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8화 (18/236)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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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홍 무술감독이 자신에게 빠르게 다가오는 걸 보고 수빈은 한번 더 느꼈다.

'감각이 좋군. 역시 제대로 배웠어.'

정감독이 자신 앞에 서자 수빈은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정도홍 무술감독님. 맞으시죠?"

"맞네. 내가 정도홍이라네. 눈빛을 보아하니 제대로 무도를 익힌 거 같은데. 그런 자네는 누군가?"

"아이돌 그룹 BBG 리더 수빈이라고 합니다. 오늘 [달빛 속의 호위무사] 오디션이 있어서 왔습니다."

"아이돌이라고? 요즘 아이돌은 댄스가 아니라 무도(武道)를 배워야 데뷔가 가능한가 보지? 다시 묻지. 자네는 누군가? 어디서 무도를 배웠나?"

그때 아까 수빈에게 수신기와 마이크를 건네줬던 운동복 차림의 날렵한 몸매의 여성이 다가왔다.

"스승님. 장진석 감독님께서 오디션 관련해서 의논할게 있다고 빨리 사무실로 와주십사 전해달라고 합니다."

장감독이 고개를 돌려 여성을 보며 대답했다.

"음. 알았다. 민지야. 금방 간다고 전해줘라."

다시 고개를 돌려 수빈을 보며 물었다.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묻지. 자네는 진정한 무도인(武道人)이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장감독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린 수빈이 대답했다.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유재식, 박병수가 투톱으로 진정한 무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빈의 어쭙잖은 개그에 정감독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가. 지금 나랑 장난치는 건가? 젊은 친구가 뭘 그렇게 숨기려고 의뭉을 떠는 거야? 무도인이 무엇인지 제대로 대답해보게. 내가 자네 생각을 진지하게 한번 들어보고 싶어서 그런 걸세."

수빈은 장감독의 말에 아차 했다.

'이런. 진정한 나를 세상에 드러내리라고 결심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아직도 예전 군사시절 의중(意中)을 감추고 숨기던 습관을 못 버렸구나. 하아. 박실장에게 그렇게 여러 번 충고를 듣고서도 아직도 못 고쳤군.'

수빈은 더 이상 세상 앞에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다시 한번 굳게 결심하고 정감독을 직시하며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 정감독님. 백척간두진일보(百尺竿頭進一步)라는 말을 아십니까?"

"음. 그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네."

"백 척이면 지금 단위로는 30미터? 그 정도쯤 되겠죠. 그렇게 높은 간두, 즉 장대 꼭대기에 매달려 있으면 밑에 있는 사람들이 쳐다보면서 저 사람은 저런 위험한 곳에 올라가 있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겠지."

"하지만 그건 단지 술(術)의 단계일 뿐입니다. 그냥 서커스 처럼 묘기를 하고 있는 거에 불과할 뿐이죠. 장대 위에 올라가 단순히 재주를 부리는 거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진정한 도(道)는 그런 상태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습니다. 거기서 진일보, 말 그대로 그 상태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만 됩니다."

"한 발 더라. 그러면 위험하지 않겠나?"

"당연히 위험합니다. 떨어져 죽기 딱 좋겠죠. 하지만 목숨을 걸지 않고서도 구경이 가능할 정도로 도(道)는 싸구려가 아닙니다. 죽기를 각오해야만이 그나마 간신히 꼬리라도 구경해 볼 수 있는 게 도라고 생각합니다. 무도인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죽기를 각오하고 무를 수련하는 자가 진정한 무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흐음. 그럼 자네는... 그런 식으로 무도를 수련한 적이 있단 말인가? 죽기를 각오하고?"

정감독의 질문에 수빈은 이전 생의 기억이 떠올라서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는 여러 번 있었습니다. 자세히는 말씀을 못 드리지만요."

"그런가? 이렇게 젊은 친구가 예전에 죽기를 각오하고 수련했었다라.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군. 자네의 진지한 의견 감사히 잘 들었네. 오디션을 보러 왔다고 했지?"

"네. 그렇습니다."

"알겠네. 좋은 결과 있길 바라네."

염화시중과 같은 환한 미소를 지은 정감독이 수빈의 어깨를 몇 번 툭툭 두드리고 나서 사무실로 돌아가버린 후 얼마 뒤 우검 송해섭 오디션이 시작되었다.

다음 날 아침 수빈은 배우 1팀 박실장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빈아. 너 도대체 오디션장 가서 뭘 하고 온 거냐?"

"네? 그냥 대사 몇 줄 연기했죠. 김동수 위장(衛將)! 어서 빨리 피하셔야 됩니다. 적들이 몰려옵니다. 제가 앞장서서 뚫겠습니다. 옹주님! 위험합니다. 뭐 그런 대사들요. 칼잡이가 뭐 특별한 대사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주인공도 아니고 조연인데."

"흠. 그래? 그런데 정도홍 무술감독이 왜 널 뽑겠다고, 네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을 하지?"

"일전에 제가 몸쓰는 건 자신 있다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액션 연기를 잘해서 그런가 보죠."

"단순히 그런 정도가 아니던데? 정감독이 만약 너를 안 뽑으면 자신은 이번 영화 무술감독을 안 하겠다고 장진석 감독에게 거의 협박을 하고 있다던데?"

"하하하. 제가 뭘 알겠습니까."

'하여간 전생이나 이생이나 무도에 목매다는 양반들은 어쩜 이렇게 한결같이 외골수인지. 하기야 그렇지 않으면 누가 그 형극(荊棘)의 길을 평생 걸어갈까.'

"그래? 암튼 잘 됐어. 정감독 그 양반이 그 정도로 강력하게 밀어붙인다면 수빈이 네가 조연 자리를 딸 가능성이 높겠어. 고생했다. 그리고 담 주쯤에 [죽어가는 것에 이유 같은 건 없다] 오디션이 있을 거니깐 대본 좀 미리 읽어둬라."

"네? 달빛 조연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요? 그런데 또 오디션을 봅니까? 영화 촬영 일자가 겹치면 어떡하려고요?"

"너 말대로 주연도 아니고 조연이잖아. 몇 카트 나오지도 않을 건데 무슨 걱정이야. 그런 걱정 말고 오디션 준비나 잘해."

수빈은 박실장의 말에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그때 대화가 끝났을 때 겉으로는 웃었지만 정감독 그 양반 눈 속에 횃불이 이글거리던데.'

"제가 조연으로 확정되면 출연 횟수가 늘어날 거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서 말이죠."

"그래~에? 그럼 더 잘 된 거지. 뭐가 걱정이야?"

수빈은 더욱 기뻐하며 박실장이 대답을 하자, 더 이상 대화를 하는 게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방을 나섰다.

잠시 후 BBG 전용연습실에 도착한 수빈은 자신들이 발표한 노래에 맞춰 단체로 춤을 추고 있는 멤버들을 발견하였다.

수빈이 들어서자 다들 손을 들어 인사를 했다. 수빈도 손을 들어 인사를 하며 말했다.

"지금 뭘 그렇게 열심히 연습하는 거야? [급작스러운 러브 모드] 활동도 다 끝났잖아?"

마빈이 대표로 대답했다.

"내일 품앗이가 잡혔어. 그래서 간단하게 한번 연습 중이야?"

"품앗이?"

"응."

수빈은 머릿속에서 품앗이에 대한 정보를 검색했다.

'농촌에서의 비교적 단순한 협동 노동 방식으로 두레가 공동체적인 것에 비해 품앗이는 개인적인...'

"내일 어디 농촌 가서 김매기 같은 봉사활동하러 가냐?"

"얘가 뭔 헛소리야? [핑크 베리]가 내일 행사가 잡혀서 우리가 품앗이하러 간다고."

"......그러니깐 그게 뭔데?"

"수빈이 너 요즘 한 번씩 이상할 때가 있더라? 큰 사고가 나서 그런가? 간단히 설명하면... 음. 핑크 베리가 아직 싱글 발표한 적도 없는 신인 걸그룹 아냐. 회사에서 간을 보고 있는 중이고. 그래서 일단 일반인을 대상으로 테스트를 해보려면 행사를 가서 뛰어야 반응을 보는데, 핑크 베리가 이름이 없으니 아무 곳에서도 안 부르잖아. 그럴 때 회사의 고참 아이돌이 걔네들이랑 한데 묶어서 계약하고 행사를 가는 거라고."

옆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성빈이 이어받았다.

"그렇게 하면 [핑크 베리] 걔네들이 행사비를 받아서 자기들 밥값이나 화장품 값이라도 벌수 있잖아. 그 대신 우리가 콘서트 같은 거 하면 걔네들이 무료로 출연해 주고 그러는 걸 서로 품앗이한다고 그러는 거야. 우리 회사에서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잖아. 그런 식으로 해서 다들 무명시절에 힘들 때 조금이라도 버틸 수 있는 힘을 주는 거지."

"아아. 이해됐다. 그럼 나도 너희들과 같이 연습을 해야겠군."

수빈의 말에 다들 놀란 토끼 눈을 하고 쳐다봤고 마빈이 조심스레 물었다.

"네가 품앗이를 간다고? 너 원래 그런데는 안 가잖아? 돈도 안되는데 시간 아깝다고. 그래서 너 빼고 우리들끼리 연습 중이었지. 너는 당연히 안 갈 줄 알고."

마빈의 말에 수빈의 미간이 살짝 모아졌다.

'지긋지긋하군. 이놈의 똥 덩어리는.. 끝이 없어. 하아.'

"리더인 내가 그런 좋은 행사에 안 가면 어떡하냐. 앞으로 빠지는 일 없도록 노력할 테니깐 그렇게 알고. 같이 연습하자고."

수빈의 말에 다른 멤버들이 다들 놀라면서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연습실 스피커에서 둥당 띠리리~ 둥둥당 띠리리리~ 하면서 [롤러코스터 보이] 전주가 흘러나왔다.

수빈은 환생 후 BBG 그룹 멤버들과 처음으로 춤 연습을 하는 터라 속으로 살짝 긴장을 하였다.

'댄스야 원래 이 몸의 전 주인도 나름 잘하던 거고 안무도 다 외우고 있으니깐 내가 실수만 안 하면 될 거야.'

처음 하는 춤 연습에 긴장을 바짝 한 수빈은 정신을 집중하고 감각을 끌어올려 멤버들의 동작들을 온몸의 피부로 감지하면서 동작을 최대한 일치시켜 열심히 춤을 추었다.

수빈이 다른 멤버들과 같이 춤을 추는 와중에 [롤러코스터 보이] 안무 중 하이라이트 부분인 무릎을 굽히고 쭈그려 앉아서 양손을 하늘 높이 들고 흔들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흉내를 내는 안무 부분이 나왔다.

수빈은 휘~우~웅 이라는 음악소리에 맞춰 팍팍 주저앉아서 양손을 높이 들어 흔들고 다시 힘차게 일어나서 다음 안무를 하고, 또다시 휘~우~웅 소리에 맞춰 주저앉아서 양손을 흔들며 열심히 춤을 추었다.

그러는 도중 BBG에서 춤을 제일 잘 추고 안무 창작까지 가능하여 롤러코스터 춤을 직접 안무한 성빈이가 춤을 추다가 일어서서 멍하니 수빈을 쳐다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하나둘씩 추던 춤을 멈추고 일어서서 수빈을 쳐다보았다.

멤버들이 다들 춤을 멈추자 덩달아 춤을 멈춘 수빈은 뒤돌아서서 멤버들을 의혹 어린 눈초리로 쳐다보며 물었다.

"다들 춤 안 추고 왜 날 쳐다보냐?"

수빈의 질문에 성빈이가 막 대답을 하려고 할 찰나였다.

그때 연습실 문이 열리며 어리고 예쁜 여자애들 6명이 우르르 한꺼번에 몰려들어오며 힘차게 외치는 소리가 연습실에 울려 퍼졌다.

- 선배님들 안녕하세요. 핑크 베리 입니다.

- 오빠들. 핑크 베리 입니다.

- 선배님들. 행사에 같이 갈수 있어서 영광이에요.

-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오빠들.

- 안녕하세요. 핑크 베리 입니다.

모든 멤버들의 시선이 갑작스레 등장한 여자애들에게 일제히 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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