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통일 그 후
그렇게 전쟁이 끝난 후 6년이 흘렀다.
남북은 그동안 경제 협력과 문화 교류가 활발해졌고, 사회적 거리감도 많이 줄게 되었다.
남북 동포 간에 결혼하는 일들도 빈번하게 생겨났다.
“아빠! 투표하러 가는 거야?”
“응! 너희는 못 해서 어쩌냐?”
“으아, 너무해! 1년만 지나면 나도 할 수 있는데.”
18세 이상의 남북한 국민들의 국민 총투표 날이다.
통일에 대해선 북한의 의회와 남한의 의회에서 과반수 찬성으로 통과되었다.
북한은 3년 전에 공산당을 해체하였다.
국민의 여론도 70%가 통일에 대해 찬성 쪽이었다.
오늘의 투표는 통일된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을 뽑는 날이다.
여론에서는 태월의 지지가 상당했지만, 태월은 고사했다.
굳이 자신이 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3명의 후보자가 나왔는데, 그중에는 최상국의 지지가 가장 높다.
북한의 후보자는 하나뿐이었는데 리병혁이다. 북한 주민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많이 알려져서다.
김정은은 공산당 해체 후 홀연히 사라졌다.
떠도는 소문에는 태평양에 섬을 사서,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했다.
“흠, 결국 최상국 후보가 51%로 초대 대통령에 올랐네. 리병혁이 41%라니 대단하군.”
“당신에겐 아무나 돼도 상관없지 않나요?”
“음, 뭐 그렇긴 한데, 최상국 후보가 되는 게 모양새가 나을 거야.”
“한백 자치시는 어쩔 거예요?”
한백 국제금융도시의 땅은 행정구역상 대한민국이고 국가 소유가 아니다.
그리고 그 자치시의 시장은 영구적으로 태월로 정해졌는데, 해외에서는 그곳을 자유도시로 보고 있다.
태월은 일에 파묻혀 지내길 원치 않아서 부시장을 따로 뒀다.
“그 땅을 살 자금이 국가에는 없어. 자치시로 남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지. 서울 땅값보다 더 비싼 12억 평을 정부에서 살 방법이 없잖아.”
“하긴, 이제부터 간도 땅을 개발시키려면, 통일 정부에서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죠. TW 건설도 수주를 맡았잖아요.”
“건설 쪽은 전문 경영인이 잘하고 있잖아. 그리고 이제는 세계 기축통화가 한국 원화와 미국 달러야. 한백 금융도시가 굳건히 버텨줘야 흔들리지 않게 돼. 이제 한국도 인구 1억5천이 넘는 국가잖아?”
간도 지역은 중국의 지배계급인 한족보다는 여진족이 많은 땅이다.
청나라 시대에는 그곳을 자신들의 고향이 있는 곳이라 여겼었다.
한민족의 뿌리에서 보면 여진족도 전혀 무관하지 않기에, 국민들의 화합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정부에서는 그런 과거들을 재조명하여, 국민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
“그렇긴 해요. 그런데 일본에서 초청했는데 안 가실 거예요?”
“그냥 대리인을 보낼 생각이야. 굳이 내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
일본의 후쿠시마에 지하도시를 세우면서, 지진이나 해일에 대해 우회 및 완화시키는 기술을 개발했었다.
그 일로 인해 일본 정부는 BTR과 10년에 걸친 장기계약을 맺었다.
일본의 땅은 안정화되어갔고, 국민들의 불안도 사라져갔다.
“노벨 평화상을 또 받을 거라던데요?”
“됐어. 한 번이면 됐지 뭘 또 받아. 미리 거절할 생각이야.”
“BTR이 세계 1위인 RAON 그룹을 넘어섰다고, 아카 언니가 전화했던데요?”
“그게 그거지. 장학회 건립은 잘 돼가?”
“아진 언니가 열심이에요.”
“둘이 잘해봐. 이제 아이들도 다 컸으니, 그게 보람될 수 있긴 해. 더구나 TW그룹, BATR그룹, RAON그룹, BTR그룹의 장학회를 통합하는 세계적인 장학회가 되는 거잖아.”
아진과 아샤가 공동이사장을 맡게 되었다.
아진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쪽을, 아샤는 남미와 중동 그리고 유럽을 맡을 것이다.
물론 아진과 아샤는 한국에서 업무를 보게 된다.
주요 결정과 지침만 내릴 뿐 세세한 건 담당자들이 할 것이다.
전 세계 각국에 지사들이 설립되고 있었다.
“그린피스에 지원금을 늘릴 거라면서요?”
“또다시 오염되어선 안 되잖아. 환경감시단을 더 키워야 해.”
“우리 이번 휴가는 어디로 갈 거예요?”
“흠, 글쎄, 남태평양은 어때?”
“좋은 데라도 있어요?”
“하하, 김정국이 한번 오라고 초청장을 보냈더라고.”
김정국은 김정은의 새로운 이름이다.
살도 빼 외형으로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고, 얼굴 또한 성형수술을 받았다.
“저번엔 부모님들이 너무 놀랐어요. 갑자기 어인족을 보게 된 거잖아요.”
바이칼 호수의 깊은 곳에 사는 그들을 아샤가 어인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들과는 여전히 물물교류를 통해 윈윈하고 있는 사이다.
“이번엔 휴양의 지역인 남태평양이니 마음에 들어 하실 거야.”
“큰어머니는 괜찮으시겠죠?”
“실제 나이야 그렇지만, 아직 정정하시잖아.”
홍미연은 태월과 설희를 마흔 살이 다 되어 낳은 것이다.
태월의 나이가 벌써 40을 넘어섰다.
그러니 80세의 할머니가 되어야 했지만, 외형으로는 50대 중반의 나이로밖에 비치지 않았다.
호족의 특성상 노화가 더디게 진행된 것도 있고, 태월이 전해준 이계의 호흡법도 아주 큰 역할을 했다.
아샤와 아진의 나이도 30대 후반이 되지만, 둘의 몸은 여전히 20대 중반이었다.
과거에 태월이 둘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으려 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태월 본인은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분장을 하고, 옷차림도 중년처럼 입는다.
***
“태월? 공간의 문이 열렸어!”
“무슨 소리야? 공간의 문이라니?”
“태월이 사라졌었던 이계로 가는 통로 같은 거 말하는 거야.”
“헛, 그게 왜 또? 설마 같은 곳은 아니겠지?”
“다행히 위치는 한국의 영흥만 쪽 무인도야.”
영흥만은 동한만 내에 있는 작은 만으로 원산만이라고도 부른다.
과거 북한의 함경남도 영흥군의 호도반도와 강원도 원산의 갈마반도 사이에 있는 만이다.
그곳엔 20여 개의 섬이 존재했다.
“흠, 인명사고가 나면 안 되니 결국 조사는 해봐야겠네.”
태월은 아카가 보내준 좌표를 확인하고는 홀로 그곳으로 향했다.
가족들에게 말했다간 난리 날 일이다.
소형 잠수함으로 변한 말캉이를 타고 그곳에 당도하니 생각보단 조용했다.
대략 1만여 평이나 될 정도의 무인도다.
과거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긴 했으나, 현재는 아무도 없었다.
폐가로 추정되는 우물 안쪽에서 빛무리가 흐르고 있었다.
우물이 아래로만 뚫린 것은 아닌듯했다.
작은 돌을 하나 떨어뜨리니 바닥에서 틱하고 소리가 난다.
“흠, 물이 없어서 무인도가 되었나 보네. 돌이 사라지지 않는 걸로 봐선 우물 안쪽 더 깊은 곳이 통로인 거군.”
태월은 주변을 뒤져 파리 한 마리를 찾아냈다.
그걸 귀속시킨 뒤, 안으로 들여보냈다.
파리의 눈을 통해 흑백으로라도 사물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통로가 역시 옆으로도 뚫렸네. 옳지 그리로 쭉 가!’
자연적으로 생긴 공동 같았다.
아마 저런 이유로 우물의 물이 빠져나갔을 것이다.
-스팟! 큭!
파리가 사라지면서, 태월은 잠시지만 통증을 동반한 현기증을 느꼈다.
“음, 공간이동이 되긴 했지만,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겠군. 어쨌든 영혼이 끊긴 건 아닌 걸 보니 살아있긴 한 거네. 파리 암컷의 수명이 한 달이고, 지금쯤 절반만 살았다 치면 보름 남은 건가?”
대략의 계산을 마친 태월은, 좌표에 따른 주소를 입력하고 전담 변호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우물을 위장해야겠어. 연구소 정도가 적당하겠지?”
아직 매입도 되지 않은 상태인데 태월은 서둘렀다.
팔찌의 공간에서 5기의 로봇과 굴착기까지 출고시켰다.
유사한 설계도까지 꺼내서 그대로 짓게 했다.
이제 이들이 알아서 공사를 진행할 것이다.
커다란 금속판 하나에 이름까지 새겨 땅에 박아 넣는다.
‘BTR 해양연구소’
건설 장비와 자재를 쌓아두고는 섬 주변을 둘러보러 나갔다.
‘외부로는 어떤 변화가 없네. 에너지가 흐르는 곳도 저곳이 유일하고. 그럼 지구 자체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상인 걸까?’
밤이 되자 태월은 텐트를 치고 야영을 준비했다.
그리고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아카에게 전달했다.
다음 날 아카는 전용기를 타고 한백 국제 공항에 내려섰다.
그리고 곧바로 헬기를 이용해 그 섬으로 넘어왔다.
“헬기장이 별건가? 이렇게 땅을 다지고 강화플라스틱판을 깔면 되는 거지.”
“호호, 하루 반 만에 이정도 공사를 했다니, 공사 감독이 능력 있나 봐!”
“에헴, 이정도야 뭐!”
사실 대부분 조립식이라서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그건 뭐야?”
아카가 공간 가방에서 꺼내놓은 것들의 일부는 생소했다.
“태월이 중급 신의 능력을 지니고 있잖아. 전에 했던 거 기억하지? 우리에게 그곳의 사정을 전해줬었잖아.”
“에이, 그건! 거기에 내가 있었으니 가능했지.”
“그걸 내가 모르겠어? 그 기운을 이 안에 넣은 후, 회수하는 방법이면 될 거야. 아 물론 실패할 수도 있는데, 이론상으로 가능하더라고.”
아카가 그 이론을 설명해준다.
“도깨비, 어떻게 생각해?”
“음, 듣고 보니 성공 가능성은 높아. 문제는 한 번 하고 나면 나는 두 달간 꼼짝 못 해.”
“호기심도 많으면서, 하기 싫어?”
“음, 한번 해 볼게. 궁금하긴 하네. 전에는 처음이라 에너지 낭비가 많았거든.”
태월은 요즘 문신 속에 있는 도깨비와 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문신의 본체가 중급 신이 된 도깨비였다.
“장치를 미니 인공지능 컴퓨터와 합체했어. 성공한다면 다양한 기록을 건질 수 있을 거야.”
“거기에 내가 가진 공간 관련 법술을 합쳐야 한다 이거지? 일주일 정도는 걸리겠다.”
“이거 대단한 실험이거든? 초장거리 공간이동 기술이 가능할 수 있어. 나도 시간 내느라 힘들었어.”
“거창하게 말하네. 이거 성공하면 화성이라도 바로 갈 수 있나?”
“태월의 능력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두 명은 함께할 수 있을 거야.”
“허, 대단한 실험이군.”
“수성과 목성까지도 가능해질 수 있어. 그게 현재의 한계야. 그걸 넘어서려면, 10년 정도는 연구에 빠져야 할걸?”
아카와 태월에게 10년의 세월은 대단한 게 아니었다.
태월은 가족들에게 아카와 해야 할 연구가 있다면서 일주일의 시간을 양해받았다.
우주여행에 관한 연구라고 하니, 다들 우주왕복선을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호호, 우주선은 지금 우리가 만들 수 있어.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 시도하지 않는 것일 뿐. 이 실험이 성공한다면, 제대로 된 우주왕복선도 만들 수 있을 거야. 진정한 우주 시대가 열리는 것이지.”
“음, 좋네.”
우주여행 이야기에 태월은 몸이 흥분되는 걸 느꼈다.
아내 둘과 자신은 아이들보다 더 오래 살 것이다.
자식들보다 더 젊은 상태로 살아가고, 아이들의 죽음도 지켜봐야 한다.
그것에 대해 고민을 종종 했던 셋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좀 더 나이가 들면, 자신들의 일을 물려주고 그들은 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다.
“완성되었네. 이제 시작하자.”
“태월은 뒤로 물러나 있어. 괜히 휩쓸려선 곤란해.”
-위이잉!
아카는 기기를 작동시켰다.
3분 후 기기 위에 있던 1m 크기의 원형구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일단 다른 세계로 이동은 성공한 거 같아. 이제 지켜보기만 하면 될 거야. 제발, 잘되어야 할 텐데.”
반나절이 지난 후에 기기에서 요란하게 울림이 이어졌다.
“호호호! 자료가 올라오고 있어!”
“하하, 이거 성공한 건가? 정보 해독 좀 부탁해.”
아카는 빠르게 올라오는 정보를 AI 슈퍼컴퓨터로 전송했다.
그리고 영상 부분은 그대로 화면에 띄웠다.
원형구가 하늘에서 이동하며 전역을 보여주고 있다.
용암이 치솟아 오르는 불의 세계였고, 보이는 해안가에는 조약돌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특별한 생명체는 보이질 않네. 그런데 조약돌이 왜 저리 반짝이는 거람? 규석 같은 건가?”
아카는 영상과 함께 올라오는 정보를 읽고는 태월에게 정답을 알려줬다.
“호호, 저기는 보석 해안이야. 규석이 아니라 진짜 보석들이야.”
“쓰, 쓸어 담으러 가야겠다.”
“지금은 안 돼! 애들 다 크고 나면 가!”
태월의 모험이 다시 시작되려는 모양새다.
-<귀신의 재능을 삼켜라> 완-