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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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은 낚시에 걸려 펄떡이는 로빈을 보며 세이렌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사의 날갯짓 같은 하늘거리는 손짓을 하며 다정하게 불렀다.
"로빈, 너무 멀어서 잘 안 들린다고.. 가까이 와봐."
수빈의 유혹하는 말에 잠시 망설이던 로빈은, 주섬주섬 일어나서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월척이로구나.'
수빈은 작전대로 상황이 잘 풀리자 입가에 미소를 띠고 물었다.
"그래. 로빈 말이 맞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이지.. 지금도 전세계 어디선가 연주회가 열리고 있을거야. 그럼 여기서 문제. 마빈은 클래식을 잘모르는거 같고.. 로빈은 라흐마니노프 2번을 생각하면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르지?"
"초절정기교."
"그렇지! 초절정기교곡으로 유명하지. 그럼 로빈은 그런 초절정기교 중에서도 하이라이트 부분이 듣고 싶어서 2번을 찾아서 들어본 경험이 있나? 하이 옥타브에서 두 손으로 미친 듯이 건반을 눌러대는 부분.. 공격적이고 스피디한 타건(打鍵)으로 에너지가 흘러넘치는 바로 그 부분 말이야.. 거기가 듣고 싶어서 따로 들어본 적이 있나?"
"아니.. 그런적은 거의 없는걸."
"이상하지? 그런데 왜 이곡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을까? 초절정기교로 유명하지만 특별히 그 부분만 찾아서 듣지를 않는데도 말이지."
잠시 망설이던 로빈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이.. 앞부분의 부드러운 저음 터치 부분이 매력적이라서 그런걸로 생각되는데.."
"Correct!! 정답이야.. 라흐마니노프는 마판 증후군 환자였지. 그래서 손가락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유연해서 대단한 초절정기교의 피아노곡을 남겼지. 하지만 결국 평범한 일반 사람들이 찾는건 앞부분.. 일명 [크렘린의 종소리] 라고 부르는 도입부지. 저음의 장중하고 아름다운 첫 부분. 둥. 두둥. 둥둥. 하는 부분이지."
잠시 숨을 돌린후 수빈은 말을 이어갔다.
"내가 볼 때는 말이야. 라흐마니노프는 천재야.. 이곡이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Harmony와 Contrast 때문이라고 생각해.. 청중들에게 일단 먼저 낮고 부드러운 멋진 저음을 들려주지.. 그걸로 청중들의 고막을 일깨우는 거야. 소리에 대한 감각을 삽시간에 극단적으로 끌어올리게 만드는 거지.. 그리고 조금 뒤 고음의 에너지가 넘쳐흐르고 스피디하게 전개되는 부분을 거침없이 들려주지. 그래서 사람들이 그 부분을 단순히 소음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집중해서 들으면서 즐기게 되는 거야. 서로 상반되는 극단적인 대비를 가진 부분들을 아주 조화롭게 잘 엮었기 때문이라고.. 내가 왜 이 말을 하는지 알겠어?"
"....잘 모르겠는걸."
로빈의 대답에 수빈은 고개를 살짝 끄덕거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네가 알면 안 되지. 그러라고 말을 비비꼬아서 하고 있는 중인데..'
"내가 너희들 밴드의 음악을 들어봤는데 말이야. 음질은 좀 안 좋았지만.. 초반에는 그나마 괜찮았는데 뒤로 시간이 흐를수록 약점이 두드러진다고.."
"어떤 약점이 두드러지는데?"
"너희들 밴드 음악에는 베이스가 공동묘지에 가 있다고.. 죽어서 이미 땅에 묻혔어.. 저음 쪽이 듣기에 너무 형편없어서 듣는 사람 귀가 고생한다고.."
"으음.."
"하아.."
수빈은 말을 못하고 신음소리를 흘리는 두사람을 몰아쳤다.
"마빈의 미성과 고음 파트는 훌륭해. 아름답지.. 그리고 전반적으로 너희들이 밴드를 통해서 보여주는 열정도 아름다워. 키보드와 드럼도 훌륭해. 박수치고 싶어. 하지만.. 저음 쪽이 너무 형편없다고.. 갈수록 더 심해져. 아마 처음에는 밴드니깐 베이스 기타리스트가 있었겠지. 내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수빈은 마빈과 로빈을 한 번씩 쳐다보며 눈을 맞춘 뒤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중에는 베이스가 없어서 컴퓨터로 찍거나 키보드로 베이스 기타음을 대신했겠지? 그러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아? 살아서 두둥 거리는 베이스 소리를 계속 옆에서 듣지 못하고 매번 찍어만 내다보면 말이야.. 베이스가 점점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단순한 소음으로 바뀌어 가지.. 사람들이 그런 현상을 보고 뭐라고 하는지 알아?"
".....모르겠어."
".....나도."
잠시 틈을 둔 뒤 수빈이 단정 짓듯 말했다.
"그런 걸 보통 [타성(惰性)에 젖었다]라고 부르지."
좌중에 침묵만이 흘렀다.
잠시 뒤 마빈이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통을 참다못해 토해내듯 물었다.
"누구냐 넌?"
'음? 어디서 들어본 멘트 같은데..'
"나? 난 수빈이지. 2년이 넘게 보고선 갑자기 뭔 소리야?"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고 수빈이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이놈들과 친해지려면 지금 고삐를 죄어야겠지.'
"그래서 말이야. 너희들.. 마빈이나 로빈이 작곡을 하고 케빈이 작사를 하잖아? 혹시 새로 만들어놓은 곡이 있으면 나도 같이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 해서 정중하게 부탁을 하고 싶은데.. 괜찮겠어?"
마빈과 로빈이 서로 눈을 마주친 뒤 마빈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몇 곡 있어. 지금 들려줄까?"
수빈이 대답했다.
"잠시만.."
'애들이 어려서 확실히 순진하군.. 여기서 그물을 바짝 당겨 올려야지.'
수빈은 한쪽 편에서 지금 상황을 이해를 못하고 어안이 벙벙한 채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경빈과 성빈을 손짓해서 불렀다.
"경빈이, 성빈이, 너희들도 이리 와서 같이 들어야지.."
그리고 지금까지의 대화를 듣고 경악에 빠져있는 케빈에게도 손짓을 했다.
"케빈도 이리 오고.. 우리 팀 작사가가 이럴 때 빠지면 안 되지.."
수빈의 손짓에 다들 주춤거리며 일어서서 수빈이 옆쪽으로 다가와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휘유.. 만선이로세~~'
잠시 후 로빈의 핸드폰으로 새로 작곡했다는 멜로디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BBG 모든 멤버들이 귀를 쫑긋 세운 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음악이 끝난 뒤 다들 수빈의 입을 쳐다보고 있었다.
"훌륭해! 좋은 곡이다.. 참신하고 젊은이의 패기도 느껴지고.. 로빈이 작곡을 주로 한거 같은데.. 몇 가지만 내가 물어봐도 될까?"
"...그래."
"지금 들어보면 낮은 음의 현악기 소리가 살짝 들리거던? 이거.. 비올라지?"
"맞아."
"왜 비올라를 선택했지?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바이올린을 쓰지 않고?"
"...그냥 사용했는데."
"음. 그냥이라.. 역시 로빈이 재능이 있어."
"어째서?"
"너는 머리로는 지금 정확히 이해를 못하고 있지만 가슴과 본능으로 느끼고 있는 거야. 너희들이 해왔던 밴드음악에서 저음이 문제가 있다는걸.. 그래서 본능적으로 바이올린이 아니라 음역이 알토인 비올라를 선택해서 찍은 거지."
"아.. 그런 거였나?"
'하아.. 아무리 나라도 네가 정말로 그래서 그런 건지 어떻게 알겠니.. 아직 애들인데 일단 칭찬부터 해줘야지.'
수빈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면서 말했다.
"그런 거야.. 그런데 내가 아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어. 돌고 돌아 태극(太極)이라.."
"그건..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 거지. 어중간하게 비올라를 쓰는 것보다 나는 차라리.. 첼로를 쓰는 게 어떨까 하는데.. 아주 낮게 말이지. 반 옥타브 더 내려서 아주 낮고 굵게 깔아주는 거지. 그러면 마빈의 목소리가 훨씬 더 돋보일 거 같은데.. 원작자인 너는 어떻게 생각해?"
"음.. 내 생각에도 나쁘지 않을 거 같은데?"
"그래? 그럼 우리 녹음실에 가서 한번 테스트를 해볼까?"
'후후. 좋았어. 이대로 우르르 몰고 가서 전부다 나의 어장(漁場) 안으로 한방에 집어넣어 버리는 거야..'
애초에 수빈이 계획한 데로 일이 잘 풀려서 기분이 한껏 업이 되고 있는 그 순간.
갑자기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며 하이톤의 목소리가 연습실 안으로 울려 퍼진다.
"수빈아! 수빈아! 수빈이 어딨니?"
갑자기 들려오는 하이톤의 목소리에 멤버들 전원의 고개가 소리 나는 쪽으로 돌려졌다.
그걸 지켜본 수빈의 인상이 순식간에 찌그러졌다.
'하아.. 빌어먹을. 거의 다 낚았는데.. 산통(算筒) 다 깨는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