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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조정실 김성태 실장은 패닉에 빠져있는 최피디에게 넌지시 물었다.
"흠. 최피디가 BBG 팬인가 보지?"
하늘같은 선배인 실장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던 최피디가 입을 열었다.
"네. BBG 중에서도 수빈이 팬이에요."
"그래? 흐음. 너무 실망하지는 마. 연예인들이 티브이에서 보이는 것과 실제와는 다르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잖아?"
"실장님. 저도 그건 아는데요. 그래도 수빈이 평판이 양아치... 라는게 너무 놀라워서요. 절대 그렇게 안 보였는데. 항상 서글서글하게 잘 웃고 팬들한테도 다정해서."
"그 왜 옛날부터 유명한 만화 있잖아. 유리가면이라고.. 최피디는 그 만화 안 봤나? 걔네들은 그냥 팬들에게 보이는 가면을 하나 쓰고 있는 것뿐이야."
"하아. 그래도 그 다정다감한 수빈이가 양아치라니.. 전 도저히 상상이 안돼요."
"하하하. 이거 우리 최피디가 충격이 큰 모양인데.."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김기사가 슬며시 끼어들었다.
"원래 저 나이 때 스타한테 빠져서 팬질하면 좋은 것만 보려고 하지 굳이 나쁜 건 보려고 하지 않잖아요.."
"흐음. 그럼 우리 최피디가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줄까?"
"네! 실장님."
"수빈이라는 애가 말이야.. 양아치 소리를 듣긴 하지만 그래도 쓰레기는 아냐.. 그랬으면 우리가 골칫덩이라 하지 않고 개아들이라고 불렀겠지."
"그 말씀은?"
"그 새끼가 아니 그 자식이 자기밖에 모르고, 술 취하면 주사 부리고, 아무 여자에게나 껄떡대고, 입만 열면 쌍욕을 내뱉지만.. 그래도 몇 가지는 절대 안 하지."
"뭘 안 하는데요?"
"마약, 도박, 음주운전 이런 건 또 절대 안 해.. 그런 거 했으면 진작에 기자들한테 다 까발려져서 벌써 이 바닥에서 매장당했겠지. 그놈 노리고 있는 기자들이 한둘이 아니거든."
"아. 그건 다행이네요. 근데 정말.. 아까 실장님 말처럼.. 수빈이가 아무 여자에게나 그런다는 게 사실인가요?"
"그럼. 사실이고말고. 그놈은 술자리에서 처녀든 유부녀든 상관없이 얼굴 좀 반반하면 발정 난 개처럼 마구 들이댄다고.. 근데 재밌는 게.. 강제로 성추행 같은 건 또 안 한단 말이지. 뭐 얼굴이 워낙 잘생겼으니 여자가 먼저 넘어오는 것도 있을 테고.."
"못 믿겠어요! 수빈이는 여태껏 그 흔한 스캔들 한 번도 없었다고요."
"이야. 최피디가 KBC에 입사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YK를 우습게 보네? 사무실에서 돈 쓰고 힘써서 다 막았지. 쟤네들이 일 년에 벌어들이는 돈이 얼만데 그 정도 관리도 안 할까.. 괜히 이 바닥에서 YK를 3대 기획사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
김실장이 최피디를 보며 슬쩍 웃으며 말했다.
"암튼 그래서 관계자들한테 양아치 소리는 듣지만 쓰레기 소리는 안 들어.. 그러니깐 앞으로도 최피디가 계속 좋아해도 될 거야. 하하하."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웃고 있던 김기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실장님. 수빈이가 유명한 게 또 있잖습니까."
"음? 또 유명한 거? 아아. 돌대가리!"
김실장의 말에 깜짝 놀란 최피디가 놀란 토끼눈을 하고 되물었다.
"네에? 수빈이가 돌대가리.. 라고요?"
"아암. 돌대가리지. 돌대가리도 그냥 돌대가리가 아니고 슈퍼 돌대가리지. 처음 들어보는 모양이지? 최피디는 인기도 많고 저렇게 얼굴이 받쳐주는 놈이 왜 드라마나 영화 쪽으로 진출 안 하는지 아나?"
"아니에요! 수빈이는 드라마에도 자주 나왔어요. 영화에도 여러 번 출연했고요."
"그거야 전부 다 카메오로만 잠깐잠깐 나왔겠지. 저놈은 기본적으로 대사가 두 줄만 넘어가면 잘 못 외워. 그래서 YK에서도 몇 번을 시도하다가 포기했지.. 생각해봐. 저 잘난 얼굴을 써먹으려고 회사에서 얼마나 노력했겠어.. 하다 하다 결국 YK에서 두 손 두 발 다 들었지."
"말도 안 돼! 그럼 노래는 어떻게 불러요? 가사가 얼마나 긴데요."
"앞에 프롬프트가 있잖아. 그리고 지금 BBG 애들이 사전녹화하러 왔잖아. 우리가 저놈들을 왜 골칫덩이라 부르겠어? BBG 애들끼리 편 갈라서 싸운다고? 우리가 간섭할 것도 아닌데?"
김기사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수빈이 저놈은 프롬프트가 있어도 노래를 부르다 걸핏하면 가사를 까먹는단 말이야. 그래서 사녹을 뜬다고. BBG 스케줄 때문에 사녹을 하는 게 아냐. 라이브로 하면 100 프로 방송사고 난다고.."
최피디는 계속되는 충격적인 말에 입술을 깨물며 주저하다 말했다.
"혹시.. 누구처럼 어릴 때 옥상에서 떨어져서 그런 거 아닐까요? 그래서 기억력이 떨어지거나 뇌가 손상이 가서.."
"하하하. 안 믿기나 보군. 내가 최피디를 위해서 언제 기회 되면 회식 때 수빈이를 불러주지. 그놈이 여자 앞에서 얼마나 청산유수인지 한번 겪어보면 그런 소리 두 번 다시 안 할 거야.. 그냥 저놈은 어릴 때부터 오로지 노는 쪽으로만 머리가 발달한 놈이야. 아마 국어 교과서도 한 번도 안 읽어봤을걸.."
그때 김기사가 급작스럽게 끼어들며 업무용 톤으로 말했다.
"실장님. BBG 녹화 준비됐다고 합니다."
"그래? 그럼 쓸데없는 소리는 여기까지만 하고.. 녹화 시작하자고. 김기사는 수빈이 단독 잡는 카메라맨 보고 수빈이 입이랑 노래랑 잘 맞는지 확실히 보라고 해. 괜히 또 잘못 나갔다간 YK에서 지랄해댈 테니깐."
"네. 알겠습니다."
김실장은 충격으로 인해 멍한 표정으로 서있는 최피디를 쳐다보았다.
"최피디.. 준비 안 해?"
김실장의 말에 놀라 충격에서 깨어난 최피디는 허둥대며 자기 자리로 급히 돌아갔다.
- 녹화 스탠바이. 다섯. 넷. 셋..
2017년 7월 8일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되는 7월 초.
BBG는 네 번째 싱글 [급작스러운 러브 모드] 활동을 3개월 만에 끝내고 휴식기에 들어갔다. 각각의 멤버들은 개개인의 스케줄을 소화하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3개월간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삼일전 퇴원한 수빈은 오래간만에 청담동에 있는 YK 사옥으로 출근하였다.
퇴원한지 며칠 되지 않아서 아직 특별한 개인 스케줄이 잡혀 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BBG 전용 연습실에서 수빈은 양반다리를 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정말 놀라운 세상이로군. 예전 같으면 천금(千金)을 주고도 구할 수 없었던 지식과 정보가 이 작은 스마트폰 안에 이렇게 넘쳐흐르다니.. 아직도 배울게 너무 많아서 행복한걸.'
그때 연습실 문이 벌컥 열리며 YK에서 배우 1팀을 맞고 있는 박동주 실장이 들어오며 소리쳤다.
"경빈이 왔냐?"
연습실을 둘러보며 수빈을 발견한 박실장은 급하게 물어보았다.
"경빈이 아직 안 왔어? 로빈이도 없고?"
"두 명 다 촬영 가서 아직 안 끝난 거 같습니다."
"빌어먹을. 갑자기 카메오를 부탁하면 어쩌라고.. BBG에서 누가 또 랩을 좀 하지? 난 그 두 명밖에 모르는데."
"랩 말입니까? 운율과 박자에 맞춰 화자(話者)가 자신의 심경을 강약과 완급을 조절하며 표현하는 음악분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래. 넌 뭔 말을 그렇게 어렵게 하냐. 너도 좀 할 줄 알아?"
"네. 병원에서 가끔씩 연습했었습니다."
"아아. 맞다. 병원.. 너 몸은 이제 괜찮은 거야? 다 나았어?"
"예. 이제 건강합니다."
"그래. 그나마 무사히 퇴원해서 다행이다. 혹시 너 지금 다른 스케줄 있냐?"
"아뇨. 없습니다."
"잘 됐네. 스케줄 없으면 지금 일산 CBS로 가서 카메오 한 번만 해줘라. 거기 드라마 [School] 찍는데 가서 선배 스타 래퍼 역할로 잠깐만 출연해주면 돼. 너희 쪽 팀장한테는 내가 말할 테니깐.. 시간 되지?"
"네. 됩니다."
"그럼 그쪽 드라마 피디한테 전화해 놓을 테니깐 지금 바로 출발을..."
박실장은 말을 하다가 갑자기 뭔가 떠올랐다는 듯 천장을 보며 한숨을 크게 쉬었다.
"하~아.. 염병할.."
"갑자기 왜 그러십니까?"
"지금 생각났다. 거기 드라마에서 음악선생으로 나오는 배우가 유아영이야.. 젠장.. 넌 안되겠네. 까닥했음 애 하나 잡을뻔했네.."
"배우 유아영요?"
"그래 인마. 너 지금 거기 가면 뼈도 못 추려. 죽음이다.. 하. 급한데 누굴 보내지?"
수빈은 머릿속의 기억을 정리하며 유아영이 누군지 찾아보았다.
'이런.. 그녀가 유아영이군.'
잠시 생각 끝에 마음을 결정한 수빈은 박실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인마. 유아영이라니깐! 실장급도 없이 매니저랑 딸랑 둘이서 거기 가면 넌 가루가 되도록 박살 나.. 먼지가 되어 날아가려고?"
"하하. 좀 깨져도 상관없습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 아니겠습니까. 제가 뿌린 씨앗은 제가 거두어야죠."
"너.... 몇 달 안 본 사이에 좀 많이 변한 거 같다? 정말 괜찮겠어?"
"네. 드라마 피디님께 제가 카메오로 출연한다고 연락해주시죠. 성철이 형이랑 둘이 다녀오겠습니다."
"흐음. 난 모른다. 네가 간다고 한 거야.. 난 분명히 말렸다."
"네. 걱정 마세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알았어. 장피디한테는 내가 말해놓으마."
잠시 후 수빈은 로드매니저인 백성철과 함께 일산으로 출발하였다.
일산 CBS 드라마 세트장에 도착한 수빈은 차에서 내려 [School] 촬영장으로 걸어갔다.
막상 촬영장에 도착하니 휴식시간인 듯 장비를 점검하는 몇 명의 엔지니어들 외에는 피디나 배우들이 보이지 않았다.
촬영장을 둘러본 수빈은 백성철 매니저에게 말했다.
"성철이형. 지금 다들 쉬는 시간 같으니깐 잠깐 인사 좀 하고 올게요."
"인사를? 누구? 설마.. 지금 너 유아영이 한테 가서 인사하고 온다는 소리야?"
"네."
"너 미쳤냐? 제정신이야?"
"설마 절 죽이기야 하겠어요. 다녀올게요."
백성철은 웃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배우 대기실쪽으로 향하는 수빈을 보며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애가 확실히 변한 거 같은데.. 예전 같았음 꿈도 못 꿀 일을 자꾸 하려고 그러네."
수빈은 문 앞에 [유아영님 대기실]이라고 종이에 크게 써서 붙혀져 있는 방앞에서 잠시 심호흡을 한 후 노크를 하였다.
- 똑. 똑. 똑.
- 네~ 들어오세요.
수빈은 노크 소리에 화답하는 여성의 허락이 떨어지자, 손잡이에 가볍게 힘을 주어 돌리며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