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14화 (14/236)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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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TVM 스튜디오에 도착해서 분장을 받은 뒤, 자신이 이번 주 게스트라는 걸 다른 출연자들에게 숨기기 위해 차 안에 계속 앉아 있었다.

차 속에서 녹화 시간을 기다리며 행여나 들킬까 봐 점심을 도시락으로 간단히 때우면서, 출발 전 BBG 연습실에서 멤버들과 나눈 이야기를 다시 떠올렸다.

"지금 뭔가 이상한데? 케빈이 네가 [London Night With You] 그리고 [Suddenly Love Mode]라고 처음 컨셉을 잡아서 가사를 썼다며? 근데 왜 [너와 함께 런던 나이트]와 [급작스러운 러브모드]로 촌스럽게 제목이 바뀐 그 두 곡의 작사가가 너로 되어 있지 않지? 지금 얼핏 떠오른 내 기억엔 작사가가 완전히 다른 사람인데?"

"처음에 내가 습작 형태로 쓰긴 했는데.. 완전히 내가 다 쓴 거라고 하기에는 좀 그런 게 AR 관리하는 정팀장이 녹음하기 며칠 전에 가사를 다 한글로 바꿨어. 내용도 많이 바꿨고.. 나중에 녹음할 때 작사가 이름을 자기들이 지정하는 사람으로 넣어서 녹음했지."

"AR 이면 Audio & Recoding 팀 말하는 거 일 거고.. 네가 지금 말한 건 완전히 도둑질 아냐? 너나 다른 멤버들은 그걸 그냥 보고 있었어?"

대화를 듣고 있던 마빈이 억울한 얼굴로 수빈을 쳐다보며 항의하듯 대답했다.

"수빈이 너도 그때 아무 말 안 했잖아! 그래 놓고선 이제 와서 우리 보고 뭐라 그러냐.. 그리고 그때는 데뷔 초라 회사에 뭐라 따지기도 그렇고 해서 다들 그냥 넘어갔지.."

"흐음. 이것 참.. 미안하다. 내가 그때는 미처 거기까지 신경을 못썼다.. 앞으로 그런 억울한 일 있으면 무조건 나한테 말해. 알았어? 리더 놔뒀다 어디다 써먹으려고.. 다른 멤버들도 비슷한 일 있으면 나에게 바로 말해. 알아 들었어?"

멤버들 전원이 알겠다고 대답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수빈은 회상을 끝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애들이 어리고 힘이 없다고 등쳐먹는 어른들이 버젓이 회사 안에 있단 말이지. 이런 날강도 같은 것들을 어떻게 처리한다. 내 앞가림하기도 정신없는데 갈수록 일이 늘어나네.. 그렇다고 멤버들 일인데 모른 척하고 넘어갈 수는 절대 없지. 어떤 계략이 효과가 뛰어나려나.'

수빈이 생각에 잠겨 깊은 고민을 하는 동안, 어느덧 시간이 흘러 녹화 시간이 다가왔다.

[문제적 인간] 프로그램은 뇌가 섹시한 인간이 아름답다는 뜻의 [지금은 뇌섹시대] 라는 기치 아래 매주 게스트를 초대해서 한 명의 MC와 다섯 명의 남성 패널이 퀴즈를 같이 풀어보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출제되는 퀴즈 문제가 일반상식 같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 두뇌의 창의성과 회전력, 연산 능력, 논리력, 공간지각력 등이 필요한 문제가 출제되기 때문에 문제가 어렵기로 악명이 높았다.

실제로 많은 연예인들이 출연하였다가 한 문제도 못 풀고 앉아서 귤만 까다가 가는 경우가 허다해서, 행여 나갔다가 망신살이 뻗칠까 출연을 무척 꺼리는 프로그램이다.

문제적 인간의 MC인 전한무는 전직 KBC 아나운서 출신으로 본인의 트레이드 마크인 깐죽과 까불거림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퀴즈 프로그램 특유의 딱딱함을 잘 중화시켜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진행을 잘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고정 패널로는 가수 출신인 클락비의 박정과 페페스톤의 이장운, 연기자 출신인 김지성과 하석정 마지막으로 [비정상회의]에도 출연하고 있는 미국인 테일러가 매주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다.

패널 5명도 남자이고 MC도 남자이고 메인 피디도 남자인 그런 프로그램이다.

잠시 후 [문제적 인간]의 녹화가 시작되었다.

스튜디오에 음악이 깔리고 게스트 출입문 쪽으로 조명이 집중적으로 비추기 시작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파란 청바지에 하얀 티를 입은 수빈이 쑥스러워 하며 등장하였다. 훤칠한 키와 젊고 잘생긴 얼굴에 대학생 같은 복장을 한 수빈이 나타나자 방송 제작진 쪽에 앉아있던 여성들의 환호성이 들린다.

하지만 베일에 가려져 있던 게스트가 수빈이라는 게 알려지자 앉아있던 모든 남성 패널들이 한숨을 쉬며 좌절하였다.

- 제작진. 제발 여자 좀 부르자고.

- 여배우는 왜 안 나오는 거야.

- 다빈치는 오늘도 안 나오나.

- 남자 일곱 명끼리 또 녹화냐.

- 남탕이네. 오늘도 칙칙하구먼.

장내에 약간의 소란이 있은 후 MC인 전한무가 멘트를 시작했다.

"네. 오늘 나온 게스트 분은 그룹명이 참 특이한 남자! 아이돌 그룹이죠. 여자! 아이돌 그룹이 넘쳐나는 시대인데 말이죠. 데뷔한지 3년이 다 되어가는 BBG에서 현재 리더를 맡고 있는 수빈씨입니다. 워낙 유명하셔서 굳이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분이죠. 안녕하세요. 수빈씨?"

"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BBG에서 리더를 맡고 있는 수빈입니다."

녹화가 시작되자 긴장을 풀어주려는 듯 전한무가 수빈에게 질문을 던졌다.

"BBG라는 이름이 참 독특하잖아요. British Boys Group의 약자이죠. 팬분들이 이걸 또 한국말로 풀어서 영국소년단체라고 부르기도 하고 줄여서 영소단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걸로 아는데요. 특이하게 여섯 명 멤버들 전원이 다들 빈자 돌림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름과 관련된 에피소드들이 많이 있을 거 같은데요."

"네. 많죠. 일단 촌스럽다는 소리를 가장 많이 듣고 있죠. 하하하. 그리고 그룹명이 치킨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저희들이 TV에 출연하면 전국 치킨집 매상이 오른다는 소문도 있고요. 저희 멤버들이 빈자 돌림인데 빈이 영어로 콩(Bean)이라는 단어랑 발음이 같아서요. 팬분들이 저희들을 여섯콩 또는 육콩이라고도 부르는데.. 일전에 육룡이 나르샤라는 드라마가 한창 인기를 끌 때에는 육콩이 나르샤라는 패러디도 많았죠. 그리고 제가 생각할 때 콩과 관련된 에피소드 중 가장 웃겼던 건.."

"뭐가 가장 웃겼죠?"

"저희들이 작년에 시상식에 참석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격식을 차려야 되는 자리고 해서 전원이 검은색 슈트를 빼입고 갔었는데.."

"갔었는데요?"

"그때 포토존에서 찍힌 사진이 실린 기사에 달린 댓글 중에 하나가.. 여섯콩이 다들 검은색 옷을 입으니깐 꼭 콩자반 같다고 하셔서.. 콩자반 반찬 사진을 같이 올려주셨던 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그 이후로는 멤버 전원이 다 같이 검은색 복장을 하는 건 피하고 있습니다."

"반찬으로 즐겨먹는 콩자반.. 하하. 역시 네티즌분들이 센스가 대단하시죠. 그런데 연예계 쪽에서 수빈씨가 머리가 좋다는 소문을 저는 많이 못 들어봤는데요. 자.. 그럼 시청자 여러분들께 수빈씨가 학생 때 얼마나 공부를 잘했는지 확인시켜드리기 위해서 성적표를 한번 공개해 볼까요?"

전한무가 옆에 준비된 판넬을 뜯자 수빈이의 학생 때 성적표가 크게 확대되어 붙혀져 있었다.

잠시 성적표를 훑어보던 전한무가 눈을 크게 뜨고 난감하다는 듯 신음을 흘렸다.

"흐음..  이건 좀.. 많이 처참하군요. 아무리 포장을 해드리려고 해도.. 아니 수빈씨. 이 정도면 저희 프로에 나오기로 결심하기가 힘드셨을 텐데요. 성적표가 전부 가에 어쩌다 양이 몇 개 보이는데요. 저희 프로가 어떤 프로인지 알고 나오신 거죠?"

'이제부터 미리 짜놓은 각본대로 슬슬 연기를 시작해볼까.'

전한무의 질문에 수빈은 여유롭게 미소 지으며 답변했다.

"하하. 당연히 알고 나왔죠. 제가 학생 때 이런저런 방황을 좀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성적이 보시는 데로 많이 안 좋아요. 지금 보시는 시청자분들 중에서도 저처럼 학생 때 공부에 취미를 붙이지 못해서 성적이 안 좋으신 분들이 많이 계실 텐데요."

수빈은 잠시 말을 끊고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자 한자 끊어가듯 말했다.

"그런 학창시절을 보냈던 분들을 대신해서 행복이 성적순이 아니듯이, 머리가 똑똑하다는 것도 학생 때 받는 단순한 수우미양가 같은 등급순이 아니라는 것을 똑똑히 보여드리고 싶어서 직접 나왔습니다."

'초반에 멘트를 이렇게 세게 질러놔야 나랑 동질감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나중에 더욱더 흥분하며 좋아하겠지..'

마치 전장에 출전하는 군사(軍師)의 출사표(出師表)와도 같은 수빈의 비장한 멘트가 끝나자 프로그램 담당 피디인 황피디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원래 학생 때 성적이 수빈씨 정도면 저희 프로에 게스트로 안 모시는데요. 본인의 이미지도 있고 해서요. 그런데 이번에 수빈씨가 현재 몸담고 있는 기획사죠. YK 쪽에 제가 잘 아는 분이 강력하게 수빈씨를 추천을 하셨어요. 자기가 아는 세상 모든 사람 중에 감히 천재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똑똑한 사람은 수빈씨가 유일하다고 하네요."

수빈이는 피디의 말에 쓴웃음을 지었다.

'박실장 이 양반도 어지간히 좀 하지. 자기 일 아니라고 무지막지하게 질러놨군..'

"천재라.. 아마 피디님이 언급하신 그분이 저희 회사에 박동주 실장님 같으신데.. 그분이 평상시에 허풍이 좀 심하세요. 그래서 저희들이 뒤에서 박뻥주라고 부르는데.. 아무래도 피디님이 속으신 거 같은데요."

"그런가요? 그래서 저희가 그분에게 조건을 걸었어요. 그렇게 자신 있게 추천을 하시겠다면.. 만약 수빈씨가 나와서 1등을 못하면 다음에 그쪽 회사에서 저희가 원하는 게스트를 출연시켜 달라고 말이죠."

그 말에 수빈의 출연에 계속 심드렁해있던 전한무가 반색을 하며 대꾸했다.

"오.. 그래서 어떻게 됐나요?"

"오늘 수빈씨가 1등을 못하시면, 담 주에 YK 소속의 여배우 김소희 아니면 가수 하이유 두 분 중에 한 분이 섭외될 겁니다."

피디의 예상도 못했던 멘트에 녹화장 분위기가 갑자기 급격히 후끈하게 달아오르며 여기저기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 우와.. 장난 아닌데.

- 오늘 목숨 걸고 풀어야겠다.

- 진짜로? 정말로?

- 둘 다 아직 한 번도 못 봤는데.

- 닥치고 빨리 문제 풉시다!!

잠시 후 장내가 좀 진정되자 황피디가 멘트를 이어갔다.

"수빈씨를 추전한 그분께서 어제 확답을 저희 쪽에 주셨어요. 수빈씨가 일등을 못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두 분 중에 한 분을 출연시켜주겠다고.. 그러니 오늘 여러분들이 수빈씨 1등 못하게 잘 푸셔야 됩니다. 저도 그 두 분 중에 한 분을 저희 스튜디오에 모셔서 꼬옥 같이 문제를 풀어 보고 싶습니다."

전한무가 흥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 걱정 마세요. 수빈씨 학창시절 성적표 보니 우리가 절대 질리가 없습니다. 자신 있습니다. 담 주에 하이유랑 녹화하게 문제나 빨리 주세요."

- 왜 꼭 하이유야?

- 난 김소희.

- 자기가 하이유 팬이니깐 저러지.

- 난 하이유가 더 좋은데.

- 둘 중에 아무나 와도 난 상관없다.

"패널들 시끄럽고요. 닥치시고요. 피디님 문제 주시죠."

"오늘 총 다섯 문제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문제 유형은

1) 다잉 메시지

2) 뮤지컬

3) 스도쿠

4) 숨은 그림 찾기

5) 퍼즐 맞추기

이렇게 총 다섯 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일 먼저 그럼 다잉 메시지부터 문제가 나갑니다."

잠시 후 출연자 정면의 커다란 모니터에 [범인을 찾아라]는 제목과 문제가 순서대로 띄워지고 전한무가 읽기 시작하였다.

"복도식 아파트의 404호에서 한 남성이 살해당했다. 살해 현장에는 죽어가던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다잉 메시지가 암호로 남겨졌다."

- 다잉 메시지 : 9x19x5+口 = 5口

"CCTV 분석 결과 같은 4층에 살던 사람 중 한 사람이 범인이라고 결론났다. 다음 중 누구가 범인일까?

1) 금방 수학 과외를 하고 집에 돌아온 하석정.

2) 지금 막 국어 공부를 마치고 저녁으로 떡볶이를 먹은 박정.

3) 좀 전에 영어 학원에서 강의를 하고 돌아온 테일러.

4) 이제 막 아들의 산수 숙제를 도와주..."

다잉 메시지를 눈으로 읽으면서 수빈은 생각했다.

'흠. 이건 문제가 너무 쉬운걸.'

수빈은 전한무가 보기를 다 읽기도 전에 손을 들고 외쳤다.

"정답!"

수빈의 지나치게 빠른 정답 소리에 스튜디오에는 깜짝 놀라 외치는 경악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다.

잠시 뒤 놀란 정신을 추스른 전한무가 살짝 긴장된 톤으로 입을 열었다.

"수빈씨. 지금 엄청 빠르게 정답을 외쳤는데요. 수빈씨가 생각한 범인은 몇 번이죠?

단호한 목소리로 수빈이 대답했다.

"범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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