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군사 연예인이 되다-7화 (7/236)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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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빈을 두고 싸우는 걸로 보이는 두 사람의 언쟁에 복도가 떠나갈듯하다.

근처에서 일하는 몇몇 직원들은 감히 아무도 끼어들 생각을 못하고, 주변에 서서 웅성웅성 거리며 구경만 하고 있었다.

수빈은 재빨리 머릿속에 정리된 정보를 뒤져봤지만, 두 사람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어려웠다.

이 몸의 원래 주인이 물색없고 배우 쪽 관련된 일을 거의 하지 않아 그런지, 두 사람에 대한 정보가 이름과 얼굴 외에는 아는 게 거의 없었다.

'한심한 놈. 반반한 여자들 정보는 쫘악 꿰고 있는 놈이 자기 회사 상사들 정보는 아예 없군..'

수빈은 작은 소리로 멀뚱하니 싸움을 지켜만 보고 서있는 매니저에게 속삭였다.

"형. 두 사람 중에 누가 같이 일하기 좋은가요?"

"음? 글쎄. 내가 뭐라 평가할 자격이 되냐.."

"형이 어때서요? 정 부담되시면 그냥 형이 두 사람에 대해서 알고 있는 간단한 정보라도 좀 알려주세요. 판단은 제가 할게요."

그제야 매니저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두 사람에 대한 정보를 읊었다.

"흠. 그렇다면야.. 배우 2팀 조실장이 여기저기서 건수도 잘 잡아오고 일 처리하는 능력도 뛰어나다는 평이야. 요즘 잘나간다고 들었어. 근데 성격이 좀 매정하다는 평이 있어서.. 사람이 좀 차갑긴 하지."

생각을 정리하는 듯 잠깐 뜸을 들인 후.

"박실장은 아무래도 연배가 있으셔서 여기저기 아는 분들도 많고 성격도 좋으신데.. 예전 젊었을 때 같은 날카로운 감각은 많이 무뎌졌다는 평이 돌아.. 한물 간 게 아닌가라는 소문이 돌긴 하지..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뿐이야."

"알았어요. 고마워요. 형."

'후. 차가운 건 이전 생에서 아버지 덕에 질리도록 겪었지.'

수빈은 순식간에 판단을 내리고 두 사람에게 다가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

"박실장님!! 말씀하신 대로 일 잘하고 왔습니다. 또 뭐 시키실 건 없으신가요? 어라. 조실장님도 계셨네요? 안녕하셨어요?"

수빈이 다가와 허리를 숙이며 큰 소리로 인사를 하자 조실장이 똥 씹은 얼굴로 박실장을 쳐다보았다.

"오늘은.. 일단 그냥 가겠습니다만.. 조만간 다시 둘이서 이야기 좀 하시죠."

조실장이 고개를 돌려 수빈에게 말을 건넸다.

"그래. 수빈이 너 병원에서 무사히 잘 퇴원했다고 들었다. 다행이네. 내가 걱정 많이 했는데.. 조만간 내방에서 같이 차나 한잔하자.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겸. 담에 또 보자."

몇 마디 말을 한 후 조실장이 가버리자 박실장이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수빈을 바라보았다.

"허어.. 이놈 보게? 연기를 하기 싫어서 머리가 나쁜 척 연기를 했다고?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닌데. 이것 참.. 일단 내방으로 들어가지."

수빈은 박실장의 의혹 서린 말투에 순간 가슴이 덜컹했다.

'이런.. 실수한 건가. 강호 격언에 오래된 생강이 맵다더니..'

잠시 후 세 사람은 박실장 방에서 응접세트에 앉아, 각자 커피를 앞에 놓고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수빈이 너.. 좀 전에 일부러 그렇게 말한 거지?"

"네? 뭐가 말입니까?"

"내 앞에서 계속 아닌 척 연기할래?"

"연기라뇨? 전 박실장님께서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좀 전에 내가 시킨 일하고 왔다고 말하고 또 더 시킬 거 없냐고 물은 게.. 조실장 들으라고 한 소리 맞잖아? 나랑 일할 거니깐 조실장은 손때라고 돌려 말한 거 아냐. 이놈 이거.. 이제 보니 뱃속에 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앉아 있는 놈일세."

'후우. 생각보다 훨씬 눈치가 빠른걸.'

"아니 실장님.. 시키신 일 열심히 잘하고 온 사람에게 갑자기 왜 엉뚱한 소리를 하십니까?"

"아직도 그러네? 이놈이 나를 뭘로 보고.."

박실장은 옆에 꿔놓은 보릿자루처럼 가만히 앉아있는 매니저에게 물었다.

"성철이 너 올해 나이가 몇이냐?"

"스물아홉입니다."

"흐음. 수빈이가 스물둘이었지?"

"네. 맞습니다. 실장님."

박실장은 다시 수빈에게 시선을 돌렸다.

"내가 나이가 올해 쉰둘이다. 실장치곤 좀 많긴 하지. 조실장은 마흔하나고.. 근데 그런 사오십 대 직장 상사 두 사람이 대판 붙었는데.. 이제 겨우 스물둘 먹은 놈이 겁도 없이 끼어들어 말 한마디로 싸움을 끝내고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상황을 이끌어 간다? 넌 이게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나? 성철이는 백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걸?"

"흠. 전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는데요."

"호오. 그래~에? 정확한 상황 판단력과 빠른 결단력 그리고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과감성까지 필요한 일을.. 스물두 살짜리가 별생각 없이 했다고 계속 우긴단 말이지.. 알았다. 너도 말 못 할 나름의 사정이 있겠지."

박실장이 의자에서 허리를 젖히며 수빈에게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고.. 앞으로 대접은 제대로 해줄 테니깐 내 앞에서 너무 숨기려고만 들지 말고.."

박실장의 타이르듯 하는 말에 수빈은 속으로 반성했다.

'후우. 내가 너무 쉽게 봤어. 이 세상도 녹록지 않군. 다들 손에 칼만 안 들었다 뿐이지.. 예전 세상이나 별반 차이가 없군.'

"아무튼, 이제 머리가 좋다는 걸 숨기지 않는다니깐.. 이제 영화나 드라마 쪽도 본격적으로 출연하겠다는 뜻 아냐? 그건 맞는 거지?"

"네. 이것저것 여러 가지 경험들을 많이 해보고 싶습니다."

수빈의 말에 박실장은 고개를 끄덕거린 후 소파에서 일어나 책상으로 가서 한 무더기의 종이 뭉치를 들고 왔다.

"회사로 들어온 시나리오 들이다. 들어오기는 몇십 배로 많긴 하지만.. 1차적으로 걸러서 그중에 괜찮은 걸로 골라 놓은 거야. 일단 넌 오늘부터 이것들부터 좀 읽어봐라."

"우와. 1차로 거르고 남은 게 이 정도나 됩니까? 양이 엄청난데요.."

수빈은 시나리오들을 가볍게 뒤적거리며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 많은 걸 다 읽어보려면 3일은 걸리겠는데.."

"3일? 3주가 아니라? 호오.. 수빈이가 머리가 좋을 뿐만 아니라 속독법까지도 할 줄 아나 보군."

박실장의 말에 깜짝 놀란 수빈이가 고개를 들어 바라봤다.

박실장이 다 알고 있다는 눈빛으로 수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후우. 이 세상에 와서 내가 긴장이 너무 많이 풀렸어. 객잔(客棧)에서 차(茶)를 마시다 중독돼서 죽을 일이 없는 세상이다 보니.. 앞으로 조심해야겠군.'

"간단하게 제목이나 내용만 살펴보는데도 그 정도는 걸린다는 거죠."

"다 알고 있으니깐 의뭉은 그만 떨고.. 내가 어디 가서 소문내고 돌아다닐 사람은 아냐. 서로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네가 생각할 때 특별히 잘할 수 있을 거 같은 역할이나 해보고 싶은 역할이 따로 있나?"

"글쎄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역할이라면.."

수빈은 멋쩍은 듯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한 칼에 사람 목을 예쁘게 자르고 두 칼에 사람 사지(四肢)를 절단내고... 계략으로 여러 사람들을 사지(死地)에 몰아넣어 몰살을 시키거나, 아니면 함정을 파서 몇몇의 사람들을 피떡으로 만드는 역할 같은 건 잘할 자신이 있는데 말이죠.. 하하하. 그런 역할은 잘 없을 거 같군요."

"흐음. 무사나 군사 같은 역할이 자신 있다는 건가? 삼국지 같은 걸 찍으면 딱이긴 한데.. 한국에 그런 류의 영화가 잘 없긴 하지."

"하아. 웃자고 드린 말씀입니다."

"그런가? 자네 눈빛은 안 그렇던데.. 그런 거 말고 특별히 원하는 역할은 따로 없나?"

"네. 아직까진 뚜렷하게 이걸 꼭 해야겠다는 역할은 없습니다. 일단 경험을 쌓아봐야죠."

"그래? 그럼.. 내일 오디션을 하나 보러 가게. 내가 아는 감독이 찍는 영환데.. 작은 조연 자리 하나가 아직 비었다고 하더군. 부담 가지지 말고 한번 경험해 보는 것도 좋을 거야. 제대로 된 역할은 내가 준 시나리오 검토가 끝나면 정식으로 다시 의논을 해보자고.."

그말을 듣고 옆에 있던 매니저가 끼어들었다.

"저 실장님. 내일 오디션 가려면 수빈이 복장이나 메이크업 같은건 어떻게 할까요? 저희 쪽 코디나 스타일리스트가 지금 다들 딴 애들한테 붙어있어서요. 오늘도 다른 팀에 부탁해서 겨우 하고 갔는데.."

"내가 알아서 하지.. 내일 아침 10시까지 시간 맞춰서 여기로 오게. 내가 준비해 놓을 테니깐.. 이래 봬도 내가 YK에서 제일 파워가 세다는 배우 1팀 실장이야.."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수빈이가 궁금한 게 하나 더 생각나서 물었다.

"오디션이라면.. 따로 대본 연습 같은 걸 미리 해두어야 하지 않나요?"

그 말에 박실장이 재미있다는 듯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했다.

"넌 그냥 몸만 오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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