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9화 (19/236)

# 19

7 - 1

수빈은 연습실 한가운데에 홀로 외로이 서 있었다.

핑크 베리 멤버 6명과 BBG 멤버 5명, 합쳐 총 11명이 한쪽 벽 쪽에 나란히 붙어 앉아서 홀로 서있는 수빈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후. 혼자 서있으니 무지 쪽팔리는군. 이것들이 나를 놀리려 이러는 건가?"

수빈은 좀 전의 상황을 다시 되새겨봤다.

뛰어난 각선미를 뽐내는 듯 하나같이 짧은 반바지를 입고 깜짝 등장한 핑크 베리 여섯 소녀로 인해서, 한바탕 떠들썩한 인사가 서로 오고 간 뒤 성빈이가 수빈에게 조용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수빈이. 아니 수빈이 형."

"음? 얘가 뭘 잘못 먹었나? 갑자기 왜 형이라 부르냐?"

"에잉. 왜 이러세요. 저랑 경빈이가 형보다 한 살 어리잖아요. 둘이서 오늘부터 수빈이 형이라고 부르기로 결정했어요."

"나야 상관없긴 한데. 좀 뜬금없긴 하다."

"예전에는 좀... 아시잖아요. 형이라고 부르기가 좀 그랬다는 거. 지금은 충분히 형이라고 불러드릴 수 있어요."

"알았어요. 네 맘대로 하세요. 중요한 것도 아니고. 근데 왜?"

"형. 지금 형이 좀 전에 췄던 춤 좀 다시 볼 수 있을까요? 제가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내가 춘 춤을 다시 보고 싶다고?"

"네. 형이 춤추는 걸 다시 보고 싶어요."

"왜? 내가 춘 춤 동작이 틀렸냐?"

"그런 건 아닌데요. 다시 좀 보고 싶어서요,"

"나 혼자? 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쪽팔리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아이돌이 사람들 앞에서 춤추는 걸 쪽팔려 하면 어떡해요?"

결국 수빈은 성빈이의 성화에 못 이겨 단독으로 댄스를 추게 되었다. 잠시 후 [롤러코스터 보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수빈이의 단독 댄스가 시작되었다.

수빈이의 춤이 계속 진행되자 기대감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던 핑크 베리 멤버들과 BBG 멤버들의 눈빛이 점점 감탄 어린 눈빛으로 바뀌어갔다.

댄스가 거의 끝나갈 무렵 BBG에서 댄스라면 알아주는 성빈과 경빈이 서로 눈을 마주친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수빈의 단독 댄스가 끝나자 힘찬 박수와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 오빠. 멋있어요.

- 짱 잘 춘다. 오빠 최고.

- 수빈이 형. 대박. 춤이 끝내줘요.

- 수빈이 춤이 예전보다 더 좋은데.

- 선배님. 멋있어요.

춤을 끝낸 수빈은 부끄러움으로 약간 상기된 얼굴로 성빈에게 다가갔다.

'이거야 원. 무림대회 결승전에서 무당파 태극일검이랑 비무할 때보다 춤추는 게 오히려 더 긴장이 되는군.'

"성빈아. 보고 싶은 거 확인해 봤어? 내 춤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거야?"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형. 형 춤이 예전보다 너무 멋있어져서 그런 거예요. 나보다 더 잘 추는 거 같은데요. 이런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되려나?"

그때 핑크 베리 멤버 중에 특이하게 루스삭스를 신고, 유독 수줍음을 많이 타는듯한 에리카라는 예명의 소녀가 기어가는듯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춤이 절도가 있어요. 그리고 예전에 보던 춤보다 힘이 더 느껴져요."

성빈이가 에리카의 말이 맞다는듯 손뼉을 쳤다.

"절도! 맞아요 그거. 예전보다 춤이 확실히 절도가 있어요. 힘이 넘쳐 보여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박력이.... 뭐랄까. 마치 장수나 무사가 칼춤을 추는듯한 착각이 들어요. 암튼 우리 원래의 춤보다 더 멋있어졌어요."

"그래? 나야 뭐 예전부터 추던 대로 춘건데."

"형. 어떻게 하면 갑자기 그런 절도 있고 박력이 넘치는 춤을 출수 있게 된 겁니까? 우리 멤버들 전부다 그런 식으로 출수 있으면, 다음 신곡 때 제가 아주 멋진 안무를 짤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이 드는데. 혹시 알려줄 수 있어요?"

성빈의 말에 수빈은 그런 춤이 가능한 원인을 찾기 위해 잠시 머릿속을 정리했다.

'아무래도 그거겠지. 딴 이유는 없을 거 같은데. 흠. 말해봐야 소용없을 거 같긴 한데.'

"성빈아. 그럼 너 롤러코스터 하이라이트 부분 있지. 거기 잠깐만 춰봐라. 형이 확인할게 있으니깐."

성빈이 수빈의 요청에 무반주로 하이라이트 부분인 앉았다 일어서는 춤을 추자 수빈이 유심히 지켜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 맞군.'

"흠. 내 생각엔 말해줘도 못 따라 할거 같긴 한데. 일단 들어나 봐라. 너희들이 추는 춤은 참장공(站樁功)을 행할 때 일종의 명식(明式)에 해당된다. 내가 추는 춤은 암식(暗式)에 가깝고."

"참장공? 명식? 암식? 그게 무슨 말이에요?"

"참장공은 쉽게 말하면 보통 마보(馬步)라고 부르는데 일종의 기마자세 같은 거야. 명식이라는 건 너희들이 무릎을 굽히는 건 뜀뛰기 용이라는 거야. 폴짝폴짝 뛰기 위해서 무릎을 굽힌다는 뜻이지. 하지만 내가 무릎을 굽히는 방식은 체중이동을 위한 거야. 원래는 무술에서 진각을 밟기 위해 쓰는 건데, 빠른 중심이동을 통해 하중을 위에서 아래로 순간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지. 그런 차이에 의해서 박력이..."

말을 하다 수빈은 의미 없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에혀. 더 말해준다고 내 말이 무슨 말인지 너희들이 알아나 듣겠냐. 그냥 나랑 비슷한 방식으로 춤을 추려면.. 어디 보자.."

잠깐 머리로 계산한 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어림잡아 6개월은 피똥을 싸야 배울까 말까 하다."

멤버들을 단념시키려는 수빈의 단정적인 말에 오히려 성빈을 포함한 멤버들의 얼굴이 화사하게 펴졌다.

- 6개월이면 시간은 충분하잖아?

- 그렇지? 다음 신곡 때까지 그 이상 걸릴 건데.

- 6개월 투자해서 저 춤을 배울 수 있으면 남는 장사지.

- 우리같이 원래 춤꾼들은 더 금방 배우지 않을까요?

- 3개월 정도면 확실히 배울 거 같은데.

멤버들끼리 하는 말을 들으며 수빈은 어이가 없었다.

"이것들아! 너희들 맘대로 앞에 거만 잘라 듣고 뒤에 건 안 듣냐? 앞에 6개월만 들리고 뒤에 피똥은 안 들려? 피똥이라곤 한 번을 싸본 적도 없는 것들이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그 정도로 힘들다는 거 아니에요? 뭐 댄스 연습은 어릴 때부터 쭉 했으니깐 충분히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자신 있다는 듯 내지르는 성빈의 말에 수빈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걸 못 버텨서 무공 배우는 걸 포기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데. 쯧.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리지.'

지금 상태에서는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걸 느낀 수빈이 정리했다.

"그래 그래. 알았다. 다음에 기회 되면 내가 아~주 친절하게 알려주지. 그건 일단 넘어가고. 핑크 베리 애들 춤도 좀 봐야지."

수빈의 말에 핑크 베리의 임시 리더 격인 지영이가 손을 들어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선배님들. 얘들아 앞으로 나와."

잠시 후 연습실 가운데에서 피라미드 형태로 도열한 핑크 베리의 맨 앞 센터에 선 지영이가 설명했다.

"저희는 아직 파일럿 그룹이라서 발표한 곡이 없습니다. 그래서 내일 행사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픽미업]이랑 2NE1 선배님들의 [내가 제일 잘 나가] 랑 [Fire] 세곡을 준비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뮤직 주세요!"

잠시 후 픽미업 MR이 흘러나오고 깜짝하고 발랄한 여섯 소녀들의 픽미업 댄스가 시작되었고, 덩달아 흥분한 BBG 멤버들의 떼창도 같이 시작되었다.

"~달콤한 너를 향한 shining light 너만의 날~"

- hey! baby, show you my paradise!

"pick me, pick me, pick me up!"

- pick me, pick me, pick me up!

BBG 멤버들의 픽미업 떼창을 지켜보며 수빈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여간 남자애들이란. 그런데 내가 봐도 확실히 깜찍하긴 하네. 노래도 춤도 수준급인데. 잘하면 핑크 베리 얘네들은 뜰 수 있을 거 같은데.'

수빈도 핑크 베리의 댄스를 본격적으로 감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수빈의 눈에 거슬리는 게 들어왔다.

'흠. 이건 그냥 놔둬선 안되겠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수빈은 큰 소리로 외쳤다.

"음악 꺼! 춤도 그만 멈추고!"

잠시 후 음악이 멈추자 핑크 베리 멤버들의 댄스도 중단되었다.

아쉬운 눈빛으로 마빈이 수빈에게 큰 목소리로 타박을 했다.

"야 너 왜 그래? 한참 잘 보고 있었는데. 쟤네들도 뻘쭘해 하잖아."

"닥쳐! 야 에리카? 맞나? 너 이리로 좀 와봐라."

핑크 베리 멤버 중 수빈에게 지적을 당한 에리카가 긴장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수빈의 앞쪽으로 걸어왔다.

"앉아봐."

"왜 그러세요? 선배님? 제가 뭐 실수한 거라도?"

"하아. 이런 바보 멍청이를 봤나. 일단 앉아 보라고."

에리카가 주저하며 결국 수빈의 앞에 주저앉자 수빈도 같이 털썩 주저앉았다. 그걸 본 주변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한마디씩 내뱉었다.

- 선배님. 에리카 혼내지 마세요.

- 수빈아. 왜 그래? 말로 해라. 말로.

- 형. 미쳤어요? 갑자기 왜 그래요?

- 에리카 어떡해. 선배님. 제발 화내지 마세요.

"시끄러우니깐 다들 입다물어! 에리카. 너! 지금 발목 완전 작살난 상태지?"

"네? 전혀 아니에요. 괜찮아요."

"뻥 치고 있네. 내일 행사에 행여 못 나갈까 봐 지금 억지로 참고 있는 거 아냐?"

"아니에요. 내일 행사에 전혀 문제없어요."

두 사람의 주고받는 대화에 웅성대던 주위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럼 지금 신고 있는 양말 벗어 봐라."

수빈의 말에 에리카가 주저하자 다시 말했다.

"내가 회사에서 양아치라고 소문 난건 알지만, 적어도 후배 여자애들한테까지 치근덕거리지 않는다. 그러니깐 안심하고 벗어 보라고."

망설이던 에리카가 루스삭스를 벗자 복숭아뼈 옆에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어있는 발목이 드러났다. 그걸 본 주변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랄 때 수빈은 혀를 차며 손을 뻗었다.

"쯧. 이러고서 무슨 춤을 춘다고. 도대체 너희 같은 멤버 애들이랑 매니저는 뭐 하는 거야? 애 상태가 이런 줄도 모르고. 어디 얼마나 심한가 한번 보자."

수빈이는 손을 뻗어 에리카의 부어 있는 발목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짧게 깎은 머리에 약간은 험상궂은 인상의 건장한 남자가 들어오면서 큰 소리로 외쳤다.

"핑크 베리! 핑크 베리 여기 있나?"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갑자기 등장한 남자에게 쏠렸고 건장한 남자는 에리카의 발목에 손을 대고 있는 수빈을 발견했다.

"야! 너! 지금 감히 어디를 만지고 있는 거야!"

남자가 소리칠 때 수빈은 발목에 대고 있는 손을 통해 에리카의 몸이 갑자기 미친 듯이  떨리는 걸 느꼈다.

'호오. 이것 봐라? 이거 느낌이 아주 더러운데. 이 엿 같은 느낌은...'

험상궂은 인상의 남자가 흥분하여 수빈에게 달려들 때 그걸 지켜본 수빈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남자가 자신을 덮치듯 가까이 다가오자 수빈은 참장공 암식의 방법으로 마치 빙판을 미끄러지듯 왼발을 앞으로 쭉 뻗으며 진각(震脚)을 힘차게 밟았다.

- 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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