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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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이 한방에 만선을 꿈꾸며 낚시를 거하게 하려다, 예상못한 불청객의 난입으로 절반의 성공만 거둔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수빈은 그동안 틈틈이 읽었던 시나리오를 정리해서 오전에 배우 1팀의 박실장을 만나러 갔다.
"오. 우리 수빈이 왔냐. 어떻게? 다 읽어보고 검토해봤어? 네 맘에 드는 시나리오가 많이 있던? 맘에 드는 걸로 몇 개나 골랐냐?"
마치 자신이 오기만을 오매불망 기다린 듯 박실장의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질문에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네. 다 읽어보고 검토해봤습니다. 총 3편을 일단 골랐습니다."
수빈의 막힘없는 대답에 박실장의 얼굴에 살짝 감탄의 기색이 어렸다.
"정말 그 많은 양의 시나리오를 이 짧은 시간에 다 읽어봤나 보군. 그날 수빈이가 하는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실제 현실로 닥쳐오니 느낌이 또 사뭇 다른 걸.."
"변변치 않은 재주일 뿐입니다."
"또 그런다. 내가 너무 안으로만 숨지 말라고 그랬지? 물론 겸손한 것도 좋지만 그 나이엔 자신의 능력을 뽐내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리고 넌 직업이 연예인이야.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고. 남들에게 잘나 보여야 할 의무가 있어. 설혹 없더라도 있는척해야 되는게 그 직업이야.."
"네. 앞으로 더욱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알아서 잘할 거니깐 잔소리는 이 정도로 하고.. 그럼 수빈이가 골랐다는 시나리오를 한번 볼까나? 흐음. 3개만 골랐나 보군? 내가 생각한 것보다 수가 적은걸.."
"네. 제 마음에 드는 건 일단 그거 3개입니다."
"[달빛 속의 호위무사] 이건 완전 시대극 액션물이고.. [죽어가는 것에 이유 같은 건 없다] 이건 불치병에 걸린 남자 이야기고.. 마지막이 [스팅. 그 아름다움에 관한 보고서] 이건 사기꾼 이야긴데.. 흐음. 수빈이가 어떤 이유로 각각 선택을 했는지 들어봐야지. [달빛 속의 호위무사]는 왜 선택한 거야?"
"달빛 속의 호위무사 같은 경우에는 아무래도 몸을 많이 쓰는 역할인 거 같아서요. 제가 그쪽으로는 잘할 자신이 좀 있거든요. 그리고 제가 영화를 처음으로 찍다 보니 미묘한 감정선이 돋보이는 연기보다는 아무래도 몸으로 때우는 게 나을 거 같아서 골랐습니다."
"그렇군.. 그럼 [죽어가는 것에 이유 같은 건 없다]는 왜 고른 거지? 좀 전에 미묘한 감정선은 아직 연기할 자신이 없다면서? 그런데도 특별히 이걸 고른 이유가 있나? 이런 작품은 뛰어난 내면 연기나 눈빛 연기가 많이 요구될 텐데?"
"다른 쪽은 몰라도.. 불치병 환자 역할은 이상하게 잘해 낼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단순하게 그래서 고른 것뿐입니다."
"흐음. 설마.. 너 지금 몸에 지병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돌도 씹어먹을 나이 아닙니까. 건강합니다."
"그래? 그래도 좀 불안하군.. 조만간 BBG 전원 건강검진을 한번 받도록 해야겠군. 마지막 [스팅. 그 아름다움에 관한 보고서]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주인공이 사기꾼이라 사람들을 말로 살리고 말로 죽이는 역할이더라고요. 제가 나름 말발이 좀 되거든요. 그래서 이건 내가 해도 잘 소화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골랐습니다."
"흐음. 그래.. 그럼 이제 내 생각을 말해줘야지. 먼저 호위무사는 블록버스트 급 영화야. 못해도 200억 이상 투자될 거다. 이런 영화는 초짜인 배우를 절대 주인공으로 안 쓴다. 투자금액이 크다 보니 위험부담을 절대적으로 회피하지. 두 번째, 이유 같은 건 없다 이 영화는 독립영화에 가깝다. 많아봐야 20억 안쪽에서 찍을 거야. 네가 주인공으로 찍을 가능성이 충분하지. 우리 사무실 쪽에서 자금을 투자한다고 하면서 너를 밀어주면 가능성이 더 높아질 거다. 마지막으로.."
박실장은 잠깐 생각을 정리하는듯 말을 멈췄다.
"흐음.. 세 번째, 스팅 이 영화는 좀 애매한데.. 단순한 사기꾼 영화라고 하기엔 제작비가 많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영화 내용 중에 해외 로케 부분들이 많거든.. 그래서 지금 투자자를 못 찾아서 계속 제작이 딜레이 되고 있는 중이라고 들었다. 기대 관객 수가 그렇게 높지 않은 거에 비해서 제작비가 너무 많이 들어가는 터라.."
"그럼 제가 두 번째 영화 오디션을 보면 되나요?"
"음? 갑자기 뭔 소리야?"
"호위무사는 블록버스트라 절 안 쓸거고 스팅은 계속 딜레이가 되고.. 남은 건 두 번째 영화 밖에 없지 않나요?"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그런 게 어딨냐. 오디션은 다 봐야지.."
"네? 3개를 다 보라고요?"
"그럼. 당연하지. 오디션 본다고 무조건 뽑힌다는 보장도 없는데 초짜 배우가 골라서 오디션을 보는 게 어디 있어? 다 봐야지.. 내가 오디션 날짜를 알아봐서 알려줄 테니깐 가서 다 보고 오라고.."
".....후우. 네. 알겠습니다."
박실장과 면담을 마친 후 수빈은 BBG 전용 연습실로 내려갔다.
며칠 사이 많이 친해졌는지 수빈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 5명이 둘러앉아 신곡에 관한 열띤 토론을 나누고 있었다.
수빈이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자 멤버들이 수빈을 발견하고 다들 흠칫 놀란다.
'음? 왜들 나를 보고 놀래지? 그날 이후로 제법 허물 없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건가.. 아직도 이러면 곤란한데..'
수빈이 마빈에게 걸어가서 친해진 티를 내보려고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마빈의 몸이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마빈을 뺀 나머지 멤버들 전원이 일제히 엉덩이를 뒤로 밀어서 수빈에게서 떨어졌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나를 역병(疫病) 환자 보듯 하네.. 아직까지도 서먹서먹하면 안 되는데. 다시 작전을 짜야 되려나.'
수빈이 고민에 빠져드는 순간 마빈이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난.. 난 영국에서 자랐다고!!"
"음? 뭔 소리야? 그걸 누가 모르냐.."
"한국.. 한국인들이 내는 퀴즈 같은 건 절대 못 맞춘 단 말이야.."
"엥?"
뒤로 물러나 앉아있던 케빈이 절박한 목소리로 말을 받았다.
"나랑 로빈이도 영국에서 자랐다고.. 너 오늘 [문제적 인간] 촬영 간다며? 그런 프로그램에 나랑 로빈이가 나가면 둘 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 한마디 못하고 앉아있다 그냥 돌아올 거라고.."
"하아.. 이제 보니 이런 염병할 것들이.."
이제야 멤버들이 자기를 벌레보듯 하며 피하는 이유를 알아낸 수빈은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면서 한 명씩 쳐다보았다.
수빈의 시선을 받은 성빈이 필사적인 얼굴로 외쳤다.
"난 학생 때 맨날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춤만 췄다고. 난 안된다.. 수빈아 제발.."
옆에 있던 경빈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외쳤다.
"성빈이는 놀아도 대학로 근처에서 놀았으니깐 그나마 공부 좀 했겠네.. 난 맨날 클럽에서 랩만 연습했어. 수빈아 난 아니다. 난 그런데 나갈 자격이 없어. 나를 용서해라."
수빈이 짜증 난 얼굴로 외쳤다.
"이것들이.. 알았으니깐 닥쳐! 나 혼자 나갈 테니깐 걱정 말아.. 같은 멤버라는 것들이 말이야.."
수빈의 호통에 안도의 한숨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며 분위기가 화기애애 해졌다. 그리고 케빈이 활짝 웃는 얼굴로 수빈에게 다가왔다.
"수빈아. 내가 그때 그 곡에 맞춰 가사를 써봤는데 말이야. 이거 함 봐볼래?"
"하아.. 그래. 한번 보자. 설마 예전에 우리가 불렀던 [너와 함께 런던 나이트]나 [급작스러운 러브 모드] 같이 촌티 나는 가사는 아니겠지?"
"그건 오해라고. 네가 그때 관심을 안 가져서 그렇지.. 원래 가사는 그게 아니라고. 처음에 컨셉 잡을 때는 [London Night With You] 그리고 [Suddenly Love Mode] 였다고.. 위에서 다 한글로 바꿔서 그런 거지.."
"음? 네가 방금 말한 게 훨씬 나은데.. 위에서 왜 그렇게 바꿨지? 우리 팀 장점 중에 하나가 영어 발음 끝내주는 네이티브 스피커가 3명이나 있다는 건데.."
케빈의 말에 대답을 하면서도 수빈은 뭔가 이상한 걸 느꼈다.
"아니 잠깐만.. 내가 지금 뭔가 이해가 안되고 있는데?"
잠시 후 수빈은 백성철 매니저가 운전하는 밴에 올라타서 [문제적 인간]을 녹화하는 TVM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수빈아. 정말로 너 혼자서 가도 괜찮겠어? 멤버 중에 머리 똑똑한 애로 한 명이라도 같이 좀 데리고 가지 그랬어.."
"하아.. 멤버들이 다들 기겁을 해서 말이죠. 같이 가자고 하면 울려고 할거 같아서.. 뭐 어려운 프로그램도 아닌데 혼자 후딱 다녀오죠."
"그 프로그램 나도 몇 번 봤는데.. 출제된 문제를 못 풀면 다 풀 때까지 집에도 안 보내주더라. 밤새워서 문제 풀던데.. 분위기 살벌하더구먼.."
"그래요?"
"넌 안본 모양이지?"
"한편 정도 보다가 접었어요. 더 볼 필요가 없어서.."
"그렇구나. 녹화가 빨리 잘 끝나야 너나 나나 집에 일찍 가서 좀 쉴 건데 말이지.."
"대충 5~6문제 정도 풀면 끝이던데요? 금방 끝날 거예요.."
수빈은 달리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보다 지금 더 중요한 일이 생겼단 말이죠.. 이 쓰레기 같은 인간을 어떻게 처리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