말을 멈추고 고개를 잠깐 흔든 후 리더인 지영이에게 질문을 하였다.

"저 인간이 핑크 베리 매니저야?"

"네. 오빠."

"매니저 한지 얼마나 됐어?"

"4일 됬어요."

"뭐? 4일?"

'매니저 된지 4일밖에 안됐다? 그런 놈이 이런 일을 저질러? 이건 절대 그냥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군.'

"경빈이는 지금 바로 성철이 형한테 전화해서 이리로 오라고 하고 성빈이는 우리 유팀장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 가까운 곳에 있으면 당장 부르고.. 알았냐?"

- 네. 형.

- 알겠습니다.

수빈은 경빈과 성빈에게 지시를 한 후 바로 배우 1팀 박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빈이냐?]

"네. 수빈입니다. 박실장님. 지금 바로 BBG 연습실로 오실 수 있습니까? 문제가 생겨서요."

[문제? 알았다. 지금 바로 내려 가마.]

전화를 끊은 수빈은 에리카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눈을 맞춘 채로 낮고 침착한 목소리로 불렀다.

"에리카."

떨리는 목소리로 에리카가 대답했다.

"...네.. 오빠."

"이 회사에는 훌륭한 어른들이 많이 있단다. 지금 오빠가 이 회사에서 가장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 한 분을 이리로 불렀단다. 오빠가 지금 무슨 말하는지 이해되지?"

에리카가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에리카가 올해 몇 살이지?"

"16살요."

"그렇구나. 아직 어리구나. 에리카처럼 어릴 때에는 힘든 일이 있으면 믿고 따를 수 있는 어른들에게 일을 맡기면 된단다. 오빠도 에리카보다 훨~씬 어른이고. 에리카가 고민하고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단다. 알겠지?"

"네."

그때 수빈의 감각에 매니저라는 남자가 고통이 멈췄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이 잡혔다. 그리고 다시 자신에게 괴성을 지르며 덮쳐오는 것을 느꼈다.

- 으아악~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돌려 매니저를 쳐다본 수빈은 가슴속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가. 죽여버린다.'

수빈은 매니저를 향해 옆으로 서있던 자세 그대로에서 양쪽 발뒤꿈치를 살짝 들은 후 양손을 앞으로 내밀어 맞잡아서 포란지세를 취했다.

그 상태에서 몸을 아래로 주저앉으면서 뒤꿈치로 바닥을 찍은 후 오른팔을 접어 팔꿈치를 내밀었다.

육합권의 비기 중의 하나인 포란정주(抱卵丁肘)의 자세로써 제대로 타격하면 반치짜리 철판도 우그러뜨릴 수 있다는 필살기다.

수빈은 덮쳐오는 매니저를 향해 왼발을 쭉 펴면서 바닥을 차고 오른발을 매니저 쪽으로 미끄러뜨렸다.

상대의 명치 쪽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강하게 꽂아 넣어 버리려다 수빈은 자신이 순간적으로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놈을 지금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수는 없겠지. 하아. 이 세상은 신경 써야 될게 너무 많아.'

생각을 빠르게 정리한 수빈은 포란을 한 양손을 풀고 팔꿈치에서도 살짝 힘을 뺀 상태로 타격했다.

- 꽝

팔꿈치에 명치를 얻어맞은 매니저는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새우처럼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명치에 붙인 채 꺼~억하는 신음성을 흘리면서 몸을 비비꼬며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박실장이 들어왔다.

잠시 후 모든 일이 정리된 뒤 박실장 방에서 두 사람 간의 대화가 오고 갔다.

"매니저란 놈이 내일 행사에 에리카를 빼버린다고 협박했다더군. 그걸 빌미로 어린애 다리를 여기저기 만진 모양이야. 부상 정도를 알아본다는 핑계로 말이지. 하아. 쓰레기 같은 새끼가... 다행히 그 이상 심한 일은 없었다고 하더군."

"그래서요?"

"그 놈은 다른 자리로 보내기로 했다. 앞으로 이쪽 사옥 근처에는 얼씬도 못할 거야."

"그래서요?"

"음? 여기서 뭘 더 원하지? 검찰이나 경찰에 고발을 하길 원해? 그게 가능하지 않다는 건 너도 잘 알잖아?"

"흠. 박실장님께서 갑자기 바보 행세를 하시는군요."

"갑자기 그게 뭔 소리야?"

"박실장님께서 제가 문제적 인간 나갈 때 그쪽 담당 피디한테 저를 천재라고 평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절 떠보시는 겁니까? "

"......"

"처음 보는 얼굴인 남자가 회사에서 새롭게 밀고 있는 걸그룹 매니저가 됐습니다. 그리고 매니저가 된지 불과 4일 만에 사고를 쳤죠. 그런 인간 말종인 쓰레기가 뛰어난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저는 전혀 생각이 들지 않군요. 그럼 결론이 나오지 않습니까?"

"하아."

"누굽니까? 뒷배가? 저런 쓰레기를 국내 3대 기획사인 YK에 집어넣어 주고, 회사에서 새롭게 미는 걸그룹 매니저까지 맡게 밀어주고, 마지막으로 이런 사고까지 쳤는데 안 잘리고 다른 부서로 이전하는 걸로 마무리 짓게 만든 사람이? 누구죠?"

"후우. 역시 수빈이는 똑똑해. 숨길 수가 없군. 그 쓰레기는 AR팀을 맡고 있는 정기호 팀장 조카야. 그래서 이 정도로 마무리 지은 걸세. 정팀장이 가수 쪽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이라 이거 이상으로 일을 더 키울 수가 없어."

그 말을 듣고 수빈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들어 천장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유유상종이라. 끼리끼리 논다는 말이 딱 맞는군. 케빈이 작사한 걸 훔쳐 간 정팀장이란 쓰레기와 매니저가 친척이란 말이지.'

"흠. 잘 알겠습니다. 박실장님도 어쩔수 없었겠죠."

'맘 같아선 다 같이 쓸어버리고 쉽지만 지금은 무리지. 아직은 내가 힘이 모자라. 예전 같았음 두 놈 다 이쁘게 목을 잘라버리면 간단히 끝날 일을. 후우. 복잡한 세상이야.'

박실장과 면담을 마친후 수빈은 연습실로 다시 돌아갔다.

핑크 베리 멤버들이 플로어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고, 에리카는 많이 진정된 얼굴로 벽에 기대어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는 BBG 멤버들이 같이 앉아서 구경을 하고 있었다.

수빈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서서 에리카 쪽으로 조용히 다가가자, 다들 하던걸 멈추고 근처로 모였다. 수빈은 에리카 앞에 앉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리카. 이제 좀 괜찮아?"

"네. 오빠. 이제 괜찮아요. 다만..."

"다만?"

에리카가 눈물이 그렁그렁 한 눈으로 수빈을 쳐다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발목이 아파서 내일 행사에는 제가 못 나갈 거 같아서 맘이 안 좋아요."

"그런 행사 한번 빠져도 큰 문제없어. 그러니 빨리 병원 가서 치료받아야지."

에리카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살짝 삔 거라 며칠 지나면 나을 거예요. 어차피 춤 연습 안 하면 금방 나을 거라 병원 가기 싫어요."

'후우. 확실히 아직 어리군. 속상해서 저러는 게지.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은 상태라 강제로 병원에 데리고 가기도 뭐 한데. 겉으로 보기엔 저래도 속으로는 많이 놀랐을 거란 말이지.'

수빈은 맘을 정하고 일어서서 멤버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성빈아. 응급 상자 어디 있는지 아냐? 침놓을 때 쓰는 침통 같은 것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없으면 바늘 같은 거라도 되고."

"형. 응급 상자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요. 침통은 잘 모르겠는데. 어디에 쓰시게요?"

"에리카 발목 삔 거 임시방편으로 치료 좀 해줘야지."

그때 에리카의 발목을 치료한다는 말에 지영이가 급하게 말했다.

"저 반짇고리에 바늘 있어요. 오빠. 가져올까요?"

"그래. 그거라도 가져와라."

잠시 후 수빈은 에리카 옆에 앉아서 바늘을 라이터로 달군 후 소독용 알코올로 몇 번을 거듭해서 씻으면서 말했다.

"에리카. 오빠가 임시로 치료를 해줄 테니깐 오늘은 꼼짝 말고 쉬는 거야. 그리고 내일 경과 봐서 춤출 수 있으면 행사에 가는 거고 아니면 빠지는 거다. 오빠랑 약속하는 거야?"

행사에 참가할 수 있는 한 가닥 가능성이 생겨서 그런지 밝은 표정으로 에리카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약속할게요."

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마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수빈아. 근데 너 침도 놓을 줄 아는 거야?"

"그래 인마. 중고등학교 겨울방학 때마다 산에 있는 수염 긴 할아버지한테서 무술이랑 같이 침술도 배웠다. 웬만한 돌팔이들보다 내가 더 나을 거다."

"아하. 그랬구나."

마빈이 밝은 목소리로 이해했다는 듯 대답을 하자 수빈은 살짝 한숨을 쉬었다.

'쟤는 그걸 또 다 믿네. 순진하기는. 하기야 다 거짓말은 아니지. 전생에서 불치병에 걸린 이후로 죽기 전까지 오로지 의술 하나만 팠으니 웬만한 의사보다 내가 더 낫긴 하지. 결국 내 병은 못 고쳤지만.'

잠시 후 수빈은 에리카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여기저기 집으면서 혈맥을 잡았다.

'소주천만 돼도 내공을 밀어 넣어보면 간단히 알 수 있는 것을... 일일이 다 손으로 확인을 해야 되는군. 어떻게든 빨리 기를 늘릴 방법을 알아봐야 할 텐데.'

손으로 혈맥을 다 확인한 수빈은 족태음지근(足太陰之筋) 쪽의 아시혈(阿是穴)에 침을 깊숙이 찔러 넣었다. 침을 찔러 넣자마자 검게 변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수빈은 알코올이 묻은 약솜으로 계속해서 피를 닦아냈다. 마침내 검은 피가 멈추고 선홍색 피가 흘러나오자 수빈은 침을 빼고 약솜으로 누르며 에리카에게 말했다.

"여기 꾹 누르고 있어. 잠깐만 누르고 있으면 된다."

"네."

'응혈은 다 뺏고, 이제 혈맥만 좀 활성화시켜주면 되겠군.'

수빈은 족태음지근과 족태양지근 쪽에 침을 몇 방 더 놓고선 붕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에리카에게 손을 때라고 말한 후 발목 부위를 붕대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내일까지 이쪽 다리는 쓰면 안 돼. 내일 오빠가 다시 확인해서 경과가 좋으면 같이 행사가는 거고 아니면 빠지는 거다. 알았지?"

"네. 오빠. 고마워요."

다음 날 수빈은 점심시간에 연습장으로 다시 나왔다. BBG의 다른 멤버들과 핑크 베리 멤버들이 행사를 가기 위해 다 모여 있었다.

"음? 내가 매일 늦네? 이상한데. 시간 맞춰 온 건데."

"우리가 일찍 온 거야. 네가 늦은 거 아니다."

마빈의 말에 수빈은 고개를 끄덕거린 후 에리카를 쳐다보았다.

"다리는 좀 어때?"

"오빠가 어제 치료를 너무 잘해줘서 지금 하나도 안 아파요!"

"뻥 치기는... 앉아봐. 어디 한번 보자."

붕대를 풀어 에리카의 발목을 몇 군데 눌러본 후 수빈이 말했다.

"경과가 좋네. 아직 어려서 그런가. 더 쉬는 게 좋긴 한데 이 정도면 같이 행사는 갈 수 있겠다. 그 대신!"

"네, 오빠. 그 대신?"

"행사 끝나고 나면 2~3일간 무리하지 말고 쉬어야 된다. 알겠지?"

"네!"

잠시 후 BBG와 핑크 베리는 행사를 위해 각자 차를 타고 행사지로 출발하였다.

수빈은 요 근래 고민 중인 기를 획기적으로 빨리 늘릴 방법을 찾느라 밤에 잠을 많이 못 자서, 행사지로 가는 차 속에서 계속 단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잘 자고 있던 수빈이 깜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세게 일어섰는지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다면 아마 차 지붕에 머리를 부딪혔으리라.

'이건 뭐야? 이런 건 이 세상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건데.'

경악한 얼굴로 수빈이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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